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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6.25기념] 여유로운 삶 (출 14: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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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님들의 기도에 힘입어 지난 주간 중국국가종교국 초청으로 중국방문을 잘 했습니다.  총회장님 부총회장님 세계선교이사장님들과 함께 북경 상해 광동성을 방문하고 홍콩을 경유해서 돌아왔습니다. 광주를 방문했을 때 협화신학교를 방문하고 그곳의 양로원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현관에 한 큰 사진이 있었습니다.  잘 차린 노인 두 분과 도우미들이 있는 사진인데 꽃이 있는 환경에서 찍은 것입니다. 저는 그 사진의 주인공들이 공산당의 높은 간부들로서 그 곳을 방문한 기념으로 찍은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 안에 있는 노인들을 찍은 것입니다.  저분들이라고 하는 그 노인들은 그냥 평범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최고의 사진을 찍어 보이고 방에는 젊은 때 사진을 붙여 줌으로써 새로운 희망과 위로를 갖게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런 희망의 비전을 주십니다. 주님이 찍어 주신 새 모습이 우리 모습이게 하셨습니다.  가두어진 인생 같으나 그들에게 여유로운 미래를 보이는 그런 사진, 그런 모습, 그 안에서 여유로운 그들의 봉사자들과 노인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경로가정대학을 소개했습니다.  서로 방문하면 좋을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여유는 갇힌 가운데도 오는 것입니다. 이 여유를 얻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경 본문 말씀이 들어있는 출애굽기 14장에 보면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14:3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아득하여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14:3 For Pharaoh will say of the children of Israel, They [are] entangled in the land, the wilderness hath shut them in.
여기서 갇힌바 되었다, 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싸가르’, 라고 하는데 ‘갇혔다, 딱 닫아놓았다, 밀폐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출발했지만 가는 길에 그만 광야 아득한 곳에 딱 갇혔다는 것입니다.  앞에는 홍해가 있지요. 뒤에는 애굽이지요.  갈데가 없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광야에 갇혔다, 는 이 표현은 오늘 우리들의 삶의 현주소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갇혀 있을 수 있어요.  생활문제, 사업의 곤경, 직장문제, 또는 장래에 대한 희망이 없어서 마음이 답답한 곳에 갇혀있을 수 있어요.  그렇게 되니까 전혀 여
유가 없어요. 무슨 여유가 없나요.  마음에 아, 교회가야지, 하는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 기도할 시간이 없어요.  전도? 그것은 정말 할 수 없는 일이고요.  도무지 여유가 없습니다. 항상 바쁘다고 하든지 아니면 바쁘지는 않는데 의욕이 없든지, 그래서 그만 여유로운 삶이 파괴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6.25 전쟁 56주년을 맞고 있습니다. 북한공산군의 남침으로 6.25 전쟁이 일어난 1950년 6월 25일은 평화로운 주일이었습니다. 그 평화를 깨뜨리고 북한 공산군이 남침을 시작한 새벽이 주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56년이 지나서 6.25를 기념하는 오늘 다시 주일을 맞았습니다. 주일. 우리는 마음에 쉼을 얻고 그리고 바쁜 세상 삶을 접고 주님을 위해서 하루를 드리고 함께 같이 예배드리는 이 날 56년 전에 전쟁이 터지고 모든 평화가 깨어져버렸던 것입니다.  58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고 난 후 주한미군 철수의 여론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59년 6월 주한 미군 철수의 결정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지 딱 1년만인 1950년6월에 북한은 남침을 감행했습니다.  평화는 깨어졌고 남한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가정마다 눈물바다가 되는 죽음, 전사의 소식, 피난의 물결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북한의 남침이 있은지 하루 만에 U.N.은 북한의 남침을 규탄했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유엔군의 참전결정이 있었습니다. 북한이 밀고 내려오는 때 이번에 신문을 보니까 한 병사의 이야기가 실려있었습니다. 전쟁이 터진지 나흘 때 이미 한강이북은 인민군이 점령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당시 전선은 낙동강까지 밀리고 있었습니다.  이 위기의 때에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에 피난한 300명의 목사님들께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300여명의 목사님들이 모여서 간절히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신 줄 믿습니다.

1950년 6월 29일, 당시 전선을 살피고 있던  맥아더 미 극동군사령관과 한 21살의 병사, 신동수 청년과의 대화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병사! 다른 부대는 다 후퇴했는데, 자네는 왜 여기를 지키고 있나?” “저는 군인입니다. 상관의 명령 없이는 절대 후퇴하지 않는 게 군인입니다. 철수 명령이 있기 전까지 죽어도 여기서 죽고, 살아도 여기서 살 겁니다.”  맥아더의 마음이 감동되고 그는 한국전 참전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맥아더 장군이 당시 한국군 병사의 말에 감동을 받아 참전을 결심했다는 사실은 참전 장성 회고록 등 여러 문서에서
확인된다”고 합니다.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위기의 때에 세우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갇힌 바 되었을 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해 놓고 계셨습니다.

(출애굽의 두번째 이야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때로 어떤 상황에 갇혀 있게도 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꼭 그런 곤란에 갇혔다고 생각하는 그런 상황에 인도하십니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지요.  애굽에서 떠난 이스라엘 수백만명은 하나님의 인도로 홍해 앞에 왔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있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이제 갇힌 사람들입니다.  앞에는 홍해입니다. 순식간에 건널 길이 없습니다. 뒤에는 애굽 군대가 추격합니다. 갇힌 것이지요.  사람들은 처음에 담대히 애굽을 떠났습니다. 아주 기뻐하면서요.  하나님의 높으신 능력의 인도를 감사도 했지요. 

14:8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담대히란 말은 하나님의 높은 손으로 인도를 받았기 때문이다, 라는 뜻입니다. 하여튼 이렇게 나온 그들이 이제 바로 왕의 추격부대의 위협 아래 놓였을 때 그들은 첫째 눈을 들어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 것을 보았습니다 둘째 심히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기도보다는 원망의 부르짖음입니다.  셋째는 모세를 비판했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라고 했습니다.  차라리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 보다 낫겠노라, 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첫째 믿음의 여유 이야기입니다
믿음의 사람 모세가 이렇게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14: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우리는 가장 곤란한 상황에 갇힌 때에 이 고백이 필요합니다. 이런 여유로운 믿음의 고백, 그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불신이 꽉 찬 환경에서 자, 믿자, 라고 하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 승리합니다. 

둘째, 순종의 여유입니다
믿음의 여유는 순종의 여유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순종할 때 여유를 증거하시는 하나님의 증거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우리가 순종의 여유로써 믿음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합니다.
14: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14:16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이 일에 모세는 순종했습니다. 순종의 여유를 가집니다. 
그럴 때 그 다음이야기가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셋째 능력의 여유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능력을 나타내실 수 있습니다.
14:17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리니
14:18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

능력을 나타내실 충분한 여유가 있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능력의 증거입니다.  광야에 갇혀 있어도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능력이시므로 우리는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옮기시면 능력도 그곳으로 옮깁니다.  능력이 따른다는 말씀입니다. 

14:19 이스라엘 진 앞에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가 옮겨 그 뒤로 행하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14:20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편은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편은 밤이 광명하므로 밤새도록 저편이 이편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신기한 방법으로 우리를 에워싸고 가두는 세력을 또 가두십니다. 갇힌 자는 우리가 아니고 저들입니다. 세상이 사실 하나님께 갇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광야에 갇힌 것 같아도 자유이고요.  바울사도가 옥에 갇혔을 때 그는 찬송하면서 여유를 가졌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사도는 옥에 갇힙니다. 

행16: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행16:24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행16:25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행16:26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믿음의 사람은 여유가 생깁니다. 기도할 여유, 찬송할 여유, 예배드릴 여유, 전도할 여유가 생깁니다.  도무지 안 될 것 같은데, 그리고 곤란 속에 있는 사람이 무슨 여유가 있나, 라고 할 그 때에 여유를 주십니다.  신기한 여유이지요.  때로는 병원에 누워서 전도할 여유를 갖습니다. 태신자를 작정하신 분들, 그리고 계속 작정하시는 분들, 우리 모두가 전도할 여유가 생기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능력의 여유를 가지신 하나님께서 체험의 여유를 주십니다.

넷째, 체험의 여유입니다
우리는 충분히 체험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합니다.  능력의 나타남을 체험합니다.
14: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14:22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14:23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 뒤를 쫓아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
14:24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14:25 그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극난하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가로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여유가 이것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에 여유있는 믿음 생활을 합니다.
정말 기도할 시간이 없다는 분이 기도를 합니다. 전도할 여유가 없다는 분이 많은 분을 전도합니다.  봉사할 시간이 없다는 분이 봉사합니다.  헌금도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여유로운 삶의 원인이 되신 때문입니다. 
제가 지난 주간에 중국을 다녀왔습니다.  사실 우리는 중국에 대해서 지금 어떻게 해야하는가, 라는 판단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중국에 선교를 하는데 어떻게 해야하나, 라는 문제입니다. 한국의 선교사님들이 중국에 선교를 합니다. 그런데 장래를 내다볼 때 지금 우리는 중국이 선교를 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선교하는 목적은 중국이 선교하는 나라가 되게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이 선교를 좋아하게 해야 합니다.  사실 중국이 선교를 한다면 우리는 중국에 선교한다는 것 보다는 중국교회와 함께 세계선교를 한다는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 바람직한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을 어디에서 어디로 인도하는가, 하는 것은 사실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그러나 모세에게 저 홍해 건너편으로 나아가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온 땅에 퍼뜨리시는 일을 하시는 선교의 의도가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건너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의 지팡이를 사용하셨습니다.  그 지팡이가 함께 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동행을 이번에 이렇게 경험했습니다.  중국의 국가종교국에서 작년에 우리 총회를 방문하고 이제 우리를 초청했습니다. 총회장님 부총회장님 세계선교이사장님 그리고 나와 통역인 최목사님, 홍콩의 윤형중 목사님 등이 참석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분이 다른 수행원과 함께 같이 이번 전 여행을 동행했습니다. 그분이 중국국가종교국의 국장 부국장 밑의 차관보와 같은 장훈모씨 입니다. 장쓰장 이라고 합니다.  그분이 직접 모든 길에 같이 하니 형통하고 가는 곳 마다 환영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의 동행이 모든 것을 형통하게 했습니다. 제가 5년 전에 ‘한 일자’의 획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긋는 환상을 보았는데 그 일을 이루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는 여유가 생깁니다. 곤란에 갇혔어도 믿을 수 있습니다. 찬양할 수 있습니다. 전도할 수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빌립보 옥에 갇혔을 때였습니다.  무슨 여유가 있나요. 그러나 찬송했고 기도했습니다 옥문이 열리고 간수가 놀라고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우리는 전도할 수 있습니다. 여유로운 삶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여유 속에서 우리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찬송가 457장의 가사를 봅니다.
1 주의 곁에 있을 때 맘이 든든하오니
  주여 나를 생전에 인도하여 주소서
2 피난처인 예수여 세상 물결 노할 때
  크신 은혜 베푸사 나를 숨겨주소서
3 세상 풍파 지난 후 명랑한 그 나라와
  눈물 없는 곳으로 들어가게 하소서
(후렴)
  주여 주여 나를 인도하소서
  빠른 세상 살 동안 주여 인도하소서 아멘

주님이 계시면 여유가 생깁니다. 믿으시면 여유를 누립니다.  십자가의 지팡이를 드십시요.  그리하면 갇힌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가두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길 것입니다.  제가 어제 아침에는 중국에서 우리나라와 스위스의 월드컵대회 때 응원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다같이 붉은 색깔이라도 붉은 악마, 저쪽은 십자가의 보혈의 색깔.  십자가의 깃발을 흔드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붉은 악마 상징의 뿔을 볼 때 이제 저 모습은 그만해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큰 승리는 십자가에 있습니다.  월드컵이 아니라 영혼의 전쟁에서 이제 십자가 깃발을 세웁시다. ‘붉은 악마’, 이해는 되지만 그러나 그 문화가 지나치면 꺾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깃발을 듭시다. 십자가를 증거할 여유를 가집시다. 그리고 십자가로 승리합시다.

고전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1: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롬8: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주님.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시는 여유. 원망 없는 그 믿음과 기도와 헌신의 여유 속에서 천국 문이 열렸습니다. 천국 문을 우리를 위해 여셨습니다.  십자가로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참된 승리입니다.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
니라
사랑의 증거가 가득한 십자가, 우리와 동행하시되 끝까지 하시면서 길을 여신다는 증거의 십자가. 그 흔적을 가지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와 같이 하십니다. 여유있는 삶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십자가의 주님이시여, 동행하옵소서, 믿습니다. 이 믿음의 고백 속에서 홍해가 갈라지고 길이 열리고 승리가 올 줄 믿습니다.  환난 중에서도 여유로운 믿음의 삶, 기도의 삶, 전도의 삶.  그 안에서 월드컵 이상의 승리가 오고 여유로운 삶이 와서 주님을 증거하고 영광을 나타내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여유로운 삶이 예수님으로 인해 오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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