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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사보다 순종을 (삼상 15: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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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직접 다스리시던 백성 이스라엘이 주변 이방 나라들처럼 왕에 의해 다스려지게 해달라고 요구하자 그 요구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악한 것인지를 사무엘을 통해 가르치신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스라엘 백성에게 왕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지시하셔서 베냐민 지파에 속한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게 하셨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가장 인물이 준수했고 키도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컸으며(삼상9:2) 모든 백성 중에 그에게 견줄만한 이가 없었다고 사무엘이 말할 정도였습니다(삼상10:24).  사울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서 손색이 없는 풍채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이 그를 온 백성 앞에 소개할 때에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쳤다고 했습니다(삼상10:24).  풍채 좋은 왕을 얻긴 했으나 하나님께 왕을 구한 것이 큰 죄악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무엘은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그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며 마음을 다하여 진실하게 그를 섬기라고 위로했고,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왕과 백성이 다 멸망하리라고 경고도 하고는(삼상12:20-25) 모든 통치권을 사울에게 넘겨주고 물러났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이스라엘의 왕정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상의 마지막 장은 이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의 매우 비극적인 종말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블레셋의 공격 앞에서 이스라엘이 패퇴하며 많은 사람이 죽을 때에 사울과 그의 세 아들도 길보아 산에서 한 날에 다 죽었습니다.  사울의 죽는 과정은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울은 블레셋 병사들의 추격을 받으며 패주하던 중 활을 맞아 중상을 입었습니다.  사울은 자기의 무기를 든 수종자에게 부탁하기를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자기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우니 블레셋 군사가 닥치기 전에 칼을 빼어 자기를 찌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무기를 든 자가 감히 자기의 왕 찌르기를 두려워해서 못하고 있자 사울이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의 무기를 든 자 또한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었습니다.  그 이튿날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의 시체를 확인하고는 그의 머리를 베어 블레셋 사람들의 땅 사방에 보내 돌려보게 하고 갑옷을 벗긴 그의 시체는 길보아산 지역 성읍인 벧산의 성벽에 못 박았습니다(31:8-10).  이스라엘 온 백성 중에 가장 인물이 준수하고 풍채가 좋았던 왕 사울은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입니다.  그와 함께 이스라엘의 자존심도 갈갈이 찢기고,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영광도 치욕으로 뒤덮인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울이 왜 이렇게 비참하게 그의 삶을 마쳐야 했으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비극을 안겨주어야 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울이 사십 세에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 되었을 때에 블레셋과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병력은 삼천 명이었고 이들과 싸우려고 모인 블레셋 사람들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았으며 삼만 대의 병거와 마병 육천 명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서워서 굴과 수풀과 바위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어서 떨고 있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아예 먼 곳으로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블레셋과 싸우려고 사울에게로 모여왔던 백성이 흩어지기 시작하자 사울은 초조해졌습니다.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께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간구해야 할 터인데 제사를 드려줄 사무엘은 아직 나타나지 않자 사울은 기다리지 못하고 번제와 화목제물을 가져오라 하여 스스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왔고, 그는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고 사울을 추궁했습니다.  사울은 대답하기를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사울에게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 명령을 지켰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선언하고는 일어나 사울에게서 떠나가고 말았습니다(13:13-15).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의 사울의 이 첫 번째 어긋난 행보 속에서 무엇이 문제입니까?  우선 두려움입니다.  자기 군사의 수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블레셋 군사의 수 앞에서 두려움을 가진 것입니다.  누구든 그런 상황에서 두려움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보다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출애굽 때부터 그때까지 언제나 이스라엘과 놀랍게 함께하셨고 늘 기적 같은 승리를 안겨주시곤 했음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병력의 수나 병장기의 우수함 때문에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순종으로 승리했음을 확신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 또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의 말씀에 충실하게 순종해야 했습니다.  제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사장만 드릴 수 있다는 하나님의 규례도 마땅히 지켰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는 어쩌면 "내가 명색이 왕인데 제사 정도는 대신 드려도 되리라"고 생각하는 망령된 교만에 벌써 빠져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뜻은 없이 제사만 드리면 만사가 해결되리라는 잘못된 믿음도 문제였습니다.  사무엘이 아직 어리고 노쇠한 제사장 엘리의 두 망나니 아들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지키고 있을 때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패하여 막대한 인명의 손실을 입은 이스라엘이 그들의 믿음의 상태와는 관계없이 언약궤만 있으면 전쟁에서 이기리라 여기고 언약궤를 가져왔었지만 블레셋에게 오히려 대패하고 언약궤마저 그 이방인들의 손에 빼앗기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경험했던 역사를 사울은 기억하거나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그 역사적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있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상황이 급박해도, 아니 그러면 그럴수록 더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시기를 믿고 기다릴 줄 알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이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그 불신이 불순종을 낳은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와 철저한 순종의 결여, 그것이 사울의 비극의 원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또한 하나님 앞에서의 사울의 어긋난 행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통해 옛날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왔을 때에 이스라엘에 대적하여 괴롭히며 싸움을 걸었던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에 사울은 군사를 동원하여 아말렉을 치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15:4-8).  그러나 사울과 그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사로잡은 아말렉 왕 아각을 살려주었고 그 왕의 가축과 소유 가운데 모든 좋은 것을 남겨두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들만 진멸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 사실을 알게 된 사무엘은 사울을 찾아가려고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때에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기를 사울이 갈멜에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수행하지 않은 일과 그가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운 일이 결코 무관할 수 없음을 봅니다.  사울이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다는 것은 그의 마음속에 스스로의 힘으로 승리했다고 여기는 교만이 자리 잡은 증거일 수 있으며,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좋은 전리품들은 자기를 위하여 고스란히 남겨놓게 만든 동기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옛날 여호수아 때에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친히 견고한 성 여리고를 무너뜨려주심으로써 가나안 진입에 성공했지만 아간이란 자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전리품 중 탐나는 것들을 자기의 것으로 감추어둠으로써 그 다음 아이 성 전투에서 참담한 패배를 맛보았던 역사 또한 사울은 모르고 있었거나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무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본 사울은 그에게 자기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물었습니다: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찌 됨이니이까?"  그러자 사울이 둘러대며 말했습니다: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여기서 이미 우리는 사울의 교활함을 보게 됩니다.  첫째는 자기의 탐욕적 행동을 신앙적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인 양 포장한 것이고, 둘째는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 무리가 한 일이라고 발뺌을 하며 책임을 백성에게 전가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이 속아 넘어갈 리가 없습니다.  그는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가만히 계시옵소서. 간 밤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신 것을 왕에게 말하리이다...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또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그러자 사울의 버티기가 시작됩니다.  그는 사무엘에게 말하기를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며 앞서 한 말을 반복한 것입니다.  사울은 여기서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속생각을 꿰뚫어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로 변명하며 사실상 하나님과 논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과 교만이 더욱 커진 것입니다.  그때에 사무엘의 단호한 답변이 떨어집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사울은 사무엘에게 말하기를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어기는 것보다 백성을 더 두려워했다는 자백에 주목하게 됩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고 사람의 눈치를 더 살피는 나약해진 사울, 이스라엘의 왕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사울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약해지면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고,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뜻이 약해지면 사람에게 굴복하게 되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막판에야 잘못을 인정한 사울에게 사무엘은 잘라 말하기를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는 돌아설 때에 사울은 사무엘의 겉옷자락이 찢어지도록 그를 붙잡았지만 사무엘로부터 결정적인 답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오늘의 모든 이야기를 요약한다고 볼 수 있는 유명한 구절이 본문 22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제사는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나 모든 중요한 일은 제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곤 한 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삶입니다.  그러나 제사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신뢰와 순종이 없이 드리는 제사는 아무런 의미도 효력도 없는 행위에 불과할 뿐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가증스러운 것으로서 화를 불러올 수 있는 것입니다.  사울은 자신의 불신앙과 교만과 탐욕과 불순종의 행위를 제사라는 명분으로 감추어보려 했으나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통할 리가 없다는 사실만을 보여주며 비참한 최후를 향하여 줄달음쳐 갔던 것입니다.  그는 그 후 악령에 사로잡혀 번뇌의 나날을 보내야 했고(삼상16:14), 나라를 구한 영웅이요 충신인 다윗에 대한 질시 때문에 그를 죽이려는 살의에 가득 차 블레셋과 싸우는 일보다 그를 죽이려고 추격하는 일에 매달렸으며, 사울의 살해의 위협을 피해 도망 다니느라 굶주린 다윗 일행에게 호의를 가지고 먹을 것을 제공한 제사장(삼상21:1-6)에 대한 분풀이로 제사장 팔십오 명과 제사장들의 성읍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쳐 죽이는 만행을 저지르는 광기를 드러내기까지 했던 것입니다(삼상22:18-19).

  사울의 비극이 우리의 비극이 되지 않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보다 순종을 원하십니다.  우리는 모여 예배는 드리면서도 하나님께 순종할 줄 몰라서 우리의 예배가 공허하고 무의미한 것이 되지 않게 해야 할 것입니다.  예배는 있으나 진실한 믿음은 찾아보기 힘든 교회가 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예배하는 모습과 신앙생활이라는 껍데기 아래에 온갖 거짓과 탐욕을 숨기고 지내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마다 예배에 참석하는 일 하나로 우리의 불신앙과 교만과 불순종의 행위를 덮어버리려 하는 어리석음에 빠져있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를 온전히 신뢰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을 다함으로써 우리의 예배가 진실하여지고,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으며,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복을 풍성히 누리고, 이 나라가 튼튼하여지며 이 민족이 건강하여지는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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