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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나는 누구입니까? (벧전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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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인 조엘 오스틴 목사님의 ‘긍정의 힘’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 7장에 보면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건강한 자아상을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자아상이란 자기를 그린 자기그림의 모습이 어떤가 하는 자기 시각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마음에 품은 이미지이상 성공할 수 없다는 지적입니다. 그러면서 그 책에서 자아상은 우리의 행동을 통제하는 무의식 속의 ’관리인‘이라고 합니다. 가령 차에 보면 자동속도조절장치가 있습니다. 미국의 고속도로에서 이 장치를 이용하면 굉장히 편합니다. 가령 속도를 100미로미터에 맞추어놓으면 차는 항상 그 속도를 유지합니다. 인생길에서 자아상은 우리가 속도를 덜 내면 더내게 하고 더 내면 덜내게 하는 기능을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보는 나가 있습니다. 남이보는 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는 나가 있습니다.
나에 대한 가장 정확한 개념은 내가 보는 나도 아니고 남이 보는 나도 아니고 하나님이 보는 나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내가 보는 나에 매여있습니다. 남이 보는 나에 매여 있습니다. 내가 나를 볼때 또 남이 나를 볼때 인간적인 기준에서 나를 보게 되면 나에 대해서 우리는 자신감을 잃고 왜곡된 자화상으로 힘들어할때가 많습니다.

나를 제대로 바라볼때 나는 결국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내가 누구인자 정확하게 신분을 인식해야 신분에 걸맞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대통령이라는 신분을 인식할 때 대통령다운 삶을 살아갑니다.내가 선생님이라는 신분을 인식해야 선생님다운 말과 행동을 합니다. 내가 목사라는 신분을 인식할 때 그 신분에 합당한 행위가 일어납니다.

이미 성경에 소개된 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 모든 약점과 한계를 극복하고 주님의 위대한 사람들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베드로이다.
지식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어부로서 많은 지성과 상식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성격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급한 성격과 인내하지 못하는 성격으로 많은 실수가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가정의 백그라운가 좋지 못합니다. 그런에 이런 약함과 인간적인 한계가 있었던 베드로가 능력있는 주님의 사도로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인기 정확하게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이 보는 나는 누구인가?

첫째 산돌같은 존재입니다.
벧전2:4-5을 보면 “ 사람에게는 버린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서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산돌같은 존재임을 말씀합니다. 산돌같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야 함을 강조합니다. 한사람 한 사람 그리스도인들은 성전을 지을때 귀하게 쓰임받은 산돌같은 존재들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집을 지을때 재료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특별히 우리가 고급집을 지을때에는 고급재료를 사용합니다. 집짓는 재료중에 고급재료중에 대리석이 있습니다. 다른 재료보다 비싸고 고급스럽습니다.  그 대리석 한 장 한 장이 잘 사용되어져야 고급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만약에 중간에 대리석 하나가 문제가 생기면 집에 하자가 생깁니다.

물론 우리의 진정한 산돌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신앙의 기초는 에수님이십니다. 예수님위에 교회가 세워집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산돌로서 우리의 기초가 되어주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산돌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퉁이 돌이 되어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6절에 보면 모퉁이돌이라고 소개합니다. 건물을 지을때 모퉁이돌은 모든 건물의 기초입니다. 다른 모든 돌은 이 모퉁이돌에 의지하고 연결되어져 건물을 지어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16장에서 베드로에게 ‘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합니다. 여기 말씀하신 반석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 위에 교회가 세워집니다. 예수님이 건물로 말을 하면 생명의 돌로서 모퉁이 돌의 역할을 감당하시고 이제 우리는 그 모퉁이 돌 위에 하나 하나 생명의 돌로서 신령한 집을 세워가는 존재들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것은 에수님 위에 연결된 귀한 생명의 돌같은 우리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사람은 너무나도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나도 산돌이고 너도 산돌이고 우리 모두가 산돌입니다. 하나 하나의 산돌이 그 위치에서 서로 연결되어 결국 신령한 집을 세워간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누구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신령한 집을 이루어가는 산돌같은 귀한 존재이다라는 것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우리는 산돌같은 귀한 존재이지만 산돌은 아닙니다. 진짜 산돌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에게 연결되어져 우리가 그런 산돌같은 귀한 존재로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내가 가치있고 귀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집을 지어야 산돌의 가치가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고급의 집재료 돌일지라도 그냥 독자적으로 흩어진 한개 한개의 돌은 별로 가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사용되어져 바르게 집을 지어 나타날 때 그 한개 한개의 돌의 가치가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 한사람 한 사람이 나 자신이 생명의 돌같이 주님 위에 거룩하고 신령한 주님의 집을 지어가는데 귀하게 사용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치있고 귀한 산돌같은 존재이지만 우리가 예수님 위에서 서로 연결되어 신령한 교회의 공동체를 이루어갈 때 내가 더욱 가치있고 의미있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엡2:20-22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이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합니다. 여러분 신령한 돌로서 신령한 집을 짓는데 서로 연결되어가시기 바랍니다.

둘째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이란 말은 본래 구약에 인간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던 직분의 사람입니다.
본래 제사장이란 ‘다리를 놓는 사람’‘중보자’ 의미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제사장 대제사장을 통하지 않고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구약의 모든 대제사장과 제사장을 완성하지 분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는 제사장의 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도 제사장이고 여러분도 제사장이고 만인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구약에 이 제사장은 모든 제사의 주체이고 성전의 주체였습니다. 구약에 이 제사장 직분은 엄청난 특권을 누렸습니다. 구별된 옷을 입었습니다. 구별된 음식을 먹었습니다. 구별된 곳에서 지냈습니다. 항상 일반백성들과는 구별되게 지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경우에 12지파 중에서 제사장이 될 수 있는 지파는 아무나 자원하여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지명한 레위지파만 될 수 있었습니다.그리고 그들은 특별한 대접을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반면에 이 제자장들은 많은 책임이 요구되었습니다. 특별히 매일 성별된 몸과 제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정한 시간에 정한 제사를 바로 드리어야 할 귀한 책임을 제사장들은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이 항상 거룩하게 보존되고 찾아오는 백성들을 대신하여 제사를 드릴 수 있는 모든 제사를 드릴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왕같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16세기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킬때에 강조한 것이 ‘만인제사장중의’입니다. 로마 카톨릭의 사제들이 특별한 게급으로 자신들을 높이면서 얼마나 많은 부정과 부패가 있었는지 모릅니다.그러나 이제 목사와 평신도는 하나님 앞에서 지위는 동일합니다. 단지 직능이 다를 뿐입니다. 단지 목사는 말씀을 대언하고 가르치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높은 계급도 아니고 특별한 존재도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을 정말 그렇게 왕같은 제사장으로 자신을 가치있게 느낍니까?
지금 이 시대는 무엇보다도 강조해야 할 것이 평신도입니다. 그런데 구약에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권위있게 자신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 살았던 것처럼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축복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 당당함을 갖고 책임을 다하면서 힘있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제사장으로서 하나님 앞에 기쁨의 제사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된 우리를 통해서 영광의 제사를 받으시기를 소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삶 속에 여러분의 산몸으로 하나님께 산제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롬12: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합니다. 내몸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 내몸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는 것 그것은 거룩한 특권이요 영광인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함께 제사장된 우리가 모여서 찬미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이것이야 말로 제사장된 우리의 거룩한 특권이요 축복인줄 믿습니다.

셋째 거룩한 나라의 백성입니다.
9절에 그리스도인된 우리를 향하여 ‘거룩한 나라의 백성’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시민이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나라의 시민입니다.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누렸던 영광과 특권이 엄청났습니다. 애굽에서 430년만에 하나님이 불러내어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사랑하셧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승리를 주셨고 놀라운 기적과 이적의 인도하심으로 축복하여주었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백성들보다 더 나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구약의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그리고 모세와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편이 되어주셔서 그들에게 말할 수 없는 특권과 복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나의 주님으로 믿음으로 고백하는 자마다 하나님 왕국의 백성이 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고백하고 그분의 통치를 받으면서 날마다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통치를 받으면서 날마다 살아가는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땅의 가치를 나의 가치로 삼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진정한 가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가치로 살아가지만 우리는 진리를 가치로 삼고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의 명예를 가치로 삼고 살아가지만 우리는 십자가를 우리의 자랑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세상사람들은 권세를 가치로 삼고 살아가지만 우리는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만을 우리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 각자가 정말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늘의 가치를 삼고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신령한 백성으로서 하늘의 가치를 삼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나를 신령한 집을 세워가는 산돌같은 존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하십니다. 한번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거룩한 백성이라고 하십니다. 엄청난 복과 특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신분과 지위를 주시면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사명이 있습니다.
9절에 보십시오.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쉽게 말을 하면서 우리를 하나님께서 새로운 신분과 지위로 축복하심은 우리를 하나님의 선전삼으려고 하심입니다.

여러분 티비에 보면 열심히 상품을 선전하는 광고를 보셨을 것입니다. 기업들마다 엄청난 돈을 투자하여서 상품을 선전합니다. 그래야 매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광고를 위해서 탈렌트 영화배우를 선택합니다. 그때 어떤 사람을 선전꾼으로 뽑습니까? 자기 기업이미지에 맞는 좋은 사람을 비싼돈을 들여서 뽑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광고모델 중에 제일 많은 돈을 받고 광고하는 배우가 있습니다. 바로 이영애라는 모델입니다. 얼마나 얼굴도 이쁘고 이미지가 깨끗합니까? 자기 제품을 선전하여 달라고 엄청나게 많은 돈을 투자합니다. 티비 20초 광고 한번 하는데 몇억의 돈을 줍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선전을 위해서입니다. 그 선전을 위해서 배우들은 정말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그 상품을 선전하여 주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모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선전꾼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모델로 선전꾼으로 삼으려고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값주고 사셧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선전하시는 삶으로 영광돌리시기 바랍니다.

2. 어떻게 새로운 신분에 걸맞는 삶을 살 수 있는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신분 새로운 지위에 걸맞게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입니다.
신분에 걸맞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제 과거의 모든 죄악된 삶을 버려야 합니다.

첫째 마음의 모든 악독의 죄를 버려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집인 마음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악독의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악하고 독한 마음입니다.
남을 해하려고 하고 자기의 욕심을 성취하려고하는 악한 마음이 바로 악독입니다. 사도행전8장을 보면 악독한 사람이 소개됩니다. 바로 시몬입니다. 시몬은 성령의 권능을 돈을 주고 사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이런 시몬을 보고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바 되었도다”라고 합니다.
악독이 가득한 사람은 잘못된 방법으로 자기 욕구를 채우려고 합니다. 자기 혼자 모든 것을 독점하려고 합니다. 나만 잘 되고 잘살면 남이 죽어도 남이 잘못되어도 관심이 없습니다.
만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나만 잘 되고 나의 가정만 잘 된다면 남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 없다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이런 악독은 우리의 영적성장의 치명적인 독소입니다.이것을 우리가 버려야 합니다.

둘째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의 죄입니다.
여기 궤휼이란 속이는 말입니다. 낙시를 해본 분들은 잘 알것이지만 고기를 잡기 위해서 미끼를 씁니다.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을 유인하여 해치고 속이는 동기가 들어있는 말이 궤휼입니다. 이런 궤휼을 버려야 합니다.
외식이란 말은 본래 ‘마스크’에서 유래된 말입니다.가면을 쓰고 배우들이 연기를 할때가 있습니다.이와 같이 가면을 쓴 삶의 모습을 외식이라고 합니다. 속은 늑대와 같은 마음인데 겉은 양과같이 꾸미고 삶을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진실하지 않으면서 진실한척 꾸미고 삶을 살때가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아니면서 그런것처럼 꾸미는 자들을 외식하는 자라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외식하는 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외식을 버려야 성장한다고 합니다.
다음에 시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들이 잘 되면 다른 사람들이 성공하면 질투하는 마음이 시기입니다. 우리 나라 말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고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나쁜 시기심 질투하는 마음이 있으면 어렵습니다.

셋째 모든 비방하는 말의 죄입니다.
여기 비방하는 말이란 뒤에서 중상하는 말입니다. 앞에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다가 뒤에서 남을 깍아내리는 말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내가 신분에 걸맞는 말을 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말은 그 사람의 수준입니다. 말은 그 사람의 열매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면 걸맞는 말을 하셔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입니까? 그렇다면 걸맞는 말을 하셔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서로를 비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수치스럽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가 수준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십시오2절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여기 말씀을 순전하고 신령한 젖이라고 합니다.여러분 말씀은 젖과 같습니다. 젖을 먹어야 아이가 건강하고 살아있을 수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이 그렇습니다. 그 말씀을 젖과 같이 대하고 먹는 사람들은 그 말씀이 달고 맛있습니다.
시편19:10에 보면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꿀맛이 어떻습니까? 특히 송이꿀맛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꿀은 정말 달고 맛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이 꿀맛처럼 달게 느껴진 적이 있습니까? 시편의 시인만이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믿고 신앙생활할 때 하나님 믿는 맛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맛을 모르면 신앙 생활하기가 힘이 들고 어렵습니다. 여러분 누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맛을 알 수 있는지 아십니까? 자꾸 먹어보는 사람만이 그 맛을 알수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처음부터 우리가 그 맛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자꾸 먹다보면 그 맛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꾸 그 맛을 날마다 규칙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배가 고프고 허기지면 밥맛이 없고 밥을 먹지 못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신령한 젖인 말씀을 주시면서 그것을 항상 규칙적으로 사모할 것을 말씀합니다. 누가 복된 사람입니까? 시편1편 2절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로다“라고 합니다.주야로 말씀을 사모하여 묵상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영혼이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여지는 법입니다.

이 말씀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유익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구원에 자라게 한다는 것입니다.우리는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우리는 자라가고 있습니다. 그 자람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의 양식이 바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는 매일 매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합당한 삶과 승리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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