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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를 신뢰하라 (대하 20: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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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우리는 종종 위기를 경험합니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질병, 사업의 부도, 실직, 가정의 갈등, 가족의 사별, 이혼 등이 모두 위기입니다. 위기란 말은 말 그대로 ‘위험한 기회’입니다. 우리 인생엔 이렇듯 위험한 기회가 늘 찾아옵니다. 그것이 내게 큰 화를 끼칠 수도 있고 손실을 줄 수도 있습니다.

  반면 위기를 잘 이용하면 ‘위대한 기회’도 될 수 있습니다. 위기를 통해서 믿음이 성장하고 위기를 통해서 인격이 자라나는, 인생의 성공을 잡을 수 있는 축복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위기란 그 위기를 당하는 사람이 그 위기에 어떻게 반응하느냐, 그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축복이 될 수도, 위험한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위기가 전혀 없는 삶 보다는 가끔씩 찾아오는 위기가 우리 인생에 진가를 발견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국가적인 위기를 당한 남왕국 유댜의 여호사밧 왕에 대해서 함께 묵상했습니다.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이 큰 대적을 이끌고 남왕국 유다를 침공해 들어왔습니다. 왕과 백성은 하루아침에 두려움에 사시나무 떨듯 떠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 왕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향하고 온 백성과 함께 성전에 모여 금식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하나님,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습니다. 감당할 줄 모르겠으니 우리는 오직 주만 바라보겠습니다.” 그의 고백을 나의 것으로 받겠습니다. 함께 따라하겠습니다.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여러분도 위기 앞에서 주만 바라보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만이 그 일을 책임질 수 있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레위인인 야하시엘이란 사람에게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주의 신이 야하시엘에게 임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백성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야하시엘이 대언하기 시작했습니다. 온 백성의 기도가 응답된 것입니다. 이 야하시엘은 평범한 레위인 중의 한 사람이지만 그에게 성령이 임할 때 민족을 구하는 대언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시대의 대언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 직장과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언자가 되셔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바울의 소원이 로마를 거쳐 서바나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다른데 있었습니다. 그가 건강한 몸으로 자유인이 되어서 그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죄수의 몸이 되어 양 팔을 묶인 채 관리들에게 호송되는 노예의 몸으로 배를 타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가다가 유다굴로라는 큰 광풍을 만나서 위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그 광풍 속에서 이렇게 저렇게 하자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입니다. 그 때 사도바울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276명 중 한 사람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무사히 로마까지 갈 것입니다.” 하고 오히려 그들을 인도하고 걱정해 주었습니다.

  바로 오늘, 하나님의 교회는 이 민족을 살리는 성령의 대언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성령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성령강림절을 앞두고 성가대가 성령을 주제로 한 찬양을 준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가사 중 ‘성령이여 어서 오시옵소서’란 가사가 있었습니다. 연습을 하는데 대원들 중 한 두 사람이 자꾸 먼저 시작하더랍니다. 짜증이 난 지휘자는 “성령이 그렇게 빨리 오시면 어떡해요? 박자에 맞춰 오셔야죠!” 했답니다.^^ 아닙니다. 성령은 빨리 오셔도 좋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늘 성령의 은혜가 임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은 위기 앞에서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하나님은 야하시엘을 통해서 그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나요? 위기 앞에서 취할 태도를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첫째,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위기가 닥쳐왔을 때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두려움은 환란을 극복하는 방법이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여호사밧도 잠시 두려워했지만 그는 곧 이성을 되찾고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성경 15절에 말씀하십니다. “야하시엘이 가로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왕이여 들을찌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아멘.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말입니다. 전쟁의 성패는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군사의 많고 적음에 전쟁의 승패가 있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가 56년 전, 6.25 전쟁의 어려움을 겪을 때 유엔군이 참전을 했기 때문에 남한이라도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북한이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밀물같이 내려올 때 방어선이 허물어져 가는데 순식간이었습니다. 대구까지 밀려갔습니다.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가 모였다고 합니다. 상임이사국들이 모여서 모두가 찬성해야만 유엔군이 참전할 수 있고, 상임이사국 중의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유엔군이 우리 6.25전쟁에 참전할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남한은 완전 불바다가 되었을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날 전쟁을 일으킨 소련 대표가 그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이유에서 참석하지 않았는지 우린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린 그 배후에 하나님이 역사하셨다고 믿습니다. 유엔군이 참전함으로써 남한이라도 건질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쟁의 승패는 많은 무기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오늘 성경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내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대신 싸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키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시편 127편 1절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않으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고 말씀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완벽하게 지켜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17장 40절에 보니, 다윗이 골리앗을 향하여 소리쳤습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했습니다. 할렐루야. 다윗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편이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17절에서도 놀라운 고백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17절 말씀을 읽습니다.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아멘.

  하나님은 반복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나가 그들과 마주치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싸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겠다고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왜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대신 싸워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베어리 목사님이라고 유명한 분이 계십니다. 제 2차 세계 대전 때, 독일 폭격기들이 영국 런던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그 가정에 목사님 친구의 딸, 10살짜리 아이가 피신해 와 있었습니다. 한밤중에 비행기가 굉음을 내는데 도저히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의 딸아이는 신기하게도 쿨쿨 잠을 잘 자더랍니다. 무섭지도 않은지 놀라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소녀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어젯밤에 보니 그 시끄러운데서도 금새 잠들더라. 넌 무섭지 않았니?”하고 물었습니다. 소녀가 무엇이라고 대답했을까요?

  “하나님이 깨어 계시는데 둘 다 깨어있을 필요가 어딨어요?”

  여러분에게 이런 확신이 있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깨어서 우리를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고 인도하고 계시는데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신다고 했는데 왜 깨어 있을 필요가 있냐는 것입니다. 잠 못 주무시는 분들, 이제 하나님께 맡기고 편안히 주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불면증이 없기를 바랍니다. 돈이 좀 부족해도 잠 잘 자면 그것이 최고의 행복입니다. 여러분, 오늘 성경에 두려워하는 대신에 너희는 문제에 직면하라 대적과 마주치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문제를 자꾸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문제를 피하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부딪치고 직면에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 노루를 피하면 범을 만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문제 앞에 서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시편 118편 6절에 보니,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라고 말씀합니다. 두려움이 없는 여러분의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두 번째로, 여호와를 신뢰하셔야 합니다

  20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이에 백성들이 일찌기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가로되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을찌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아멘.

  하나님이 성령을 부으신 레위인 야하시엘을 통해서 하나님이 전쟁의 방법을 다 알려주셨습니다. 드고아까지 가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야하시엘을 신뢰해야 합니다. “저 사람 말을 우리가 어떻게 믿어요?” 그러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너희는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러면 견고히 설 것이다 동시에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러면 형통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야하시엘을 신뢰한다는 것은 곧 그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배에 나올 때 마다 하나님이 세우신 설교자의 말을 신뢰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신뢰합니다. 설교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설교자가 인격적으로 부족함과 단점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보기보다 그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뢰란 무엇입니까?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내 사업과 직장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엄마와 함께 기차 여행을 하는데 엄마 무릎을 베고 쭉 누워서 잠을 잘 잡니다. 엄마가 부채로 아기를 부채질 해 줍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만약 그 아이가 엄마를 믿을 수 없다면, 내가 잠 든 사이 엄마가 다음 역에서 도망가면 어떡하나 한다면 편히 잠 들 수 없습니다. 아이는 엄마가 자기를 잘 품어주고 보호해주리란 것을 믿기 때문에 편안히 잠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인생의 환란가운데 설지라도 하나님이 여러분을 지키시고 보호하실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번은 서울 시내 3층 건물에서 불이 났습니다. 자던 아이가 내려올 수가 없어서 난간에 서 울고불고 난리가 났습니다. 뒤늦게 달려온 아빠가 아이를 향해서 소리칩니다. “아빠한테 뛰어내려. 아빠가 받아줄게!” 아이는 아빠를 믿고 신뢰했기 때문에 아빠의 품에 뛰어 내려서 구조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하십니까? 이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까? 그 분은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 분은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세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 분은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시편 146편 3절 이하에 보니,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어떤 두려움이 있습니까? 불안과 염려가 있으십니까? 여러분을 지키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으셔야 합니다. 신뢰해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설교가 헨리 비쳐 목사님은 유명한 말을 남기셨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두 개의 문고리를 잡고 살아간다. 하나는 두려움의 문고리요, 다른 하나는 믿음의 문고리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두 개의 문고리가 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이 두려움의 문고리를 잡으면 하루 종일 불안과 염려와 걱정가운데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믿음의 문고리를 잡으면 믿음의 보호 안에서 확신과 담대함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믿으시겠습니까? 그러면 믿음의 문고리를 잡아 당기십시오. 아직도 하나님을 의심하십니까? 그런 분들은 불안과 두려움 속에 또 하루를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여호와를 신뢰하라. 견고히 설 것이다, 선지자를 신뢰하라. 형통할 것이다! 이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호와께 감사하셔야 합니다.

  2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백성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아멘.

  어찌 보면 우스운 방법입니다. 전쟁에 승리하려면 총과 칼이 있어야 하고 탱크가 필요하고 비행기가 필요한데 말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전쟁 방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군대 앞에 거룩한 예복을 입은 성가대를 두어서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를 노래하며 전진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이스라엘 백성이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유치해 보이기도 합니다. 어린 아이 방법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지자를 신뢰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노래하는 사람들을 앞세워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할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대적 편인 모압과 암몬 편에서 복병이 일어나서 그들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그들은 아비규환의 혼란에 빠지게 되고 피차 살육해서 자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들을 무찌른 후에 그 노획물들을, 전리품들을 거두는데 재물과 보화와 의복이 얼마나 넘치는지 무려 사흘 동안 거두어 들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골짜기를 찬양의 골짜기, 축복의 골짜기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찾아오는 고난의 골짜기가 찬양의 골짜기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와를 찬양하십시오. 이것이 위기를 극복하는 비결입니다. 찬양은 감사는 능력이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모진 매를 맞고 지하 감옥에 갇혔는데 그들이 한밤중에 하나님을 향하여 찬송하며 기도할 때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어졌지 않습니까? 여기에 바로 신앙의 비밀이 있습니다. 하나님,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하고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다. 여기에 하나님의 귀한 뜻이 있을거야, 내게 축복을 주시려고 주시는 고난일거야!하고 감사하십시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멀린 케로도스란 유명한 군목님이 계십니다. 이 분은 군 생활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탈영을 했고 감옥에도 갔다 왔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감옥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찬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늘 찬양하는 군목이 되어서 많은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되었는데 그가 쓴 책이 “감옥생활에서 찬송 생활로”라는 책입니다. 그 안에 보면 한 아름다운 주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남편이 술주정꾼입니다. 매일 고주망태가 되어서 돌아오는데 견딜 수가 없어서 목사님께 상담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남편에 대해서 불평하지 말고 저주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찬송하고 감사하세요.”라고 조언했습니다. 부인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어떻게 저런 남편을 보고 감사할 수 있냐고 말이지요.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그렇게 하라면 하세요.”였습니다. 

  남편이 술 취해 돌아올 때 마다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우리 남편 술 취한 것도 감사해요. 저렇게 비틀거리면서도 남의 집 가지 않고 자기 집 찾아온 것도 감사해요.” 늘 이렇게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감사하기 시작한지 일주일이 안 되어서 남편이 서서히 술을 끊기 시작했습니다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훌륭한 인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감사와 찬양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먼저 불평하기 쉽습니다. 왜 고난을 주시는지, 왜 어려움을 주시는지 자꾸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축복의 기회입니다. 위대한 기회를 주셨는데 우리가 잘못 반응하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 가정에 딸이 하나 있었는데 이 딸이 사귀는 남자가 예수를 믿지 않더랍니다. 어떻게 믿지 않는 사람에게 너를 시집보내겠느냐며 목사님과 사모님은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이 딸이 워낙 완강해서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기에 결혼을 시켰답니다.
  아니나 다를까 결혼하고 나니 이 남자가 싹 달라졌습니다. 약속 지킨다고 딱 한번 교회 가고는, 그 다음부터 핑계대고 교회를 안 나갑니다. “교회 가니 목사가 헌금만 내라고 하더라, 졸다가 오는 거 뭐 하러 가느냐, 집에서 자는게 낫지.” 하며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또 시어머니가 철저한 불교신자라 한 집안에서 두 종교 섬기면 잘 안된다면서 며느리까지 절대 교회를 못 나가게 했습니다.

  10년 동안 이 며느리가 주일도 지키지 못하고 예배도 드리지 못하니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우리처럼 이렇게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릅니다. 못 먹고 못 입는 것 보다 크리스챤들이 예배드리지 못할 때 답답해서 미칠 것 같은 것입니다. 10년이 지나 도저히 못 견디고 시장 간다고 속이고는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데 그렇게 좋더랍니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결심을 합니다. ‘나는 남편 없이는 살 수 없지만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지 않고는 못살아.’하며 이혼을 작정합니다.

  자기 아버지와 아주 친하게 지내던 한 원로목사님을 찾아가 얘기했습니다. 또 그 원로 목사님이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진작 이혼했어야지. 해라 해. 어떻게 그리 사냐? 그런데 말이야. 얘야. 조건이 있어. 이혼은 하기는 하되 한 달만 늦게 하거라.” “그거야 할 수 있죠.  10년도 참았는데요.” “그래. 어차피 할 거니까 한 달 만 더 참아라. 네가 지금까지는 며느리로 살았고, 아내로 살았지? 그런데 이제부터는 생각을 바꿔 선교사로 살아라.”
  선교사는 불신지역에 가서 선교하는 거 아닙니까? 핍박받으며 선교하는 게 일 아닙니까? 그래도 그 안에 기쁨과 감사가 있지 않습니까?

  그 때부터 그 아내의 마음이 달라집니다. ‘내가 선교사인데... 믿지 않는 시어머니 전도하고 남편 전도하는 선교사인데 선교사가 상 찡그리면 안되지, 신경질내면 안되지, 짜증내면 안되지.’ 늘 웃으면서 감사하면서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보니 이상합니다. 이상한 행동을 하면 죽을 때가 다 된거 라는데 젊은 애가 왜 이러나했습니다. “애비야. 네 부인이 이상한 것 같지 않냐?” “어머니, 저도 그래요.”

  하루는 남편이 아내를 부르더니 대화를 하자더랍니다. “당신 갑자기 왜 이러는거야? 그냥 하던 대로 하지, 갑자기 왜 이상한 행동을 해?” “여보, 난 10년 동안 이렇게 살았는데 이젠  하나님 떠나서는 더 이렇게 살 수 없어요. 이혼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잘 아는 목사님께서 한달 만 선교사로 살라고, 감사하며 살라고 해서 제가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 거예요.”

  그 때 남편의 마음에 감동이 왔습니다. 아내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여보, 책임은 나한테 있소! 내가 당신 부모 반대하는 거 우겨서 결혼해서 교회 딱 한번 나가고 그 후로 한번도 안 나갔소. 당신까지 신앙생활 못하게 하고, 이제 내가 당신과 함께 교회 나가겠소.”하더랍니다. 그리고 가족회의를 해서 시어머니까지 온 가족이 교회를 다니게 되었답니다. 시어머니의 주장인즉, 아들이 나가는 교회에 나도 나가야 가족이 평안하지 않겠냐 하더랍니다. 지옥이 천국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감사할 때 여러분의 어려운 환경이 천국으로 변화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위기 앞에 있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셔야 합니다. 기도의 무릎을 꿇으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호와를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감사하십시오. 많은 분들이 위기 하면 꼭 힘들고 어려운 것만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평안함이 더 위기입니다.

  마틴 루터 목사님은 어느 날 꿈을 꾸셨는데 꿈에 사단이 모여서 회의를 하더랍니다. 대장 사탄이 졸개들에게 크리스챤들을 넘어뜨리기 위한 의견을 내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사탄이 말합니다. “나는 사람들이 광야 길을 걸을 때 그들에게 사자를 보내고 장애물을 보내서 그들을 괴롭게 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불평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안도와주신다고 불평하면서 떠날것 아니냐?”

  두 번째 사탄이 말합니다. “나는 크리스찬들이 배를 타고 항해할 때 그들 앞에 큰 암초를 주어서 그들을 고통 받게 할거야. 그럼 그들이 항해 길을 지키지 않는 하나님을 불평하면서 믿음을 버리겠지.” 했습니다. 대장이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지하며 응수를 했습니다.

  세 번째 사단이 말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말한 것과는 다릅니다. 나는 크리스찬들에게 평안을 줄 것입니다. 10년 동안 병도 들지 않고, 문제가 전혀 없게 만들 것입니다. 문제가 없으니 그들은 기도하지 않을 것이요, 잠만 잘 것입니다. 그들의 영혼이 병들 것입니다.”
  사탄의 대장이 손뼉을 치며 “바로 그거! 바로 그거야” 하더랍니다.

  여러분, 문제가 없습니까? 위기가 없습니까? 문제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평안할 때 깨어서 기도하시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7월 첫 주를 맞이합니다. 새로운 각오로 출발했는데 꼭 전반기가 지났습니다. 이제 후반기를 시작합니다. 지나간 6개월 동안 감사를 회복하면서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6개월을 준비하며 우리가 하나님 말씀으로 무장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 내일 새벽부터 시작되는 감사 특별 새벽기도회에 나오셔서 온 교회가 하나님을 향해 함께 부르짖고 기도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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