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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점점 강해지는 가문이 되라 (삼하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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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달라스 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영적 리더쉽에 대한 사역을 하고 있는 스티브 파라(Steve Farrar)는 성경의 인물들을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놓았습니다. ‘일찍 잘려나간 사람’, ‘비참하게 끝낸 사람’, ‘그저 그렇게 끝낸 사람’, ‘끝까지 잘 끝낸 사람’등으로 인물들을 분석해 놓았습니다. 사울 왕은 시작은 창대했으나 마지막은 “비참하게 인생을 끝낸 사람”이고, 다윗은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까지 잘 끝낸 사람”, 유종의 미를 거둔 사람, 처음보다 나중이 창대해진 인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의 집처럼 성도 여러분의 가정도 처음보다 나중이 심히 창대해지는 가정, 점점 강해지는 가정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먼저 점점 약하여 가다가 종국에는 비참하게 끝나버린 사울의 집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울은 보통 사람보다 키가 어깨 위는 더 크고, 용모가 준수하고 출중하여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초대 왕으로 지목되기에 넉넉한 인물이었습니다. 게다가 전쟁에도 능하여 카리스마까지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다윗은 이새의 말째로 키가 작은데다 인물도 볼품이없었을 뿐만 아니라 사내답지 못하여 아버지 이새가 별로 기대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들에서 양이나 치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사울과 비교하여 볼 때 다윗은 나이로 보나 인물, 경험, 위치 등으로 보나 그 어느 것 하나 나을 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아말렉과의 전쟁을 계기로 결정적인 몰락의 길을 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공격하여 남녀노소, 심지어는 젖 먹는 아이와 짐승들까지 모조리 죽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아말렉 족속이 이스라엘의 가장 약한 어린이와 노인들 만을 골라 공격한데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거스려 아말렉 왕을 죽이지 않았고, 짐승들 중 가장 좋은 것들은 아깝고 탐이 나서 숨겨 두고 가치 없고 낮은 것들만 진멸했습니다. 이러한 사울의 행동에 하나님은 한탄하시며 사무엘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삼상15:22-23)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사울 왕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사울 왕에게서 하나님의 신, 성령이 떠나가고 대신 악신이 들게 되었습니다.(삼상16:14) 그리고 하나님은 장차 이스라엘 왕으로 이새의 말째인 목동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거인 골리앗을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 싸워 승리하게 됩니다. 이 일로 인해 다윗은 비록 어리지만 차세대 지도자로 급부상하며 날로 인기가 높아지더니 사울 왕을 앞지르기 시작합니다.(삼상18:7-9) 이에 사울 왕은 심히 불쾌해 하며 이는 왕권에 대한 도전이 아니고 뭐냐며 이때로부터 다윗을 시기함으로 주목하며 다윗을 죽이기로 작정합니다. 사울 왕의 이러한 치졸한 정치행각에 악신은 더욱 강하게 사울을 사로잡게 됩니다. 이후 사울 왕은 온갖 수단 방법을 다해 다윗을 죽이고자 하지만 모두 실패로 끝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라는 말씀은 바로 이때부터 빚어진 양가의 갈등과 적대관계를 두고 한 말입니다. 이 두 집 사이에 갈등과 적대관계에서 몰락하게 되는 집은 하나님께서 이미 떠난 집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이나 가정에 대해 갈등이나 적대관계를 가지고 있거든 몰락의 문턱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결국 사울 왕은 블레셋과 전쟁에서 요나단을 비롯하여 세 아들과 함께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보셋이라고 하는 변변찮은 아들 하나만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사울 왕 전사 후 이스라엘의 아브넬 군대 장관이 그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서 왕을 삼았습니다. 거기서 이스보셋은 견딜 수 없는 수모를 당합니다. 그 수모는 아버지 사울에게 리스바라는 첩이 있었는데 그 여자를 군대 장관 아브넬이 취한 것입니다. 왕이 죽자 왕의 여인을 그 신하가 취하는 행동은 왕의 실권을 그 신하가 장악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보셋이 왕이 되긴 되었지만 허세라는 것이고, 족보로 말하면 군대장관 아브넬의 아들이라는 수모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보셋 왕이 아브넬을 불러 네가 어찌하여 내 아버지의 첩을 통간하였느냐고 항변합니다. 이에 아브넬이 분노하여 “내가 유다에게 빌붙어 먹고 사는 개로밖에 보이지 않습니까?”라고 호통 치며, 없어진 나라를 만들어 왕으로 세워주었는데도, 죽어버린 왕의 첩 하나 건드린 것이 뭐 잘못되었느냐며 도리어 화를 냅니다. 그리고 나라를 다윗에게 바치겠다고 협박합니다. 이같은 아브넬의 호통과 협박에 이스보셋은 입도 뻥끗 하지 못합니다. 사울의 집이 이렇게 비참하게 몰락한 것 입니다. 결국은 그 아브넬이 다윗에게 빌붙어 먹는 개처럼 나라를 흥정하러 갔다가 요압장군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므로 사울 왕가는 비극적인 종말을 고하게 됩니다. 참으로 시편127:1 말씀 그대로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2. 그러면 이렇게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해지다가 몰락하고, 다윗의 집은 점점 강해지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다윗이 사울보다 죄와 허물이 적어서 이겠습니까? 사실 성경에는 사울 왕보다 다윗의 허물과 죄가 더 많이, 그리고 낱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간음죄, 밧세바를 자기 아내로 삼기 위해 충신 우리아를 전쟁터에 내보내 함정에 몰아넣어 살인한 살인죄, 사울의 추격을 받아 가드로 도망가 살기 위해 대문짝을 긁적거리기도 하고,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치광이 행세를 보인 비겁한 모습(삼상21:13), 등등 성경은 사울보다 다윗의 죄와 허물, 그리고 그의 약점들을 속속들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생애를 통해 하나님의 많은 사랑을 받아 점점 강해져 갔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남달리 생활이 깨끗하고 죄와 허물, 실수와 약점 등이 남보다 적어서 입니까? 오히려 하나님의 크게 쓰임 받은 인물일수록 그들의 약점과 실수도 많고 지은 죄와 허물도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크고 많은 죄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점점 강해지는 축복을 받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은 다음 성경에서 확실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성경 사무엘하 5:10과 사무엘상 18:12을 보겠습니다.
(삼하5:10)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삼상18:12)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다윗이 점점 강해지는 축복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셨습니다.(삼하8:6)

3.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어떤 면모를 보시고 함께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는 첫 번째 이유는 그는 정직하게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시편에 보면, 다윗의 참회시들이 무려 7개나 나와 있습니다.(6, 32, 38, 51, 102, 130, 143) 특히 시편 51편은 다윗이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인 후에 선지자 나단의 준엄한 책망을 받고 바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회개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비록 왕이지만 하나님의 종의 통렬한 죄의 지적 앞에 겸손히 금식하며 침상이 썩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외면하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또 다른 모습을 보겠습니다. 사무엘 상 21장에 보면,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놉 땅으로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부탁하여 떡을 얻어먹고 칼을 얻어 무장을 하고 피신하게 됩니다. 이때 도엑이란 자가 이 사실을 사울 왕에게 고자질하므로 엄청난 사건이 터집니다. 지명 수배자 다윗을 숨겨준 것에 대해 사울 왕이 홧김에 제사장 85명을 다 죽이고 그 성읍 사람들과 가축까지 몰살을 시켜버립니다. 아히멜렉의 아들 가운데 아비아달이 간신히 살아 사막에 피해 있는 다윗에게 이 사실을 아룁니다.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무려 85명이나 몰살시킨 엄청난 사건 소식에 다윗의 고백은 전혀 뜻밖이었습니다. “이같은 비극적인 사건의 책임은 모두 내 탓이로다.”(삼상22:22) 여기서 우리는 다윗의 태도가 사울과는 전혀 다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엄청난 사건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건의 책임을 밀고자 도엑에 돌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정직하게 자신의 실수와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남을 탓하거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아히멜렉을 찾아갔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런 엄청난 비극이 일어났다며 자신의 책임을 솔직히 인정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사실 다윗은 3일 동안 성별된 사람만이 떡을 먹을 수 있다는 제사장의 말에 자신과 일행 모두가 이미 성별된 사람이라며 거짓말을 하고 떡을 얻어먹었습니다.

(삼상21:5) 이렇게 보면 다윗에게도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이 점을 들어 자신의 실수와 책임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시는 이유는 바로 이렇게 자신의 죄와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회개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어떤 목사가 심방을 갔습니다. “아주머니, 지난 주일에 예배당에 오셨습니까?” “그럼요.” “제가 무슨 제목으로 설교했는지 기억하십니까?”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부인은 섭섭한 눈치를 보이는 목사를 모시고 목장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양털 담기 시루에다가 물을 서너 번 길어 부어 보였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모르겠습니다.” 부인은 다시 물을 길어 부은 후에 목사에게 물었으나 여전히 모른다고 대답하자 찬찬히 설명했습니다. “양털 담긴 시루에다가 물을 길어 부을 때에 물은 다 새어 빠져 나갔으나, 그 속에 있는 양털은 깨끗하게 희어지지 않았습니까?”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죄를 지적받을 때마다 즉시 정직하게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아 자신을 하나님 앞에 정결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51:7에서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시51:7)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정직한 회개 기도를 들으시고 용서하시어 정결케 하시는 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시편 7:10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7:10)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하나님은 분명히 정직한 마음으로 회개하는 사람과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한편 사울의 모습을 보겠습니다. 사울 왕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지은 죄를 지적받고 책망을 받자 이렇게 말합니다.
(삼상15: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분명히 내가 범죄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범죄하게 된 이유는 백성이 두려워서 백성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죄를 인정하기는 했는데 그 죄의 책임을 백성에게 전가시키는 정직하지 못한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같이 정직한 회개 기도를 원하십니다. 자신에 대해 정직하고 하나님 앞에 진실된 마음으로 회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정직한 회개 기도에 하나님은 성령으로 함께 하시고, 죄를 인정하면서도 정직하지 못하고 변명을 일삼는 회개 기도에는 악령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어떤 임금이 백성의 마음을 시험해 보려고 백성들에게 꽃씨를 나누어 주면서 화분에 심어 잘 가꾸어 제일 꽃을 예쁘게 피우게 한 사람에게 상을 많이 주고 그 대신 꽃을 도무지 못 피게 한 사람에게 벌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꽃이 다 피일 때쯤 되어서 모두 그 화분을 가지고 길가에 나와 진열해 놓고 임금님이 마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기로 했습니다. 다 진열된 후 임금이 지나가면서 보니까 모두 훌륭하게 꽃이 피여 있었습니다. 그 중 어느 소년이 꽃 없는 화분을 들고 나와서 그대로 그 옆에 서서 눈물을 흘리며 서 있는데 임금님은  예쁘게 피여 있는 꽃들은 다 눈을 찡그리며 보더니 이 꽃 없는 화분을 보고 기쁜 얼굴로 그 소년을 불러 칭찬하여 큰 상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꽃씨를 받아 심었으나 나지 않음으로 벌 받을까 두려워 또는 상을 타려고 부정하게도 다른 꽃씨를 심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한 소년은 나지 않는 것을 정직하게 꽃 없는 화분 그대로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많은 화분에 아름답게 피어 있는 꽃들은 요화(妖花), 즉 부정을 통한 요사스러운 꽃들이었습니다. 교회 안에도 얼마든지 정직하지 못하게 피우는 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기도가 유창하고 믿음이 대단한 것 같고 봉사가 뻑쩍지근한데 정직하지 못하면 요화에 지나지않습니다. 봉사를 하거나 회개 기도를 할 때 정직한 마음으로 하셔서 성령이 함께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는 이유는 그의 신앙 인격에 있습니다. 사울 왕의 추격을 받아 도망자의 신세가 된 다윗이 한번은 하길라 산에 숨어있었습니다. 이를 알게된 사울이 군대 장관 아브넬을 거느리고 다윗을 추격하여 다윗이 숨어있는 지역에 진을 치고 잠시 누워 쉬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윗은 신하 아비새와 함께 사울이 자고 있는 곳까지 아무도 모르게 침투해 들어갔습니다. 사울은 머리맡에 창을 꽂아 두고 자고 있었고, 아브넬과 병사들은 사울을 둘러 누워서 자고 있었습니다. 절호의 기회를 맞은 이 때 아비새가 말합니다.

삼상26:8-11) 하나님이 오늘날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나로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이에 대한 다윗의 답변을 보겠습니다.

(9)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10)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 죽을 날이 이르거나 혹 전장에 들어 가서 망하리라 (11)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끈질긴 사울 왕의 추격에 종지부 찍을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라.”며 하나님 말씀에 철저한 그의 신앙 인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사 기름 부은 사람은 어떠한 경우일지라도 그 생명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고 반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름 부음을 받은 사울의 생명을 자기 자신이 처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에 맡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 죽을 날이 이르거나 혹 전장에 들어가서 망하리라.” 심지어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한 사울과 요나단의 뼈까지도 찾아다가 조상의 묘에 장사해주었습니다.

(삼하21장) 죽은 사울이 그리워서였습니까? 요나단과의 우정을 생각해서 사울의 뼈를 찾아왔습니까? 7년이라는 지긋지긋한 도망자의 생활을 돌아보면 이미 죽은 사울의 뼛조각을 찾아올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의 뼈를 찾아다 장사지 내게 한 것은, 바로 죽은 사울의 뼈일지라도 한 때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웠던 하나님의 종이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존중해서 그런 것입니다. 사울 자체를 존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었다는 사실을 존중한 것입니다. 이렇게 다윗은 철저하게 하나님 말씀에 입각한 신앙 인격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같은 다윗의 신앙 인격을 기뻐하시며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사울 왕은 다윗을 숨겨주었다 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 85명, 그리고 그 성의 남녀 아이들, 젖 먹는 애들까지, 그리고 모든 짐승들을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무참하게 죽여 버렸습니다. 왕권에 눈이 뒤집히고, 시기 질투에 눈이 멀어 하나님 말씀이 안중에 없는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를 극복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모세는 시기를 극복한 위대한 지도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자신을 돕는 장로 70명을 성전(장막)에 둘러 세우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임하게 하신 성령을 그 70명의 장로들에게도 내려 주셨습니다. 성령이 임하자 70명의 장로들이 예언하다가 그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장로에 녹명된 자 중에 엘닷과 메닷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이들은 성전(장막)에 나오지 않고 자기들 거처(진) 안에 있었는데도 성령이 임하여 예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여호수아가 모세에게 이르기를 “어르신, 저들이 예언하지 못하게 말리소서.”(민11:28)라고 부탁합니다. 모세를 섬기며 모세의 후계자로 선택된 여호수아는 혹 다른 사람이 자기 자리를 넘보지 않을까 시기하는 마음이 생겼던 모양입니다. 이때 모세는 “네가 나를 위하여 그들을 시기하느냐? 나는 모든 백성이 다 예언을 하고 하나님께서 모든 백성에게 성령주시기를 원하노라.”(민11:29)고 말합니다. 과연 모세는 시기심을 극복한 위대한 지도자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가인은 자신의 예배가 잘못된 것을 깨닫고 회개하기 보다는 동생 아벨을 시기하여 돌로 쳐 죽였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시기하면서부터 악신이 들어가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시기심을 극복하지 못하면 마귀에 사로잡혀 불행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세, 미리암, 아론은 삼남매입니다.

미리암이 첫째이고 둘째가 아론이고 막내가 모세입니다. 그런데 막내인 모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고 은근히 시기하고 미워하던 차에 모세가 어쩌다 구스 여자를 아내로 맞았습니다. 이 때 미리암이 기회는 이 때다 싶어 아론과 합세하여 흑인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며 모세를 비방했습니다. 비방 내용은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민12:2)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투덜거리는 말을 들으시고, 미리암과 아론 이 두 사람을 성전 입구에 세워 놓고 호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겁도 없이 내 종 모세를 비방하느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환상이나 꿈으로 말하지만 내 종 모세에게는 직접 말한다. 성전에 충성된 자는 나의 종 모세밖에 없다.” 이 말씀이 떨어지자 곧 주모자 되는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자기 동생으로만 알고 영적 지도자인 모세를 비방하다가 문둥병에 걸린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행진이 일주일이나 지연되었습니다. 시기 질투는 이처럼 무서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한 가정이나 교회도 마찬가지로 그 치졸한 다툼과 분열은 대부분 이 시기 질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시기와 질투를 극복하지 못하면 마귀에게 쓰임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게를 담은 바구니에는 특별히 뚜껑이 필요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게 한 마리가 바구니 둘레를 기어오르면 다른 게가 쫓아와서 반드시  끌어 내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게들은 결국 바구니 바깥으로 나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시기와 질투는 이처럼 자신은 물론 그 공동체에까지도 막대한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서양에 있는 한 유명한 대학에서 한 동양 사람이 늘 일등을 했고 브라운이란 사람은 그  나라 사람인데 늘 2등만 해서 친구들이 아쉽게 여겼습니다. 그러다가 그 동양 학생이 맹장염에 걸려 수술하느라고 여러 날 결석을 하게 되자 브라운의 친구들은 은근히 좋아하며 이번 학기에는 일등을 하리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학기말 시험을 보자 동양 학생이 또 일등을 하더랍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니까 그 동양 학생이 고백하기를 병원에 있을 때 브라운 학생이 라이벌이며 적수인 자신을 매일 찾아와서 강의 들은 것을 보여주고 설명해 주어서 여전히 일등을 했다고 하면서 “나는 공부벌레가 되어서 성적으로 일등은 했지만 인격적으로 브라운을 따라갈 수 없으며 훌륭한 인격자인 그를 존경한다.”라고 하더랍니다. 시기 질투를 극복한 브라운 학생의 인격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울 왕은 시기 질투로 인해 신앙 인격에서 실패한 사람이고, 다윗은 철저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신앙 인격에서 승리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철저한 신앙은 그 사람의 인격을 아름답게 할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철저한 신앙이 점점 깊어지면 더욱 더 인격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법입니다. 그러나 가짜 신앙일수록 인격에서 실
패하기 마련입니다. 신앙 인격에서 승리한 가문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점점 강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 왕처럼 처음보다 나중이 점점 더 좋아지는 유종의 미를 거두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큰 나무는 하루아침에 자라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점점, 차츰차츰 탄탄하고 바르고 곧게 자라는 법입니다. 교회도 비록 세상에서 겨자씨처럼 작아보여도 그것이 점점 자라서 새들이 와서 깃드는 관목으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씩 하나씩 기초를 튼튼히 다지며, 갖추어야 할 것들을 갖추어가며, 넘어야 할 산은 반드시 힘이 들지라도 넘어야 가야하는 것이지 대충 비껴가거나 넘어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과 신앙이 골고루 성장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초가 다져질 때 교회는 건강하고 튼튼하게 그리고 점점 강하게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상 정직한 회개 기도와 하나님 말씀에 철저한 신앙 인격으로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는 가정과 교회가 되시어 점점 강해지는 여러분 가정과 교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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