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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은 누구신가? (마 16: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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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생각하며 우리의 신앙 고백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예수님은 이제 갈릴리 사역을 마무리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십자가를 지셔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까지 교육해오셨던 제자들의 신앙을 점금하기 원하셨고, 제자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한 질문은 예수님에 정체성에 관한 일반인의 객관적인 견해를, 또 다른 한 질문은 제자들의 주관적인 견해를 묻는 것입니다. 이 질문들은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하나의 질문으로도 요약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교수님이 4년 동안 가르친 후에 졸업시험으로 단 한 문제만 내었다면, 다른 것은 다 잊어버릴 지라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한 가지가 그 질문 속에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 한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서, 지난 4년 동안 정말 배울 것을 제대로 배웠는지, 알고 있어야 핵심을 바르게 알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다는 의도 일 것입니다. 또한 이는 교수 스스로에게도 교육이 올바로 되었는지 평가할 수 있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이제 3년 가까이 제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들에게 많은 가르침들을 주셨고, 많은 기적들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나의 가르침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을 무엇이라 하느냐?’라거나, ‘너희는 내가 행한 기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적을 무엇이라 하냐?’라고 묻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도 중요하고, 예수님의 사역도 중요합니다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인격 자체에 대한 올바른 이해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과 사역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바르게 알리는데 핵심이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이제까지 당신님께서 사역하신 결과, 곧 가르침과 전도와 이적 행함들의 결과에 대해서 점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에 제자들은 사람들이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14)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을 신성 모독자나 귀신들린 사람으로 취급하는 부정적인 견해도 있었습니다만, 그것은 소수 악당들의 견해이고 일반 유대 백성들은 전반적으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있었던 사람은, 그 내용이 세례 요한과 유사해서인지 세례 요한이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했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능력의 선지자 엘리야로, 예수님의 은혜를 체험했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로 기억했습니다. 이런 저런 의견이 있었지만, 어째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대한 선지자 중의 한 분으로 여겼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의 의견을 듣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5). 아마도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의 정체와 관련해서 무리들보다는 좀 더 나은 견해를 가지고 있기를 기대하셨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가끔씩 필요할 때마다 예수님을 찾아왔던 무리들과는 달리, 제자들은 24시간 주님과 공동생활하면서 훨씬 많은 말씀들과 이적들을 목격한 증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가끔씩 단편적으로 예수님을 경험한 사람들과는 달리 종합적으로 예수님과 교제하며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해서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던 이유는 주님을 메시아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제자 생활 처음부터 그들은 줄곧 예수님을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고백의 내용에는 처음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상당히 달라진 어떤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 사람들의 대답을 들으시고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던 예수님께서, 이 대답을 들으시고는 매우 기뻐하시면서 베드로를 칭찬하셨습니다. 말하자면 베드로는 예수님의 시험에 A+학점을 받은 것입니다.

사람들의 대답과 베드로의 대답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요? 베드로의 고백이 무엇 때문에 주님을 그토록 기쁘시게 했을까요? 사람들은 예수님을 참 좋은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위대하기도 하고, 겸손하기도 하고, 은혜로우시기도 한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견해는 예수님이 ‘인간’이시라는 사실을 넘어서지는 못합니다. 일반 유대인들이 기대하였던 메시아는 다윗과 같은 훌륭한 통치자, 곧 ‘인간’ 메시아였습니다.

반면 베드로는 ‘인간’이신 그분께서 또한 ‘하나님의 아들’, 곧 신성을 가진 분이라는 것까지 고백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단순히 위대한 인간의 차원에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은 사람이신 그분은 또한 하나님이시라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이시면서 동시에 ‘하나님’이심을 고백한 이 대답이 얼마나 주님을 기쁘시게 했는지는 17-20절까지 나타난 주님의 반응에 그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17a) 여기서 ‘복이 있다’는 말은 산상 보훈에서 많이 사용되었던 ‘마카리오스’라는 단어로서 더 이상의 복이 있을 수 없는 최상의 복을 의미합니다. 멋진 대답을 했기 때문에 앞으로 엄청난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까? 전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미 베드로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복된 이유는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상태 에 이르렀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르게 고백하고 바르게 따를 수 있는 복을 이미 받은 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해서 베드로가 이런 복된 상태에 있게 될 수 있었는지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7)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었던 것은 베드로의 힘과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일방적인 은혜를 베푸셔서 영적인 눈을 열어 주셨기 때문에, 사람이신 그분이 또한 하나님이심을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셔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바르게 알고 고백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보실 때 너무 너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흔히 ‘예수 믿고 복 받는 다’고 말하지만 사실 ‘예수 믿는 복’이 최상의 복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고, 의롭다고 칭함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늘나라를 상속받습니다. 우리 주님과 함께 영원히 왕 노릇 하게 됩니다.

그런데 믿기만 하면 될 것 같은 이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 믿은 지 오래된 분들은 주변에 어울리는 사람들이 대체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월등히 많습니다. 우리나라 개신교 성도 수를 25%라고 인정한다 해도 75%는 불신자입니다. 세계적으로 예수님을 참으로 믿는 사람들이 10%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가끔 기독교인과 관련된 기사에 대해서 인터넷 댓글을 살펴보면, 기독교에 대해서 굉장한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예수님을 단지 도덕군자처럼, 곧 훌륭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일이, 아주 쉽고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실제로 그렇게 한 사람은 소수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많은 가르침들과 많은 이적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신분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시작부터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1:1, 16, 17, 18) 했고, 2:4절에서는 왕과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탄생 때에 ‘그리스도’의 태어날 장소를 두고 토론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는 시점에는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3:17)고 증거합니다. 11:2절에서는 하신 모든 일에 대해서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들었다고 표현합니다. 심지어 가다라 광인의 입을 통해서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8:29)로 증거되고 있습니다.

예수님 이후에도 그분의 제자들을 통해서 끊임없이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가르쳐져 왔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사를 살펴보면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바르게 대답하지 못하는 단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교회사에 등장한 거의 대부분의 이단들이 그 분이 ‘참 하나님’이심을 부인하거나, 그분이 ‘참 인간’이심을 부인했습니다.

어떤 분이 예수님을 만난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자기도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2년 동안 성실하게 성경을 공부 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입대하면서 군 생활 동안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기도제목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전역하기까지 도무지 마음에 감명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취방에서 혼자 밥을 먹으며 찬양을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음에 예수님이 믿어졌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영적인 눈이 열렸고, 그 감격스러운 마음을 제게 문자로 알려왔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내가 원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먹고 사느라 바빠서 나중에 늙으면 제대로 믿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언제든지 자기가 원하기만 하면 예수님을 믿을 수 있을 것처럼 위험한 착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야 깨달을 수 있고 믿을 수 있습니다. 내가 성경을 잘 가르치고, 내가 설교를 잘 한다고 다 믿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치셨으나 많은 무리들 중에서 예수님을 제대로 믿은 사람은 소수였습니다. 심지어 12제자들 중에서도 가룟 유다는 끝내 예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에 대해 바르게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믿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엄청난 복을 받은 증거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바르게 가르쳐 주는 것은 이웃과 친척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전하는 이것이 신앙생활의 초점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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