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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흥케 하옵소서 (합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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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 3: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부흥케 하옵소서'(하예후)는 '살게 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하야'의 강한 피엘 명령형으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을 다시 살린다는 의미를 강하게 표현하며 소성시키다 새롭게 하다는 뜻입니다.
선지자는 부흥케 하옵소서 기도 합니다. 우리도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토하여 부흥의 역사는 좋은 땅과 같은 심령에 임함을 교훈합니다.
(마 13: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유형을 말해 주시며 좋은 땅에서 열매맺는 부흥의 역사가 임한다고 하십니다.
(마 13:23)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상태를 유형별로 나누어 교훈 하신 후 주신 밀씀입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을 말씀합니다.

길가는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통행로입니다. 거기는 사람뿐만 아니라 짐승이나 차량도 다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그곳은 매우 단단하여 씨를 심어 보았자 자랄 수 없습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 완악한 마음을 말합니다. 길가를 특징 지워 주는 단어는 '단단함'입니다. 단단하다는 것은 굳은 상태를 말합니다. 굳어진 마음은 폐쇄적인 마음입니다. 마음의 문을 꼭 걸어 잠근 상태를 말합니다. 마음이 닫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 잡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용납도, 포용도 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강퍅한 마음은 복음의 씨를 키울 수 없습니다. 많은 불신자들이 이와 같은 마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은 깨닫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길가와 같이 단단하게 각질화 된 마음은 진리를 듣긴 들어도 그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깨닫지 못하므로 진리를 믿지 못합니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우매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세상적 지식과 지혜가 뛰어나다 할지라도 마음이 길가와도 같은 사람은 무지한 사람입니다. 진리에 어두운 사람은 가장 불행합니다. 구원의 진리인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돌밭과 같은 마음을 말씀 합니다.

  돌밭과 같은 마음은 얕은 마음입니다. 돌밭은 흙이 얇은 곳으로 씨앗이 뿌리를 내리되 깊이 내리지를 못합니다. 심지가 깊지 않은 마음에서 위대한 사상이 나올 수 없습니다. 사랑과 겸손, 자비와 온유와 같은 성도의 덕목은 모두 깊은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마음은 인격과 통합니다. 기독교는 마음의 종교입니다.

  돌밭과 같은 마음은 말씀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돌밭 마음은 일단 말씀을 듣고 깨닫기는 합니다. 이치에 맞기도 하고 그가 듣기에 좋은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뿌리를 내리지 못하므로 그 말씀에 확신이 없습니다. 정말 그럴까 의심하며 확실하게 믿지를 못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의 신앙은 넘어지기 쉽습니다. 시험이 닥치면 쉽게 포기합니다. 한때의 열정으로 뜨겁게 타오르는 듯하다가 곧 식어 버립니다. 신앙의 초기 단계에서 믿음을 저버린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을 말씀합니다.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은 부드럽고 좋은 땅이지만 씨가 자랄 때 가시와 함께 자라게 되어 열매에 상처를 입어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은 염려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지나친 염려는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성도에게는 영혼의 상처를 가져다줍니다. 말씀을 듣고 깨달아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리지만 세상의 염려와 근심으로 믿음을 해치는 성도들의 상태를 말합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은 유혹에 쉽사리 빠지는 마음입니다. 혹은 사탄의 무기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끊임없이 사탄의 유혹을 받게 됩니다. 유혹을 받는다고 해서 유혹에 쉽게 빠져서는 안 됩니다. 모든 유혹은 욕심에서 기인합니다. 유혹은 사망을 낳는 원인입니다.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을 말씀합니다.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은 앞서의 세 종류의 마음과는 엄연히 구별되는 옥토를 말합니다. 옥토만이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 포도나무를 큰 물가 옥토에 심은 것은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포도나무를 이루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겔 17:8)합니다.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은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는 마음입니다. 옥토란 추수기에 다른 땅보다 많은 수확량을 내는 땅을 말합니다. 옥토와 같은 성도의 마음은 신앙과 생활의 '열매'를 다른 성도들보다 많이 맺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새겨 생활에 적용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는 옥토와도 같은 마음으로 풍성하고도 거룩한 생명의 열매를 많이 맺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옥토와 같은 좋은 땅은 그냥 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땅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좋은 땅은 기경 곧 일구어야 됩니다.

(렘 4:3) 나 여호와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고 합니다.
(호 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호세아 선자가 활동했을 때는 북이스라엘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렸던 때였습니다.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경제적인 부의 축적은 그대로 백성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부유하면 부유할수록 하나님을 잊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더 이상 찾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그들은 얼마든지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두려움을 잃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열매를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이제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때 상황을 “에브라임은 마치 길들인 암소 같아서 곡식 밟기를 좋아하나 내가 그 아름다운 목에 멍에를 메우고 그의 위에 사람을 태우리니 유다가 밭을 갈고 야곱이 흙덩이를 깨뜨리리라.”(호10:11)합니다.
밭은 자주 갈아야 합니다. 갈지 않고 방치해 두변 땅은 단단해지고 그 단단한 땅에 잡초가 나서 땅의 영양분을 다 먹어버립니다. 땅 심이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갈지 않고 씨를 뿌릴 수는 없습니다. 씨는 흙 속에 묻혀서 썩어야 싹이 납니다. 땅 심이 씨를 썩게 만듭니다. 이것을 생물학적으로 만들면 땅속에 미생물이 많아야 지력이 생긴다는 말씀입니다. 농민들은 이 땅 심을 높이려고 객토와 심경을 합니다. 객토는 좋은 흙을 파다가 밭에 덮어주는 것이고 심경은 밭을 깊이 파는 겁니다. 밭갈이가 바로 심경입니다. 가능하면 깊이 갈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땅 심이 좋은 흙이 위로 올라와서 식물을 잘 자라게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묵은 땅을 이렇게 갈 듯이 완악한 마음을 갈아  엎으라고 외칩니다. 마음을 깊이 갈아서 말씀의 씨가 자라게 하라는 외침입니다. 마음이 척박해지면 마음이 단단해집니다. 완악해집니다.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마음이 열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말씀의 씨를 뿌려도 말씀의 씨가 마음속에 깊이 들어가지 못합니다. 사탄과 마귀가 금새 다 먹어치우고 맙니다. 마음이 척박해지면 잡초가 무성해집니다. 이 잡초는 세상 염려요 근심이요 욕심이요 교만입니다. 세상 것으로 가득해집니다. 그 잡초 속에 독초도 많습니다. 결국 마음이 죽어버리고 맙니다.
  땅이 묵어 있으면 아무리 씨를 뿌려도 열매를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땅을 갈아엎으라는 것입니다. 이 땅이 처음부터 그렇게 묵은 땅은 아니었습니다. 한 때는 농사를 잘 지었던 땅입니다. 풍성한 열매를 거두었던 땅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아멘! 우리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비록 그랬던 때가 길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실 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다 실천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출애굽기 24:3) 광야생활에서는 하루하루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위기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루라도 만나가 내리지 않으면 그날은 굶어야 했습니다. 전적으로 그들의 삶이 하나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응답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살만하게 되니까 어느 새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있을 곳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내 힘으로 살만하게 되니까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국방이 튼튼하니까 군대가 지켜 줄 것이니 외교술을 발휘했으니까 급하면 애굽이, 앗시리아가 우리를 지켜 줄 것이니 나라가 번영해서 돈이 많으니까 더 이상 하나님께 만나를 구하지 않아도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니 하나님을 찾지않고 하나님을 찾지 않으니 심령은 무디어졌습니다.
  묵은 땅을 갈아엎으라는 땅이 황폐하고 잡초가 우거졌으니, 갈아엎으라는 것입니다. 갈아엎어야 하는 열매 맺지 못하는“묵은 땅”은 어떤 땅입니까?

  갈아엎어야 할 묵은 땅은 자기의 영광을 구하는 이기적인 심령의 땅입니다.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아름다울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호10;1) 합니다.
잎이 무성했고 열매도 있었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열매를 맺었습니다. 열매를 맺기는 맺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서 맺으니 이스라엘은 헛된 포도나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믿으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 믿습니다. 자기 목적을 이루려고 믿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속에는 세속적인 이기심과 성공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으면서 형식적으로 믿음생활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목적을 위해서라면 하나님도 이용할 수 있고 쉽게 하나님을 버릴 수도 있는 사람들입니다.

  갈아엎어야 할 "묵은 땅”은 세상능력을 믿는 교만한 심령이라는 땅입니다.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호10:13)합니다.
  이스라엘이 창조주요 보호자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군사력을 의뢰하고(호8:14) 앗수르나 애굽 등을 의지한 것입니다.(호8:9;12:1)

  믿는 데가 너무 많기 때문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성경이 말하는 “묵은 땅” 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열매를 맺어도 그것은 “참 열매” 가 아니라 “거짓 열매”(the fruit of deception, 13절) 입니다. “속이는 열매” 입니다. 언제까지 이 “거짓 열매” 로 만족하겠습니까? 언제까지 이 “거짓 열매” 에 속고 살겠습니까? 아니라면 교만의 땅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믿음생활에 겉멋이 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에 멍에를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끝내 하나님의 권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했습니다.
  그들의 실패를 반복하지 아니하려면 “묵은 땅들” 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갈아엎고 자기 멋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께 물어보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묵은 땅을 기경하라는 말씀은 과거의 마음을 돌이키고 새롭게 하라는 회개의 촉구입니다.

  회개하기위해서는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계 2:4-5)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는 죄의 원인을 깊이 생각하되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생각하라는 명령입니다.
'생각하고'(므네모뉴에)는 현재 능동태 명령형으로 '계속하여 생각하고 회상하라'는 의미입니다.(눅15:17-22).
  잃어버린 처음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그것을 어디에서 무엇으로 인해서 상실하게 되었는가를 상고해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만났던 날의 기쁨과 감격을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그때는 온 세상천지가 다 새롭기만 했습니다. 모든 것이 감사하기만 했습니다. 그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한 줄도 몰랐습니다. 아니 밤을 새워 기도하고도 힘이 넘쳐나서 흥겹기만 했습니다. 그때에는 예수님을 위해 죽어도 정말 좋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우리 마음에 임하였던 그 은총은 이제 어디로 사라졌습니까! 기도 속에서 언제나 가까이 계시던 예수님이셨는데 지금은 얼마나 멀어져버렸습니까! 이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회개해야 되겠다는 결심이나 그저 입술의 고백으로 끝나는 말장난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로 부터 회개의 영이 부어져서 가슴속 깊은 곳에 있는 죄가 토해져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애쓰고 몸부림치는 우리의 땀과 눈물의 댓가가 있어야만 합니다. 사실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회개한다 하는 말은 마음을 변화시킨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보시는 눈으로 죄를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되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시기까지 미워하십니다.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바를 따라 자신의 죄를 낱낱이 자백해야 합니다.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은 그들의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디서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는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져야만 했습니다. 또한 예전처럼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고자 하는 열심을 회복해야 했습니다. 열정의 불이 꺼져버린 신앙은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처음 사랑으로 불타던 그 날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싸늘하게 식어진 가슴에 불을 질러야 할 것입니다.
처음 행위를 가지라 하시니 다시 변화가 일어난 자신을 스스로도 확인 할 수 있는 생활의 변화가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다시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기쁨과 만족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해야 할 일을 다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 했다면, 우리 주님께서는 일을 시작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처음 사랑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회개는 우상을 제하고 하나님께만 섬기는 것입니다.

(삼상 7: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전심으로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촉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다시는 언약궤를 빼앗기는 것과 같은 불경스런 죄악을 범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우상을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여호와만을 섬기라고 촉구하였습니다. 사실 성도들이 범죄하는 것은 때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때로는 세상을 섬기는 이중적인 삶의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잘못된 것으로, 성도는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세상에게로 눈을 돌리고, 세상을 향해 팔을 벌리는 순간, 성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악으로 빠져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회개한 심령에 성령의 은혜가 임합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 2:38,41)합니다.
베드로는 뚜렷한 회개의 열매를 맺도록 촉구합니다. 말로만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고 실제 행동으로 실천하라는 말입니다. 회개는 후회가 아닙니다. 후회는 지난날의 잘못을 아파하고 안타까워하는 일이지만 회개는 철저히 시정하여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세례가 구원의 조건은 아니나(눅 23:43) 세례는 '구원의 표'(벧전 3:21)요 이제는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겠다는 공식적인 선언입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므로 세례 받고 죄의 더러움을 씻어 깨끗이 하여 성령을 받게 됨을 말씀합니다.
베드로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행 2:4) 예수님은 메시야이시며 구주이심을 전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저들의 마음이 찔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베드로의 권유를 받아들였습니다. 3천 명이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아 예수를 메시야로 고백하는 역사가 임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의 설교는 단번에 3천 명이 회개하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습니다.
회개하여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된다는 약속(38절)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하신 말씀으로서 베드로의 설교에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의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부흥성회가 시작 됩니다. 부흥케 하옵소서 라는 간구는 우리 모두의 간구입니다.
부흥은 다시 살리는 일이요 소성케 하는 일이요 새롭게 하는 일입니다.
부흥을 좋은 땅에 견주어 살필 때 좋은 땅에 떨어진 씨가 백배 육십배 삼십배 열매 맺습니다. 좋은 땅은 묵은 땅을 기경함으로 됩니다. 이기적인 심령의 밭 교만의 심령의 밭을 기경해야 합니다.
영적인 기경은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는 일이며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는 일입니다.
이처럼 회개한 심령에 성령의 역사가 임합니다.

성령이 역사 할 때 삼천명 오천명 회개하는 역사가 임하고 부흥의 역사가 할 줄 믿습니다. 
  부흥케 하옵소서 함께 기도하며 함께 좋은 땅이 되고 기경하며 회개하며 성령 충만을 힘입고 첫 사랑을 회복하며 부흥에 동참하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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