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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물로 준비하는 잔칫날 (마 13: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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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동원산업은 세계 최대의 수산 기업입니다. 주로 태평양과 인도양에서 참치를 잡습니다. 연간 12 만 톤이나 잡으니 그 양이 대단합니다. 큰 바다에서 참치를 잡으려면 첨단 장비를 이용해야 합니다. 참치는 떼로 다닙니다. 그래서 음파탐지기와 위성통신 장비로 참치가 있는 곳을 알아냅니다. 또 육안으로 직접 참치 떼를 확인합니다. 참치들이 멸치를 잡아먹을 때는 물 위에 하얀 물보라가 일어납니다. 그러면 작은 배가 그물을 끌고 참치 떼를 포위합니다. 그리고 서서히 그물을 좁혀 참치를 잡습니다. 이렇게 한 번에 들어 올린 그물에 십여 톤씩 담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물의 아래와 가장자리를 조여 잡기 때문에 참치 외에도 다른 고기가 함께 올라옵니다. 선원들은 갑판에서 이를 분리해야 합니다. 최근에는 돌고래가 함께 잡히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천국 비유는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비유입니다.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다고 했습니다.

고기를 잡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특히 그물로 잡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투망이란 그물이 있습니다. 손으로 줄을 잡고 머리 위에서부터 그물을 던져 우산처럼 펴지게 합니다. 그물 가장자리에 추가 달려 있어서 그물이 펼쳐진 곳 안에 있던 물고기들이 걸려듭니다. 그 때 그물을 싸잡아 올리면 됩니다.

저는 어려서 아버님을 따라 천렵을 많이 다녔습니다. 제 아버님의 취미가 천렵이었습니다. 아버님은 시간이 나면 투망을 손질하셨습니다. 투망을 천장에 매달고 그물이 뚫린 곳을 꿰맵니다. 그리고 돼지피를 먹여서 말렸습니다. 저는 주로 그물 던지는 곳까지 물고기를 모는 역할을 했습니다. 고기 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냇가를 뛰어다녔습니다. 아버님의 투망은 정확하게 타이밍을 맞춰 펼쳐졌습니다. 물가에서 그물에 가득 든 고기를 담습니다. 파닥거리는 물고기를 집어내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투망을 던지는 것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 때는 어렸기 때문에 그물이 무거워 들기도 어려웠습니다. 나중에 투망을 거뜬히 들 나이가 됐지만 냇가가 오염이 되어 천렵을 더 이상 다니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4 장에 베드로가 고기를 잡다가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때 사용한 그물이 손 그물입니다. 베드로는 배 위에서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손 그물은 깊은 바다에서는 별 효력이 없습니다. 그물이 펼쳐져도 가라앉는 동안 물고기들이 도망칩니다. 그래서 얕은 물가에서 잡기에 좋습니다.

또 다른 종류의 그물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소개된 그물입니다. ‘사게네’라는 그물인데 이것을 ‘예인망’이라고 합니다. 손 그물보다 훨씬 크고 규모가 있습니다.

아까 소개한 참치잡이 선망선이 사용하는 그물입니다. 이 그물은 양쪽에서 고기를 몰아 싸서 잡습니다. 이 그물로 물고기를 잡으면 여러 종류가 한꺼번에 들어옵니다. 끌어 올린 물고기들을 가려내야 합니다. 좋은 것은 그릇에 담습니다. 하지만 필요 없는 것은 내어 버립니다.

성경을 보면 내 버리는 물고기를 못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쓸모없는 것이라고 하지 않고 왜 하필 못된 것이라고 했을까요? 못된 것을 가려낸다는 것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오늘 그물 비유는 두 가지 메시지가 있습니다. 전도와 심판입니다.

첫째, 천국은 예인망 그물로 물고기를 잡듯이 싹 끌어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전도는 때를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4;2 말씀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의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물을 쳐서 자기 백성들을 당신의 품에 돌아오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그물에 걸린 사람은 천국을 얻습니다. 그물에 걸린 것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복음 전도를 재촉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잔치를 마련하고 손님을 청하는 주인의 마음입니다. 반듯한 사람들을 청했지만 모두 핑계를 대면서 초청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종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종이 가로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오히려 자리가 있나이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눅 14:21-23>

전도는 따질 겨를이 없습니다. 무조건 만나는 사람들을 모두 초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잔치의 빈자리를 채우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복음 전파를 최우선 사명으로 여깁니다.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생명력이 없습니다. 교회가 부흥하지 못하면 크게 책망 받을 것입니다.

우리 멋진교회는 작년에 산삼 전도법을 도입했습니다. 아주 신선한 전도법으로 호감을 가졌습니다. 산삼 전도는 전도를 조급하게 하지 말고 길게 보고 끈질기게 전도하자는 것입니다. 산삼 전도법에서는 전도 기간을 최장 2 년까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를 착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 2 년을 전도를 하지 않아도 되는 유예기간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년이란 말은 끈질기게 전도하다 보면 반드시 2 년 안에 열매를 거둔다는 뜻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도하자마자 이내 교회 등록시킬 수 있습니다. 2 년 동안 버티는 사람은 아주 특별한 사람입니다. 고래심줄 같이 여간해서 말을 듣지 않고 버티는 고집쟁이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실 진작 포기할 수 있지만, 산삼 전도법에서는 이런 사람까지 포기하지 말자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멋지니안들은 전도 대상자를 모두 고래심줄로 보고 느긋하게 기다리고만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산삼 전도법도 시들해지고, 전도 자체를 아예 안 하는 아주 나쁜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멋진교회는 지금 전도를 하지 않아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 심각한 상태입니다.

지금은 전도가 되지 않는 시대가 아닙니다. 지금은 우리가 전도를 하지 않고 있는 때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점을 하나님 앞에 통회자복하며 회개해야만 합니다.

어떻습니까? 우리가 전도하지 않고 편하게 믿을 수 있습니까? 전도하지 않아도 편히 교회를 다닐 수 있을까요? 전도와 믿음 생활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만약 전도하지 않고도 교회를 잘 다닐 수 있다면 그것은 가짜 믿음입니다. 구원의 은혜와 감격이 없다는 뜻입니다. 나만 구원받고 다른 믿지 않는 자가 불신으로 지옥 가는 것이 아무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남의 처절한 불행 앞에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지 않는 것입니다.

전도하지 않는 신자는 이기적인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이는 주님에게 크게 책망 받을 믿음의 자세입니다.

본문의 두 번째 메시지는 심판에 대해서입니다. 그물에 올라온 물고기들은 분류를 합니다. 좋은 것과 못된 것이 있습니다. 좋은 것은 그릇에 담지만 못된 것은 내어 버립니다.

50 절에는 이 내어 버리는 장면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이 본문은 아주 익숙합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25 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에 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달란트 비유를 보면 재능을 땅에 묻어둔 게으른 종이 당하는 심판 장면이 그렇습니다. 슬피 울며 이를 간다는 것은 지옥 심판을 받고 후회하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없는 불신자가 당하는 심판이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는 무익한 종이 받는 심판이라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물로 물고기를 잡을 때는 무조건 그물로 포위해서 조여 잡습니다. 그 중에서 좋은 것과 못된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전에 모두 그물에 걸려든 물고기였습니다. 어찌됐건 하나님의 택하심과 은혜로 우리는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믿음을 이어받은 모태 신앙인도 있습니다. 또 살다가 전도를 받아 교인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교회를 잘 다니고 있으니 좋은 물고기이겠지요? 이 좋은 물고기는 따로 그릇에 담는다고 했습니다. 물고기가 그릇에 담기면 시장을 통해 주방에서 맛있는 요리가 되겠지요?
이 비유는 우리가 물고기 반찬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릇에 담긴 좋은 물고기란 어부로 신분이 둔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전도의 원리입니다. 그물 비유는 전도하는 방법에 대한 교훈까지만 적용합니다. 비유는 비유가 가진 원리까지만 해석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전도하셨습니다. 고집쟁이 베드로는 물고기 잡는 체험을 하고 나서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전도하실 때 베드로는 예수님이 낚는 물고기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제자가 되고 나니 예수님은 베드로를 바로 어부로 명하셨습니다. “네가 이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그럼 못된 물고기로 분류되어 버림을 받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전도가 되어 교회를 다니게 되었지만 어부가 되지 못하고 여전히 물고기로만 남을 자들입니다.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다른 안 믿는 자들과 함께 나누고 누리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여러분! 전도를 하지 않는 것은 지나친 게으름입니다. 결국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이런 물고기를 못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 즉 전도를 하지 않는 믿음, 죽은 믿음입니다.

저는 마태복음을 강해설교하면서 줄곧 전도를 강조했습니다. 특히 마태복음 10과 11장은 전도에 대한 메시지로 가득합니다. 그 본문을 통해 설교한 제목들입니다. “제자는 영화표가 아닙니다”, “딱 한 마디 전도”, “작심 방지 비결“, ”점점 왕성해지는 교회“, ”전도자의 특권“, ”강력한 전도의 힘 ‘와이키키’“, ”배짱 전도“, ”“피보다 진한 복음”, “꼼꼼한 수첩”, “교회에 오면 뭐가 보이십니까?”, “잔칫집에 조문객”.

모두 전도를 강조한 설교들입니다. 마태복음 10 을 강해설교 할 때 어떤 교인이 그랬습니다. 목사님은 맨날 전도만 이야기 하신다고··· 석 달 가까이 쉬지 않고 전도 설교만 하니 듣기에 괴로웠을 것입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도 내심 그 분만 괴로웠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그래도 그만큼 떠드니 전도하려고 움직이겠지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그 전도 설교를 하는 동안 전도를 받고 등록한 교인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영성이 없는 설교를 계속해야 하는지 무척 고민했습니다. 목사가 피리를 불면 춤추는 시늉이라도 해 달라고까지 했습니다. 목사가 곡을 하면 가슴이라도 쳐달라고 했습니다. 올해 3월 첫 주에 설교에 그랬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 설교가 이렇게 건조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결국 이렇게는 계속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냉랭한 여러분의 가슴에 복음의 불을 담아야 합니다. 복음에 차가운 가슴은 곧바로 심판대 앞에서 영벌을 면치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주님의 엄한 책망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제대로 인도하지 못한 지도자로서 제 책임이 훨씬 큽니다. 이대로 머뭇대겠습니까?

지난 5 월에 저는 기도하면서 돌파구를 찾아보았습니다. 산삼협의회를 모이고, 대표회의를 했습니다. 지난 지방 선거하는 날에 임직자들을 소집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둥지어미들을 모아놓고 전도하는 일에 대해서 의논했습니다.

오는 9월 10일 전도로 잔치하는 날을 잡았습니다. 이날은 가시적으로 우리가 전도를 해서 주님 앞에 열매를 보여드리는 날입니다.

여러분에게 선포합니다. 9월 10일은 멋진교회 전도 잔칫날입니다.

전도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모두 전도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나가야 합니다.

이 날까지 전도해서 50 명 이상 등록시키는 것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9월 10일에만 딱 전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9월 10일 전이라도 꾸준히 교인 등록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부터 시작해서 9월 10일 주일까지 등록시킨 분들을 잔치에 초청합니다.

9월 10일은 주일입니다. 이 날은 11 시에 시작합니다. 1 부 예배는 그대로 9시 30분에 드립니다. 11시부터 찬양 공연이 있습니다. 11시 30 분에 점심 만찬을 나눕니다. 정성껏 준비한 도시락이 될 것입니다. 12시부터 소개의 시간이 있습니다. 12시 15분부터 주일예배를 드립니다. 1시에 간증과 교회를 영상으로 소개합니다. 마치면 1시 30분이 됩니다. 초청된 분들에게 선물도 드립니다.

이 전도 잔칫날까지 준비하는 3 달이 있습니다. 그 동안 간증집회를 4 차례 합니다. 7 월 초에는 신앙부흥회를 합니다. 달마다 한 번씩 주일예배를 마치고 전교인이 노방 전도를 할 것입니다. 세 번째 주 금요일에는 전교인 기도회를 합니다. 열흘 남기고 릴레이 기도회가 이어집니다. 중간에 나의 산삼 전도 진행 보고회를 합니다. 여러분이 전도하는 과정을 앞에 나와서 보고하게 될 것입니다. 2 주일을 남기고 정중하게 초청카드를 발송하게 됩니다.

앞으로 여러분에게 전도지와 초청장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이 날을 잊지 않고 항상 기억할 수 있도록 스티커와 배너를 제작해 나눠 드리겠습니다. 자동차와 가정 대문에 달아놓고 볼 때마다 기도할 수 있도록 합니다.

문제는 우리 가슴에 뜨거운 전도의 열정을 담는 것입니다. 전도를 누가 시킨다고 합니까? 성령께서 강권하여 이끄셔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전도의 뜨거운 성령의 불을 받아 누리십시다.

9.10 전도 잔칫날에 네 가지 슬로건이 정해졌습니다.

첫째는 ‘보배로운 산삼’입니다.

전도 대상자는 너무나 귀한 분입니다. 어떤 교회는 전도 대상자를 VIP 로 부르고 있습니다. 전도를 하고 싶어도 대상자가 없다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찾으십시오. 찾으면 반드시 주변에 산삼이 있습니다. 산삼을 고르지 마세요. 예수를 믿지 않는 분,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이야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는 우선 전도할 사람을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을 보배롭게 여겨야 합니다. 산삼 전도의 포인트는 전도 대상자를 산삼으로 보자는 것입니다. 산삼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사실 산삼보다 귀한 분입니다. 천하하고도 맞바꿀 수 없는 분입니다. 그 분을 전도하면 하나님은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실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할 분을 정하려면 먼저 기도하십시오. 마음에 누굴 전도할지 정했으면 그 분을 보배롭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런 마음이 들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두 번째 슬로건은 ‘나는 전도의 최종 결재자’입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전도하고 싶어도 용기가 없어서 망설입니다. 나대신 누가 전도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전도의 최종 결재는 내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결재하지 않으면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주님이 전도를 얼마나 했는가 보실 것입니다. 그 때 전도 많이 한 사람에게 몇 명만 달라고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돈으로 전도의 열매를 몇 명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누구도 나대신 전도를 해줄 수 없습니다. 전도는 우리 각자가 받은 지상 사명입니다.

전도의 결재자라는 뜻은 전도의 책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쉽지 않습니다. 전도를 하는 것보다 전도를 한 후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 전도를 해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 그 다음엔 얼마나 귀찮은지 모릅니다. 일일이 챙겨줘야 합니다. 새신자는 교회가 낯설기 때문에 전도한 사람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애기 키워 보셨지요. 애기가 얼굴 가리기 시작하면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코알라 같이 딱 붙어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에 애가 달라붙어 있으면 얼마나 성가십니까? 조금만 낯가리는 일이 생기면 울어대지요. 이런 애는 빨리 키워서 철이 들어야 떨어집니다.

새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새신자는 코알라입니다. 귀찮아도 새신자를 돌보는 책임이 있습니다. 이 돌봄도 전도입니다. 미우나 고우나 전도를 했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세 번째 슬로건은 ‘마음을 주는 전도’입니다.

산삼 전도의 핵심은 마음을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은 언제나 마음입니다. 마음을 주지 않으면 사랑도 없습니다. 마음을 주기 전에 마음이 닿아야 합니다. 마음이 닿으면 그 다음은 마음이 흔들립니다. 물건을 사려고 해도 살까말까 망설이지 않습니까? 마음이 흔들리면 결국 사게 됩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어야 전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당연히 내 마음을 먼저 줘야 합니다.

호감은 값진 대가를 치루고 사는 것입니다. 마음을 공짜로 얻을 수는 없습니다. 전도를 하려면 우선 마음을 다해 섬기십시오. 마음의 부분이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해 섬겨야 합니다. 그의 소용과 필요를 위해 내 것을 아낌없이 베풀어야 합니다. 전도를 하려면 시간이 많이 듭니다. 돈도 듭니다. 밥도 사고, 같이 시간도 보내줘야 합니다. 마음을 주는 전도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네 번째 슬로건은 ‘한 사람 한 가정’입니다.

한 사람이 한 가정을 전도하자는 뜻입니다. 또 한 사람이나, 한 가정을 전도하자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 한 사람을 전도하면 결국 한 가정 모두를 구원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이번 9.10 전도 잔칫날의 우리 전도 목표입니다. 전도를 할 때 한 사람 뿐만 아니라 그 가정까지 전도합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한 사람을 전도하면 그와 그 가정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이번 전도 잔칫날에 임직자들이 앞장서서 본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둥지 어미들이 앞장서서 본을 보이십시오. 저도 부지런히 전도하겠습니다. 우리 멋진교회가 시들거림에서 싱싱함으로 거듭납시다. 누구도 구경꾼은 되지 맙시다.

우리 모두 한 마음 되어 전도의 기쁨으로 주님 앞에 서십시다.
(황금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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