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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건강하고 균형잡힌 교회를 위해서(4) : 영감있는 예배를 드려라 (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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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있는 예배를 드려라 (요한복음 4:1-24)

건강한 그리스도인, 건강한 교회를 위한 네 번째 말씀입니다. 오늘은 영감있는 예배입니다. 영감은 영적 감동입니다. 영감은 'in-spirit' 성령 안에 있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느끼는 감동입니다. 예배의 본질은 영적인 감동입니다. 예배의 형식과 내용도 중요합니다. 예배에 얽힌 전통과 예식도 중요합니다. 예배에 얽힌 신학과 교리와 법칙과 모범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있어도 성령감동이 없으면 죽은 예배입니다. 예배를 회복하려면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계신 곳에 들어가서 영적 감동을 체험해야 합니다. 이때 영적 예배로 부활됩니다. 우리의 영이 회복됩니다. 예배가 살아야 교회가 회복됩니다. 예배의 영적 감동이 있어야 그리스도인이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요즘 예배 갱신 세미나라는 포스터와 현수막을 많이 보게 됩니다. 이것은 한국 교회 예배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를 옮깁니다. 좋은 설교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예배의 영적 감동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배의 형식과 전통을 고집하다가 예배의 영적 감동을 놓친 경우가 많습니다. 예배의 형식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교회가 교파에 관계없이 대개 비슷한 형식의 예배를 드립니다. 장로교, 감리교, 순복음교, 성결교,, 어디를 가나 비슷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형식을 강조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형식을 너무 강조하다보면 내용이 죽을 수 있습니다. 형식에 집착하다보면 생명을 잃을 수 있습니다. 형식은 최소한만 있으면 됩니다.

예를 들어서, 식사할 때 밥을 어디에 담습니까? 전통과 형식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밥은 꼭 밥그릇에 담습니다. 밥을 국그릇이나 접시에 담았다던가, 솥이나 냄비에 담아 먹게 되면 역정을 냅니다. 밥을 밥그릇에 담아 먹는 것은 어느 정도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밥을 먹을 때 때로는 솥에 먹을 수도 있고, 냄비에다 먹을 수도 있고, 접시에 먹을 수도 있습니다. 밥을 먹을 때 밥을 흘리지 않은 그릇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밥을 어디에 담아 먹는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식탁 위의 사랑과 정성입니다. 밥을 함께 먹으면서 가족끼리 나누는 사랑과 정입니다. 이를 보지 않고 형식가지고 논쟁하면 식탁 위에 있어야 할 사랑과 정성이 깨어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배에 얽혀있는 쓸데없는 논쟁입니다. 형식 논쟁하다가 예배에 진정으로 있어야 할 영감과 계시와 감동이 죽어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신학과 교리 강조하다가 영감과 계시를 놓친 경우, 율법과 법칙을 강조하다가 감동과 기쁨이 없는 예배도 참 많습니다. 하나님께 복받기 위해 드리는 예배, 벌받기가 두려워서 드리는 예배, 주일성수 드려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드리는 예배, 주일 성수 하지 않으면 재앙이 올 것같은 두려움 때문에 드리는 예배를 드립니다. 이런 예배는 종교적 예배입니다. 죽은 예배입니다. 감동과 기쁨이 없습니다. 드려주는 예배입니다. 이런 것을 반복해서 드리는 예배는 죽습니다. 우리의 영성이 죽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종교인이 되어버립니다.

예배가 살아야 교회가 삽니다. 한국 교회가 요즘 위기에 봉착했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기독교 인구가 줄고 있다는 것도 많이 들립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찾는다면 예배를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예배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그런데 전도와 선교는 불신자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서 궁극적으로 예배자로 만들기 위합니다. 전도와 선교는 목표가 아닙니다. 예배자를 많이 만들기 위한 과정입니다. 우리가 천국 가서 무엇을 합니까? 전도합니까, 교육합니까, 봉사합니까? 예배입니다. 예배가 하나님의 백성의 본질입니다.

마태 22:37,38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의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가장 중요하고 첫째 되는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교회에 많은 사역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일 예배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배자의 신분, 예배자의 마음으로 주일 예배에 임해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배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을 느끼길 원합니다. 성령님의 감동을 느끼길 원합니다. 어떤 교회는 따뜻하고 열기가 뜨겁습니다. 사람의 표정과 눈길이 다릅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예배 드릴 때에 찬양하고 눈물을 흘리고 감동합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는 싸늘합니다. 팔짱을 끼고, 예배를 드려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개 교회에서 가장 예배 안 드리는 사람이 목사와 장로입니다. 신앙 년수가 오래된 사람들입니다. 이분들은 예배의 감시자, 예배의 사회자, 구경꾼, 방관자로 서 있습니다. 또 어떤 교회는 성가대가 예배를 안 드립니다. 지휘자가 예배 안 드리고, 반주자가 예배 안 드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배드릴 때 악보 넘기고, 연습합니다. 예배 드릴 때 스트레스 받습니다. 실수할까봐 걱정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안내 위원들, 헌금 위원들도 예배드리지 않습니다. 예배드리는 사람은 힘도 없고 백도 없고 교회에서 알아주지도 않은 몇몇 사람들만 앉아서 예배드립니다. 이런 교회의 예배에 어찌 하나님의 감동이 있겠으며, 성령님의 감동이 있겠습니까?

또 교회마다 가끔 헌신 예배 드리는 경우 있습니다. 헌신예배는 각 기관의 회장이 인도합니다. 이때 회장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예배 준비를 합니다. 예배가 끝나면 회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예배 인도 잘했습니다." 그 말은 바로 순서 틀리지 않고 잘 얘기했다는 것입니다. 순서 틀리지 않으면 예배 잘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그것은 조상 숭배 제사에서 나오는 전통입니다. 제사는 정해진 순서 틀리지 않고 잘 드려야 합니다. 만일 순서가 틀리거나 형식이 잘못되었거나 하면 제사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사밥에 머리카락 들어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그 안에 정성도 강조하고 그 안에 조상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도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형식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것이 우리 한국 사람들이 은연중에 갖고 있는 마음 밭입니다. 이것 때문에 예배드리는 것까지 제사의 형식이 들어와서 제사 드리는 것처럼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순서대로 잘하면 예배 잘 드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 가서 예배 드릴 때 자기가 알고 있는 순서대로 예배 드리면 잘된 교회이고, 순서대로 예배드리지 않으면 잘못된 교회라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어느 교회 예배보고 나서 "어 예배에 뭐가 없네요 뭐가 빠졌네요. 이 교회 이상한 거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은 성령님의 임재보다, 성령님의 감동보다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흘러가다 보면 예배의 감동과 능력이 죽어갑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감동이 예배 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 때마다 영적 감동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를 위해서 찬양을 선곡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찬양 팀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하는 찬양을 고르려고 애를 씁니다. 어떤 분들은 찬송가를 예배에서 불러야 하고, 복음성가는 예배에서 불러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사실 찬송가의 90퍼센트가 옛날에 믿음의 선배들이 불렀던 복음성가입니다. 우리가 예배시간에 삼위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이 진정한 찬양 곡입니다. 전통에 매이다 보니까 판단력까지 잃어버리고 정말 중요한 것을 놓쳐버릴 때가 많습니다. 또 찬송가 가운데 많은 부분 삼위 하나님께 반말을 사용합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예수여, 예수여..." 우리가 찬양 곡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할 때 존칭을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찬양을 받으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입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우리의 구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성령님, 오시옵소서." 그런 찬양과 경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전통과 형식에 집착하기보다는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복음송도 부르고, 심지어 찬송가 가사도 바꿔가면서 삼위 하나님을 존중하여 높여 드리고, 경배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높이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애써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시간에 예배에 집중하고, 예배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배드릴 때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서,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교회가 살고 우리가 건강해집니다. 영적으로 건강해집니다.

요한복음 4:1-24 말씀을 보십시오. 사마리아 여인이 등장합니다. 여인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지역공동체에서도 소외되고, 종교적 공동체에서도 소외당한 여인이었습니다. 어느날 여인은 사람들이 물 길러 가지 않은 뜨거운 정오 시간에 물을 길러 광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여행에 지쳐 쉬고 있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당신은 유대 남자로서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왜 물을 달라고 합니까?"라고 냉정하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여인의 대답에서 죄인된 인생의 첫 번째 관심사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처음에 "저 사람이 어디 출신인가, 어느 동네 사람인가, 어느 지방 사람인가, 혈통이 무엇인가, 상종할 수 있는 사람인가, 못할 사람인가, 내편인가, 적인가" 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여인에게 "네가 마시는 물은 마시면 금방 목마르지만, 내가 너에게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여인은 예수님의 말뜻을 못 알아듣고 대뜸 "그 물이 있다면 나에게 주십시오. 그 물을 우리 집에 갖다 놓고 여기 물 길러 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그냥 퍼면 또 물 나오고 하는 물이 우리 집에 있다면 얼마나 편하겠습니까?"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여인은 아직도 예수님 말씀을 육체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여인에게 "네 남편을 데려 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순간 여인은 깊은 아픔을 느꼈습니다.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예수님은 "남편 다섯 있었으나 지금 남편은 네 남편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남편의 법적 지위를 말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인의 마음 상태를 이해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남편과 여섯 번째 함께 살고 있지만, 그 마음속에 여전히 방황하고 있고, 허탈감과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여인은 자기의 남편 문제를 알고 있고, 자기의 아픈 마음을 너무나 깊이 이해하고 계신 예수님을 선지자로 이해하고, "선지자시군요."라고 말하였습니다. 여인은 이제 눈을 조금 떴습니다.

그리고 질문합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드려야 한다고 하고, 사마리아인들은 이 산에서 예배드려야 한다고 하는데, 어디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옳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예배는 장소가 아닙니다. 이곳도 아니고 저곳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가 올텐데, 바로 그때가 지금(23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는 것은 종교적인 예배입니다. 자기가 만들어 놓은 어떤 것에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우리의 예배도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고 종교적 예배를 드린다면 우리도 알지 못하는 것에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진정과 신령한 마음으로 예배한다면, 체험적으로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22절에서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는 말씀은 민족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 예배에 관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참 예배는 성경에 있는 예배입니다. 종교적인 민족적인 예배가 아닙니다.

그러면서 23절에서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찾는다는 말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이 적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적으니까 하나님께서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바닷가의 모래에서 바늘을 찾는 심정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하겠습니까? 두 번째 의미는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기뻐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의 모습을 계시하십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에게 성령님의 감동이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나타내주십니다. 거기서 영감과 계시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한번 강조하십니다. 24절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영과 진리, 영과 진정, 성령과 마음으로 드려야 하는 예배여야 합니다.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교리가 사람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지식과 정보, 형식과 전통이 사람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제도와 법이 사람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영감과 계시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사랑과 영적인 감동이 변화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지식과 정보를 아무리 정확히 전달한다고 해도 그 사람이 변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배 시간에 정확한 성경지식이 강의된다고 해서 하나님의 감동이 있습니까? 예배의식을 정확히 지킨다고 해서 사람의 심령이 변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배 시간에 성령님과 우리의 영이 만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기뻐하실 때,  우리가 진정한 마음으로 예배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함께 느낄 때, 예배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예배의 능력과 예배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예배를 드리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러면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네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온전한 예배는 모든 장소에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권합니다.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정죄하심으로 권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전인적인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한 부분이 아니고 우리의 온전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나의 몸통 전체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시간, 공간 개념도 들어 있습니다. 나의 모든 시간 속에서, 내가 활동하는 모든 공간에서 예배 드리라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어디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옳습니까? 예루살렘입니까, 그리심산입니까?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 진정한 예배가 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하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장소에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진정한 예배, 온전한 예배는 모든 장소에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특별한 장소에 구애받지 말아야 합니다. 온전한 예배는 우리가 있는 모든 장소에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한마디로 우리의 모든 생활이 예배이고, 예배가 생활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생활로 바꾸고, 생활을 예배로 바꿔야 합니다. 예배와 생활이 하나일 때 영감있는 예배가 됩니다. 만일 우리가 일주일 한번 드리는 주일 예배 한시간을 예배로 드리고, 나머지는 하나님과 관계없이 내 생각, 내 경험, 내 의지대로 살아간다면, 한시간 드리는 그 예배는 육적인 예배입니다. 죽은 예배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심판 받을 예배입니다. 그런 예배는 드릴수록 하나님께 심판을 더 쌓아 가는 것입니다. 생활과 예배가 하나가 될 때 예배가 영적인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예배 속에서 생활이 있고, 생활 속에서 예배가 있을 때, 우리의 예배가 살아있는 예배가 됩니다. 이런 예배가 드려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건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런 분들이 많으면 교회가 건강해집니다.

둘째는 마음과 혼과 영이 하나가 되는 예배여야 합니다. 우리의 몸이 지금 이 곳에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어디에 가 있습니까? 예배 후에 함께 먹을 음식에 가 있다면, 음식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감사제를 위한 프로그램에 가 있다면, 프로그램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집에 가 있다면, 집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일터에 가 있다면 일을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예배드리기 위해서 몸이 여기 앉아 있지만 마음이 돈걱정을 하고 있다면 지금 이시간 돈을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예배가 이루어집니다. 마음과 혼과 영이 하나가 되는 예배를 드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찬양과 관련하여 예배부에 소속된 다윗 찬양 팀들은 자신 뿐만 아니라 여기에 있는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인도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분들을 예배인도팀이라고 불렀으면 합니다. 주일 예배에 있어서 예배 인도팀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분들이 힘든 우리 현실 속에서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고 수고해온 것에 대해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예배인도팀의 중요성을 생각하면서,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이시간 또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예배인도팀들의 예배인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 모두의 찬양이 소리만의 찬양, 소리만의 예배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과 혼과 영,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전인적으로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예배자로 서 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가 예배를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임재 속에 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 드리는 목적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을 체험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배 인도팀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도록 섬기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 인도자들이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음악적으로 기술적으로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실수입니다. 눈에 보이는 실수보다 보이지 않은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한 실수가 쌓이면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가는 것이 방해가 됩니다. 또 우리가 다 그런 면에서 서로에게 제사장적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옆에 있는 분, 앞에 있는 분,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인하여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갈 수 있도록 내가 제사장적 역할을 해야됩니다. 그리할 때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임재 속에, 거룩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세 번째는 개인 예배와 작은 모임의 예배와 주일 예배를 함께 드릴 때 거룩한 예배가 됩니다.

먼저, 개인 예배를 드리십니까? 혼자 하나님께 예배하십니까? 혼자 하나님께 찬양하고 경배하십니까? 혼자 고요하게 "하나님 사랑합니다. 경배합니다. 예배합니다."라고 하나님을 높여 드립니까? 또 혼자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까? "하나님,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개인적으로 들어야 할 말씀, 예배 속에서 설교를 통하여 듣는 말씀 말고, 나에게 일대일로 하시는 말씀 지금 이 시간에 해주십시오." 또 하나님께 개인적으로 기도하십니까? 많은 시간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에 5분만이라도 하나님께 개인적으로 예배하십니까? 개인적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개인적인 예배 속에 하나님과 내가 일대일로 친밀하게 만나게 됩니다.

두 번째는 작은 모임의 예배입니다. 작은 모임의 예배는 서너 사람 또는 대여섯 사람이 모여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작은 모임의 예배는 친교와 사귐을 느끼는 예배입니다. 두세 사람이 있는 곳에 예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두세 사람이 모여서 아픔과 기쁨을 나누고, 생활 속에 있는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그 삶 속에서 체험한 신앙을 주고 받으면서, 그곳에서 서로를 위하여 중보 기도하고, 서로를 아껴주는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면서 드리는 예배가 공동체적 예배입니다. 그것은 작은 예배요, 사귐과 친교와 교제가 있는 예배입니다. 이런 작은 모임의 예배에 참석하고, 작은 모임의 예배를 드리는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주일날 모여서 셀레브레이션을 합니다. 축하하고 함께 모여서 기뻐하는 예배를 드립니다. 이 세 가지의 예배가 함께 있을 때, 예배의 영감, 예배의 능력이 더해집니다. 이런 세 가지 예배를 똑같이 드려야 온전한 예배가 됩니다. 어느 한쪽만 드리면 균형을 잃게 됩니다. 우리가 이런 건전하고 온전하고 균형있는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약 이런 저런 이유로 개인예배를 드리지 않으셨다면, 오늘 예배 시간 이후부터라도, 시간을 만들어서 개인예배를 드리십시다. 하루에 5분 이상, 5분을 투자 못하겠습니까? 아무리 바빠도 T.V. 시청하는 시간을 5분 줄여 보십시오. 잡지나 신문 보는 시간 5분만 줄여 보십시오. 친구들과 잡담하는 시간 5분만 아끼십시오. 그리고 돈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5분만 좀 덜 벌고 그 5분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집에서 하기 어수선하다면 밤에 잠깐 밖에 나와서 조용히 산책하면서 예배 드리면 될 것입니다. 하루에 1시간, 2시간 기도하라는 게 아닙니다. 하루에 5분만이라도 하나님께 고요하게 진지하게 일대일로 예배드리십시오. 다음에 작은 모임의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하십시오. 그리할 때 주일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기쁘고 감동적이고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있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 때마다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고 우리가 기쁜 예배를 드리면, 성령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 기쁨이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그러면 예배시간에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읽을 때 감동이 되고 눈물도 흘리고 기뻐서 웃고 즐거워하고 삶의 에너지가 넘칩니다. 그래서 죽어 가는 심령이 살겠다는 마음으로 바뀌고, 어둡고 침울했던 마음이 밝고 기쁜 마음으로 바뀌고, 이러한 일들이 예배 속에서 일어납니다. 예배 속에서 변화와 회복과 중생의 체험이 있게 됩니다. 이러한 예배가 우리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는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시편 122:1 처럼 될 것입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넷째, 예배의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온전한 예배는 모든 장소에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몸과 혼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개인 예배와 작은 모임의 예배와 주일 예배과 함께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그리고 예배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누가 예배 드리러 가자 하면 "오늘 안가면 안돼?", 예배 드리러 가자 하면 "오늘, 좀 빠지고 싶은데... 예배 보다 우리 어디 놀러갈까? 거기가 더 좋은데."... 그렇다면, 이 사람은 예배의 감동을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배의 기쁨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아무리 "예배 시간에 늦지 마십시오. 빠지지 마십시오. 일찍 오십시오." 말씀 드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배에 감동이 있으면 일찍 오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일찍 오게 되어 있습니다. 찬양의 기쁨이 있으면 스스로 일찍 와서 찬양하며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갑니다. 사실, 예배 드리는데 최소한만 투자하겠다, 일주일에 한시간만 투자하겠다, 한시간 10분은 안 된다, 50분은 괜찮지만 한시간 10분은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늦게 오셔도 괜찮습니다. 늦게 오더라도 예배 드려 주시기만 해도 괜찮습니다. 예배 드려 주는 수준으로 예배 드려도 누가 뭐라 그러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는 그 본인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성령님의 감동을 체험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기쁨을 찾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의 기쁨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 드릴 때, "야, 우리 예배하러 가자. 그래, 만사를 제쳐놓고 가자." 뭐 하다가도 누가 "예배하자."라고 말하면, "그래, 만사를 제쳐놓고 예배 드리자." 기쁨과 감동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예배가 우리의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것을 위해 우리가 함께 집중합시다. 서로 협력하고 서로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이런 예배를 만들어갈 때 교회가 건강해집니다. 교회가 건강해지면 가정이 건강해집니다. 가정이 건강해지면 사회가 건강해집니다. 이는 교회의 사명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건강하게 만듭시다. 그것을 예배부터 시작합시다. 예배가 살면 나라가 삽니다. 예배가 살면 인류에게 구원이 임합니다. 예배를 영감있게 드리는 것은 우리가 구원을 경험하고 또 구원을 확대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예배가 우리 교회의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가 예배 드릴 때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성령님의 기름 부어주십시오. 예배 때마다 기쁨과 눈물의 감동이 있게 하시옵소서. 우리가 성령님 인도하심 따라 신령과 진정으로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더더욱 온전하며 더더욱 거룩하며 더더욱 뜨거운 예배가 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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