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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주일] 내가 떠나가는 것이 유익이라 (요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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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6: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요 16: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요 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오늘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역사적인 성령강림은 오순절(五旬節)에 임했습니다. 

(행 2: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오순절은 유월절 후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순절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에 어린양으로 속죄제물이 되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 50일째 되는 오순절 날 성령으로 다시 오셨습니다. 성령강림으로 교회가 탄생되고 복음이 전 세계로 확장되었습니다. 오늘은 성령에 대한 말씀을 증거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성령(聖靈)은 누구시며, 왜 오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인류구원의 사명을 받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제 십자가의 죽으심과 영광스런 부활을 통하여 구속사역을 마치시고 본래 계시던 곳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제자들에게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제자들이 근심을 합니다(요 16:6). 제자들은 주님께서 떠나가시면 모든 것이 끝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뭐라고 위로하셨습니까?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사실은 주님께서 모든 일을 완수하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은 금의환향(錦衣還鄕) 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기뻐하고 축하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아직 그런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근심을 태산같이 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하신 겁니다.

(요 16:7)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렇습니다. 

1. 예수님께서 떠나가셔야 보혜사 성령님이 오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유익을 위해서 떠나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가지 단 한번도 주님 자신의 유익을 구하신 일이 없으십니다. 마지막 세상을 떠나시는 순간까지도 오로지 제자들의 유익을 구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이것을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여러분, 왜 성령으로 오시는 것이 유익할까요? 

  보혜사 성령이 오시는 것이 예수님이 육체로 계시는 것보다 훨씬 더 유익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육체로 계시면 일정한 때와 장소에 국한되지만, 성령으로 오시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역사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어디든지 임재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늘푸른 목장모임에도 계시고 동시에 신바람 목장모임에도 계실 수 있습니다. 

(마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지상명령과 함께 뭐라고 약속하셨습니까?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신다는 주님의 약속은 보혜사 성령이 늘 함께 해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성령은 보혜사로 오셨습니다. 보혜사(保惠師)란 원어로 ‘파라클레토스’(Parakeets), 영어로는 Counsellor입니다. ‘곁에서 변호하고 위로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보혜사는 ‘돕는 자’(Helper), ‘위로자’(Comforter)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보혜사 성령은 성도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복음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지켜 주시고 말씀을 생각나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증거 하게 하십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요

  보혜사 성령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 자리에도 계십니다. 여러분 안에도 계십니다.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하시는 보혜사 성령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보혜사 성령의 위로와 도우심이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보혜사 성령은 그냥 우리 안에 와 계시는 분이 아니고 우리를 돕기 위해서 와 계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약하고 미숙합니다.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 필요합니다.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우리는 스스로 믿음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제가 지난주간에 저의 집사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여러분도 어릴 때 다 경험했을 겁니다. 처음에는 뒤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잡아 주면서 밀어 주면, 앞에선 핸들 조작만 하고 가끔 발로 페달을 밟는 정도로 시작합니다. 넘어지려 하면 뒤에서 잡아 반듯하게 해 주는 그 힘에 의지하여 운동장을 몇 바퀴씩 돌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전거 타는 법을 익혀 결국 혼자서도 자전거를 잘 탈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성령께서도 동일하게 우리를 잡아 주시고 끌어 주시며 보호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서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기 위해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십니다.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은 예수님과 똑같은 분인 ‘보혜사 성령’을 우리 마음에 부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 삶 속에서 그분의 능력을 기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령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는 신자가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비상시에 사용하려고 100만 원의 돈을 숨겨 놓았습니다. 그러나 바쁜 생활 속에서 그 돈이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렸다면 그 돈을 요긴할 때 사용할 수가 없을 겁니다. 돈이 없어서 못 쓰는 것이 아니라, 있어도 있는 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용을 못하는 겁니다. 

  우리 안에 보혜사 성령이 와 계십니다. 성령은 그냥 형식적으로 우리 안에 머물러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돕기를 원하십니다. 성령을 인정하십시오. 성령의 역사를 믿으십시오. 

2. 2000년 전의 예수님과 동일한 능력을 가지신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령이 임한 기록이 사도행전 2장입니다.

(행 2: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행 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행 2: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행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외쳤습니다. 마치 예수가 수백 명이나 된 것처럼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표적을 제자들이 행하였습니다.

  복음서(福音書)가 예수님의 역사라면, 사도행전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 베드로, 요한, 빌립, 바울, 바나바 등을 통해서 친히 나타나신 겁니다. 사도행전에 역사 했던 사람들은 껍데기에 불과하고 실질적으로 일을 주도하신 분은 그들 안에 계신 성령이셨습니다. 성령께서 그들을 인도하시고 가르치셨으며, 능력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이 같은 성령의 역사는 사도행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ACT 29장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습니까? ACT는 사도행전을 가리킵니다.

  어느 목사님이 다음주일에 오실 때 사도행전 29장을 꼭 읽어오라고 숙제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읽어오신 분 손을 들라고 했습니다. 손을 든 사람은 거짓말을 한 겁니다.

  사실은 사도행전은 28장까지 밖에 없습니다. 그 사도행전을 우리가 이어가자는 의미로 사도행전 29장이라는 말을 모토로 쓰는 겁니다.

  사도행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님을 통해 나타났던 모든 능력들이 제자들을 통해서 동일하게 나타났던 것처럼, 지금은 성령을 받은 여러분을 통해서 끊임없이 나타나기를 소원하십니다. 

(행 2:39)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초대교회에 나타났던 기사와 표적들이 우리 화평교회를 통해서 동일하게 나타나기를 소원합니다.

  지금은 성령시대입니다. 이 시대의 모든 능력의 근원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럼에도 이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서 성령을 뽑아 버린다면 교회는 껍데기만 존재하게 되는 꼴이 되는 겁니다. 머리 깎인 삼손의 처절한 모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성령의 역사 하심을 따라 살기를 원합니다. 성령이 내 안에서 마음껏 일하시도록 성령 충만을 사모해야합니다.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어떻게 성령충만을 받습니까?

3. 성령 충만을 갈망하고 사모하며 부르짖어 기도해야합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좋은 것을 가지기 전에 먼저 사모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좋은 집, 좋은 직장, 배우자에 대해서 사모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성령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에 대한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시키십니다.

(시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 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 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목마른 사슴처럼 성령을 사모하고 간절히 기도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현대인에게 성령에 대한 사모함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은혜에 대한 목마름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물질의 풍요를 영적인 풍요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굶주리고 배 곺은 자신의 영적인 실상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주님은 탄식하십니다. 

(계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여러분, 아프리카 기아 난민들의 뼈만 앙상한 모습을 보셨지요? 그것이 우리의 신앙의 모습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우리의 영적인 모습이 아닌지요.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사 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 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우리 모두 목마른 자가 됩시다. 그래서 성령을 사모합시다.

  성령을 받으려면 무엇보다 회개(悔改)하고 죄에서 떠나야합니다. 

(행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귀한 선물을 받으려면 먼저 손을 깨끗이 씻어야합니다. 좋은 것을 담으려면 깨끗한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손이 더러우면 귀한 선물을 받을 수가 없어요. 성령은 거룩하신 영이므로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깨끗한 심령이 되었을 때 임하십니다. 

  죄의 습관을 끊어야 버려야합니다. 더러운 죄를 토해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의 부흥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이 부흥은 길선주 장로의 회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이 한국교회 부흥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간절하게 부르짖어 기도해야합니다.

(시 81:10)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D.L무디는 성령을 받기 위하여 소나무 뿌리를 뽑으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성령의 불이 임했습니다. 어찌나 성령이 뜨겁게 임하는지 나중에는 뜨거워서 거둬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구하십시오.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행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오순절 날 갑자기 성령이 임하신 게 아닙니다. 제자들과 성도들이 마가 다락방에 모여서 열흘 동안 전혀 기도에 힘을 썼습니다. 그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우리도 기도합시다. 금주 한 주간 성령을 사모하며 기도합시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서양 속담에 아주 지독한 욕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 받지 말고 예수나 믿어라.’입니다. 성령 받지 않고 예수 믿는 것은 자동차를 타고 가지 않고 끌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신앙생활 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봉사할 수 없고 전도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힘으로 해야합니다. 

(슥 4:6)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 으로 되지 아니 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19세기 미국 제2 영적 대각성운동의 지도자인 변호사 출신의 찰스 피니는 변호사 사무실의 뒷방에서 영적인 목마름을 가지고 기도하던 중 받은 성령 체험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불 옆에 앉으려는 순간 나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너무나도 예기치 못한 순간에 성령은 나의 온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휩쓸듯이 나를 뒤엎었습니다. 나는 마치 전류가 끊임없이 나를 통하고 있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것을 정말 파도처럼, 한없이 흐르는 사랑의 파도처럼 밀려왔고 또 하나님의 숨결인양 가까웠습니다. 이 모두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날개처럼 나를 부채질하였습니다. 나는 주님 앞에 나의 모든 영혼을 맡긴 채 한없이, 한없이 울었습니다.

  이 체험을 통해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하는 위대한 복음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당신도 이 시간 성령을 받고 이렇게 쓰임 받으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173장을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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