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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배가 능력이다 (대하 20: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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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유다 모든 사람은 그 아내와 자녀와 어린 자로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14) 여호와의 신이 회중 가운데서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셨으니 저는 아삽 자손 맛다냐의 현손이요 여이엘의 증손이요 브나야의 손자요 스가랴의 아들이더라 (15) 야하시엘이 가로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16) 내일 너희는 마주 내려가라 저희가 시스 고개로 말미암아 올라오리니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만나려니와 (17)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18) 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19)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 (20) 이에 백성들이 일찌기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가로되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21) 백성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사람을 치게 하시므로 저희가 패하였으니 (23)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거민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거민을 멸한 후에는 저희가 피차에 살륙하였더라

지난 시간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신령은 성령으로 진정은 진리로 번역해야 합니다. 성령의 임재가 있는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입니다. 진리 되신 그리스도가 높임을 받고 드러나는 예배가 참된 예배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삶과 신앙의 중심은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흔히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서 망하고 포로로부터 해방된 기간을 70년이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포로기간은 70년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BC 586년에 망했다가 페르시아 왕 고레스 칙령에 의해서 해방 받은 때는 BC 539년입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포로기간은 47년입니다. 그러면 왜 70년이라는 말이 나왔는가? 그것은 BC 586년 나라와 함께 성전이 무너졌는데 이 성전이 다시 재건된 때가 BC 516년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이 회복되기 전까지, 그리고 성전에서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전까지는 이스라엘에게는 정치적 해방은 진정한 해방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고의 중심이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 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여호사밧이 이끄는 유다와 모압 암몬, 마온 족속 연합군과의 전쟁입니다(1).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이 전쟁에 임하는 태도가 일반적인 전투양식이 아닙니다. 마치 한 편의 예배를 보는 것 같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이 모였습니다. 금식했습니다. 여호사밧의 말씀 선포가 있었습니다.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찬양대의 찬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배가 우리 생활에 가져다주는 놀라운 능력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여호사밧이 이끄는 남왕국 유다에 위기가 닥쳤습니다. 모압, 암몬, 마온 연합군이 남유다를 쳐들어왔습니다. 원래 여호사밧 초기에 남왕국은 강성했습니다. 17장에 보면 자기휘하에 둔 군사만도 116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18장 1절에서는 여호사밧의 영광이 극에 달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여호사밧이 미약해진 이유는 북왕국 아합과 가까이 지냈기 때문입니다. 아합은 바알숭배자였지만 당신 중근동에서 강성한 나라였습니다. 여호사밧은 이 아합과 사돈관계를 맺고 친하게 지냈습니다. 사람을 의지한 것입니다. 그러나 함께 아람을 치려다가 아합은 죽고 자신은 겨우 목숨을 구했습니다. 이 때문에 선지자들로부터 책망을 받기도 했습니다.

예로부터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합니다. 복 있는 친구와 함께 하면 덩달아 복을 받지만 복 없는 사람과 함께하면 함께 망합니다. 복 있는 자는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자며, 말씀에 따라 사는 자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부유한 친구들과 사귀도록 하는 것보다 의로운 친구와 사귀도록 하는 것이 자녀 인생에 큰 도움이 됩니다.

전쟁으로 국력이 소진된 때를 노리고 남방 연합군들이 치러 올라 온 것입니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어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합니다. 12절 보십시오.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여호사밧은 코너에 몰리니까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하며 나아갑니다. 어려울 때는 주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코너에 몰려도 주를 찾지 않는 대단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간은 별 것 아닙니다. 어려울 때는 엎드리십시오. 괜한 자존심 세우지 말고. 코너에 몰려도 끝까지 사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호사밧은 다시 북 왕국에 기대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사밧은 온 백성으로 금식을 선포합니다. 3절입니다.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그리고 온 백성을 예루살렘으로 모이게 합니다. 13절에 보면 “유다 모든 사람은 그 아내와 자녀와 어린 자로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고 전합니다.

위기에 때에는 금식해야 합니다. 위기에 때에는 온 민족이 함께 모여 기도해야 합니다. 요즘 북한의 미사일 사태로 동북아가 시끄럽습니다. 온 세계가 긴장하고 있는데 우리 한국 사람들만 태평한 것 같습니다. 워낙 큰 위기들을 많이 겪었고, 또 북한의 상투적인 생존전략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미사일 사태를 보면서, 또 매스컴에서 미국이나 일본이 선제 공격 운운하는 것을 보면서 아 우리가 쌓아놓은 것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차 하는 순간에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너무 자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 호들갑스런 것도 문제지만 안일한 것도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단순히 국제정치적인 시각이나 남북 이데올로기적 시각에서만 보지 말고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민족이 여호사밧처럼 금식하며 회개해야 할 때라 생각합니다.

무엇을 회개해야 하느냐? 저는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때, 우리 민족은 감사를 잊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번영하고 어느 정도 잘 살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잊고 마치 자기 힘으로 된 것처럼 교만해졌습니다. 60,70년대 많은 개발도상국가들이 있었지만 유독 우리나라만 한강의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성장하였습니다. 학자들은 우리의 우리한 노동력과 근면성, 수출주도형 전략의 성공이라 그 원인을 분석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 생각합니다. 어느 나라든 자기 경제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렇지만 남미 같은 경우는 우수한 자연 자원을 가지고도 실패했습니다. 이것은 단지 사람의 계획과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운 좋게 잘 들어맞았다고 하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의 전략이 성공하도록 인도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 감사의 마음을 잊었습니다. 마치 제 힘으로 된 것 마냥 자랑하고 사치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신 이유를 잊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적인 축복을 주실 때는 그 물질로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웃을 돌아보기는커녕 더욱더 자기 이기주의로, 물질주의로 인색해지고 있습니다. 자기 손해 보는 것은 조금도 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주셨으면 복 받은 만큼 자신을 낮추고 이웃을 돌아보는 삶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릭 워렌 목사가 이번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7만 성도들에게 외친 것도 회개였습니다. “부흥의 파도를 소망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한국교회에 부와 영향력을 주신 이유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부흥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한국교회를 통해 세계를 축복하시기 원한다. 하지만 한국교회가 받은 축복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축복을 거둬 가실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교만히 행하다가는 어느 한 순간에 다 가져갈지도 모릅니다. 저는 미사일 사태를 겪으면서 이런 생각이 매우 강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은 이런 위기의 때에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며 회개합니다. 모두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5-12절에 걸쳐 말씀을 전하는데 마치 한 편의 설교를 듣는 것 같습니다. 여호사밧은 여호와의 전 뜰 앞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회중 가운데 서서 기도를 합니다(5). 먼저 주의 권세와 능력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우리에게 영원토록 선물로 주셨음을 기억합니다. 여기 성전을 건축케 하시고 환난 가운데서 부르짖으면 들으시고 구원하신다는 약속을 붙잡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큰 무리를 대적할 능력이 없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부르짖음으로 들으시고 선지자 야하시엘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하여 말씀하십니다. 15절과 17절입니다.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하고 선포합니다. 이는 전형적인 여호와의 전쟁의 외침입니다. 이스라엘의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그 전쟁에는 여호와께서 친히 나가 싸우십니다. 사무엘 시대에는 하나님의 법궤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습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여러분 이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문제는 너희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다. 이 문제는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 너희는 싸울 것도 없다. 너희와 함께 한 나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설교라는 것은 이런 하나님의 약속을 선포하는 것이요, 우리는 설교를 통해서 이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는 마치 이 말씀이 자기를 향하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저희가 교회를 개척하면서 여호수아서 말씀으로 가정예배를 드렸는데 동일한 경험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주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에 대해서 또 우리가 고쳐야 될 점에 대해서 정확히 지적해주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18절에 보면 여호사밧과 온 백성이 여호와 앞에 엎드려 경배를 합니다. 19절에는 레위 지파 사람들이 “심히 큰 소리로” 여호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이튿날 유다 백성은 일찍 일어나 드고아 들로 나아갑니다. 여호사밧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합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20)

그리하고는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 세웁니다. 이 찬양대가 앞서가며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21) 하고 찬양을 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도 승리하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합니다. 22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셔서, 아마 하늘의 천사들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적들을 치니 그 안에 자중지란이 일어납니다. 암몬과 모압이 연합하여 세일 거민을 치더니, 이제는 서로 싸우다 전멸하고 맙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의심의 영을 불러일으키신 것 같습니다. 여호사밧의 군대들은 그 뒤를 따라가며 전쟁 노획물들만 취하는 데 3일이나 걸렸다고 25절 말씀은 전합니다. 찬송으로 이겼기 때문에 그 골짜기 이름을 찬송의 골짜기, 곧 브라가 골짜기라고 일컫기까지 하였습니다.

찬양의 힘은 대단합니다. 사울이 악신에 들렸을 때 다윗이 수금을 연주하니까 악신이 떠났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지하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들이 한밤중에 일어나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그러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다 열리고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풀어졌습니다. 찬송에는 이런 능력이 있습니다. 찬송을 적당히 부르지 마십시오. 큰 소리로 온 영과 마음을 다해 부르십시오. 그러면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사밧의 전투는 전투의 승리가 아니라 예배의 승리입니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이 어우러진 한 편의 예배를 통해서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이것이 예배의 영광이며 예배의 힘입니다. 예배는 능력 있습니다. 여러분 문제에 봉착해 있습니까? 그 앞에 오늘 여호사밧처럼 예배를 드려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우리 안에 이루실 것입니다. 물론 오늘 여호사밧 처럼 적을 앞두고 있는데 찬양대 복 입고 싸우라는 말은 아닙니다. 성경의 사건들은 예표입니다. 대표적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쟁과 같은 우리 인생 현실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신다는 뜻입니다. 단 너희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삶을 살 때입니다.

우리는 여호사밧 사건을 모델 삼아서 우리 모든 전쟁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호사밧의 경우처럼 기적적인 역사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연스러운 방법을 통해서 아니면 다른 사람의 손을 통해 이런 일을 이루십니다. 우리는 그때에도 이 일은 하나님께서 이루셨습니다. 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야곱의 일생에도 예배의 회복이 중요한 문제가 되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야곱이 삼촌 집 라반에게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후에도 에서와의 대결을 피하려고 하나님과 첫 만남을 가졌던 ‘벧엘’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 결과 그 가정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인근 부족의 히위 족속의 추장 아들 세겜에 의해 강간을 당합니다. 이에 야곱의 아들들이 분노하며 계략을 펼쳐 세겜의 족속을 멸합니다. 이에 히위 족속과 친하게 지내던 주변 부족들이 야곱과 그의 가족들에게 보복을 하려고 합니다. 야곱과 그의 가족에게 위기가 닥쳤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창35:1). 야곱과 그 아들들은 이 말씀에 순종하여 벧엘로 올라갑니다. 올라갈 때 자녀들이 그 주변 부족들이 섬기던 우상들을 다 내어놓습니다. 악한 자들과 함께 있다 보니 어느새 물 들은 것입니다. 온전한 예배가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다시 벧엘에 올라가 야곱이 단을 쌓습니다. 예배를 회복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창35:11)는 언약의 말씀을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축복의 조상이 된 비결도 그의 예배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창12:7,8,13:4,18) 아브라함은 예배가 살아있었기에 그의 인생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예배의 회복입니다. 문제를 이길 힘도 예배를 회복하는 데 있습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예배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가정에서 가정 예배를 드리고, 직장에서 직장예배를 드리고, 또 교회에서는 다른 어떤 프로그램보다 살아있는 주일예배를 드릴 때 우리 영혼이 삽니다. 우리 문제가 풀립니다. 태산처럼 떡 버티고 서서 도무지 해결될 것 같지 않은 문제도 예배가 회복될 때 하나님께서는 기적같이 해결해 주십니다. 이 은혜가 함께 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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