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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달라지게 만듭시다 (빌 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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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릴찌어다. 아멘."

우리는 7월 첫째 주일에 맥추절을 지켰습니다. 오늘은 절기 후 둘째 주일입니다. 성경에서 ‘맥추절’을 '초실절'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칠칠절'이라고 하기도 하고, '오순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맥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목마름과 더위와 불 뱀과 전갈과 여러 민족들과의 전쟁들에 시달리며 힘겹게 살다가, 약속의 땅, 축복의 땅, 가나안에 입국하여 처음으로 곡식을 거두게 하신 것을 기념하며 매년 처음 익은 열매를 감사하였던 절기입니다. 참 감격스러운 날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의미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맥추절에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시었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를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을 감사하며 지낼 수 있어야 합니다. 2006년도의 지난 반년을 되새겨보면 어려움이 없지 아니하였지만 주님의 세밀하신 도우심과 은혜 가운데 오늘까지 이르게 된 줄로 믿습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우리에게도 이런 감격과 감사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인생 살다가 보면 나의 소원과 계획대로 안 되고, 이상하게도 경제와 건강과 인간관계와 물질관계가 얽히고, 고달플 때가 있습니다. 나의 현실이 짜증나고 낙심될 때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때라도 "네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려 보면, 믿음의 눈을 열고 하나님을 바보고, 십자가를 바라보면 보면, 반드시 감사할 조건은 있습니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이 시간에도 태풍과 장마로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병원에 있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잠시도 어려운데, 평생을 원치 않는 질병 때문에 병마와 싸우며 사는 사람도 있고, 뜻하지 않은 사고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면 오늘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건강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감사가 생깁니다.

우리나라에 보건 사회 연구원이 조사한 난치성 희귀병이 111종이나 되고, 환자가 108만 6,800명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왜 그런 병이 생기는지 원인도 모르고, 병명도 모르고, 병명을 안다고 해도 약이 없는 그런 질병들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살면서 질병의 문제 이외에도 크고 작은 어려움이 없는 가정은 없습니다. 물론 정도 차이가 있을 뿐, 평생 질병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 나보다 죄가 많아서 고통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고를 겪는 사람이 나쁜 일 많이 해서 그런 것 아닙니다.

같이 옆 사람과 서로 이야기 합시다. "움직일 수 있는 건강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영생의 소망을 주시고, 믿음 주심을 감사합시다." 아멘!

사람마다 형편과 처지는 각기 다릅니다. 그러나 헤아려 보면 나는 축복 받은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인사합시다. "당신은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이 시간 믿음으로 신령한 눈이 열려지시기를 축원합니다. 힘든 여건과 환경 속에서도 믿음의 눈이 열려져서 하나님을 보고, 볼 것을 보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구별된 축복을 받은 사람입입니다. 이 시산 예배를 드리는 성도 여러분 모두가 이런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믿음의 생각으로 바뀌어 지고, 말씀으로 우리 자신이 가진 가치관이 바뀌어 지는 일이 훈련되어지고, 체질화 되어 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실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불행을 느낍니다. 성도여러분은 마음에 평안을 되찾아 집으로 돌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이스의 유명한 선박 왕 '오나시스'가 돈이 얼마나 많은지 세계에서 몇 째 가는 재벌이었습니다. 자가용 제트 비행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사실 제주도에 큰 호텔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우리는 재벌이라고 하는데, 오나시스는 제주도 같은 섬을 열 개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섬 하나에 세계에 좋다고 하는 그림들, 보석들을 갖추어 놓고, 좋은 집과 최고의 돌들을 가져다가 오나시스 한 사람을 위해서 섬을 꾸밀 정도였습니다.

또 호화 유람선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사람을 위해서 수 백 명의 요리사가 동원되고 온갖 부족함이 없는 영광을 다 누렸습니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돌아가신 다음에 칠십 다 된 노인이 대통령 미망인인 재클린과 결혼하고 싶어 햇습니다. 그래서 재클린을 호화 여객선에 초청하여 왔더니 재클린도 너무나 황홀해서 정신이 나가버렸습니다. 그래서 둘이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나라 대통령 부인이 남의 나라 그리이스 사람하고, 칠십이 다된 노인하고 저럴 수 있나? 많은 사람들이 케네디를 좋아하고 그 부인인 재클린을 좋아했었는데, 허전해하고 섭섭해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24살에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그냥 떨어져 죽었습니다. 여기에 충격을 받고 '재클린'이 미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 후 오나시스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얼마 살지 못하고 이년 만에 죽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영광, 세계적인 부유함, 이 모든 것이 마음을 못 지키니까 풍랑에 깨어지는 배처럼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엄청난 빌딩과 수많은 섬과 자신의 제국을 가지고 있어도 자신의 마음을 잘못 가지니까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은 교훈해 줍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지만 많은 문제들에 시달리며 비록 힘든 여건에 살아가면서도 주님이 여러분 안에 거하셔서 여러분과 함께 하는 복된 심령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능력의 주님 앞에 마음의 짐도 내려놓고, 마음의 고민과 좌절시킨 상처들도 예수님의 피로 다 씻어 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 붙잡히게 됨으로 영. 육간에 연약한 부분도 치료되고, 회복되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동시에 힘겨운 인생살이 가운데에도, 마음도 평안하고, 육신도 건강하고, 생활에도 주님 주시는 평안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무리 강한 사람도, 조직도, 체제도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시면 무너지는 것은 쉽습니다. 그래서 시편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고 선언합니다. 우리 걸어가는 인생길에 하나님께서 평안의 복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1. 자족해야 가장 부요한 사람입니다.

본문 11절에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라도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면 가장 부유한 사람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 자족의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바울은 비록 자신이 곤경 가운데 처할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자신의 주된 관심이 아님을 밝히고 있습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로 번역된 헬라어 '엔 호이스 에이미'는 문자적으로 '어떤 환경에서라도 나는 존재한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곤경에 처한 그의 궁핍한 생활에 대해서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체념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오히려 외적인 형편이 어떠하든지 근심과 걱정으로부터 초연함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와 평강을 덧입고 있었으므로 외적 여건에 초연하여 자족(自足)할 수 있었습니다. '자족'으로 번역된 헬라어 '아우타르케스'는 신약성경에서 본 절에만 사용되었으며, 스토아 철학자들이 즐겨 쓰는 윤리적인 용어였습니다.

당시 '스토아 철학'에서는 스스로의 노력으로도 변경시킬 수 없는 불가항력적 형편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여 초조해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숙명적으로 여겨 그 가운데서 만족하기를 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자족의 생활은 스토아 철학자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의 자족의 비결은 그리스도 때문이었습니다(1:21).

주께서 주시는 것에 무엇이든지 만족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자녀, 부모, 배우자, 그리고 환경들에 만족하십시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비교하는 순간부터 불행이 시작됩니다.

이미 받은 것이 소중한 줄 알고, 이미 주신 것을 귀하게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혹 구해도 안 주신 것이 있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습니다. 아마 사람들이 달라고 한대로 다 주신다면 이 세상은 지옥이 될 것입니다. 풍성한 삶은 결코 소유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자족하는 것에서부터 옵니다.

어떤 처지에서도 감사하며 살아가는 행복한 마을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이 사탄에게 "너는 그 행복의 마을을 보았느냐?" 사탄이 말하기를 "그 마을 사람들이 감사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복을 많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라도 가진 것을 빼앗으면 곧 하나님을 배반하고 불평과 불만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을 시험해보기 위해서 세 번의 기회를 줍니다.

먼저 사탄은 행복한 마을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외투를 모두 빼앗어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마을 사람들은 "우리가 아직 벌거벗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러면서 감사하더라는 거예요.

다음으로 그 마을에 기근이 들게 했는데, 그 마을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겨우 한끼만 먹으면서도 "그래도 한끼라도 먹을 수 있어 목숨을 유지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러면서 감사하더라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사탄은 그 마을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의 집과 재산이 다 타버렸어요. 그런데 "그래도 목숨을 건졌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러면서 불평하지 않더라는 거예요.

사탄은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 한번만 기회를 더 달라고 하고는 천국을 이루며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탐욕을 넣어준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후로는 "내가 조금만 더 가졌으면 좋았을 텐데" 부족을 느끼고 불평하기 시작하기 시작하더랍니다. 그 동네에서 제일가는 부자도 만족을 느끼지 못했답니다. 동네 사람들은 서로 불평하며 싸우기 시작했고, 천국과 같던 마을은 지옥과 같이 변해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많이 가진다고 오는 것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참된 풍성함은 '자족함'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도움도 고맙지만 그보다 더 '그리스도로 인한 은혜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으로 풍족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고', '자족함으로 부요해질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신앙으로 자족하고 환경을 넘어서는 내적 평안을 바울은 누리며 산 것입니다. 바울은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가를 분명히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주님 때문에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온도계와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날씨가 추우면 내려가고 더우면 올라가는… 그러나 온도 조절기는 바깥 날씨가 추우면 온도를 올립니다. 너무 덥다 생각되면 오히려 온도를 내립니다. 환경에 지배당하는 삶이 아니라 오히려 환경을 지배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 자족의 마음은 그런 마음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합 왕'은 왕이니까 모든 것을 다 소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나봇'의 포도원이 탐이 나서 그것을 가지려고 사람을 죽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로마의 감옥'에 있습니다. 그런 불편한 삶의 자리에서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물질적으로 부요하고 편리하고 마음도 평안하면 더 좋겠지요. 그러나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생활환경과 조건이 좀 불편하다고 할지라도 마음속에는 평안함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오직 주님 위해 살다가, 전도하다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는데, “이것이 내 팔자다.” 한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의 당한 일이 복음의 진보를 가져왔다.” 그리고, 22절에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별히 가이사집 사람 중 몇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가이사’는 로마 황제의 칭호입니다. 황실 사람 중에 벌써 바울의 전도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의 감옥으로부터 로마를 변화시키는 일을 벌써 시작했습니다. '감옥이 선교의 센터가 된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죽지 못해 적응하고 맞추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현실을 바꾸어 나가는 힘!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사느냐? 내 상황과 여건이 어떻게 되었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바울의 인생관을 대표할 수 있는 말씀이 롬 8: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말씀입니다. 과정에서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고 어려운 일도 있고, 쉬운 일도 있습니다.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일도 있고, 많은 고통을 주는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한 결과를 이룬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계획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결국은 이루어지고 만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 고백합니다. 내가 원하는 일은 뭐든지 다 된다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세상 살아가면서 안 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금방 되려고 하는 일이 안 되는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참된 만족을 배울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내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문제와 장애물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해결해 나가실까? 어떻게 이끌어 나가실까? 어떤 결말을 주실까? 어떻게 바꾸어 나가시며 어떻게 회복해 주시며, 이 사태를 어떻게 역전시켜 주실까? ‘어떻게 승리하게 하실 것인가?’를 바라보는 기쁨, 그리고는 온전히 맡기는 여유와 평안은 믿음의 사람이 아니고는 도저히 알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는 기쁨과 평안입니다.

느헤미야 8:10절에 느혜미아는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고 말씀합니다. 주님 기뻐하는 사람이 되면 이 사람은 이미 승리하기 시작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능력은 가난과 궁핍함을 부와 풍요로 바꿀 수도 있거니와 가난과 궁핍 가운데에서도 승리하도록 도우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질병을 치료하고 회복하여 건강하게 하실 수도 있거니와 그 질병 가운데도 기뻐하고 평화를 누리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순종하며 따라가는 이 자족의 비결, 형편이 달라지고, 처지가 달라지고, 환경이 변한다고 할지라도 주님 주시는 자족의 비결을 배워 나감으로 힘겨운 인생살이에서 늘 이기는 삶, 기쁨과 평안이 충만한 삶을 사시는 행복한 성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주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본문 4: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바울은 모든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은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모든 권위 있는 사본에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가 구체적으로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딤전 1:12)라는 바울의 고백을 볼 때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어떤 환경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분임을 믿고 있었고, 이것은 그의 철저한 신앙 고백이며 강한 확신이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의 생명적 관계 안에서 모든 형편에서 자족하게 되고 이길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 생각을 바꾸고, 나의 언어를 바꾸면 모든 것이 바꾸어집니다. 이것이야 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밀이며 참된 능력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내게 능력을 주시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고, 마음과 사상을 바꾸지 아니하면, 아무리 교회에 오래 나와도 생활도, 환경도 바꾸어지지 않습니다. 인생이 복되게 열리지 않습니다. 가정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여러분의 생각이 믿음의 생각으로 바꾸어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를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죽이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것,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방법대로,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위해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언어가 감사의 말로 바꾸어지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돌보시면, 그곳이 사막이든지, 바다 한 복판이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광야 40년을 책임져 주셨습니다. 불경기든지, 경제 불황이든지 염려할 것 없습니다. 환경 좋다고 성공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돌보시는 한 우리의 미래는 안전합니다. 믿어지시면 아멘! 합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면 "네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것이라. 네 손으로 하는 일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 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멘!

인생의 승리를 향해 달려가는 지름길로 가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이해가 되는 일도 순종해야 하지만, 때로는 이해가 안 되는 일까지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믿음! 이것이 인생이 승리하는 지름길로 가는 방법입니다. 성도여러분! 같이 따라합시다. "이해되는 일도 순종하고, 때로 이해가 안 되도 순종합시다. 아멘!"

주님을 잘 따라가되, 감사하며 따라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는 축복의 전제 조건입니다. 주님은 복 받을 그릇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채워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 불평이 찾아오면 물리쳐야지 불평하기 시작하면 마귀, 사탄에게 믿음을 빼앗겨 버립니다. 그러므로 아직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만족스럽지 못할지라도, 축복된 삶을 이미 시작했으니 믿음의 길 걸어가게 하심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있는 것 헤아려 보고 감사하면 주님이 나머지 필요한 것도, 때를 따라 채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 다 준비하지 못하고 출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지만 그들이 광야 생활 가운데 굶주리지 않고, 벌거벗지 않았어요. 때를 따라 쓸 것을 40년간이나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 주셨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이스라엘을 책임지신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나의 하나님이 나의 형편을 아시고 나의 필요한 때를 아시기에, 때마다 일마다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

??본문에 4:18절에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4:16절을 보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고 한 말씀이 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복음 사역을 할 때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손수 노동을 하였습니다(살전 2:9; 살후 3:7,8). 그러나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의 물질적 필요를 공급하기 위하여 여러 번 그에게 쓸 것을 보내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을 도와준 정확한 횟수는 밝히고 있지 않지만 보편적으로 '한 번 이상'이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합니다만 풍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19절에서 빌립보 성도들의 필요를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것은 그들이 풍족한 가운데서가 아니라 부족한 형편 가운데서도 바울이 사역을 물질로 도와주었음을 암시해줍니다. 그러나 바울의 진정한 관심의 대상은 빌립보 교인들의 영적 성장과 열매에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감사한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 신앙생활하며 살아도 불평하며 짜증내며 사는 것은 적자 인생이고, 기쁘게 감사하며 사는 것, 남을 도와주며 사는 것은 흑자 인생입니다. 손해 보는 인생 살지 아니하고 남기는 인생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요. 성숙한 사람이요. 이런 사람, 하나님의 사랑도 받고, 사람들의 사랑도 받습니다. 사람들이 가까이 하고 싶고, 함께 있고 싶어 합니다. 불평하고 짜증내는 사람, 자연히 하나님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사람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모든 것을 재평가하여 살겠다는 중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주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신앙으로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3. 감사로 달라지게 만들어야 합니다.

본문 4:20절에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본문 19절에 바울이??'채우시리라'고 한 헬라어 '플레로세이'는 미래 능동태로 "하나님께서 반드시 채워 주실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고 믿는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때문에'는 '원망, 불평, 책임회피'가 포함되어 있지만 '덕분에'는 '감사와 기쁨과 소망'이 가득하게 됩니다. 혹시 나는 어떠한 자세로 살아왔는지 이 시간 한 번 점검해 봅시다. 하나님 덕분에, 아무개 덕분에, 무슨 일 덕분에, 교회 덕분에, 직장덕분에, 사업장 덕분에, 가정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감사가 많아지겠습니까? 감사하면 내 삶이 행복해지고 변화가 일어 납니다. 나 자신이 더욱 성숙한 인격으로 달라집니다. 감사한 만큼 내 마음도 기뻐집니다. 그래서 살맛이 나는 인생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은 자기가 계획한 대로 일이 잘되어지고, 조건이 좋아지고, 환경이 풍성해지면 착가하여 마치 자기 힘으로 인생사는 줄 압니다. 그래서 자기를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기가 쉽습니다. 등 따뜻하고 배부를 때 믿음 갖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8:12-14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데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고 권고하셨습니다. 하나님 덕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일들이 계획한 대로 잘되어지고, 조건이 좋아지고, 환경이 풍성해질수록 하나님 덕분인 줄 분명히 깨닫고 감사함으로 더욱 큰 축복의 자리로 들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동시에 잘 될 때는 물론이거니와 안 될 때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에게 있던 것을 잃어버리게 될 때, 이 때가 참으로 중요한 시기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나에게 있던 모든 것, 내가 가지고 있던 것 중 어느 것도 처음부터 내가 가지고 온 것 아닙니다. 모태로 부터 빈손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이 땅을 떠나게 될 때도 역시 빈손으로 떠나 갈 것입니다. 현재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그것이 앞으로 나에게 유익한 것인지 그것때문에 고통을 받게 될 것이지 우리는 사실 잘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분명히 이익이 되는 것 같아도 내일에 손해가 되는 일이 있고, 오늘 손해가 되는 것 같으나 내일 큰 이익이 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같이 옆 사람과 서로 보며 이야기 합시다. "잘 될 때 감사합시다. 안 될 때도 감사합시다. 꿈속에서라도 감사합시다. 아멘!"

우리 앞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 목자장 되신 주님게서 선하게 인도해 주시며, 준비된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의 현장에서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라도 감사만은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가장 유익하고 복된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를 따라 새 힘을 주시고 역경을 돌파하고 이길 힘을 주십니다. 감당할 만한 능력을 주실 뿐만 아니라 가장 좋고,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지금은 사방팔방이 암흑과 같아도 없던 길도 만들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축복의 체험이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복빌어 드립니다.

"안 될 때라도 감사하라고 했으니 억지로라도 감사해야지" 라고 혹시 마음을 먹고 계십니까? 아닙니다. 막연한 감사가 아니라 주님께서 더 잘되게 하실 줄로 믿고, 그것을 바라보며 감사해야 합니다. 요셉이 어려움을 당했는데, 생각대로 계획대로 안 되었는데, 지나고 보니 더윽 더 잘 되었습니다. 형들에게 의해 미디안 상인들에게 종으로 팔려가고,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 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애굽왕 바로에게 발탁되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 가족을 살리고, 애굽과 팔레스타인 전역을 극심한 7년간의 흉년에서 건져 내었습니다.

다윗이 당한 어려움이 오히려 그를 더 잘되었습니다. 사울이 죽이려고 계속해서 쫒아다니까 결국 하나님께서 사울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2대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서로 인사합시다 "어려움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더 잘되게 하실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욱 더 잘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합시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께 의지하는 계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힘들 때일수록 기도하셔서 하나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고, 하늘의 은사를 공급받고, 역경과 난관을 돌파하는 힘을 공급 받으시기 바랍니다. 지금의 어려움은 하나님께서 더욱 놀라운 축복을 주시기 위한 훈련의 방법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현실을 뛰어넘어 감사와 소망을 가지므로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의 손을 내밀어 주님 주신 약속을 붙드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시간 모든 성도 여러분들께서 주님의 십자가를 붙드는 축복의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앞으로 내 인생은 더욱 환경을 뛰어넘어 감사하며 살겠다는 생각으로 내 생각과 중심을 바꿉시다.

본문 11절에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와 평강을 덧입고 있었으므로 외적 여건에 초연하여 자족(自足)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현실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과 살아하심을 확신하며, 더욱 유익하게 인도해 주실 미래 때문에 감사합시다. 믿음으로 축복의 문을 여는 복된 삶을 살기 위해 부정적인 생각은 버리고, 염려도 버리고, 십자가를 붙들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며, 두려움 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감사하고, 기뻐하고, 소망을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의 문이 활짝 열려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와 성도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이 시간 하늘의 문을 열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모든 일이 그러하지마는 특별히 질병으로부터 회복되기 원하는 사람은 믿음과 함께 감사하는 마음 있을 때 회복의 은혜가 속히 임할 줄로 믿습니다. 감사를 미루지 마십시오. 오늘도 들려주신 축복의 말씀들이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 그대로 이루어지고 열매맺는 아름다운 역사가 나타나시기를 축원합니다. 날마다 새로운 감격과 생기가 넘치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오늘 19절은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며 사는 것에서부터 시작됨을 가르쳐줍니다. 이미 우리는 복된 인생길을 살 수 있도록 바른 길 들어섰습니다. 축복의 삶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렵고 힘든 시대 속에서도 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시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임마누엘의 축복이 가장 큰 복임을 믿으시고 감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하나님이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바울이 고백한 이 말씀은 제한된 축복이 아닙니다. "모든" "쓸 것을 채워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미리 필요한 만큼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미리 주셔서 그것을 나누어 쓰도록 하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쓰는 만큼 채워주시는 분이시라는 말입니다. 쓰고 난 빈자리를 채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물물의 이치를 생각하면 축복의 원리가 쉽게 이해가 됩니다. 우물물은 쓰는 만큼 채워집니다. 쓰지 않는다고 넘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고여 있는 물은 더러워지고 점점 물이 말라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채우시기를 원하시고,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지만 때로 우리의 그릇이 너무 작기 때문에 작은 믿음으로 큰 복을 감당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그릇이 깨끗하지 못하기에, 다른 것들로 차 있어서 주님이 채워 주실 수 없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지난 날 헤아려 보면 많은 것 받았습니다. 없는 것 생각하면 불평스러울 수도 있겠지마는 볼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사람에 비하면 내가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감사의 조건이 될 수 있고,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사람 생각해 보면 일할 수 있는 건강 주신 것도 감사하고, 일할 수 있는 일터를 주신 것도 감사해야 합니다. 더더욱 우리에게 복된 말씀을 주신 것도 감사하고, 어려운 시대 가운데에도 성령께서 함께 하심으로 감당할만한 힘을 주심에도 감사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아직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만족하지 아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축복된 삶을 이미 시작했으니 믿음의 길 걸어가게 하심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있는 것 헤아려 보고 감사하면 주님이 나머지 쓸 것도 때를 따라 채워주실 것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 다 준비하지 못하고 출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지만 그들이 광야 생활 가운데 굶주리지 않았습니다. 벌거벗지 않았어요. 때를 따라 쓸 것을 채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때 "우리 가정의 하나님"이 되실 때 "우리 교회의 하나님"이 되실 때 꼭 필요한 때에 채우시고 공급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가장 큰 감사의 표현은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미 이 시간에 은혜의 자리, 복된 자리에 나오셔서 몸을 드리고 시간을 드립니다. 바라기는 우리의 온전한 마음도, 정성도 드릴 수 있다면 주님 더욱 기뻐 받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각기 처한 형편과 처지는 다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중심이오, 진실이더라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진실한 감사의 마음 회복하셔서 주님이 기뻐하시며 우리를 향하여 마음껏 복을 주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주님위해 살기를 원하는 자들을 주님 결코 외면하시지 않으시고, 사랑하는 자녀들을 결코 가난에 찌들려 살도록 버려두시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삶은 운명도 아니고, 팔자도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달라지게 할 수 있습니다. 자족합시다. 주안에서 능력을 공급받아 삽시다. 감사하는 인생이 됩시다.

이 세상에 우연처럼 일어나는 일들이 많이 있지마는 결코 우연은 없습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은 환경이나 사람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가장 정확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때로는 내 눈에 확실히 보이는 것도 틀릴 때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에 속지 말아야합니다. 언제 어떤 경우에 처하더라도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아버지께 더욱 사랑 받을 것이며 주님께서도 사랑하셔서 나타내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환경과 여건을 넘어서서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과 주님과 동행하며 살고, 진실한 감사를 회복하시는 절기가 되어져서 우리의 나아가는 길이 점점 열려지고 영. 육간에 풍성한 삶을 회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황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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