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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건강하고 균형잡힌 교회를 위해서(2) : 사랑의 관계를 만들라 (벧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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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랑의 관계를 만들라
말씀 : 고린도전서 13:1-13

안녕하십니까? 옆에 앉은 분과도 반갑게 인사 나누겠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라고 함께 고백해보겠습니다. ... 좀 어색하죠. 오늘은 "사랑의 관계를 만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건강한 그리스도인, 건강한 교회가 되려면 은사 중심적으로 사역해야 합니다. 두번째로 사랑의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건강은 우리 모두의 바램입니다. 그런데 건강은 한 두가지 강조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육적, 영적인 관계, 가정, 직장, 교회 모든 것이 통합해서 이뤄집니다. 건강한 말씀은 가정, 직장, 교회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건강은 균형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99%의 영양분을 섭취해도 한가지 섭취하지 못하면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됩니다. 그것은 모든 곡식 재배나 가축 재배에도 적용됩니다.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을 위해서 특별한 약이라도 지어 먹고 사는 것이 우리의 풍습이고 문화입니다. 그런데 부족한 한 두가지 때문에 건강 잃게 됩니다. 이것이 생명적인 원리요, 창조의 원리입니다.

건강한 교회,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8가지의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해야 합니다. 8가지 영양소는 은사중심적인 사역, 사랑의 관계, 전인적 소그룹, 사역자를 세우는 지도력, 열정적 영성, 필요중심적 전도, 기능적인 조직, 영감있는 예배입니다. 건강을 결정하는 것은 최소치입니다. 만약 교회가 7가지 영양소를 섭취해서 90점을 받았다고 해도, 한 개가 40점이라면 교회의 건강은 40점입니다. 이것은 큰 물통의 제일 낮은 높이만큼 물이 쌓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물높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소치를 올려야 합니다. 

"사랑의 관계를 만들라." 사랑의 말씀은 참으로 무한합니다.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아무런 감동없이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새롭게 우리의 가슴에 와닿기를 바랍니다. 손과 발과 입에 열매가 맺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사랑의 치유능력에 초점 맞추어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너무나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잘 압니다. 그래서 감동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이 가슴에 와닿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단어 대신에 '돈'을 넣어 읽으면 됩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돈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돈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돈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돈은 오래 참고 돈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돈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돈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여기까지만 읽겠습니다. 이 말씀이 가슴에 팍 박히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13절도 사랑을 돈으로 바꿔서 읽어봅시다. "그런즉 믿음, 소망, 돈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돈이라." '아멘!'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까? ^^ 여러분, 사랑이 중요합니까? 돈이 중요합니까? 이론적으로 "사랑이 중요합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돈만 있으면 온유하고 돈만 있으면 무례히 하지 않겠다는 것이 현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돈도 헛되고, 소유도 잠깐이고, 인생도 잠깐이고, 세월도 잠깐입니다. 올해도 벌써 다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사랑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는 사랑의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그리스도인의 명패는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문패는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을 포함해서 사람 중에 아픔과 고난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나름의 고통과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정, 직장, 교회를 보아도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은 원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체험적으로 느낍니다. 아픔, 상처, 고통을 무엇으로 치료할 수 있습니까?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출애굽기 15:26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15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가는 이야기입니다. 그 중간에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구원은 치료입니다. 치료는 구원입니다. 이사야 30:26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능력으로 치료하십니다.

우리가 "사랑" 말씀을 할 때 한가지 분명하게 다짐할 것이 있습니다. 사랑을 "율법, 명령, 계명, 법"이라는 눈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기쁨, 능력, 건강, 행복, 즐거움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사랑하자."라고 말할 때, 우리 모두의 기쁨과 사랑과 생명을 위해서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사랑하자는 "명령을 만들자, 법을 만들자, 규칙을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법과 규칙을 만들면 사랑은 더이상 의미 없어집니다. 사랑은 우리 모두의 행복과 풍성한 삶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구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치유하고 회복합니다. 질병까지 치유하고 회복합니다.

우리나라에 20여년 전만 해도 폐결핵환자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들을 위해 결핵 요양원이 세워졌습니다. 그곳에는 두 그룹의 환자들이 있었습니다. 폐결핵을 완치할 수 있다는 믿음,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그룹과, 치료에 대한 희망이 없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미워하며 살아가는 그룹이 있었습니다. 그 요양원에 새사람이 들어오면 희망을 가진 그룹의 사람들은 자기의 철학과 신념으로 새사람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당신은 치유될 수 있습니다. 폐결핵은 불치병이 아닙니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절망적인 그룹의 사람들은 새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끝입니다. 폐결핵은 치료가 안됩니다. 살아나가기 힘들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자기 세력을 확장하려고 애썼습니다.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그룹은 서로 사랑하고 격려했습니다. 반면에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했습니다. 한쪽에서 낙관적이거나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면 그것을 비아냥거리거나 멸시하고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낙관적이고 희망적이고, 그래서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그룹의 사람들은 확실히 치유가 빨랐습니다. 완치되어서 퇴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반대로 비관적이고 절망적이고 부정적이고, 그래서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는 사람들은 요양원에 장기 수용되어 살거나, 또는 죽어서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삶의 곳곳에서 체험하는 사실입니다.

사랑은 치유의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치유의 능력이 곧 생명입니다. 사랑이 곧 생명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프로이드는 분석심리학 또는 정신분석학의 시조입니다. 그의 이론 중 하나가, 우리 몸 안에는 우리를 보호하는 체계 즉 "자기 보호 본능"과, 우리를 파괴하는 "자기 파괴 본능"이 서로 대립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체험하지만,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죽고 싶다는 것과, 심지어는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사용하거나, 내가 죽어가는 것을 분명히 인정하면서도 좋지 못한 습관을 버리지 못합니다. 먹는 습관, 생활 습관, 언어 습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를 죽이고 있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똑같은 스트레스, 똑같은 압박감, 죽고 싶은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잘 극복하고 생명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 의학, 기적"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어니시겔이라는 미국의 의사가 썼습니다. 그는 암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의사입니다. 그는 암환자 가운데 60∼70%의 환자들은 의사가 진단하는 대로 죽어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15∼20%의 특별한 환자들은 의사가 진단한대로 죽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더 오래 살거나 또는 그 암을 완전히 치유하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존자들은 자신들의 영적, 실존적, 정서적 현상들을 잘 다룰 줄 안다. 자기의 압박과 스트레스와 여러 가지 환경을 잘 처리할 줄 안다. 그래서 비이기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천할 때 진정한 치료가 시작된다. 사랑은 그 자체가 기적적인 치료의 능력이다. 사랑은 그 자체가 기적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다."

우리는 분명히 경험합니다. 우리 안에 생명의 체계와 사망의 체계가 있다는 사실을 날마다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것을 느낌으로 이야기 하지만, 이제 의학과 생명 과학은 이것을 수치적으로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생명 체계는 우리를 살리고자 하는 대사작용이고, 사망 체계는 우리를 죽이는 대사작용입니다. 평상시에는 균형을 일으키다가 이 균형이 깨지면 병들거나 죽습니다. 우리가 죽어가는 것은 이 사망 체계가 점점 활발해져가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성장기에는 생명체계가 활발합니다.

그런데 우리 몸의 상태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마음의 상태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사랑과 평화와 기쁨이 있으면, 뇌는 우리의 중추신경과 홀몬 체계와 면역체계를 통해서 생명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미워하거나 갈등하거나 공포증, 우울증에 걸리면 뇌는 똑같이 중추신경계와 홀몬 체계와 면역체계를 통해서 죽음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생활 속에서 늘 체험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누구와 싸웠다면, 남편과 싸웠다면 아내와 싸웠다면 마음 속에 뭐가 생깁니까? 죽고 싶다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내가 죽어야지, 저 원수가 괴로워하지." 복수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서로 사랑하고 살면, "당신 오래 살아야 돼."라고 말합니다. 서로 미워하고 싸우면 "빨리 죽어. 아니면 내가 빨리 죽을거야."라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 안에 죽음의 체계가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사랑할 때 우리 안에 생명의 체계가 작동합니다. 사랑은 생명입니다. 사랑은 치유이고 능력입니다. 그것이 곧 구원입니다.

사랑의 능력에 관한 아름다운 글이 있습니다. "충분한 사랑이 정복하지 않은 역경은 없다. 충분한 사랑이 치료하지 못하는 질병이 없다. 충분한 사랑이 허물지 못하는 담은 없다. 충분한 사랑이 구속하지 못하는 죄는 없다. 고통이 얼마나 자리 잡았는지는 그렇게 문제되지 않는다. 외형적인 것이 얼마나 절망적인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게 엉클어져 있는가도 그렇게 문제되지 않는다. 실수가 얼마나 엄청난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랑을 충분하게 행할 때, 사랑을 충분하게 받을 때, 이 모든 것은 용해된다. 당신이 충분하게 사랑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능력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랑하자."라고 말할 때 대개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남 좋은 일 시킬려고...누구 좋은 일 시킬려고..." 그래서 사랑하자는 말을 부담스러워합니다. 거부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랑은 남을 위한 것도,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닙니다. 사랑은 바로 나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사랑은 나자신을 살리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을 살리고, 나의 영을 살리고, 나의 몸을 살리는 것입니다. 남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때 치유의 능력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남을 사랑할 때, 남을 사랑하는 그 사람이 치유의 능력을 더 경험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즐거움과 행복과 기쁨과 생명이 넘치는 것입니다. "사랑하자."라고 할 때 "누구 좋은 일 시킬려고 사랑하는 겁니까?" "자기" 좋아라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를 살리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죽고 싶다면 누구를 미워하면 됩니다. 오래 살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건강하기를 원한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이것이 사랑의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믿습니까? 예수님은 사랑이십니다. 때문에 사랑은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이 말씀을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사랑하지 않은 자는 살아도 죽은 것이다. 무릇 살아서 사랑하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믿습니까?" 죽음이 최악의 상태가 아닙니다. 죽음보다 더 최악의 상태는 살아서도 사랑 없이 살아가는 삶입니다. 죽어도 사랑 가운데 죽으면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죽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품안에서 죽거나, 사랑을 느끼며 죽으면, 그 죽음은 부활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사랑 없이 살고 있으면, 하나님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사람들의 사랑이나 이웃들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살면, 그것 자체가 이미 죽음입니다. 지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이 최악이 아니고, 사랑 없이 살아가는 것이 최악입니다. 사랑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삶입니다.

여러분, 이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지 맙시다. "사랑하자."는 말은 "나자신"에게만 적용하는 것입니다. "당신, 왜 나 사랑하지 않어?" 이렇게 남을 비판하지 말고, 내가 사랑할 수 있도록 그렇게 적용합시다.

"다섯가지 사랑의 언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게릿 채프만이 쓴 책입니다. 이 책은 두란노서원과 생명의 말씀사에서 출판된 책입니다. 이 저자가 쓴 책이 여러 권 있습니다. "사랑의 또다른 얼굴, 분노"도 있고, "십대를 위한 사랑의 다섯 가지 언어", "사랑에 목마른 십대", "그들의 언어로 사랑을 표현하라", "자녀를 위한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게릿 채프만은 사랑의 다섯 가지 언어를 아주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설명했습니다. 이 사랑의 다섯가지 언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 언어들를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것입니다. 그럴지라도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지 맙시다. 다만 나에게만 적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섯 가지 언어는 첫 번째는 말, 두 번째는 시간, 세 번째는 선물, 네 번째는 섬김, 다섯 번째는 손길입니다. 사랑의 다섯 가지 언어들을 통해서 다른 사람은 어떤지 생각하지 맙시다. 다만 나자신의 사랑은 어떤지 생각해봅시다.

사랑의 말, 격려의 말, 칭찬의 말이 사랑의 일차적인 언어입니다. 우리의 말속에 죽음의 언어를 제거해야 됩니다. "죽고 싶다." "나는 안돼." "당신은 안돼." 죽음과 연결된 언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족에게, 친구에게, 직장 동료에게 사랑하는 말, 격려하는 말, 칭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말이 사랑의 일차 언어입니다. 그런데 가끔 "말이 무슨 필요 있나, 행동으로 하면 되지 않느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꼭 해야 되냐, 척 보면 아는거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표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으로 임하십니다. 우리가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첫째 언어는 말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말로 표현을 많이 해보십시오. 옆에 있는 분에게 "주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는 말로 한번 표현해보십시오... 지금은 제가 시켜서 억지로 했습니다. 앞으로는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녀와, 부부사이에, 성도 사이에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가능한 한 많이 하십시오.

두 번째는 시간입니다. 질적인 시간, 진지한 시간, 친밀한 시간,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시간, 시간은 사랑의 다섯 가지 언어 가운데 두 번째 언어입니다. 시간을 함께 갖지 않고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자녀를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십시오. 남편과 아내를 사랑합니까? 그러면 남편과 아내와 진지하고도 사랑스러운 시간을 함께 보내십시오. 직장 동료를 사랑하십니까? 이웃을 사랑하십니까? 관계를 통해 전도하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믿지 않은 사람과 함께 사랑과 우정의 시간을 함께 가지십시오. 시간을 함께 갖지 않고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성도들을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진지하고 친밀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시간없이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세 번째는 선물입니다. 선물이 뇌물이 되지는 말아야 합니다. 뇌물은 내가 무엇을 바라고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물은 내가 주고 싶어서 주는 것입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뇌물은 무엇인가 받고 싶어서 주는 것입니다. 선물과 뇌물은 열매가 다릅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사랑의 선물입니다. 선물이라는 말이 성경에 참 많습니다. 무엇인 줄 아시죠? 바로 "은혜"라는 단어입니다. 은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선물을 잘 주십니다. 이것이 사랑의 표현이고, 사랑의 언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자주 주십시오. 많이 주십시오. 지금, 누구를 연상해 보십시오. 바로 그에게 선물을 자주 주십시오. 선물에 관해서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있습니다. 남자는 큰 것을 왕창 단번에 쏠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자는 작은 선물을 여러 번 받기를 원합니다. 선물에 관한 한 여자의 생각이 옳습니다. 선물은 자주, 많이 줄수록 좋습니다.

보통 남편과 아내 사이에 이러한 논쟁을 많이 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당신, 나를 사랑하면 선물을 주세요." 그러면 남편은 아내에게 말합니다. "당신에게 선물 안줬나." "언제요?" "결혼할 때"... 남자는 이처럼 결혼할 때 몇백만원짜리 하나 해줘 놓고는 그걸로 평생 떼울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내들은, 대부분 여자들은 백만원짜리도 한번이고, 일억짜리도 한번이고, 만원짜리도 한번입니다. 그 한번의 효과는 똑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남자들은 어리석습니다. 백만원짜리 한번 주는 것보다, 만원짜리로 백번 주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랑의 선물은 횟수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횟수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사랑과 정성과 우정이 담긴 사랑의 선물을 얼마큼 많이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자주 하십시오. 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선물을 자녀들에게, 직장동료들에게, 배우자들에게, 성도들에게 자꾸 주십시오. 많이 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꾸 주십시오.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선물에 인색하다면 문제가 됩니다. 그렇다고 무리해서 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뇌물로 주라는 것도 아닙니다. 줘 놓고 뭔가 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대가없이 주십시오. 자꾸 주십시오. 그러면서 사랑이 커가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섬김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실천, 사랑의 행동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섬기십시오. 몸으로 봉사하십시오. 뭔가 실체적으로 도와주십시오. 그것은 사랑의 행동입니다.

다섯 번째 언어는 손길입니다. 터치입니다. 만지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로부터 전해받은 우리의 유전은 "만지면 부정탄다" "만지면 사고 난다" "만지지 말라" "남녀칠세부동석"...그래서 거리를 두고 항상 만나고 이야기합니다. 심지어 부자지간에도 따뜻한 만짐과 어우러 만짐이 금기되어온 것이 우리의 문화입니다. 그런데 이 만짐은 생명적인 현상입니다. 아메바나 생쥐나 강아지나 토끼나, 심지어 바다에 사는 고기일지라도 자기 새끼들을 비빕니다. 어우러 만집니다. 쓰다듬어 줍니다. 혀로 핥아줍니다. 비벼줍니다. 이것은 모든 생명적인 현상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것을 거부한다면 생명을 거부하는 겁니다. 우리의 문화가 생명을 거부하는 문화라면 우리의 문화를 바꿔야 합니다. 우리의 문화가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방해한다면 우리의 문화를 바꿔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전해야 되는 사랑의 문화를 우리가 만들어야지, 그렇지 못한 문화를 고집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문화를 바꿔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좋은 문화는 간직하되 나쁜 문화는 바꿔가야 합니다. 손길을 자주 주는 문화로 바꿔가야 합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하고 자주 만지십시오. 포옹하십시오. 가정에서 자녀들을 자주 안아주십시오. 자주 품어 주십시오. 그리고 아내와 남편은 사람들이 많이 보는 가운데 안아 주십시오. 사랑을 표현하십시오. 닭살 돋습니까?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십시오. 모든 생명 현상이 그러쟎습니까? 정글에 사는 야수조차도 커플은 서로 어루만지고 비벼댑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삼라만상을 지으신 생명의 원리, 사랑의 원리입니다. 자꾸 만지십시오.

옆에 있는 분들을 쓰다듬어 주십시오. 동성끼리 손을 만지고 한번 안아주십시오... 어떻습니까? 직장에서 동료들과 아랫사람들을 격려할 때 어떻게 합니까? 조그만 선물을 줄 수도 있습니다. 또 어깨를 두드리면서 "자네, 참 수고가 많네. 자네 때문에 우리 회사는 큰 힘을 얻어."라고 쓰다듬어 줘 보십시오. 그러면 그 사람이 하루 내지 한 달을 살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 공동체에서도 서로 안고 품어주는 이 문화를 자꾸 만들어 갑시다. 아직까지 우리가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에 준비가 되면 될수록 더 많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성끼리는 조심해야 되겠지요. 그러나 동성끼리, 형제들끼리, 자매들끼리 뜨겁게 포옹하십시오. 자꾸 어루만져 주십시오. "수고했다." 칭찬하고 격려하십시오. 그럴 때 이것이 사랑을 표현하는 언어가 되는 것입니다.

이상의 다섯가지 언어를 꼭 기억합시다. 사랑의 말, 사랑의 시간, 사랑의 선물, 사랑의 섬김, 사랑의 손길, 이것을 자주 사용하십시오.

사랑은 용서와 화해의 근본이고, 시작이고, 끝입니다. 우리가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직장과 교회와 가정에서 사랑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 안에서 살고, 사랑 안에서 죽읍시다. 죽을 때도 사랑 가운데서 죽으면 죽은 것이 아닙니다. 살아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사랑의 능력은 개인에게 적용되고, 교회와 가정과 직장에 적용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 사랑은 민족 관계와 지역 이기심과 더 나아가서 지구와 인류를 구원하는 능력이 됩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늘 전쟁상황입니다. 세계 인권 단체들이 항의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끊임없이 무력으로 진압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로라 블루맨 펠트라는 한 유대계 미국인 여성이 수기를 펴냈습니다. 그 책의 이름은 "복수", 희망의 스토리입니다. 로라가 1986년 아버지와 함께 이스라엘을 방문했습니다. 관광을 하던 중에 팔레스타인의 테러범이 아버지를 향하여 총을 쐈습니다. 아버지는 현장에서 끔찍한 일을 당했고, 생명이 위독했지만, 나중에 생명을 간신히 건졌습니다. 로라는 이 사고를 현장에서 보고 복수하겠다는 마음을 다졌습니다. 히브리어와 아랍어에 능통했기 때문에 워싱턴 포스트지의 기자로 들어갔고, 1998년에는 이스라엘 근무를 자원했습니다. 12년 동안 이스라엘 법원 기록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그리고 끝내 범인을 찾아냈습니다. 이 테러범의 이름은 "오마르 파티브"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재판을 받았습니다. 팔레스타인으로서 이스라엘 사람에게 총격을 가한 죄는 중형이었습니다. 25년의 선고를 받고 교도소에 복역 중이었습니다. 로라는 복수심에 불탔기 때문에 피해자의 딸임을 숨기고 범인과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면서 중간 중간에 복수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역사 속에 나오는 복수 사례, 그리고 미국 등 서방 국가에 반감을 품고 있는 아랍인들도 만났습니다. 그런데 로라는 그런 과정 속에서 결론을 내렸습니다. "복수는 동물적 본능이라는 것을." 그래서 물리적인 복수보다는 범인을 사랑하고 범인이 자기의 잘못을 깨닫게 하는 것이 진정한 복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후에 아버지를 저격하려고 했던 이 범인의 가석방을 호소하는 청원서까지 제출했습니다. "피해자 가족이 용서했으니, 이스라엘도 이 팔레스타인 사람을 용서하십시오."라고 청원했습니다. 간신히 생명을 건진 아버지와 로라는 테러범 오마르 집을 찾았습니다. 용서를 구하는 가족들에게 용서를 하고, 뜨겁게 포옹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들도 우리 가족처럼 이렇게 용서하고 사랑하기를 원한다."는 말도 했습니다. 

사랑은 국제적인 관계도 풀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개인적인 윤리가 국제적인 윤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개인윤리가 집단 윤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보편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개인과 집단에 적용되고, 하나님의 말씀은 개인을 치유할뿐더러 지구와 인류를 치유합니다. 우리가 민족적 갈등과 지역적 갈등과 인종적 갈등도 결국은 사랑으로 풀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이야말로 치유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죠지 위치라는 작가가 "내일로부터 돌아옴"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의 결론 부분에 아주 의미심장한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사랑하는 법을 아는 종류의 인간을 지으시기 위하여 바쁘게 일하고 계신다. 나는 확신한다. 지구자체의 운명은 우리의 사랑에 달려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구의 운명이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죽했으면 사랑하는 법을 아는 인간을 다시 창조하려한다는 말을 했겠습니까? 물론 역설적이죠.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류의 운명이, 지구의 운명이 우리의 사랑하는 정도에 달려 있다는 심각한 선언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이 자유의지로 우리는 사랑할 수도 있고,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자유의지로 사랑을 선택하지 아니하고 미움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엄청나게 위험한 일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자유의지로 우리가 사랑하지 않기로 한다면, 바로 이 선택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를 한꺼번에 날려 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과 미움 사이에서 선택할 때 우리의 선택의 결과가 엄청난 비극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랑을 선택한다면 기적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의 힘을 믿고 사랑을 실천할 때 하나님께서 그 순간에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우리 앞에 선택해야될 일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숨쉬는 순간순간마다, 우리는 사랑과 미움 사이에서 선택하고 방황합니다. 우리가 집에서. 또 나서서 거리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우리는 하루의 숨쉬는 모든 순간순간마다 사랑할 것인가, 미워할 것인가 선택해야 됩니다. 그 선택의 종류는 너무나 엄청납니다. 선택을 위해서 우리에게 제기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도 엄청나게 다양합니다. 그런데 결론은 매우 단순합니다. 선택은 복잡하지만, 결론은 딱 두가지입니다. "사랑하면 살고, 미워하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파괴와 죽음을 선택할 것인가, 사랑과 치유를 선택할 것인가, 결론은 너무나 단순합니다. 우리가 사랑의 길을 선택한다면, 나와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더 나아가 민족과 인류를 구원할 수 있고, 우리가 사랑하지 않기로 선택한다면 나를 죽이고, 가정과 교회와 직장을 죽이고, 더 나아가 민족과 지구와 인류를 죽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사랑할 수도 있고,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을 선택할 수도 있고, 사랑하지 않기로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신 이 자유로 사랑을 선택합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순간순간, 숨쉬는 순간순간 결단하고 선택해야 될 일이 많은데, 바로 그 순간순간마다 사랑을 선택합시다. 그때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켜 주십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임재하십니다. 그때 우리에게 풍성하고 행복하고 기쁜 삶이 시작됩니다. 이것이 나를 살리고, 교회와 가정과 직장과 인류를 살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이야말로 영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사랑할 수도 있고 미워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사랑하며 살게하여 주십시오. 사랑이 나를 살리고, 우리를 살리며,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살리며, 지구와 인류를 살릴 줄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랑할 때 기적을 일으켜 주시옵소서. 우리가 사랑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아브라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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