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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이차원의 감사 (시 50: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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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원의 감사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편 50:22-23)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 시온찬양대를 통하여 우리 하나님 홀로 영광 받으신 줄로 믿습니다. 찬양을 통하여 은혜를 받고 새 힘을 받게 해주시며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말씀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 오늘도 나타나셔서 말씀해 주실 줄로 믿사오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이 무슨 날입니까? 맥추감사주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비와 풍작에 원천으로 믿었습니다. 구약성경 예레미야 5장 24절에 보세요.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하나님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기한을 정하시는 우리하나님 여호와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맥추감사절은 구약시대나 지키지 지금도 지켜야 하느냐? 또 도시는 추수를 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계절을 따라 우리에게 좋은 열매를 주시고 때를 따라 매 순간 순간마다 돕는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감사는 무엇과 같습니까?

물위에 양식을 던지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11장 11절에 보세요. “너는 네 식물을 네 물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우리 나라와는 좀 다르다고 합니다. 옛날에 나일강물이 범람하게 되면 그 강물위에 곡식을 던졌다고 합니다. 그러면 후에 나일강물이 다 잣은 다음에 그 곡식이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여서 많은 수확을 거둔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것을 보고「 감사는 언젠가는 거둔다 」는 속담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미 들어서 알고 계신 이야기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아라비아인의 바그다드 왕에게 왕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하루는 왕자가 목욕을 하러 강물에 들어갔다가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왕자를 구하러 들어갔지만 물살이 세서 그만 왕자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왕은 공포를 했습니다. “왕자의 시체라도 찾는 사람에게는 많은 상금을 주겠노라” 라고 공포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왕자의 시체를 찾으려고 노력을 했는데 7일 만에 어떤 사람이 강을 지나가다가 강 가운데에 큰 바위위에서 구원을 요청하는 왕자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뗏목으로 바위에 접근을 해서는 왕자를 구출하는데 성공을 했습니다. 왕이 왕자를 품에 안고서는 “그동안 배가 고파서 어떻게 살았느냐?”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왕자가 하는 말이 아침저녁으로 떡 덩어리가 강물위에 흘러오더라는 겁니다. 그 떡을 먹고 살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떡을 한 덩이 가지고 왔는데 보니 그 떡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모하메드 벤 하닷이라는 사람이 떡을 만들어 강물위에 던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사람을 찾았는데 아주 점잖은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어찌해서 매일 강물에 떠내려 보냈는가?” 왕이 물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옛날부터 내려오는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떡을 물위에 던지면 여러 날 후에 도로 찾는다는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는 이 속담이 맞는지 알아보려고 금년 초하루부터 떡 덩어리를 아침저녁으로 강물에 던졌습니다.” 왕은 너무 기뻐서 그에게 많은 상금을 주고 벼슬까지 주었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사회에도 보응에 원리가 작용을 합니다. 성경말씀을 보세요.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복을 수천 대에까지 주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치 않는 자에게는 벌을 주시고 저주가 자손 3-4대까지 이른다.”고 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성경의 말씀은 우리에게 보응에 말씀을 가르치시고 계십니다. 신명기 16장 10절에 보세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자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보응을 하시는가? 시편 81편 16절에 보게 되면 “또 내가 기름진 밀을 그들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하게 하리라 하셨도다.” 라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분들은 절기 때마다 하나님에게 드리는 감사가 꼭 양식을 물위에 던지는 것처럼 별 소득이 없는 것처럼 착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는 반드시 후일에 도로 찾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은 무엇으로 받습니까?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은 믿음으로 받습니까? 물론 믿음도 따라야 하고 구원은 믿음으로 값없이 받지만 하나님의 복은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은 행함이 따라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콸콸 솟아나는 우물도 일년만 쓰지 않고 가만히 덮어놓으면 어떻게 됩니까? 우물물이 말라 버리고 맙니다.

어떤 어리석은 자가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한쪽 눈을 아껴두었다가 나이가 많아서 한쪽 눈이 보이지 않을 때에 다른 쪽 한쪽 눈을 사용해야지.. 그리고는 눈가리개로 한쪽 눈을 했습니다. 일년, 2년, 10년, 20년, 30년 동안 계속 한쪽 눈만 사용했습니다.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한쪽 눈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옳지. 이때를 위하여 한쪽 눈을 열어 봐야지’ 이게 웬일입니까? 실명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몇 십 년 동안 한쪽 눈을 가만히 놔두면 이 눈이 실명하고 맙니다.

하나님의 복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복을 주실 때 더 복을 사용해야 합니다. 사용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면 그 복은 말라버리고 만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의미해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건강의 복을 받았습니다. 물질의 복을 받았습니다. 받은 복을 주를 위해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받은 은혜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그 복이 지속적으로 나에게 임하게 되고 더 큰 복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또 한 가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아무리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가지고 있는 돈이 내 것이 아닙니다. 주를 위하여 사용하는 것만이 영원히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죽으면 다 두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돈을 주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만이 영원히 하늘나라에 쌓여있는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를 위하여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더 큰 감사거리를 주십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을 보세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주님을 위하여 가난한 자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고 줄때에 하나님은 흔들어 넘치도록 여러분들에게 더 많은 많은 것으로 안겨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1장 21절-23절에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불신자들의 특색이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며 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감사치 아니하며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줄 모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진정한 감사를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 어느 문헌을 보게 되더라도 성경처럼 감사하라는 말이 제일 많이 나오는 책은 없습니다.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평안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괴로울 때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일차원의 감사가 아니라 이차원의 감사가 되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일차원의 감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에게 건강을 주셨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금년에 좋은 사업의 결과를 주셨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건강을 주셨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주셨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 이것이 일차원의 감사입니다. 일차원의 감사는 당연한 감사입니다. 그러나 이차원의 감사는 무엇일까요? 무엇 무엇이 주어지지 아니할 때도, 무엇 무엇 할 때에 아무런 결과가 없다고 할지라도 그럴 때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일차원의 감사에 위엄은 무엇 무엇 때문에 하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에게 불평하기 쉬운 것입니다.

이차원의 감사는 무엇 무엇 때문이 아니라 무엇 무엇에도 불구하고 하는 감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욥을 보세요. 열 자녀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아침에 전 재산이 없어짐에도 불구하고, 아내로부터 버림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병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니 감사가 이차원의 감사입니다. 사도바울도 이차원의 감사를 드린 사람입니다. 배고픔에도 불구하고, 동족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옥에 갇혔음에도 불구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외친사람이 누구입니까? 사도바울입니다. 도저히 이해 할 수 있는 고난 속에서도 그 고난의 배후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섭리와 고난의 배후에 감추어진 복을 바라보면서도 감사하는 감사가 이차원의 감사입니다.

여러분 오늘 드리는 감사가 이차원의 감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현대는 감사구제의 시대입니다. 일년 내내 감사하지 않다든지 병원에 집어넣어야 그 때서야 깨닫습니다. 하나님께 감사! 여러분 일년 내내 건강할 때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부산에서 목회를 할 때 부산 영도교회를 섬겼는데 남항동 시장에서 콩나물장사를 하시는 여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때는 보릿고개시절이었습니다. 어려운 시대입니다. 이 여 집사님에게 아들만 셋이 있었습니다. 콩나물을 다 팔고 나서는 저녁때는 콩나물 대가리만 가지고 고구마를 사가지고 그 대가리를 삶아서 참기름, 간장을 조금 넣어가지고서는 비벼서 고구마 먹으면서 먹었던 아주 어려웠던 때입니다. 그런데 고3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고3이 되면 대학진학을 위해서 책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어떤 책은 만원도 하고 이 만원도 합니다. 그런데 만 원짜리 책을 꼭 사야하는데 그 당시만 해도 천원도 귀할 때잖아요. 엄마에게 만원을 달라고 하는 것은 너무 큰돈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아들이 남항동 시장에 콩나물을 파시는 어머니를 찾아가서 “어머니 고3이 되면 대학을 진학을 하려면 책이 필요해요. 꼭 책이 필요한데요.” “그 얼마냐?” “만원인데요.” 어머니가 가만히 있다가 속옷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더니 이래저래 꼬작 꼬작 접어놓은 만원을 꺼내서 주시더라는 겁니다. 그 아들이 만원을 받았습니다. 이 돈으로 책을 사기가 미안하더랍니다. 한없이 울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부자들 같으면 만원, 십만 원 짜리를 보고도 감사할 줄을 모르겠지만 그 가난한 아들에게는 어머니에게 돈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 때를 위하여 꼬작꼬작 모아두었던 만 원짜리를 아들의 손에 쥐어 줬을 때 이 아들이 울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구할 때 감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마는 가난하고 어려울 때, 시험을 들고 환난을 당할 때, 어려울 때, 하나님께 감사하면 그때야 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돼있습니다. 그때야말로 하나님의 이적을 끌어 내리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구할 때, 어렵고 여유가 없을 때, 그때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사를 들리시기 바랍니다. 그런 감사야 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뜨겁게 만드는 감사가 된다는 말입니다.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매주일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자시요, 우리의 구속자, 우리의 보호자, 우리의 후원자, 우리의 돕는 자, 우리에게 건강을 주시는 자, 우리의 영혼의 아버지가 되시는 분, 얼마나 그 은혜에 감사해서 예배를 드립니다. 모든 질병을 고쳐 주셨고, 건강을 주셨기 때문에 진실로 범사에 감사하고 우리가 예배를 드리며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린 대로 이차원의 감사는 항상 하나님 앞에 무엇 무엇 때문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도 이차원의 감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제가 아는 장로님 한분이 부산에 계시는데 아들이 하나있었습니다. 이 아들이 얼마나 공부를 잘 했는지 부산에서 서울대학교 들어간다 이거 보통이 아닌 일입니다. 서울대학교 법대에 합격을 했습니다. 교회에 소문이 나고 학교에는 플랜카드가 붙고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가정은 어렵기 때문에 이 아들이 자취를 하는데 날씨가 쌀쌀하니까 연탄을 피워놓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만 연탄에 중독이 되어 아들이 죽었습니다. 장례를 지낸 다음날 이 장로님은 감사헌금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봉투에 감사의 제목이 있었습니다. 제가 잘은 기억은 못하지만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같이 못난 놈이 아들을 잘 길러서 하나님이 이 아들을 천국으로 유학시켜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나라에서 편히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고는 하나님 앞에 감사헌금을 드렸습니다. 이 장로님의 감사에 온 교회가 은혜를 받고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이런 감사는 깊은 신앙의 경지에서 나오는 이차원의 감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감사는 믿음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구원의 감격과 내세의 확신이 없는 자에게는 이런 감사가 나올 수가 없는 겁니다. 중생의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이런 감사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믿음의 척도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드리는 맥추감사헌금은 이차원의 감사로 하나님의 마음을 뜨겁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런 감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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