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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삼위일체주일] 성삼위 하나님을 찬양하라 (엡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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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세계 모든 기독교회가 지키는 삼위일체 주일입니다.  삼위일체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 위격은 완전히 구별되면서 동시에 하나의 신성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는 순교자 스데반의 죽음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행 7:55)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스데반 안에 하나님은 보좌에, 아들 예수님은 하나님의 우편에 서 계셨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에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예수님으로만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데 있어서는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아들과 성령을 보내주시지 아니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분명히 구별될 수 있는 세 분이면서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기독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지, 그리스도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고 유대교가 믿는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여도 오직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 세 명은 아닙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세 분의 하나님을 믿는 종교, 다신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이해해야 됩니다.  우리나라 교회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 가운데 성도들을 가장 당혹하게 하는 교리가 있다면 삼위일체론입니다.  세 분이 한 분이 되고, 한 분이신 하나님이신데, 세 분, 세 인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신비한 교리를 이해할 수 없어 아예 신앙에 대하여 깊이 아는 것을 포기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단적인 성향으로 이해하는 이들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분명히 구별되는 세 분의 인격을 강조하면 삼신론이 되고, 한 분 하나님만을 강조하면 하나님이 시대마다 가면을 쓰고 다른 역할을 한 모델이 되었다는 양태론, (Modelism)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이 어느 때는 성부로, 어느 때는 성자로 지금은 성령으로 존재하였다는 시상은 이단으로 정죄된 양태론입니다.  구약 시대는 성부로 신약시대는 그리스도로, 교회 시대는 성령으로 존재한 삼위일체라고 하면 그것은 아주 잘못된 이단입니다. 

  삼위에 강조점이 있느냐, 일체에 강조점이 있느냐에 따라서 삼위일체를 보는 입장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라고 할  것입니다.  삼위일체론이 신학적으로 어렵다고 하여 교회가 전혀 말하지 않으면 의심만 커지고, 잘 모르면서 이렇다 저렇다고 하는 의혹만 커질 것입니다.  목회자라고 하면 힘들지만 그래도 말해야 하고, 가르쳐야 하는 것이 삼위일체론입니다. 
  우리는 2000년 전 유대 갈릴리에서 활동하시다가 죽으신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 분은 과연 누구십니까?  특별히 예수님-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냐 하는 진지한 신앙에서부터 삼위일체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많은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례요한, 엘리야, 예례미야  어떤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했습니다.  이 때 시몬 베드로가 고백하였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태초로부터 있었던 말씀, 로고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빌2:6이하에서 “하나님의 본체”이셨다고 했습니다.  빌2:6-8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사셨던 예수님, 그렇게도 능력을 행하시고, 사람도 살리시고 진리를 선포하시다가 죽으셨는데, 그는 다시 살아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면 과연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냐, 하나님이시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었다고 하는 사람은 아리우스라는 장로였고, 하나님이셨다는 사람은 아타나시우스라는 집사였습니다.  아타나시우스는 후에 알랙산드리아 교회의 감독이 되었습니다. 

  아타나시우스 감독의 경건한 신앙과 신학적인 입장이 교회의 정통신학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아타나시우스는 325년에 모인 니케아종교 회의에서 예수님이 그냥 단순하게 사람이었고, 잘 믿어서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다 하면 우리의 구원을 이룰 수 없다고 결론을 짓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고 확정하게 되었습니다.  니케아신조에서 “우리는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모든 세상이 있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나셨으며, 하나님의 하나님이시요 빛의 빛이시요 참 하나님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지으심을 받지 않으셨다. 모든 것을 지으신 아버지와 한 본체를 가지신다.”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에 있는 문구인 “모든 것을 지으신 아버지와 한 본체를 가지신다.”는 것이 확정되기까지는 심한 논쟁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본체의 일부를 받아가지고 있었기에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이지,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칼케돈 회의에서는 예수님을 하나님과 본체라고 다시 한 번 확인하였습니다.  “그는 참 신이요 참 사람이다.  모든 면에서 우리와 동일하나 죄만은 없었다.  그의 본체에는 두 가지가 있다.  신성과 인성이다.  이 두 본체는 서로 혼돈이 없고, 변동이 없고, 분할이 없고 분리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 다시 모인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는 “일 인격 안에 두 본체”라고 하여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심을 재확인하였습니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셨던 예수님은 참으로 우리와 같은 인간이시며, 하나님과 동등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되신다는 사실을 설명하다보니 삼위일체 하나님이란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을 할 때에 삼위라는 말은 세 분이라는 말입니다.  세분이라고 하여도 세 하나님들이란 말은 아닙니다.  완전히 고유하고 구별되는 세 분이라는 말입니다.  삼위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이 세 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성부가 성자와 성령이 될 수 없고, 성자가 성부나 성령이 될 수 없고, 성령이 성부와 성자가 아닌 각 자 고유한 인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 분이심을 강조하다보면 삼신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그 세 분이 일체라는 말입니다.  일체(一體)라는 말은 한 몸을 이룬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어에는 수를 나타내는 말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단수요, 복수가 있고, 둘 이상을 말하는 다수가 있습니다.  다수를 존엄의 복수라고 합니다. 창세기1장에 나오는 하나님이란 말 -엘로힘은 둘 이상을 의미하는 다수요, 존엄의 복수입니다.    우리말에 하나님이라고 하니, 위대하시고, 한 분이신 것 같지만, 히브리어에서는 다수의 뜻을 가지고 있는 이름입니다. 

  창세기1:26에서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하셨습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라는 말을 무려 세 번이나 반복됩니다.

  창세기3:22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다” “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11:6-7에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기서 “우리가 내려가서 ” 혼자서 "내가 내려간다."고 하지 않고, “우리가 내려가서”라고 합니다.

  사6:8에서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말하지 않고 다수를 가지는 존엄의 복수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에 다른 분과 의논하거나, 다른 분의 실체를 인정하며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다”,“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성경보다 신약 성경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더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점진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실 때에 삼위일체 되심을 더 잘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어주시므로 완전한 삼위일체 되심을 확정하셨습니다.

  마28:19-20에서 우리 주님은 지상명령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함께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셨습니다. 

  요10:30에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결정적으로 예수님 자신이 누구시냐 하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요14:16에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여기서 ‘나’라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 아버지와 아들이 보내시는 보혜사이신 성령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학을 정립하신 사도바울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가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중에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성령을 연결하여 나열하고 있습니다.
고후13:13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도의 축복기도입니다.

  삼위일체를 말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나님과 아들과 성령이 동시적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마치 비둘기 같이 내려 예수님 위에 임하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성삼위 하나님이 동시적으로 나타나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는 장면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건이요, 결정적인 장면입니다.    지상에 구체적인 한 분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있고, 그의 위에 성령이 강림하였고, 하늘로부터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이시며,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예수님 위에 강림하셨습니다.  하늘 보좌에 계시는 아버지로서의 하나님, 육신을 입으신 아들로서의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 위에 강림하신 성령, 이 사건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결정적으로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은 신론 중에서 가장 절정을 이루는 신학입니다.  세 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반드시 구별해야 됩니다.  성부이신 야훼 하나님은 절대자요, 영원자요, 완전자이십니다.  그분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당신 스스로 계신 분이요, 의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과 모든 속성에서 같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성부의 사역을 위하여 성육신하시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십니다.  그는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은 그의 본체가 영원하시기에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으시는 본래의모습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성령은 성부와 모든 면에서 동일하시지만, 교회 시대에 들어오면서 예수 그리스도- 성자가 이루신 인류 구원과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의 구원을 보증하시고 진리로 이끌어 들이고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야훼 하나님만 믿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우리는 야훼 하나님을 직접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이요 상대적인 존재인데, 우리 피조물들이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직접 만나거나 믿을 수 없기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성자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야 됩니다.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예수님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가 되시니, 우리는 반드시 그 분, 우리 주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와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연결시켜주는 분이 성령님이시라고 사실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 분이시라고 강조하면 결국 삼신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고대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받은 설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상호간에 아무런 관계도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세 신이 아니라, 하나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10:30에 보면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은 하나로 존재하십니다. 

  빌립이란 제자가 예수님에게 나와서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때에 우리 주님께서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14:10-11입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장신대학의 김명용교수님은 조직신학의 권위자이십니다.  그분의 이론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고 있는데, 삼위일체는 세 하나님이 한 본질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께서 하나라는 사실은 성부가 성자이고, 성자가 성부라는 말이 아니라, 성부는 성자 와 성령 안에 있으며, 성자는 성부와 성령 안에, 성령은 성부와 성자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독특한 존재방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론은 하나님 한 분 안에 다른 두 하나님이 침투하여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의 독특한 존재양태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 분이시라는 말과 세 하나님들이 있다는 말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세 분이라는 말은 세 인격체를 지칭하는 말이지, 세 하나님들이 있다고 하면 삼신론이 되고 정죄된 것입니다.  한 하나님이신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상호 침투하시고 공재하시면서 거룩하신 한 하나님으로 존재하십니다.  역사상에서 성부만 존재하거나 단독으로 사역하시지 않고, 아들과 성령이 그 안에서 함께 거하셨습니다.  아들이 혼자서 당신의 구원 사역을 이루시려고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이었고, 성령의 구원 사역입니다.  분명히 세 분이신데, 한 분으로 역사하시고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한 분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독자적인 구원 사역을 이루시려고 활동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구속의 섭리를 알고 우리 주님이 완성하신 구원을 위하여 활동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성부, 성자, 성령이란 삼위일체적 형태로서 존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세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거룩하고 흠이 없게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아들이신 예수님은 당신의 피를 흘리시므로 우리의  더럽고 추한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성령은 약속의 성령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았음을 확인하시고 보증하여 주십니다.  그런데 이 세분의 역사는 한 하나님의 역사요, 어느 것도 떼어놓을 수 없는 하나의 사건이 되었습니다.

  성령님에 대하여 바르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은총과 우리 주님의 대속하시는 사랑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엡2:18에는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안에 성령님이 거하시면서 우리를 이끌어주시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로 아들 안에서 구원받은 확신과 보증으로 성령 충만을 주십니다.  우리는 성령님과 교류하고 교제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삼위일체론은 철저히 성경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론은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와 성령에 기초하고 있는 교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을 구원하실 때에 입체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께서 창조하시고 구속하시고 확증하여 주셨습니다.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을 감사하면서 성령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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