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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레아와 라헬의 대결장에서 (창 35: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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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라반의 두 딸 레아와 라헬과 동시에 결혼하였습니다. 두 딸의 두 몸 종도 같이 결혼하여 야곱은 아내가 모두 4명이었습니다. 그렇게 된 동기를 잠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삭은 리브가와 결혼하여 쌍둥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에서와 야곱입니다. 둘이 어머니 태에 있을 때부터 동생으로 예정되어 있는 야곱이 자기가 먼저 나가 형이 되겠다고 에서와 싸웠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쌍둥이를 분만할 때에도 자기가 먼저 나가겠다고 먼저 나가는 에서의 발꿈치를 잡아 당겼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장남이 되고 싶었던 야곱은 사냥군 에서가 사냥하고 배가 고파 돌아 왔을 때 팥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팥죽 한 그릇을 달라고 말했습니다. 야곱은 때를 놓지지 않고 말했습니다.
<장자권과 바꾸자.> 에서는 장자권을 경홀히 여기고 있었기에 1초도 생각지 않고 승낙하였습니다. 드디어 장자권을 계약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이삭이 늙어 죽을 때가 되었을 때 눈이 어두워진 것을 이용하여 형에서 몰래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 드리고 장자권 축복의 전달 안수를 받았습니다.
이를 안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갔습니다. 여기에서부터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외삼촌 라반은 두 딸이 있었습니다. 큰 딸 레아와 둘째 딸 라헬이었습니다.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므로...>(창 29;17-18)

야곱이 외삼촌 라반에게 말했습니다.
<삼촌! 내가 7년 일해드릴 터이니 라헬과 결혼하게 해주세요.>
라반이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보다 더 좋다.> 그래서 7년을 봉사하였습니다.
그 다음 성경 말씀이 재미있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같이 여겼더라>(창 29;20)

야곱은 라헬과 결혼할 생각을 하니 너무나 좋아서 7년을 7일처럼 지냈습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죽을 둥 살 둥 일했습니다. 드디어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야곱은 그 날 밤 잠자리에서 온 천하를 얻을 것같은 편안함과 기쁨과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보고 기절할 뻔하였습니다. 그토록 사랑하였던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습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왜 속였느냐고 따졌습니다. 라반이 말했습니다.
<이 곳 풍습은 동생보다 언니를 먼저 시집 보내면 안 된다. 라헬을 줄 터이니 7년을 더 봉사하라.>
그래서 야곱은 7일 후 라헬과 또 결혼하였습니다. 그리고 라헬 때문에 7년을 더 일하였습니다.
결혼식에서 신랑이 신부 면사포를 베끼는 풍습은 그 때부터 생겼습니다.
<정말 라헬인가? 여자가 바뀌지 않았나?>
확인하는 절차를 결혼식에 두게 되었습니다.
그 후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며 밤이면 라헬과 잤습니다. 야곱을 라헬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레아를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대조적인 두 여인의 모습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언니 동생은 혈육이 아니라 대결하는 경쟁자로 바뀌었습니다. 적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이제 더 이상 언니 동생은 아니었습니다.

라헬의 무기는 미모였고, 레아의 무기는 하나님이였습니다.

라헬의 특징은 미인입니다. 보통 예쁜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라헬에 대하여 이렇게 짤막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므로...>(창 29;17-18)

<곱고 아리따우니>

성경에 수많은 여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곱고 아름다운 여자라고 말한 여자는 두 명입니다. 에스더를 곱고 아름다운 여자라고 말했습니다.

<저의 삼촌의 딸 하닷사 곧 에스더는 부모가 없고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 그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가 자기 딸같이 양육하더라>(에 2;7)

지금으로부터 2400년 페르시아에서 미인 선발대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미스 진으로 뽑힌 여자가 에스더였습니다. 36-22-36의 몸매를 가지고 있는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라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라헬이 한국에 태어났다면 틀림없이 미스 코리아 진이 되었을 것입니다.
크레오파트라의 미모가 세계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에스더의 미모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라헬의 미모가 야곱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야곱은 라헬이 얼마나 예뻤는 지 반하여 그 여자와 결혼하기 위하여 14년을 일하였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라헬을 미친 듯이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레아를 사랑하셨습니다. 라헬은 미모 때문에 야곱을 끌여 들였고 레아는 하나님께 의지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레아와 자기를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는 라헬은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1. 결과가 달랐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레아와 사람을 의지하는 레아와 나중에 보니 결과가 엄청나게 달랐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너무나 사랑하였습니다. 밤이면 야곱은 어느 방에 많이 들어 갔을 가요? 여러분은 이런 질문을 하게 되면 말할 것도 없이 라헬 방에 많이 들어갔을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라헬 방에만 많이 들어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의 매일 라헬에게만 들어가t 잤습니다. 한번은 르우벤이 들에서 추수하다가 남자 정력에 좋다는 합환채라는 약초를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을 레아에게 주었습니다. 레아는 그 합환채를 가지고 라헬과 이런 흥정을 하였습니다.

<네가 내 남편을 빼앗아 간 것이 작은 일이냐?>(창 30;15)

라헬은 아예 야곱을 독차지 하고 있었습니다. 아예 빼앗아 버렸습니다. 언니 방에는 못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강탈하였습니다. 라헬은 그 정력제를 언니로부터 받으면서 말했습니다.

<오늘 밤 내 남편이 형과 동침하리라>(창 30;15)

라헬은 야곱을 내 남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레아가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밤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창 30;16)

이렇게 라헬은 야곱을 독차지 하고 살았지만 늙을 때까지 아들을 한 명도 낳지 못 하였습니다. 그러나 레아는 아들 6명, 딸 한 명 모두 7명을 낳았습니다. 특별히 눈여겨 보고 싶은 것은 이 가문의 핵심은 예수님이 누구에게서 오시느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레아가 네 번째 낳은 아들인 유다를 통하여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나중에 라헬은 아들 둘을 낳았습니다. 11째 아들 요셉과 12번째 아들 베냐민입니다. 그리고 라헬은 죽었습니다.
라헬은 야곱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흠뻑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별것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레아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낳을 때 마다 이름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름으로 지었습니다.
첫 아들을 낳고 르우벤이라고 지었습니다. <보라. 아들이다>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두 번째 아들을 낳고 시므온이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셨다>라는 의미입니다.
세 번째 아들을 낳고 레위라고 지었습니다.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라는 의미입니다.
네 번째 아들을 낳고 유다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라는 의미입니다.
다섯 번째 아들을 낳고 잇사갈이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값을 주셨다>라는 뜻입니다.
여섯 번째 아들을 낳고 스불론이라고 지었습니다.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거히리로다>라는 뜻입니다. 이같이 레아는 하나님과 연결시키면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사람이 사랑한 사람은 별 것 아니었지만 하나님이 사랑한 레아는 놀라운 결과를 가지고 왔습니다. 예수님도 레아 가문을 통하여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 분이 함께 하여야 합니다.

2. 방법이 달랐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레아와 인간중심의 라헬과는 살아가는 방법도 엄청나게 달랐습니다.
레아는 비록 얼굴도 못 생기고 남편 야곱의 사랑도 받지 못 하였지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더니 아들을 7명이나 낳았습니다. 그러나 라헬은 아이를 낳지 못 하였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방법을 썼습니다.
일이 안 될 때 사람의 방법을 사용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이 안 될 수록 신앙적인 방법을 사용하여야 합니다. 정력제 합환채가 레아 손에 들어 갔습니다. 라헬은 합환채를 샀습니다. 돈 주고 산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편 야곱을 독차지 하고 있다가 야곱을 하루 밤 언니 방에 들어가게 하는 비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하루 밤 들어갔는 데도 레아는 또 아들을 낳았습니다. 잇사갈입니다.
라헬은 남편 야곱에게 정력제 합환채를 먹여고 아들을 낳고 싶어하였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인간적인 사람은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실패였습니다.

라헬이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증거가 또 하나 있습니다.
야곱은 20년이 지나 네 아내, 자녀, 재산을 가지고 외삼촌 라반 몰래 도망쳤습니다. 그 때 라헬은 드라빔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아버지가 섬기는 신입니다. 우리 박물관에 실물이 있습니다. 500만원 주고 이스라엘에서 사온 드라빔입니다. 깔고 앉으면 안 보일 정도로 조그만 신상입니다.
라반이 나중에 따라 와서 말했습니다.

<이제 네가 네 아비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가하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적질하였느냐>(창 31;30)

야곱이 무서운 말을 하였습니다.

<외삼촌의 신은 뉘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취하소서>(창 31;32)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도적질한 줄을 알지 못 하였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였다고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때 그 드라빔은 라헬이 훔쳐서 치마 밑에 감추고 있었습니다. 라헬은 나귀를 타고 안장에 앉아 치마 밑에 드라빔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라헬은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마침 경수가 나므로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하니라>(창 31;35)
그런데 곧 라헬이 죽어 버렸습니다. 말이 씨가 되었습니다. 드라빔은 그 가정에 대를 이어가는 상징물이었습니다. 항상 장남에게 대대로 드라빔을 물려 줍니다. 드라빔을 물려 주는 자녀에게 상속권이 갔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상징 우상이었습니다. 라헬은 아버지 모든 재산이 야곱에게 오기를 소원하였는 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이제 집을 떠나 먼 이스라엘로 가는 데 드라빔이 보호하여 주기를 바라는 소원이 들어 있었는 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두 가지 다 포함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라헬은 인간적인 방법을 썼습니다. 라헬은 지극히 인간 중심적이었습니다.
라헬은 불행하게도 언니보다 먼저 죽었습니다. 길거리에서 객사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가정 식구 하나 하나를 위하여 말을 조심하여야 합니다.
야곱이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 사람은 죽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늘 가족 한 명 한 명에게 축복의 말씨만 심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대로 됩니다.

3. 사건 해석이 달랐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사람과 인간 중심의 사람은 사건을 해석하는 것이 전혀 달랐습니다. 라헬은 아들을 낳지 못 하였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아들을 낳지 못 하는 것은 자기에게 책임이 있지 않고 야곱에게 있는 듯이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나로 아들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창 30;1)

얼마나 놀라운 말입니까? 야곱이 아들을 낳게 할 수 없습니다. 야곱은 정말로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아들을 낳기를 간구하고 있었습니다. 레아가 10명 낳는 것보다 라헬이 한 명 낳는 것을 더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라헬은 아들을 낳지 못 하였습니다. 라헬은 야곱에게 얼마나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지 이 말 한 마디에서 알 수 있습니다.

<나로 아들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창 30;1)

자기 중심의 사람, 인간 중심의 사람은 안 되는 것을 모두 인간적으로 해석하면서 핑계되기 쉽습니다. 라헬은 자기가 아이를 못 낳으니까 아이를 낳게 하라고 야곱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아니라 드라빔에 맡깁니다. 우상을 섬깁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낳았습니다. 야곱에게는 11번째 아들이요, 라헬에게는 첫 아이였습니다.
라헬은 이름을 요셉이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다른 아들을 더 하시기를 원하노라>라는 의미입니다(창 30;24) 하나님이 낳게 하니까 하나님에게로 돌아 왔습니다.
보통 아이를 낳고 나서는 즉시 여자들이 보통 말합니다.
<다시는 안 낳는다.> 그러나 라헬은 아들을 하나 낳자 말자 더 낳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6명 아들을 낳은 언니를 이기겠다고 전의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라헬은 두 번째 아들을 낳습니다. 가나안으로 가는 길목에서 낳았습니다. 그리고 죽었습니다. 죽어 가면서 라헬은 슬퍼서 그 아들 이름을 베노니라고 지었습니다. <슬픔의 아들>이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베노니는 벤오니입니다. 벤은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오니는 슬픔이라는 말도 있지만 불의, 악이라고 하는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못된 놈, 악한 놈이라는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라헬은 아들을 낳자 말자 자기가 죽을 때 자기가 잘못하여 죽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아들 때문에 죽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라헬은 그 아들 이름을 베노니라고 짓고 죽었습니다. 어미를 죽게 하는 악한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항상 다른 사람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야곱은 이 이름이 좋지 않아서 라헬이 죽자 말자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베냐민이라고 바꾸어 호적 등본에 올렸습니다. 베냐민은 <오른 손의 아들> <영광의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라헬은 소원이 이루어면서 죽었습니다.
라헬은 그렇게 낳고 싶어 하던 아들을 낳다가 죽었습니다. 소원이 이루어지는 날 죽는다는 것은 잔인한 형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매일 만나만 먹는 것이 지겨워서 하나님께 고기를 달라고 원망하며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메추라기를 바람으로 보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만에 보는 고기를 보고 환장하듯이 몰려 들었습니다. 메추라기를 입에 물고 죽었습니다. 성경은 놀라웁게 이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여호와에게로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 곁 이편 저편 곧 진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백성이 일어나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십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를 위하여 진 사면에 펴 두었더라.
고기가 아직 잇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칭하였으니 탐욕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민 11;31-34)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기를 달라고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하룻길에 두 규빗 메추라기가 쌓였습니다. 하룻길은 40km입니다. 두 규빗은 1m입니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사이에 1m로 고기가 쌓였습니다. 그렇게 고기가 많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기를 목구멍으로 넘긴 사람이 없습니다. 잇사이에서 씹히기 전에 모두 죽었습니다.
소원이 이루지는 순간 누리지 못 하고 죽었습니다.
라헬도 그랬습니다.
요셉을 낳자 아들을 더 달라고 기도하였는 데 한 명을 더 낳는 순간 죽었습니다. 야곱의 부정적인 말도 한 몫을 하였습니다.
라헬은 항상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무슨 사건을 보던지 해석이 달랐습니다. 하나님이 배후에서 일하고 계신 것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적인 방법으로 해석합니다. 인간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보지 못 하기에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석합니다.
의사는 바르게 진단해야 바르게 처방하게 됩니다. 바르게 처방해야 병이 낫게 됩니다. 사건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여야 합니다.
라헬은 항상 인간적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동생이 먼저 죽는 것은 불행입니다.
결국 라헬은 가장 예쁘게 태어났기에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항상 자기 만족에 빠져서 언니와 경쟁하고 언니에게 시기 질투하고 살다가 언니보다 먼저 죽었습니다. 그토록 아들을 갖고 싶어 하다가 아들을 보며 죽었습니다.

미모의 얼굴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인간적으로 살았던 라헬은 베들레헴 길가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객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았던 레아는 아브라함의 정통 무덤인 막벨라 굴에 장례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이삭과 리브가가 묻힌 곳에 묻혔습니다(창 49;29-31)
야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녀 라헬과 결혼하려고 14년을 일하였던 야곱은 라헬과 함께 잠들지 않았습니다. 막벨라 굴에 레아와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얼굴이 예쁜 라헬과 영원을 같이 지내지 않고 있습니다. 마음이 예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산 레아와 함께 영원을 지내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것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하나님만 영원합니다. 하나님 중심인 사람과 사람 중심인 사람은 이같이 3가지가 달랐습니다.

1. 결과가 달랐습니다.
2. 방법이 달랐습니다.
3. 사건 해석이 달랐습니다.
(강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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