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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원한 집을 바라보며 (고후 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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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땅에 있는 우리 장막집이 무너지면.... 엊그제 뉴스를 보다 보니까? 미국동부가 홍수가 나서 모든 집들이다 무너져 떠내려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집이 무너져 내리는구나. 저 집에서 천년만년 사는 줄 알고 단장하고 장식하고 페인트칠하고 가구를 들여 놓고 했을 텐데 무너지는 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허무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무너집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무너지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집이 홍수에 떠내려가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가 갑자기 당한 후에 아연실색한 사람들처럼 우리도 무너지는 줄을 모르고 그렇게 살다가 무너지는 날 이오면 당황하지 말고 무너지는 줄을 알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 장막집이 무너지면...한 교장 선생님은 은퇴하신 후 퇴직금으로 집 한 채를 사서 손을 보았습니다. 벽에 툭 튀어나온 못 하나가 눈에 거슬려 의자 위에 올라가서 못을 뽑다가 뒤로 넘어져 뇌진탕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 집에서 하룻밤도 자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못 하나 때문에 사람이 죽었습니다. 장막집이 무너집니다.

엊그제 우리 가까운 곳에 있는 내수교회 우 장로님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저를 무척이나 도와주고 아껴준 장로님입니다. 제가 일신 여고 있을 때 내수교회에서 봉사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고 목사님들을 사랑하고 성도들을 섬기셨는지 모릅니다. 내수교회 기둥 같은 장로님이십니다. 우리노회 부 노회장도 하셨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얼마나 건강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갑자기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장막집이 무너집니다.

대전에 어느 여관에 불이 났습니다. 유조차가 와서 지하 기름 탱크에 기름을 넣는 순간 펑하더니 검은 연기가 솟고 불이 붙어서 주인을 비롯하여 4명이 죽고 투숙객 여러 사람이 다쳤습니다. 경찰이 조사한 바로는 연료용 기름을 넣는데 불이 난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이 났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죽었습니다. 장막집이 무너집니다.

나이가 다해서 무너지기도 하고 사고로 무너지기도 하고 병마로 무너지기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다 무너집니다. 그것이 우리 운명이요 우리 팔자입니다. 무너지는 것이 정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무너지기만 하면 어떻게 됩니까? 무너지기만 하면 소망이 없습니다. 절망입니다. 산다는 것이 무의미합니다. 선하게 살던 악하게 살던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래서 만일 우리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했습니다. 땅에 있는 우리 장막 집은 무너집니다. 그것이 정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집이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두신 영원한 집이 있어 죄 많은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영접해 주시겠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 있는 자들어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고 영원한 집이 있다면 그러하다면 우리가 달라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너질 장막 집에 연연하지 않는 것입니다. 4:1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보이는 것은 잠간입니다. 부귀도 명예도 권세도 잠깐입니다.

보세요 역대 권세를 잡았던 사람들, 대통령으로 제직 할 당시는 하늘의 별이라도 딸 것 같은 기세를 가지고 살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죄인 되어 사는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지요. 자기 자신뿐 아니라 자식에게까지 죄를 대물림해서 감옥에 갔다 왔지요. 권세뿐입니까? 부귀도 마찬가지입니다. 역대 재벌의 총수들도 다 무너졌어요. 천년만년이 아니지요. 백년도 못살고 무너졌어요. 보이는 것은 잠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2절 “참으로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4절 후반 절에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쉽게 말하면 영원한 집에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나는 영원한 집에 가서 살고 싶다 그것이 나의 소망이다 하는 말입니다. 그 간절한 소망을 하나님이 성령으로 보증 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우리에게 그렇게 되도록 도장을 딱 찍었습니다. 할렐루야!

죽을 것이... 우리가 다 죽을 것 아닌가요. 그런데 죽을 것이 생명에 삼켜져 버렸어요. 바닷가에 고기 한 마리가 펄떡 뛴다는 것이 잘 못 뛰어서 모래밭에 떨어졌어요. 펄떡 펄떡 뛰며 고기 죽네. 야단이지요. 이제 죽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파도가 싹 밀려오더니 고기를 삼켜 버렸어요. 이제 살았어요. 바다 깊숙이 의기양양해서 잠수해 버립니다. 그런 일 보셨지요.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었지요. 요즈음 장마철인데요. 비가 아무리 와도 집안에 들어 앉아 있으면 비를 맞지 않습니다. 죽음이 사방에 깔려 있어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어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지으신 새집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집 새집에 가서 살아야 할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러려면 단장이 필요 합니다. 새집을 지으니까? 달라지는 것이 많더라구요. 가구도 달라지고 침대도 달라지고 쇼파도 달라지고 그릇들도 달라지고 사람도 새롭게 달라지고, 천국에 가는 사람이 달라져야 합니다.

2002년도에 미스코리아 진이 된 금나라라는 여학생이 있습니다. 그 여학생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공부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폭식을 했답니다. 그랬더니 살이 자꾸만 쪄서 허리가 31인치, 몸무게가 62kg이 되었답니다. 그런데 ‘이러다가는 내 인생을 망치겠다.’라는 마음이 들어 대학에 합격한 후 매섭게 결심하고 음식을 조절하며 운동을 했더니 100일 만에 10kg이 빠졌답니다. 그래서 미스코리아에 출전하여 미스코리아 진이 된 것입니다.

우리 몸도 가꾸면 가꾸어지는 것입니다. 되는 대로 그냥 두면 몸도 엉망이 됩니다. 우리 몸을 균형 있게, 매력 있게 잘 가꾸어야 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몸은 아무리 가꾸어도 무너질 장막입니다. 무너지지 않을 영원한 집을 위해 가꾸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심령입니다. 아무리 잘 생기고 아름다워도 술집에서 술파는 여자를 누가 귀하다 하겠습니까? 몸을 아무리 아름답게 가꾼 사람이라도 함부로 살면 돼지 코에 금고리 같습니다. 집에는 누가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장관이 살면 장관집입니다. 의사가 살면 의사의 집입니다. 그런데 도둑이 살면 도둑의 집입니다.

9절이 결론입니다.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입니다.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오직하나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주를 기쁘게 하는 삶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천사의 노래를 불러도 믿음 없이 부르는 노래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재산을 다 팔아 교회에 바쳐도 믿음이 없이 드리는 헌금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행할 때 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고 성령님을 믿고 그 약속을 믿고 따라 사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가서 복음을 전한 리빙스턴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헌신적으로 복음을 전하며 아프리카인을 돌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이상한일이 벌어졌습니다. 그의 유해를 두고 영국 정부와 아프리카가 싸웠습니다. 영국에서는 “리빙스턴은 영국인이니 우리가 그 유해를 갖고 와서 장례를 하겠다.”라고 했고, 아프리카는 “리빙스턴은 우리가 사랑하는 분이니 우리가 장례해야 된다.”하며 서로 싸웠습니다.

리빙스턴의 몸이 금덩어리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 몸에 보석이 박힌 것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 시신을 놓고 다투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가 믿음으로 헌신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귀하게 살았기에 귀한 사람이 되고 귀한 사람이기에 그의 장막인 유해가 귀한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귀하게 산 것은 그의 믿음입니다. 영원한 집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희생할 수가 있었습니다.

영원한 집이 있는 것을 믿습니까? 귀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사무실안으로 들어가면 회의실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우리교회 역대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그 사진들 가운데 돌아가신 분이 몇 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 전혀 돌아가신 것 같지를 않습니다. 살아계신 분이나 똑같습니다. 돌아가신 것 같지만 산 것이요. 산 것 같지만 돌아가신 것입니다.

1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보지 말고 백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보세요. 시간차일 뿐입니다. 앞으로 20년 30년 뒤에 보세요. 그 가운데 무너지지 않은 분이 몇 분이나 되실런지... 그러나 죽었으나 살았습니다. 영원한 집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영원한 생명으로 영원한 집으로 상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믿음 잃지 않고 살아 영생의 복으로 살기를 축원합니다. (김영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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