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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주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보혜사 성령 (요 14:16-17,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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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소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예수를 잘 믿는 것이 우리 인간의 소망입니다. 이보다 더 귀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일에만 성공하면 모든 일에 성공합니다. 예수 믿는 일에 실족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실족할 일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모든 일이 주 안에서 우리에게 형통함이 주어집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잘 믿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오셔서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진리이신데 진리 되시는 주님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시며,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게 하시며, 그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늘 도와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 믿음의 자녀로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높은 산 히말라야나 에베레스트 산이나 세계의 최고의 높은 산들을 올라갈 때는 등반하는 사람이 자기 혼자의 힘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그전에 몰랐을 때는 ‘아~ 저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구나. 높은 산에 올라갔으니 대단한 일이구나.’라고 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셀파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끝까지 짐을 져주고 길을 그 분이 안내해 주며, 못 올라 갈 때는 밀어주고 붙잡아주며, 마지막 정상에 올라갈 때에도 그 분의 힘으로 올라갑니다. 그래서 저는 그걸 몰랐을 때는 ‘저분이 혼자 올라가서 사진을 어떻게 찍었을까? 단독 등반 성공이라니까 단독으로 올라가서 사진을 이렇게 찍었을까? 아니면 이렇게 찍었을까? 그리고 그 옆에 무슨 나무가 있어서 자동셔터로 찍었을까? 아~ 거기는 나무가 없는데 그러면 얼음에 올렸을까? 얼음도 영하 50도를 깰 수가 없을 텐데... 어떻게 했을까? 산신령이 찍었을까? 누가 찍었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그것을 모두 다 셀파가 찍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분들은 평균 4천 미터 해발 5천 미터에 살기 때문에 심장이 벌써 다릅니다. 그리고 신체적으로 튼튼합니다. 그런 곳에 올라갈 수 있는, 그리고 모든 추위를 견딜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분은 길을 매우 잘 압니다. 기후에 대해서도 잘 압니다. 인도하는 대로 따라갑니다. 그 분의 코치를 받아가지고 갑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정상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행복의 정상에 올라가는 길, 우리 인간의 주어진 모든 길을 끝까지 잘 감당할 수 있는 길, 어떤 길이든지 우리가 실패하지 않고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으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짐을 받고 보호하심을 받아 내가 세상 끝날 까지 잘 달려갈 수 있는 길은 성령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성령은 넘어질 때 일으켜주시고 약할 때 힘주시며, 시험들 때도 우리에게 권고해 주십니다. 우리 마음과 몸은 연약합니다. 늘 우리에게 많은 시험이 있습니다. 이 모든 시험과 장애물 하나하나의 고개를 넘어설 수 있도록 끝까지 성령이 도와주셔야 우리는 에베레스트, 히말라야산 정상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성령을 ‘보혜사’라고 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보호해 주시는, 거룩하신 선생,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이라 이런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헬라어 원어에는 ‘파라크레토스’라고 합니다. 이 ‘파라크레토스’라는 말은, 보혜사라는 말로 ‘위로자’, ‘상담자’, ‘대언자’, ‘중보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주님은 우리의 상담자요, 위로자요, 중보자요, 보혜사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나 외에 다른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겠다. 그리고 너희 마음 안에 거하겠다. 너희 심령에서 너와 함께하여 너를 도와주겠다. 너를 위로해주겠다.”라고 하셨습니다. 늘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슬프고 외로우며,
답답하고 어려울 때 위로해 주시며, 사건을 만날 때 사건을, 불행을 만날 때 그 불행한 일을 도와주시는 분이 파라크레토스 성령이십니다. 이 험한 세상,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사랑, 보호하심, 위로하심, 은혜로 살아가게 되어 있는데, 우리 인간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영이 떠나갔다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주의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재차 오셨습니다. 우리는 이 성령님을 환영하고 받아들여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살아가야 됩니다.

  그는 우리의 중보자이십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예수님은 중보자이신데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하나님 옆에서 중보자로 계시고, 성령은 내 안에서 중보자로 계십니다. 우리가 물건을 운반할 때 여기서 던지면 저기서 또한 던져서 정상으로 가듯이, 성령은 우리의 기도를 대신 기도해 주시고 하늘에 계신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받으셔서 하나님 앞에 또한 올려 주신다 라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하나님의 우리 인간을 향한 사랑과 수고와 그 노력이 우리의 일생을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만들어줍니다. 성령은 늘 우리를 중보자로, 상담자로, 위로자로, 대언자로 우리가 잘못할 때는 감동을 주십니다. ‘너 왜 그런 길로 가느냐? 김 집사! 너 그러면 안 되잖아. 너 왜 그래? 너 왜 그 죄악에서 안 떠나느냐? 너 이거 잘못되었지 않냐?’ 우리 마음에 끊임없이 가르쳐 주시고 대언해 주시며, 충고해 주시고 책망해 주시는 일도 성령이 하십니다. 잘 할 때 위로도 해 주시고 잘못할 때 우리에게 충고도 해 주시며, 길을 잘못 갈 때는 꿈으로도 보여주시고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서 우리의 잘못된 것을 지적해 주시는 스승, 어머니의 손길, 그리고 목자의 막대기 같은 역할을 하시는 분이 성령이시라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한 순간, 한 순간 한 사람도 남김없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온 것입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클 때에 특별히 우리 아이들을 잘 봐주신 집사님이 한 분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커서 초등학교 다닌 다음에 그 집사님이 우리 집에 오셨습니다. 아이들을 업어주고 사랑해 주었지만 ‘얘들아! 너 우리 집사님 아느냐?’ 하니까 모두 다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도 모릅니다. 그러나 집사님의 손길이 끊임없이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얼마나 많이 도와주셨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이 모를 뿐, 내가 모른다고 해서 성령이 안 계시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은 모르게 계십니다. 원래 내가 알지 못하게 계시면서 나를 도와주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것을 믿어야 되고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외손자 재혁이도 잘 길러준 집사님이 있습니다. 얼마나 사랑해주고 길러주었지만 재혁이는 모릅니다. 저 혼자 큰 것 같지만 사랑해주고 길러준 그 집사님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성령께서는 끊임없이 우리를 도와주셨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클 때는 전부 귀저기를 천호시장에 가서 샀습니다. 한 필 사면 스무 개를 잘라가지고 둘이 저하고 마주 앉아가지고 묶어서 말아 이걸 쌓아 놓습니다. 30개, 40개가 그냥 하루에 모두 다 없어집니다. 얼마나 많이 싸는지 그냥 그러면 이걸 저녁이 되면 모두 다 빱니다. 밤늦도록 빨래를 해서 그걸 버리지 못하고 그 때는 돈이 없던 때이기에 그걸 빨아가지고는 모
두 다 방 안에다 널어놓습니다. 빨랫줄을 해서 수십 개의 귀저기를 갖다 걸어 놓으니까 화장실에 갈 때는 기어서 갑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십 년이 넘도록 항상 우리 집에 귀저기가 끊어질 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그걸 못 봤다고 해서 ‘나는 안 쌌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못 봤고 저희들이 모를 뿐이지 우리가 아이들을 기르는데 수많은 손길이 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큰 것입니다. 

일생동안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와 끊어질 수가 없습니다. 여기뿐 아니라 이 땅을 떠날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손 붙잡고 천국 가는 것이지 이 땅을 떠났다 해서 자기 혼자 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백퍼센트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도움을 받습니다. 주의 은혜로 죄 사함 받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날마다 순간순간 주님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사는 것 주님의 크신 은혜요, 주를 믿게 된 것은 더욱 크신 은혜라. 넘치는 주의 사랑 놀라운 주의 은혜 날마다 경험하며 주께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당하는 환난 고초 많으나, 이길 힘을 주시니 더욱 크신 은혜라 답답할 때 기도로 쓰러질 때 손길로 어루만져 주시니 진정 감사합니다.♬ 저 역시 오
늘날까지 지내온 것은 모두 다 주님의 도우심입니다. 목회의 한 순간 한 순간을 주님이 안 도와 주셨다면 여기까지 전혀 올 수가 없었습니다. 수 억 만 가지 주님의 손길이 저와 같이 해주셨습니다. 제가 그 많은 시험을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주님의 손길이었습니다. 그 많은 환난을 이긴 것도 주님의 손이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제는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앞으로도 이 세상 끝 날까지 주님은 저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성령이 도와주십니다. 성령은 오늘 우리와 같이 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도움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분이 있습니다. 자존심이 있어서 어려울 때 ‘도와주세요.’ 라고 누구한테 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는 걸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나쁜 성품입니다. 사람은 도움이 필요할 때
는 반드시 가서 도와달라고 해야 길이 열리고 성공합니다. 인생은 끝까지 도움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헬프 미(help me)’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를 도와주세요.’, ‘갓 헬프 미(God help me.)', ‘하나님 저를 도와주세요.’ 많은 국민 앞에 ‘국민 여러분! 저를 도와주세요.' 옛날 황제들은 교만해서 도와달라는 말을 안했습니다. ‘짐' 이라고 했습니다. 국민에게 그런 소리를 안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일수록 국민의 도움을 많이 받도록 국민에게 요구합니다. 그래야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공하기를, 행복하기를, 잘 되기를, 길이길이 승리하기를 원하십니까? 끊임없이 ‘성령이여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매일 하루에도 다섯 번 이상 이 기도를 합니다. 잘 되어도 ‘주의 성령이여 나를 도와주세요.’ 일어나서도 ‘오늘 하루 종일 주여 성령이여 나의 길을 인도해 주십시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이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이 함정 많고 환난 많은 세상,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이렇게 자살 많이 하고 위험한  세상을 살면서 성령의 도움을 안 받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도움 안 받으면 실패합니다. 성령의 도움을 거절하면 인생은 고아가 됩니다. 그러나 어느 연약한 사람일지라도 성령의 도움을 받으면 반드시 그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어디에 계신다고 말씀했습니까? 오늘 말씀하시기를 “성령은 너희 안에 거하신다. 너희 마음에 거한다.”라고 했습니다. 내 안에 성령이 오십니다. 사람 속에는 누가 계셔야 합니까? 성령이 계셔야 합니다. 성령이 계시는 곳이 어디입니까? 내 안입니다. 성령은 밖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내 안에 계십니다. 이 세상에 가장 귀한 것이 인간이고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이 있다면 어디입니까? 심령입니다. 행복도, 인격도, 인간됨의 가치도 모두 다 안에 있습니다. 요사이는 건강 건강 하지만 건강도 이 안에 있습니다. 정신적인 것이 건강을 좌우한답니다. 제가 어떤 책을 보니깐 나환자가 된 것도 60퍼센트가 정신적으로 온답니다. 여러분! 불행이, 행복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다 이 안에 있습니다. 아무 것 없어도 내 안에 성령이 오시면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모두 다 가져도 내 안에 성령이 떠나가면 지옥같이 살아갑니다. 인격이 어디에 있습니까? 외모에 있습니까? 아닙니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안, 안을 무시할수록 인간은 고통을 당합니다. 오늘 우리 인간이 이렇게 방황하는 것은 안을 무시하기 때문에, 안을 채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에 보화가 없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 거하셔야 내 영혼이, 내 가정이, 내 집안이, 내 가는 길이 잘 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안에 보혜사 성령님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밖의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내 안에 성령을 보냈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 오시면 안도 밖도 잘 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성령은 우리 안에서 도와주십니다. 사람됨을, 교인됨을, 훌륭한 아빠, 어머니, 아내, 시민, 세계적인 문화인이 되도록 성령은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성령은 우리 안을 어떻게 하십니까? 환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심령을 밝게 하여 주십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은 죄악으로 어두워졌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심령은 불이 꺼졌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우리의 심령은 소망이 없습니다. 지식을 많이 가지면, 공부를 많이 하면 우리 마음이 밝아질 것 같습니까? 더 어둡습니다. 그래서 불평, 불만이 더 많습니다. 돈이 많으면 마음이 밝아질 것 같습니까? 별장을 많이 지으면,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마음이 밝아질 것 같습니까? 결혼을 해서 예쁜 부인하고 살면 마음이 밝아질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우리 마음을 밝혀 줄이는 없습니다. 성령이십니다. 성령이 아니면 우리 마음을 환하게 할 수 없습니다. 위로부터 빛이 비추어져야 합니다. 구약성경에 성막이 있는데 성막은 덮개를 네 번 하지 않습니까? 청색 자색 홍색실로 꼰 앙장으로 해서 덮고 그 다음에 염소 털로 덮으며,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계속 덮습니다. 그러니 그 안이 얼마나 어둡습니까? 캄캄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성전을 밝게 켜는 것은 성령의 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람유로만 그 안을 환하게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어두워진 우리의 마음에 성령만이 우리를 환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빛이십니다. 내 안에 오셔서 어두움의 세력, 마귀, 죄악, 어둠의 세력인 이 세상의 환난 시험을 모두 다 제거하시고 주의 빛으로 환하게 하는 줄로 믿습니다.

  제가 이번에 미국을 갔다 오면서 비행기에서 너무 오래 있으니까 비행기는 불을 끕니다. 불을 꺼버리고 잠이 안 오는 분은 텔레비전을 보게 하며, 그런데 저는 책보고 성경보며 혼자 그러다가 서울이 가까워진 것 같은데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까하고 창문을 한 3센티 정도 약간 열었습니다. 저쪽에서 뭐가 퍽 후다닥 하는 것입니다. 뭐가 그러는가 하고 보았더니 이 빛이 3센티 들어왔는데 저쪽으로 좌 악 비추니까 저쪽에 있던 사람이 놀래가지고 자다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제가 그때 보면서 이 빛의 능력이 얼마나 힘이 있는가를 알았습니다. 삼센티 창 하나를 약간 들었는데 전체 비행기 안이 환해지는 것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빛이 여러분의 마음을 비추면 천년 만년 무엇으로도 못했던 여러분의 마음에 어두움이 물러갈 줄로 믿습니다.

  어린아이들 보십시오. 얼마나 불평, 불만이 많습니까? 부모에게 대한 불만이 왜 그렇게 많습니까? 이 어두운 마음을 부모가 밝게 할 수 있습니까? 그 안에 어두운 마음을 남편이 밝게 할 수 있습니까? 오늘 수많은 여성들이 남편이 직장에 나간 다음에 아저씨를 찾습니다. 빛을 찾습니다. ‘방금 출근했음.’ 이래가지고 수많은 여성들이 어둠 가운데 헤맵니다. 빛을 찾습니다. 어디 내 마음을 환하게 해 줄 아저씨가 없나? 아저씨도 어두운데 여자의 마음을 밝게 해 줄 아저씨는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습니다.

누구입니까? 파라크레토스, 성령이십니다. 성령님이 여러분의 마음에 들어갈 때 어디에서든지 우리는 빛 가운데 살 줄로 믿습니다. ♬온 세상이 캄캄하여서 참 빛이 없었더니 그 빛나는 영광 나타나 온 세계 비치었네 영광 영광의 주 영광 영광의 주 밝은 그 빛 내게 비치었네 영광 영광의 주 영광 영광의 주 이 세상의 빛은 오직 주 예수라♬ 어두운 내 영혼, 내 가정들, 이 사회와 길거리, 청소년들의 저 어두운 마음들, 어두워서 도박장, 윤락가, 술집을 찾는 이 수많은 어두운 영혼들을 누가 밝게 해 줄 수 있습니까? 성령의 빛이 우리의 어두움을 모두 다 몰아내시고, 우리의 영혼을 새로움의 빛으로 환하게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심령이 밝아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합니다. 더러워진 우리의 마음을 누구도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죄악은 세 살 때 지은 죄악도 잘 박힌 못처럼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성철스님도 이 죄를 씻으려고 그렇게도 평생을 빌고 빌었지만 ‘내 죄를 씻을 수 없어서 나는 지옥으로 간다.’ 하고 그는 유언하며 이 땅을 떠났습니다. 빌면 죄가 없어집니까? 눈물을 흘리면 죄가 없어집니까? 울어도 못하네 눈물 많이 흘려도 죄를 없게 못하니 죄를 어떻게 울어서 씻습니까? 빌어서 씻는 것이 죄입니까? 죄는 영원히 그 색깔을 바꿔 놓을 수 없습니다. 욥기서에 뭐라고 했습니까? “표범이 색깔을 바꿀 수 있느냐?” 그랬습니다. 표범 색깔을 누가 바꿉니까? 우리의 죄악, 검은 더러워진 심령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
지만, 주의 성령이 오셔서 주님이 하신 일처럼 내 안에 죄악을 정결하게 하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피 흘려 돌아가셨다면, 성령은 끊임없이 내 안에 역사하셔서 예수를 믿으면서도 넘어지고 실수하며, 잘못된 우리의 마음들을 늘 주의 성령의 기름으로 태워주시고 성령의 물로 씻어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한나라의 동방삭이는 나이가 너무 많아 귀신이 그 나이를 몰라서 못 데려 갔습니다. 동방삭이의 나이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동방삭이 밖에 몰랐습니다. 귀신이 데려가려고 해도 데려갈 길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귀신이 동방삭이가 자주 다니는 길 옆에서 빨래를 했습니다. 숯을 가져다 놓고 숯을 씻기 시작했습니다. 동방삭이가 지나가다가 보더니 “당신 뭐하시오?”, “숯을 씻습니다.” 귀신할멈이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 숯을 뭐 하러 씻습니까?”, “아~ 흰 숯을 만들려고요.”, “아유~ 여보시오 숯은 아무리 씻어도 숯입니다. 내가 삼 천 갑자를 살아봤지만 숯을 씻는 사람은 처음 보았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동방삭이를 데려가 버렸습니다. 숯을 아무리 씻어봐야 숯입니다. 죄는 울어도 그
대로입니다. 노력해도 그대로입니다. 옮길 수가 없습니다. 성령만이, 하나님만이 죄를 눈보다 더 희게 양털보다 더 희게 깨끗하여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합니다. 죄인이지만 죄를 전혀 느끼지 않고 의인의 자유함, 담대함, 기쁨으로 살아가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하십니다. 죄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계실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스스로 씻으시고 당신의 터를 만들어 놓으시므로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주의 보혈로 씻음 받고 성령으로 씻음 받아 정결한 심령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은 무한한 능력이십니다. 아무리 기쁨이 없는 곳에도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집니다. 환난 많은 세상, 우리에게 아무리 장애물이 첩첩이 우리의 길을 가로막을지라도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모두 다 이길 수 있고 넘어갈 수 있으며,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곤비하며 피곤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집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안 자빠질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소년이 어디 있고 노년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다 고민이 가득 차 있습니다. 모두 다 넘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새 힘을 얻습니다. 할렐루야!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감 같습니다. 새 힘을 얻습니다. 위로부터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 성령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힘 있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돈이 많으면 힘이 있을 것 같지만 아닙니다. 심령은 더 무거워집니다. 이 세상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짐이 무거워지지만 성령의 힘만이 우리를 가뿐하게 만들어주십니다.

  저는 이번에 클리브렌트에서 집회를 했는데 나이아가라 폭포가 옆에 있었습니다. 승용차로 세 시간, 백 오 십 마일 옆에 나이아가라가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마치고 장로님들하고 같이 가자고 해서 오후에 갔는데 이미 해가 지려고 합니다. 그래도 사진을 찍고 돌아왔습니다. 나이아가라는 너무 놀랍습니다. 이 나이아가라 폭포의 물길이 위에서 쏟아지는 물이 얼마나 힘이 있는지 한 시간 떨어지는 물을 가지고도 서울 시민이 일 년을 먹어도 될 정도로 물이 어마어마하게 떨어집니다. 극히 일부분만 가지고도 미국 쪽에서도 전력을 일으키고 캐나다 쪽에서도 전력을 일으키는데 수력발전소입니다. 그 발전소 힘이 어느 정도 이냐하면 놀랍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의 미국 쪽에 있는 폭포가 1천 8백만 마력입니다. 1만 3천 5백 메가 와트의 전력을 일으킵니다. 우리나라의 제일 큰 충주댐이 얼마나 전력을 일으키느냐? 412메가 와트입니다. 그러니까 이 나이아가라가 1만 3천 5백 메가 와트이니까 얼마나 놀랍습니까? 계산을 못합니다. 어마어마한 힘이 쏟아집니다.

  누가복음 24장에 인간의 힘은 땅에 있는 힘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지음 받아서 인간이 이 세상을 힘 있고 능력 있게 살아가는 힘은 위로부터 온다고 했습니다.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조금 배웠다고 그걸 힘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조금 돈 있다고 그걸 힘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위로부터 주시는 능력으로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자녀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길러보십시오. 잘 기를 수 있습니다. ‘한 명 낳아서 잘 기르자.’ 한 명 낳아도 힘없는 사람은 피곤하고 곤비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이 힘주시면 열 명이라도 쉽게 기릅니다.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길러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씀으로, 은혜로 길러주셔서 하나님의 귀한 형상을 드러내게 하시고, 우리의 범사의 삶이 하루하루를 천국같이 살아가도록 도와주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끊임없는 꿈을 주시며 비젼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는 분이 성령이신 줄로 믿습니다.

  저를 이발 해주시는 분이 우리 집사님이십니다. 저는 몇 십 년 동안 우리 집사님들의 도움을 받아서 머리를 했습니다. 이발소에 가니까 이발소가 이발만 안하고 옳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돌아다니다가 우리 집사님들에게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이렇게 깎아주시는데 그래도 집사님이 하는 이발소에는 못 가보았습니다. 오라고 해서 깎아 주십니다. 제가 물어 보았습니다. “집사님! 하루에 이발을 몇 명 정도 하세요?” 하니까 사십 명에서 오십 명 정도 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이발을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집사님은 늘 웃습니다. 소망이 있고 말을 하는데도 믿음 있게 말을 합니다. 얼마나 사람 머리를 잘 하는지 인기가 있습니다. 돈도 벌고 가정생활도 잘 합니다. 집사님이 제 머리도 너무 잘 하십니다. 이발 하고나면 새신랑 같습니다. 얼마나 머리를 잘 다듬는지 어디서 하는 것보다 머리 손질을 잘하십니다. 인물이 새로워집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어요. “집사님! 어떻게 이발을 잘 하십니까?” 그러니까 “저는 사람 머리를 볼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머리로 봅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셨다.’ 그런 눈으로 보니까 그런 지혜가 나온다고 합니다. 얼마나 말도 하나하나 솜씨가 뛰어난지, 그러니까 퇴폐이발소를 안 해도 그렇게 돈 잘 벌고, 하나님 영광 드러내고 잘 사는 것입니다. 퇴폐이발소를 하면 이발소만 퇴폐됩니까? 자기 마음도 퇴폐해집니다. 자기 마음만 퇴폐합니까? 자기 집도 퇴폐하고 자기 인생도 퇴폐해집니다. 우리가 퇴폐한 곳에 안 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퇴폐한 삶을 안 살려고 안 가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성령으로 함께 하면 이렇게 신나는 인생이 되고 즐거운 인생이 됩니다.

  워커힐에는 우리 교인이 많습니다. 워커힐 식당에서부터 어디든지 지배인, 본관 지배인등  수 십 명입니다. 제가 가면 얼마나 기뻐하고 ‘목사님 오셨다.’며 중국집에 새로운 것 만들어 옵니다. 그렇게 호텔에 있는 우리 교인들이 좋아합니다.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은 어디서든지 기쁩니다. 할렐루야! 어떤 분은 구두를 닦으면서 싱글벙글 노래를 부릅니다. 그래서 “뭐가 좋아서 그렇게 노래를 부르냐?” 하니까 이 분 하는 말이 “저는 내 마음에 빛나는 희망을 닦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내 마음, 하나님을 사랑하는 내 마음에 희망을 가지고 닦습니다. 내 마음 닦습니다.” 이 사람이 나중에 유명한 작가 찰스 디킨스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어디에 있든지 성령이 함께하여 희망을 갖고 인생을 살아가며,  요리를 하든지 이발을 하든지 구두를 닦든지 이게 문제가 아닙니다. 비젼이 있고 용기가 있으며, 감사가 있고 믿음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니 그야말로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닙니까? 힘 있는 사람이 아닙니까? 모두 다 가지고도 자기 혼자 불행한 것처럼 고개를 내리고 죽으려고 하며 아무데나 가서 되는대로 살아가는 이런 발걸음은 하나님이 없는 발걸음입니다. 성령이 함께하지 아니하는 삶입니다.

  우리의 가정을 성령의 충만으로 가정천국 만드시고 여러분의 심령을 천국으로 만드시며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성령이여! 보혜사 성령이여! 저를 늘 도와주십시오 늘 함께 해 주십시오.’라고 날마다 기도하면서 성령과 함께 살아가는 성도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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