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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렘 32:3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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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아시지만 비밀을 지켜주시는 하나님>
어느 시골 교회의 목사님 사택에는 터가 넓어 여러 가지 과일나무를 심어놓았습니다.
문제는 동네 개구쟁이들이었습니다.
이른 가을철만 되면 채 익지도 않은 감, 사과를 몰래 따먹으러 몰려오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개구쟁이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24 시간 내내 잠도 안 자고 감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아직 설익은 과일을 그냥 훔쳐먹게 내버려 둘 수도 없고, 골칫거리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은 동네 아이들의 양심에 직접 호소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과일밭에 팻말을 만들어 꽂아 놓는 것인데 그 내용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십니다!"
그러고는 밤이 지나고 그 이튿날 아침, 이제 별일 없겠지 하고
과일밭에 갔더니만 과일은 과일대로 없어졌을 뿐 아니라,
그 팻말 옆에 또 다른 팻말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 내용은 이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비밀도 꼭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기에 우리가 하는 일을 다 아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은밀한 곳에 숨어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 눈을 속일 수 없습니다.
이것을 시편 139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으니, 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
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멀리서도 내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내가 길을 가거나 누워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살피고 계시니,
내 모든 행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님께서는
내가 하려는 말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내가 주님의 영을 피해서 어디로 가며, 주님의 얼굴을 피해서 어디로 도망치겠습니까?
내가 하늘로 올라가더라도 주님께서는 거기에 계시고,
스올에다 자리를 펴더라도 주님은 거기에도 계십니다.
내가 저 동녘 너머로 날아가거나,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거기에 머물지라도,
거기에서도 주님의 손이 나를 인도하여 주시고,
주님의 오른 손이 나를 힘있게 붙들어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시 139편의 말씀처럼 아무도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 2006년도 상반기를 마치고 하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지내온 지난 6개월을 돌아보매,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잘못한 것이 한 둘이 아닙니다.
이웃을 미워한 적도 많았고. 흉을 본 적도 많았고, 손해와 상처를 끼친 적도 많았습니다.
어떤 때는 한 마디 말도 내뱉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마음 속에 미움과 오해로 가득찬 적도 적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속이려고 해도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난 6개월 동안의 우리의 모든 허물과 실수와 죄악을 다 아십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허물과 실수와 죄악에 대해서 비밀도 지켜주십니다.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다 드러내신다면 여기 있는 우리는
아무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고개를 들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아시지만 비밀도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허물 많은 우리를 이 모습 이대로 받아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저지른 온갖 죄악과 실수를 머리털 세듯이 다 아시지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눈감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맥추절, 상반기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되새기는 절기>
오늘은 맥추 감사주일입니다.
맥추절은 칠칠절 혹은 오순절이라고도 부르는데 유월절, 초막절 등과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3대 절기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리 추수를 마치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물을 바쳤던 절기이지요.
맥추절은 한 해의 추수를 마친 뒤 이 모든 수확이 하나님 한 분의 은혜와 축복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동안 분주했던 일손을 잠시 멈추고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신앙을 재무장하는 축제였습니다.

오늘 맥추 감사절을 맞은 우리도 잠시 일손을 멈추고
정신 없이 살아온 지난 6개월을 되돌아봐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잘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가 못했어도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난 것도, 크게 손해를 보고 실패했다가 다시 재기한 것도,
마음이 크게 낙심되었다가 용기와 소망을 되찾은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2006년도의 상반기를 마치고 하반기를 시작하면서
그동안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와 축복을 하나 둘 세어 봐야할 것입니다.

어떤 분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몸의 각 기관이 건강할 때에는 그 기관이 있는지 없는지 전혀 느낌이 없을 때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매일 음식을 씹어 먹는데 이빨이 있는지 없는지
전혀 생각이 없을 때에는 치아가 건강하다는 표시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이빨에 대해서 전혀 무관심했다가 갑자기 통증이 생겨
아프면 치아에 뭔가 이상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참 이상합니다.
평소에 치아가 건강했을 때에는 감사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아주 심하게 앓아서 고생을 하거나 발치(拔齒),
이빨을 뽑아 낸 다음에서야, 치아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그제야 어금니 하나라도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세상 이치가 다 그렇습니다.
정말 감사해야 할 사람들은 감사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산도 많고 명예도 높고 가정도 원만한 사람들이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불만에 휩싸여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큰 불치병에 걸려 사경을 헤맸다가 간신히 살아난 사람은 자기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도 감사하고, 지극히 작은 일까지도 진실로 감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동안 건강했을 때 한 번도 감사한 마음을 품어 보지 못했던 사람이
큰 교통사고를 당해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진 다음에는 태도가 확 달라지는 것을 봅니다.   
남편이 살아있을 때에는 늘 바가지만 긁던 사람이 남편이 죽고 나서야 고마움을 압니다.

누가복음 1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고쳐주신 10명의 문둥병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빨리 감사해야 할 유대인 9명은 어디론지 다 가버리고,
사마리아인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시 돌아와 감사했습니다.
오늘 이 세상을 돌아보면 정말 감사해야 할 사람들은 감사하지 않고
아무것도 감사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 감사하는 아이러니를 보게 됩니다.

우리 속담에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가 아주 힘든 상황 속에 있을 때에는 감사할 듯 하다가도
이내 일이 잘 풀리게 되면 감사를 잊어버립니다.
이렇게 만사형통 하는 일이 다 자기 잘나서 자기 능력 때문에 된 것인 줄 착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유대인 문둥병자 9명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 병이 나았다는 사실에만 도취해 있을 뿐,
그 병을 낫게 해주신 분이 주님이라는 사실은 잊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병이 나았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감사하십시오!
자녀들이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했습니까?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감사하십시오!
직장에서 승진했습니까? 사업이 일취월장 발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정말 감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혀주시고
세밀하게 돌보아주셨는데 틈만 나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을 쏟아 부었습니다.
"열 가지를 잘 해주다가 한 가지를 잘못하면 불평한다."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으로부터 수 없는 은혜를 입다가도 한 가지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불평했습니다.
민수기 말씀을 읽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만 어려움이 생겨도 원망합니다.
그래서 민수기를 불평기라고 하지 않습니까?

<복을 세어 보세요!>
오늘 맥추 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찬송가 489장을 아주 좋아합니다.
제가 1990년에 미국에 유학 가서 처음으로 작은 미국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노인 예닐곱 분이 이 찬송을 부르던 일이 기억납니다.
이 찬송은 미국의 감리교 설교자였던
존슨 오트맨(Johnson Oatman, Jr., 1856-1922)이 작사한 노래입니다. 
이 찬송은 1897년에 처음 나온 이래 여러 나라말로 번역이 되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널리 애창하는 찬송입니다. 
 
우리가 가진 찬송가를 보면 가사가 이렇습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세상 근심 걱정 너를 누르고 십자가를 등에 지고 나갈 때
주가 네게 주신 복을 세어라 두렴 없이 항상 찬송하리라.

세상 권세 너의 앞길 막을 때 주만 믿고 낙심하지 말아라
천사들이 너를 보호하리니 염려 없이 앞만 보고 나가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가사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오늘 여러분은 그동안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을 한 번 세어 보시기 바랍니다.
행복한 가정, 건강, 직장, 친구, 교회, 나라, 등등 우리가 받은 복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 받은 복을 세어 보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맥추 감사주일 하루만이라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베풀어주신 복을 세어 보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고 계신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복을 10가지만 세어 보세요.
여러분은 저절로 하나님과 이웃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고난 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약속>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이스라엘의 회복과 희망에 대한 말씀입니다. 
렘 32: 2절 말씀을 보면 예레미야가 이 말씀을 하는 순간 고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유다는 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을 했다는 이유로 시드기야 왕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결국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에 의해 유다 왕궁의
근위대 뜰 안에 갇혀 연금상태에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예루살렘 성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군대가 사방을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안팎으로 인간의 소망이 완전히 끊어진 상태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회복과 희망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능치 못함이 없는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 땅에서 예전과 같이 평화롭게 살도록 인도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지금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 땅을 두고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는 황무지일 뿐 아니라 바벨론 군대의 손아귀에 들어간 절망의 땅이라고
탄식하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회복시켜주신다는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 돌아와 밭을 사고 매매계약서를 쓰는 등
예전의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회복시켜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39-42절 말씀에서 이와 같은 축복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도를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영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정녕히 나의 마음과 정신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이 백성에게 이 큰 재앙을 내린 것같이 허락한 모든 복을 그들에게 내리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큰 은총과 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생겨도 하나님을 신뢰하면 의지하는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축복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축복을 감사하고
더욱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면 좋으신 하나님께서 여러분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후손까지도 넘치는 은혜와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감사는 모든 미덕의 어버이>
흑인으로서는 미국 최초의 국무장관이 된 콜린 파월(Colin Powell, 1937- )은
뉴욕의 흑인 빈민가에서 태어나 자라난 사람이지만 언제나 긍정적이었습니다.
사춘기 시절 그는 공장에서 도랑을 파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동료 인부들 가운데 한 사람은 삽에 몸을 기댄 채
회사가 임금을 충분히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옆에서 또 한 사람은 묵묵히 성실하게 도랑을 파고 있었습니다.

몇 해가 지난 후 파월이 다시 그 공장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을 때 여전히 한 사람은 뭐가
못마땅한지 계속 불평만 하고 있었지만 묵묵히 일하던 사람은 지게차를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또 여러 해가 흘러 그 공장에 다시 갔을 때 불평만 하던 사람은 원인불명의 병으로 장애인이 되어 회사에서 해고됐지만 열심히 일하던 그 사람은 그 회사 사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경험이 파월에게 굉장한 교훈이 되었습니다.
파월은 어느 곳에 가더라도 환경을 탓하지 말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마음먹었습니다.
파월이 흑인으로서 출세하기에는 악조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결코 실망하지 않고 감사하는 태도로 일관했을 때
4성장군인 합참의장을 거쳐 국무장관의 자리까지 올라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희랍의 철학자 키케로(Cicero, C. 106-43 B.C.)는 "감사하는 마음은 최고의 미덕일 뿐 아니라
다른 모든 미덕의 어버이."--"A thankful heart is not only the greatest virtue,
but the parent of all the other virtues."--라고 말했습니다.

옳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다른 온유와 친절, 용기와 정의,
절제, 인내, 등등의 모든 미덕들이 저절로 생겨납니다.
오늘 맥추 감사절을 맞으면서 그동안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베푸신 복을 세어 보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 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날 것입니다.
오늘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사는 날 동안 받은 복을 세며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김흥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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