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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욕심을 버린 사람들의 축복 (약 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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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오랫동안 마음에 두던 여인에게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앞으로 10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자기 방 창문 앞에서 꽃을 들고 밤을 새운다면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겠다고 했습니다. 남자는 다음 날부터 매일 밤 꽃을 들고 밤새 서 있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러한 애절하고 애틋한 구애는 계속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99일째 날이 되었습니다. 그 날 밤은 엄청난 비바람과 천둥 번개가 몰아쳤지만 그래도 남자는 변함 없이 여인의 창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여인은 마침내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습니다. 여인은 문을 활짝 열고 달려나가 비에 흠뻑 젖은 남자를 끌어안으며 외쳤습니다.

  "이제 당신의 진실한 사랑을 깨달았어요! 이제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어요!"
  이때 남자가 여인의 팔을 조용히 풀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저는… 아르바이트생인데요."  진정한 사랑은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욕심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라크전쟁, 북한의 미사일, FTA도 욕심의 도구일 뿐입니다. 욕심으로 인하여 사람과 생명과 인권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전도서 7장 7절에 "탐욕이 지혜로운 자를 어리석게 만들고 뇌물이 그 마음을 어둡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욕심은 사람을 어리석고 어둡게 만듭니다. 사람을 초라하고 불행하게 만듭니다. 욕심을 버릴 때 하나님과 사람을 얻게 됩니다. 욕심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인생의 안식과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더 크고 가치 있고 영원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 욕심을 버린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큰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하나님을 잘 섬기는 축복

  본문 13절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사탄은 사람을 유혹하여 쓰러지게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훈련하여 강하게 만드십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니엘을 훈련하시어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우시고 사용하셨습니다. 욕심의 시작과 근본은 사탄입니다. 욕심 때문에 상처받고 싸우게 합니다. 시험에 들게 하고 교회와 하나님을 떠나게 만듭니다. 유혹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 속에 있는 악한 죄악의 기질과 욕심에 미혹되어 발생하는 것으로 죄의 책임은 인간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창조하시거나 사람을 시험하지 아니하실 뿐더러 아무에게도 시험을 받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유혹을 하지도, 받지도 아니하십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악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만 온전히 섬길 때 유혹을 멀리하게 되고 이기는 능력을 받게 됩니다. 성도는 더욱 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영향력을 받아야 합니다. 빛을 떠나면 어두움이 밀려오듯이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떠나면 사탄의 유혹과 시험이 다가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동시에 인간에게 최고의 복이 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핍박의 시기를 지나고, 비잔틴 시대와 중세의 기독교 시대에 접어든 어느 날 한 사제가 방금 완성된 은과 금으로 입혀진 거대한 성당을 가리키며 "베드로 사도가 '은과 금은 없거니와'라고 말한 것도 이제 옛말이 된 거야"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한 사제가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내게 있는 것으로 주노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선포할 수 있는 것도 옛말이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 그 최대의 자산은 예수뿐인 것을 확인하십시다. 그 무엇도 예수의 이름, 그리고 그 예수의 이름을 믿는 믿음보다 더 존귀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 믿음으로만 우리가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으로만 하늘나라의 문을 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으로만 기도의 응답이라는 기적의 문을 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으로만 삶의 진정한 보람과 의미를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28년 황금의 바리톤 목소리를 소유한 목사의 아들이었던 한 그리스도인 청년이 돈이 없어 대학을 중퇴하고 보험회사 세일즈맨이 되었습니다. 우연히 방송국 공개홀에서 노래한 것이 계기가 되어 미국 NBC 방송국의 전속 가수로 활약해 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 23세였습니다. 그의 앞에는 이제 돈과 인기가 보장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쩐지 그가 좋아하는 교회에서 그리고 복음 집회에서 찬양할 기회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며 기도하던 그가 자기 응접실 피아노 앞에 앉았을 때 어머니가 평소에 좋아하여 10년을 애송해 온 신앙 시 한 편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시를 읽어 내려가던 그의 뺨에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님, 제 목소리, 제 존재, 제 젊음 모두 주를 위해서만 드리겠습니다."

  그는 자기 마음속에 솟아오르는 멜로디를 어머니가 애송하는 신앙 시에 맞추어 작곡을 시작합니다. 이날 탄생한 찬송이 찬송가 102장입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밖에는 없네." 조지 비벌리 셰아(George Beverly Shea) 옹의 이야기입니다. 그 후로 그는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을 만나 그와 더불어 평생을 동역하며 찬양과 간증으로 주님을 섬기는 사역에 헌신하게 됩니다. 예수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믿음, 이것이 세상 그 무엇보다 더 존귀하고 소중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거의 100세가 되셨는데도 아직도 찬양 사역을 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나의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고 선택할 때 하나님이 높여 주시고 복을 주십니다. 욕심을 버리고 순수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죄와 사망을 이기는 축복

  본문 15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사람들이 유혹을 받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자기 앞에 놓인 낚시 바늘에 물려 이리 저리로 이끌려 다니는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야고보는 인간이 욕심을 갖기 시작할 때부터 죄가 싹이 트고 결국에는 사망까지 이른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욕심은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필연적으로 죄를 유발하고 그 마음의 상태가 습관으로 굳어져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본문의 '낳다'에 해당되는 헬라어 '아포퀴에이'는 비정상적인 출산 즉 유산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욕심과 사망은 처음부터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하는 영적 사망을 잉태하고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죽은 것을 잉태하고 죽은 것을 출산한다는 말입니다. 헛고생이고 슬픔과 아픔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면 욕심을 버리게 됩니다. 죄와 사망이 접근하지 못하고 일곱 길로 물러갑니다. 주소가 다르고 코드가 맞지 않습니다. 질이 다르고 노는 물이 다릅니다. 죄와 사망의 힘이 강하고 질겨서 인간의 힘과 지혜로는 이길 수 없으나 하나님 주시는 믿음과 능력으로 넉넉히 이기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와 사망은 물방울과 같고 지극히 작은 먼지에 불과합니다.

  아프리카에는 피그미라는 소인 족이 살고 있습니다. 피그미족은 체구만 작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좁습니다. 그들의 세상은 눈에 보이는 강과 숲이 전부일 뿐입니다. 피그미족은 제한된 시각으로 모든 것을 평가합니다. 어느 날 한 인류학자가 피그미족 청년을 데리고 온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청년은 먼 평원에서 들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을 보고 학자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저곳에서 풀을 갉아먹고 있는 벌레들은 무엇인가요?"
  인류학자는 처음에는 피그미 청년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피그미족은 원근감이 없어서 거대한 들소를 작은 벌레로 인식했던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편견과 독선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은 현대의 피그미족입니다. 자신의 경험만을 평가의 잣대로 삼는 사람의 눈에는 황소도 벌레로 보일 뿐입니다. 편견과 아집을 버리면 넓은 세상이 보입니다. 이웃과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을 잘 섬길 때 은혜와 생명과 천국이 확실하게 보입니다. 보이는 것은 듣는 것을 이깁니다. 라디오보다는 텔레비전의 영향력이 큽니다. 듣는 것만으로는 부정확하기 때문에 영상과 자막을 보여 줍니다. 신앙이 보이고 천국이 보입니다. 그래서 더 잘 믿고 봉사하게 됩니다. 믿음의 실상과 증거가 나타납니다. 욕심을 버릴 때 신령한 영적인 세계가 열리고 보입니다. 이 감격과 기쁨은 죄와 사망보다 더 크기에 성도들은 죄와 사망을 기쁨으로 포기하고 은혜와 천국을 선택하고 헌신하게 됩니다. 주식 투자를 잘못했다가 돈과 건강과 사람과 가정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때로는 전문가들도 실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투자하는 것은 안전합니다. 실수나 실패가 없습니다. 죄와 사망을 이기는 승리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욕심을 버림으로 죄와 사망을 이기는 승리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축복

  본문 12절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금이나 은을 제련하여 귀금속이나 동전으로 자격을 얻는 것과 같은 인정함을 의미합니다. 시험의 과정을 통과하는 자에게 순수함이 인정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됨을 뜻합니다. '면류관'의 헬라어 '스테파논'은 운동 경기에서 승리한 자에게 주는 면류관으로 시험과 박해 속에서도 끊임없이 주를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을 뜻합니다. 시험을 이기고 죽도록 충성하는 성도들 모두에게 최고의 상인 '생명의 면류관'을 씌어 주시는 것입니다. 월드컵 우승국이 받는 월드컵 정도가 아닌 생명의 면류관은 가치가 너무 터서 값을 메길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보다 더 크고 영원한 가치입니다. 세상 무엇도, 누구도 부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사람이나 세상의 판단과는 다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놀라운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틀림없이 기대했던 사람들이 개털모자를 쓸 수도 있겠고 전연 뜻밖의 인물들이 생명의 면류관을 쓰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판단과 예측이 엄청나게 빗나갈 것입니다. 엄청난 충격이 있을 것입니다.

  18세기 독일에 조각가 요한 하인리히 다네커(Johann Heinrich Von Dannecker, 1975~1841)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주로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많은 조각상을 남겨 유명해졌습니다. 1790년부터 독일 슈투트가르트 대학 미술 교수와 미술관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인생의 절정기에 있던 어느 날 갑자기 주님과 사랑에 빠진 후 그리스도 상을 몹시 조각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2년 동안이나 열심히 조각을 만들어 시험삼아 한 어린 소녀에게 작품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그 조각상이 그리스도인 것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다네커는 실망하지 않고 다시 6년이나 걸려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고 이를 그 소녀에게 다시 보였습니다. 그러자 소녀로부터 단번에 "아, 그리스도시군요"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때 그는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직후 당시의 유명한 나폴레옹 황제에게서 파리로 와서 루브르 박물관에 비너스 상을 조각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런 유명한 대답을 남겼습니다.
  "나의 주님 그리스도의 상을 조각한 이 손으로 더 이상 나는 이방의 신상을 조각함으로써 내 마음을 더럽힐 수는 없습니다."
  이런 대답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네커에게 그리스도가 이미 모든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그의 사랑, 그의 소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는 다른 어디에서도 그의 만족을 찾을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함입니다. 이것이 바로 순결입니다. 이런 한 마음 한 사랑 이런 순결로 깨끗해진 인생, 이런 인생들이 모인 거룩한 공동체를 사모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 성도들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는 이 시대의 다네커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시고 반드시 생명의 면류관을 씌어 주실 것입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부끄러워하거나 포기하지 맙시다. 더 충성하고 기도하고 헌신하고 사명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세상 짐을 내려놓고 욕심을 버립시다. 하나님의 세계와 위로와 행복이 여러분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우리의 것보다 더 높고 다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축복과 죄와 사망을 이기는 축복과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쓰는 축복이 여러분과 가정과 교회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김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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