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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 사람의 소중함 (왕하 6: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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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을 달리던 버스가 언덕 길에서 멈추어 섰다. 긴 내리막길을 가기 전 바퀴에 체인을 감고 내려가려고 버스 운전사가 차 바퀴쪽으로 내려갔다. 버스를 타고 있는 승객들은 아무 생각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버스가 움직이더니 미끄러지기 시작하였다. 큰 사고를 예감한 승객들이 비명을 지르는데 버스가 낭떨어지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러는 순간 버스는 무엇엔가 걸린 듯 멈추어 섰고 차내는 조용해졌다. 승객들은 차에서 하나 둘 조심스럽게 내렸다. 그런데 그 버스아래는 체인을 감으려고 내려갔던 운전사가 버스에 치어 붉은 피를 흘리며 죽어있었다. 운전사가 미끄러지는 버스를 멈추게 하기 위해 구르기 시작한 바퀴 앞에 자기 몸을 내 던져 대형사고를 막은 것이다. 피로 물들은 눈길을 바라보는 승객들은 운전기사 한 사람의 살신의 정신 때문에 살아난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성서속에는 이 버스 운전사처럼 한 사람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이 죄와 사망을 가져왔고 한 사람의 하나님께 순종함이 의와 생명을 가져왔다.(롬5:19) 여호수아 6장은 여호수아의 군대가 기생 라합이라는 한 사람 때문에 여리고 공략에 대승을 거두게 되고 여호수아 7장은 여호수아의 군대가 아간이라는 한 사람 때문에 작고 작은 아이성 공략에 실패하게 된다.
한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 가 중요하다.

예레미야 3:1을 보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수 많은 사람이 오고가는 대로변에서 의인 한 사람이 있다면 도성을 사한다고 하였으니 한 사람이 없어서 멸망 받는다는 말이 된다.
나 같은 인생, 죄의 악취만 풍기는 인생이었어도 예수님을 통해 새 인생이 되면 나 같은 한 사람이라도 도성을 살리는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나 때문에 심판이 옮겨 갈 수도 있다. 오늘 본문의 엘리사를 보라. 아람에 포위당한 이스라엘을 구원해낸다. 그는 본래 시골뜨기요 대머리였다. 벧엘로 올라가는 길에 만나게 된 젊은이들이 엘리사를 조롱하고 폄하하였다.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왕하2:23) 이렇게 엘리사는 볼품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었기에(왕하6:9하), 갑절의 영감을 받은 자로 일하고 있었기에 아람의 도전을 이겨낼 수 있었다.
엘리사의 출신배경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어떻게 혼자서 민족을 구원하였는가?

1. 아람의 왕을 괴롭게 하였다.(왕하6:8∼13)

아람의 왕은 참모들과 의논하여 이스라엘을 치는 전략을 세웠다. 그 때마다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에게 대응전략을 알려주는데 지나가야 할 곳, 적진이 매복하여 있는 곳까지 상세히 기별하였다. 그러므로 적진의 동태를 알게된 이스라엘은 수비할 수 있는 군사를 움직이게 되었고 미리 미리 방비를 하게 되어 아람 왕의 전략은 번번히 수포로 돌아갔다.
그래서 왕하6:11을 보면 아람왕의 마음이 번뇌하여 정보가 흘러나간 사유를 따지게 되었고 이스라엘에게 정보를 흘리는 첩자가 있다고 괴로워하였다. 엘리사는 놀랍게도 정보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람왕이 괴로워하며 번뇌한 이유는 엘리사의 정보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교통함 속에서 아람 왕이 침실에서 하는 작은 말이라도 꿰뚫고 있는 특수한 귀와 눈을 가진 자였다. 아람군대와 왕은 강했다. 그러나 정보를 알고 있는 엘리사 ! 전략을 미리 아는 엘리사 ! 그 한 사람이 아람에게 없어서 아람왕은 번뇌하였다.

세상의 악의 세력이 얼마나 강한가? 그러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다스리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과 내가 교제하면 나는 강한 사단의 세력도 번뇌하게 만드는 한 사람이 된다. 인간세상에서 인간들이 꾸며대는 전략은 정말로 대단하다. 그 많은 것을 나는 대응하기 너무 약해도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계시, 하늘로부터 주시는 그 정보를 받게 되는 한 언제나 나는 원수들을 괴롭게 할 수 있다. 정보를 지닌 자가 이기는 것이 승자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2.아람의 병력을 무용지물이 되게 하였다.(왕하6:14∼19)

아람왕이 거느린 병력은 수가 많았다.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가 왕의 명령을 듣고 밤중에 도단성을 에워쌌다. 성이 공략 당하고 무너짐을 예감한 엘리사의 종은 어찌하리이까 탄식하고 슬퍼하지만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다.
다수의 힘에 밀려서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엘리사는 오히려 여호와께 종의 눈을 열어 불말과 불병거를 보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왕하6:18을 보면 엘리사는 또 이렇게 기도한다. "원컨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그 즉시 아람의 병력은 모두 다 눈이 어두워져서  사물을 볼 수 없었다. 어디가 적군의 도성인지 어디로 가는 것이 전투하러 가는 길인지를 보지 못하게 된 아람의 병력은 숫자만 자랑했지 무용지물이 되었다. 오히려 전진 한 가운데 몰살당하러 나가는 자처럼 사마리아 도성으로 인도되었다.
우리는 숫자가 많으냐 적으냐에 놀라서는 안 된다. 하나님으로 무장된 하나님의 사람, 질적인 사람이 중요하다. 나는 한 사람이라도 백을 당하고 천을 당할 수 있다.
원수의 무리가 다수요 군대귀신 들린 귀신의 이름이 다수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는 나 한 사람은 원수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 원수의 수가 만명이라면 하나님의 불말과 불병거의 수는 십만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한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니 아람의 병력은 모두 앞을 보지 못하는 허수아비 숫자였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무장하면 원수의 숫자가 아무리 다수여도 두려워할 것 없다. 하나님은 천이 되고, 만이 되고, 십만이 되고, 언제나 나의 모자라는 것을 다 채우시는 응답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기도만 하라. 도우심을 청하는 기도만 하라. 기도하는 나 한 사람이 사탄과 그 부하들을 모두 허수아비로 만들 수 있다.

3. 아람 나라가 완전히 쫓겨갔다.(왕하6:21∼23)

아람은 눈이 어두어져 사마리아 도성에까지 내려와 포위를 당했다. 아람의 사람들을 놓고 이스라엘 왕이 묻는다. "저희들을 치리이까? 그 때 엘리사는 오히려 떡과 물을 주어 먹고 마시게 하라고 한다. 그리고는 이 많은 병력을 보낸 아람왕에게 군대를 돌려보내라고 한다. 포위된 아람의 병력은 오금이 저리는 가운데서 음식을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배불리먹게 한 후 놓아보내니 아람 군사들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인가? 적진에 갇힌 포로들을 먹일 수 있는 나라, 모든 면에서 한 수 앞선 전략으로 전쟁을 치르는 나라, 이 나라를 흔들어 놓으려고 싸움을 건 실수를 얼마나 부끄러워 하였겠는가? 그 이 후 아람군대는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왕하6:23)

완전히 아람의 나라는 철 수 했다. 일곱 길로 쫒겨갔다.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기웃거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엘리사의 관대함, 그 큰 배짱이 완벽한 승리를 가져왔다. 그 배짱과 큰 마음, 그것이 바로 신앙에서 온 마음이다. 하나님의 사람의 마음이다. 엘리사 한 사람 때문에 아람 왕은 번뇌하고 아람의 병력은 무용지물이 되고 아람의 나라는 완전히 쫒겨갔다. 지금 영적 아람의 공격이 있더라도 두려워 말자.

불 병거, 불 말로 돕는 하나님을 보며 나 한 사람이 이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는 것이 중요하다. 나를 하나님의 교회에서 보배롭게 생각하라. 많은 사람이, 많은 일군이 이 교회에 있으니까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식의 체념적인 신앙을 깨뜨리자. 수는 하나님께 아무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답게 큰 마음, 큰 배짱으로 원수라도 먹이우고 마시게 하는 사람이 되자. 민족을 위기에서 살리는 이 놀라운 역사는 성령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 때문에 은혜주신 하나님의 간섭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성령으로 무장하자. 갑절의 영감을 구하여 가정의 역사를 바꿀 수 있다. 나 한 사람의 기도와 말씀, 성령과 은혜로 무장하자. 하나님을 믿는 나 한 사람의 역할은 아람의 마병과 병사와 군대보다 훨 씬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

존 낙스는 기도하는 한 사람의 무릎이 2개 사단보다 강하다고 하였다. 그렇다.
나는 최근 부흥의 여정을 연구해본다. 17세기 필립 J. 스패너 그는 경건한 열망이라는 책을 썼다. 그 책이 유럽에 큰 불을 지펴 경건주의의 시작이 되었다. 스패너→프랑케→진젠돌프→진젠돌프와 모라비안→웨슬리→감리교가 되었다.
한 사람이 역사의 물꼬, 선교의 물줄기를 바꾸었다. 교회학교 교사, 속회인도자, 복음전도자, 한 사람이 준비되면 가정도 교회도 변화시킨다.
100만명을 주께 인도한 무디,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다. 그런데 무디의 영향을 받은 프레드릭 마이어 그는 대학 캠퍼스에 복음을 전하고 윌버 채프만을 회심시킨다. 채프만은 윌리선데이를 챠로테에서 초청하였고 챠로테지역 사람들은 은혜를 받고 또 다시 모르드게함을 강사로 모신다. 여기에서 20세기 전도자 빌리그래함이 주께 삶을 드리게 된다.

그런데 이 이야기속에 진짜 중요한 것은 주일학교 선생님 한 분이다. 그의 이름은 무명의 이름이지만 보스턴 홀튼 양화점뒷방에서 무리를 전도한 킴볼이라는 사람이다. 그는 무디에게 예수를 영접했는지 물었다. 그리고 죄인임을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영접케했다.
그리고 킴볼 선생이 기도할 때 그의 마음속의 어두움이 떠나갔고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였다. 그날이 1885. 4. 21이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무장했을 때 전혀 예측못하는 복음의 열매를 맺게 되었다.
킴볼 이 한 사람이 무디와 빌리그래함을 탄생시킨셈이다.
20세기 초 1904년 웨일즈의 부흥을 가져온 이도 광부의 아들 이반 로버츠 한 사람의 기도 때문이었다. 거룩한 소원을 가진 한 사람, 하늘의 소원을 가진 한 사람, 하나님은 그 사람과 함께 일하기 때문이다. 나를 업신여기는 어리석음을 버리자.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겠노라는 다짐을 주께 돌리자.
오순절날 보리추수 열매드리는 맥추절이다. 우리가 진정한 맥추절 예물로 성령의 사람으로 드려지기를 결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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