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주일학교 교육에 대하여 (막 10:13-16)

  • 잡초 잡초
  • 287
  • 0

첨부 1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나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부터 어린아이들에 대해 깊은 관심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서부터,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를 많이 사랑하셨습니다.

오늘 설교에서 다루는 연령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나이입니다. 대략 7-17세입니다.

예수님께 어린아이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주님께 데려 온 것입니다. 부모들은 예수님께서 아이들을 붙들고 축복기도 해 주시기를 기대했습니다. 아이들이 예수님의 손으로 축복 받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주님께서는 그것을 참 좋아하셨습니다.

그러나 둘러선 제자들은 그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을 꾸짖었습니다. “예의도 없군요!” “예수님께서 피곤하십니다. 그러니 괴롭혀 드리지 마세요! 다음에 오세요, 다음에!”

그러나 주님께서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배려하는 제자들에게 오히려 마음에 ‘분노’가 일었습니다. 주님께서 분노를 일으키신 경우는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없었습니다. 지금 제자들이 어린아이들을 막을 때 주님께서는 분노하셨습니다. “아이들이 내게 오는 길을 용납하라. 절대로 막지 말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분노하신 것은 “평소 분을 잘 내는 성격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그 사랑을 모르는 제자들에게 ‘답답한 마음’이 생겨나신 것입니다.

이어서 “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다”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린아이 같은 자들에게 임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사역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다른 것은 다 잘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면 잘못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연 설명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 나라를 어린아이처럼 받들지 않는 사람은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리고 주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안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이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받들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받드는 사람입니다.

어린아이의 ‘속성’ 중에 ‘신뢰’가 있습니다. 의심 없이 믿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속성이 하나님 나라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린이들을 주님께로 데리고 온 “부모들의 믿음”은 지적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철이 없어 보이는 아이들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하갈이 땅을 치며 통곡할 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한 켠에 누워 기도하는 14세 소년 이스마엘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부모 된 우리 입장을 살피겠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데리고 가야 아이들이 주님께 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이들이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 마음을 헤아려 주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아이들에게 복 주시는 것이라기보다는 아이들의 마음을 귀하게 보십니다. 아이들 마음속에 예수님에 대한 그리움, 그 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또 한 번은 제자들 중에 “누가 크냐?” 하는 논쟁이 붙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곁에 있던 아이들 중에 하나를 세우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
또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이 곧 하나님 아버지를 영접하는 것이다.
너희 중에 가장 작은 그 사람이 큰 자다.

어린아이는 작은 사람입니다. 자기 앞가림도 하지 못합니다.

작년에 신문에 소개된 사연입니다. 어떤 홀어머니가 죽었을 때 시체 곁에 6개월간이나 함께 있던 15세, 중학교 3학년 송 모 군이 있었습니다. 효심이 커서 그랬을까요? 내가 볼 때는 세상살이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떠나고 나니 무얼 할 줄을 몰랐을 것입니다. 경찰이, 학교 선생님들이 “무얼 도와줄까?” 묻자, “혼자 있고 싶다”고 말했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이 소년을 불쌍히 여기셨다고 생각합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이스마엘을 생각했습니다.

어린아이는 가장 불쌍합니다. 전쟁이 나면 어린아이가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입습니다.

주님께서 어린아이에게 잘 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를 밝히시기 위해 “삼단논법”을 쓰셨습니다.:

      1. 어린아이를 돌보는 것은 주님을 돌보는 것입니다.
      2. 주님을 돌보는 것은 하나님께 잘 해 드리는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어린아이를 돌보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는 일입니다.

오늘 어린아이에게 잘 하는 길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나는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내가 돌보아야 할 아이는 내 아이뿐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아이에게도 “다른 사람을 섬기는 법”을 가르칩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남을 섬기기 위한 목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자기 자녀 사랑을 넘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품어야 하겠습니다. 자녀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라면 남의 아이들에게도 좋은 교육을 시킬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실은 내 자식을 잘 가르치는 것은 내 아이를 통하여 남의 아이들을 잘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바탕에 두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냥 내 아이만 잘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면 자식 교육 자체도 망치고 말 것입니다. 아이가 도무지 어떤 긍정적인 동기를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 미국대륙을 가로지르는 철도가 건설되기 시작했습니다. 한쪽 회사는 대서양에서부터 건설을 시작했고, 다른 회사는 미 서부 샌프란시스코를 기점으로 건설을 착수했습니다.

서부에서 출발한 이 회사 사장은 몇 년 전 홍콩여행에서 중국인 부두 노동자를 보았습니다. 그 중국 노동자들이 그렇게 싼 임금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열심히 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릎을 탁 치며 ‘옳거니, 이 사람들을 미국 철도 건설에 투입하자.’라는 그 당시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전략을 짜냈습니다.

그 전략은 멋지게 적중하여 동부에서 출발한 철도 건설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건설공사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광대한 역 주변을 개발함으로써 그는 엄청난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태리 여행도중 하나밖에 없는 16살 난 아들을 열병으로 잃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는 슬픔에 잠겨 있는 아내 곁으로 다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이 세상의 모든 자녀들은 모두 우리의 자녀가 될 것이요.” 이때 그는 전 세계를 향한 비전을 품은 대학을 찾아 장학금을 지원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버드 대학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수위실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왜 예일을 안 갔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서부로 돌아온 그는 대학을 설립하겠다는 멋진 결심을 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이 바로 스탠포드입니다. 그는 아들을 생각하고, 아들 같은 이 땅의 젊은이들을 교육할 비전을 품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대학 학풍은 교수나 학생들이 새로운 이치를 알게 되면 바로 기업화하는 것입니다. 200여 년 전 우리나라의 박제가, 연암 등이 그렇게 갈망하던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바로 실천한 것입니다. HP(Hewlett & Packard)나 CISCO 같은 세계적인 IT 기업들이 이 대학의 실사구시(實事求是) 학풍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25명이나 노벨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스탠포드는 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대학 1위입니다.

우리 지역에 스탠포드가 있습니다. 좋은 정신을 잘 이해하고, 우리의 다음세대 교육에 배려해야 하겠습니다.

어느 가정이나 자녀교육에 배려가 있는 가정은 미래가 있습니다. 어느 나라도 교육이 살아있으면, 미래가 밝습니다. 다만, 자기 가정, 자기 나라라는 배타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면 교육 자체가 ‘공해’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잠간 어린이 교육에 대한 통계를 살펴보겠습니다. 학교가 부족합니다.

미국처럼 교회가 많은 나라도 ‘교사의 부족’을 실감합니다. 미국의 40%는 저소득층입니다. 하위 20%는 정말 최악입니다. 정상적인 교육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저소득층 아이들이 주로 다니는 학교 교육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그 수준이 낮습니다. 미국 교육이 좋아서 한국에서 유학을 많이 오는데, 적어도 아래 40% 정도의 학교 아이들은 한국으로 유학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영양실조로 고생하는 아이들의 비율이 비슷한 경제수준의 나라 중에서 최하위라고 들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교사가 부족하기 때문에 미래가 어둡습니다.

학교교육보다 중요한 것은 교회의 주일학교 교육입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카터 대통령의 교사 생활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교회의 교사들은 참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오전 9시 30분의 1부 예배를 드리고 주일학교 학생들과 함께합니다. 

교사를 위한 기도를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어린아이 교육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일일이 품에 안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에게 어린 딸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죽은 어린아이를 살려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소녀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달리다굼.” 이 말은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라는 뜻입니다. “달리다+굼!” 그때 그 아이의 나이는 열 두 살이었습니다.

      12 야이로의 딸
      13
      14 이스마엘
      15 송 모 군
      16 스탠포드 주니어, 제임스 가필드 

오늘 우리교회의 어린아이 교육
어린이 교육에 대한 관심.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어린이가 주님께 오는 것을 용납해야 합니다. 어린이는 ‘스스로 판단해서 오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른들이 그 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어떻게 할 것입니까?

어린아이들에게 ‘복음’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아이들은 주님의 은혜로 성장합니다.

교육의 구체적인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1. 올바른 물질관, 2. 봉사정신 등입니다.

I. 올바른 물질관을 심어줍시다.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 그 목적의식을 분명히 세우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선 가난에 대한 몇 가지 “거짓 신화” 내지 “편견”을 제거해 봅시다.

      1. 가난해도 즐거움이 있다.
      2. 가난해도 보람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다.
      3. 가난한 사람은 거짓말 할 기회가 적다.
      4. 가난한 사람이 오히려 하나님과 가까이 지낼 기회가 많다.
      5. 가난한 사람은 이 세상보다는 천국에 소망을 두기 쉽다. 
      6. 가난을 경험한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봉사할 수 있다.

“돈”을 앞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돈이면 참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돈 때문에 엄청난 유혹에 빠질 수가 있기도 합니다. 인생 자체가 망가지는 경우는 정말 셀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돈의 노예가 되지 않기만 한다면 인생이 불행해지는 경우를 적어도 50%는 막을 수 있습니다.

예화 하나:

제임스 가필드(J. A. Garfield,1831-1881)는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편모의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16세에 학교를 중퇴하고 운하에서 일했습니다. 어느날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좀 더 훌륭한 일을 하라고 살려주신 거다.”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는 어머니와 동생들을 위해 낮에는 목수로 일했고, 밤에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교회생활에 최선을 다해, 목사님이 도와주어 학원에서 공부했습니다. 이후 그는 미국의 제20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한국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가필드의 일화가 실렸습니다. “대통령의 자리에 앉은 어머니”라는 제목입니다.
대통령에 취임하는 날(1881년 3월). 새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는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식장에 나타났다. 그러더니 자신이 앉아야 할 대통령 자리에 어머니를 앉히는 것이었다. 자신은 그 옆에 선 채 말했다. "여러분, 저를 대통령이 되도록 늘 이끌어 주시고 보살펴 주신 제 어머님이십니다. 오늘 이 영광을 모두 어머님께 바치고자 합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우레와 같은 손뼉을 쳤다. 그 손뼉 소리보다 더 큰 감동의 물결이 출렁거렸다.
제임스 가필드는 1831년 오하이오 주에서 가난한 개척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겨우 학교에 들어갔지만 책조차 제대로 살 수가 없었다.
하루는 어머니가 아들에게 말했다.
"얘야, 미안하구나. 부모가 되어서 아들이 공부할 책도 제대로 사 주지 못하니 말이다."
그러자 그는 오히려 어머니를 위로했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열심히 공부해서 반드시 훌륭한 대장이 되겠어요. 두고 보세요."
어머니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냐, 장하다... 얘야, 대장이 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먼저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알겠어요, 어머니."
제임스 가필드는 이 말씀을 가슴에 새겨, 늘 남을 도우며 살고자 노력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해, 고학으로 윌리엄즈대학을 졸업했다. 그 뒤 교사와 변호사를 거쳐, 1859년에 오하이오 주의 상원 의원에 선출되었다.
그러던 중에 남북전쟁이 일어나자 북군 장교로서 의용군을 이끌고 싸움터에 나갔으며, 나중엔 소장까지 진급했다.
그는 1863년에 군에서 퇴역하고 연방 하원 위원에 뽑혔다. 그로부터 18 년 동안 하원 의원을 지내면서 공화당 안에서 지도적인 지위를 쌓아올렸다.
1880년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에 지명되고, 선거에서도 이겨 대통령이 되었다. 이듬해 3월에 미국의 제20대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나 7월 2일 워싱턴 역전에서 저격을 받았으며, 9월 19일에 숨졌다.

가필드 대통령에 대한 일화를 하나 더 소개하지요.

대통령 취임식을 하던 때의 일입니다.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시간에 가필드는 양복 주머니에서 작은 성경을 꺼내더니 양해를 구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대심원장님께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성경으로 선서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이것은 가필드가 16세 소년 시절 집을 나올 때 그의 어머니께서 주신 성경이었습니다.
  “이 성경은 제게 있어 생명과도 같은 것으로,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저를 인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저로 하여금 성경 말씀대로 나라를 다스리도록 인도해 줄 것입니다.”
  결국 가필드는 배의 선원으로, 그리고 농장의 일꾼으로 지냈던 어렵고 힘든 시절에 그에게 용기와 힘을 주었던 그 성경에 입을 맞추고, 앞으로의 올바른 통치를 다짐하는 선서를 하였습니다.
  일찍이 유다의 왕이었던 솔로몬은 “야웨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가필드 대통령처럼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 중심으로 사는 삶, 이것을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 말씀대로 실천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화 둘: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출생해서 미국 자본주의가 일어설 수 있도록 큰 공헌을 한 사람이 강철왕 카네기(A. Carnegie, 1835-1919)입니다. 신문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청년들을 위해 성공의 비결을 말해 달라고 부탁 받았습니다. “성공의 첫째 비결은 가난한 집안의 아이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나는 늘 가난에 허덕이는 부모를 보면서, ‘어디 두고 보자. 부모님을 근심시키는 가난을 없애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두 번째 비결은, 어떤 일을 하든지 거기서 제일인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된 사람이 어떻게 자녀들에게 ‘가난’을 경험시킬 수 있을까요? 부모의 재산은 다 “하나님의 것”이며 “공공의 것”이라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려주어야 합니다. 유산으로 물려받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 공부할 때도 무조건 등록금 걱정 없이 학교생활 하게 할 것이 아니라 아르바이트 시키면서 스스로 개척하여, 매사에 열심히 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생명력” 있는 “근성”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근성이란 가뭄이 와도 뿌리를 땅에 깊이 박는 성질입니다.

비가 잘 오지 않는 지역에 사는 풀과 나무는 뿌리가 길고 질깁니다. 생명력을 스스로 길러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부정한 “돈”은 자녀들이 하나님과 만나는 길을 막습니다.
우리가 부지런하게 돈을 버는 일은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만큼 중요한 것은, 자녀들이 돈에 현혹되지 않도록, 자녀들을 돈에서 ‘차단’시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1. 가난한 부모들에게는 위로를, 2. 부요한 부모들에게는 경계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두 주인이란 하나님과 재물입니다. 둘 다 택하면 마음이 나뉘고 맙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은 돈을 주인으로 섬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그에 매이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일하여 돈을 벌 수 있도록” 교육시켜야 합니다.

II. 봉사하는 기쁨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직업은 ‘봉사’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가필드 대통령의 어머니가 “봉사”를 가르쳤습니다. 가난하고 무식한 어머니였지만, 그 한 마디와 그 정신은 가필드의 일생 방향을 결정했습니다. 그의 가정교육은 “너는 봉사하기 위해 일해야 한다.”는 한 마디뿐이었지만, 그것은 정말 소중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봉사라는 목적”을 세울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봉사하기 위한 직업을 갖자면, ‘인문학’ 공부가 참 필요합니다. 문화를 알고, 역사를 배우며, 심리를 잘 이해하면 사람을 보다 잘 도와줄 수 있습니다.

자녀들과 대학진학 상담을 할 때, 이런 “봉사”를 염두에 두고 진로를 타진해 보기를 권합니다.

아이들이 잘 자라야 미래 비전이 있습니다.

지난 주중에 서류 정리하다가 Grace 교회의 사진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90이 넘어 보이는 한 할머니 성도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습니다. 주일학교 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결론.
학교교육은 한계가 있습니다. 폐쇄시키는 학교가 늘어갑니다. 학생 수가 줄거나 경영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습니다. 1980년부터 오늘까지 한국 전국에서 3,000개가 넘는 학교가 폐교되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럴 수 없습니다. 세계 곳곳에 있는 교회들은 “경영” 원리로 운영되지 않습니다. 교회는 ‘선교’입니다. 선교는 한 사람만 바라보고도 계속 해 나갈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학교가 아닙니다. 학교는 문을 닫아도 교회는 그럴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학교는 정말 성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의 영혼을 맡았습니다. 그들의 미래를 열어가는 교육을 담당합니다.

예수님은 아이들을 사랑하십니다. 아이들은 예수님을 만나 뵙고 싶어 합니다. 어른들이 그런 ‘장’을 마련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아이들이 직접 예수님을 뵙고 그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어리석은 제자들처럼 아이들을 귀찮아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아이들 떠드는 소리를 “음악”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이들 울음 소리가 있는 가정과, 그런 교회는 ‘미래’가 있습니다.

좋은 교회는 좋은 교육이 있습니다.
좋은 교육에는 반드시 어린아이를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제 곧 건축될 교육관을 위해서 기도 많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번 정기 당회 때 우리는 새 교육관이 완공되면 주중에도 교육할 수 있는 길을 열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육을 그때까지 미루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기회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봉사’하는 교육을 날마다 실시해야 하겠습니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저희들이 자녀교육에 성공하게 하옵소서.
좋은 교육을 위하여 헌신하게 하옵소서.
다음 세대를 기르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열매를 거두게 하옵소서.
어린이를 사랑하시고, 어린이를 축복하신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은석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