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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 여인의 만남 (눅 1:3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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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위기는 우리의 믿음을 보여 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위기의 상황에 마리아는 신앙 고백을 잘 했습니다.
도저히 불가능하게 생각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오늘 말씀을 나누기 전에 먼저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① 하나님의 은혜가 내 생각과 반대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리아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는 처녀가 임신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마리아의 기대와는 반대되는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마리아는 평범한 꿈을 꾸었지만 하나님은 인류 역사에 위대한 인물을 꿈꾸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생각과 기대와 다르더라도 결과는 복된 것이라는 것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② 하나님 제일주의는 더 큰 보상과 영광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자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위험이 있었습니다.
결혼을 약속한 남편에게서 버림을 받고, 가족과 생명까지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마리아는 버렸지만
하나님은 하나도 잃지 않게 하셨습니다. 오히려 구세주 그리스도의 어머니라는 영광과 은혜가 넘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제일 주의로 살면 하나님의 보상은 우리가 버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포기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 위에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③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동정녀 탄생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어떻게 여자 혼자 아이를 낳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는 능치 못한 일이 없습니다. 이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④ 하나님은 신분이나 지위를 가리지 않으시고 순종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시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당시에도 많은 다윗의 가문들의 처녀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갈릴리 나사렛이라는 비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의 마리아를 선택하셨습니다. 분명한 것은 마리아에게 순종하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⑤ 성도의 믿음은 하나님 앞에 영원히 기억된다는 사실입니다.
마리아는 이후 전 인생을 통하여 믿음을 보여 주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속에 깊이 간직했습니다.
육신적으로는 아들이었지만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따랐습니다. 믿음에 변함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붙잡히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성도들에게는 엄청난 고난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 성도들과 함께 더욱 열심히 기도하며 신앙을 지켰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은 하나님 나라에 영원히 기록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분명히 하나님 나라에게 보상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소망이요 기쁨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과 소망이 있기를 바랍니다.

◈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만나러 갔습니다.

사람이 외롭고 고독할 때, 고독을 나눌 친구가 있으면 행복합니다. 또 하나는 정말 감동적인 사건이 있을 때, 그 즐거움을 나누어주고 함께 기뻐해 줄 사람이 있으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지금 마리아는 방금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여전히 기쁘면서도 두려웠을 것입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벳의 집으로 갑니다.
성경 연구가들에게 의하면 이 거리는 150㎞나 되었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친족 엘리사벳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수태하게 됨을 축하해 주기 위해 그리고 확인하고 확신있는 믿음을 가지기 위해 그 먼 곳까지 기꺼이 여행을 떠났습니다.
거기서 두 가지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 마리아의 방문을 받을 때 엘리사벳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뛰놀았습니다.

6개월 된 태아가 배 속에서 노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평상시와 달랐습니다. 누가가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요한이 복중에서부터 그리스도의 방문을 기뻐 뛰놀며(44절)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후에도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세례 시 성령의 임하심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였습니다.

◈ 엘리사벳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마리아가 메시야를 잉태하였음을 기뻐하고 마리아를 축복합니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고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

엘리사벳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마리아가 위대한 구원자의 어머니가 될 것을 알고 있었.
이 만남을 통해서 마리아는 큰 위로를 얻고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믿음이 더욱 확실해지고 비전이 확실해 졌습니다.
하나님을 온 마음과 정성으로 찬양하며 즐거워했습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영적인 친구였습니다.
영적인 사람과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만가지 복이 들어옵니다.
영적인 사람들을 통해서 복이 들어오고, 영적인 사람들을 통해서 은혜가 들어옵니다.
요즘 신문에서 보는 사건이지만 브로커들 잘못 사귀면 낭패납니다. 화가 들어옵니다.
엘리사벳은 그냥 마음 좋고, 성품이 착한 사람이라서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사람입니다.
사람에게 영적인 말을 전달하는 사람이 있고, 사람의 말을 전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잠20:19"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

요한 웨슬레 목사님 - 기독교를 고독한 종교로 바꾸는 것을 곧 기독교를 파괴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고독한 면과 공동체적인 면이 함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 개인적인 깊은 교제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된 성도들 간의 교제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다 다른 환경과 처지와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로 부르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좋은 믿음의 성도들과 영적인 교제를 많이 나누시기 바랍니다.

◈ 이런 영적인 경험을 하고 난 후 마리아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찬양에는 마리아의 믿음이 고백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찬양은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46-48 하나님의 은혜
비천함을 돌아보심, 만세에 복있는 사람으로 삼으심
하나님께서 나를 돌아보시고 예수님을 잉태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찬양의 고백입니다.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동안 메시야의 모친으로 알려지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49-50 하나님의 성품
전능하신 분, 거룩하신 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인자하심을 계속 내리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찬양합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비천하고 보잘 것없는 죄인에게 역사하셔서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를 잉태케 하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51-53 하나님의 역사하심
교만한 자, 권세 있는 자를 낮추시고, 비천한 자를 높이심,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자를 공수로 보내심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한 주석가의 주석입니다.
이 찬양은 기독교 최대의 찬양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혁명을 일으키시는 분이십니다.

① 하나님은 마음이 교만한 자를 흩으십니다. 이것은 도덕적인 혁명입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을 보는 종교입니다.
이사야와 같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선 자기를 알게 될 때 도덕적인 혁명이 시작됩니다.

② 하나님은 권세있는 자들을 낮추시며 비천한 자를 높이신다. 이것은 사회적인 혁명입니다.
기독교는 이 세상의 간판과 지위에 침묵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특정한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어떤 사람도 더 이상 하찮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사회적인 계급과 지위는 다 사라졌습니다.

③ 하나님은 주린 자를 배불리시고 부자를 빈 손으로 돌려 보내신다. 이것은 경제적 혁명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쌓아두기 위해서 모읍니다. 이 세상은 탐욕 중심의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주기 위해서 나누기 위해서 모읍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각 개인에게 혁명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이 일을 통해서 온 세계를 변화시켜 가시는 분이십니다.

54-56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
믿음의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시고 영원히 지키심.
마리아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신 그 하나님께서 언약의 자손인 나에게 또 기적을 행하셨다는 것을 행복해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행복해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기억하고 계시다는 것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나를 알아주시고 기억해 주신다면 얼마나 행복스러운 일입니까?
마리아는 그 행복을 기억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시는 데'
이것처럼 귀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시는데' 이것이 마리아의 행복이요
찬양이었습니다.

◈ 세상에서 가장 복된 두 어머니가 만났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순간입니다.

누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고 그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한 형제 자매된 성도들을 귀히 여기시고 아름다운 교제를 많이 나누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모임은 세상의 계모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거룩한 모임입니다.
성도의 믿음의 교제를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영적인 교제 안에 마리아와 엘리사벳과 같은 아름다운 열매들이 많이 맺혀지기를 바랍니다.

◈ 마리아는 확신에 찬 믿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했습니다.

찬양은 구원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다닌다고 해서 다 찬양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노래는 잘 할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구원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찬양은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으로 찬양할 때
영이신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십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에서 찬양했습니다.
교회에서만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리에서도,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학교에서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한 복판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무신론자의 마음에는 찬양이 없습니다.
찬양이 주는 기쁨도 평강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찬양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찬양할 수 있습니까?
많이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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