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또 하나의 나 (롬 7:14-20)

  • 잡초 잡초
  • 358
  • 0

첨부 1


또 하나의 나(롬 7:14-20)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 대하여 잘 정리되어 있습니까?

오랫동안 신앙생활 하셨음에도 믿기는 믿는데 아는 것은 맞는데 그것들이 정리되어 있지 못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복음에 대하여 자신의 영성 내지는 자신의 내면세계에 있어 신앙생활하면서도 가끔은 혼란스러워 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율법에서 자유했다 배웠음에도 여전히 율법앞에서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나인데 안타깝게도 여전히 내 안에 또 하나의 나가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에서 용서받은 나라 하였는데 믿었는데 여전히 내 안에 또 하나의 나는 죄 가운데 매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로마서를 기록한 바울 사도는 이것들로 인하여 몹시 혼란스러워 할 정도였습니다. 어느 정도입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표현된 바울의 고민이 무엇입니까? 예수도 만났는데 구원받았음을 아는데 용서받았음을 아는데 아니 사도가 되었는데 나의 원하는 바 선을 행하지 않고 원치 아니하는 바 죄를 짓는 또 하나의 나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안의 나를 죄가 사로잡아버렸다는 것입니다. 자꾸만 나의 원하는 바와는 달리 원하지 않는 것에 행동하는 내 안에 나를 나로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나 외에 내 모습하고 내 모양이라고 바울사도는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본문을 보면서 바울이 더 대단해 보이는 것은 사람이 이렇게 솔직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약한 것을 약한 모습으로 내어 놓는 것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숨기잖아요 아는 것처럼 말입니다. 강한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 바울은 자기의 고민하는 바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자기의 고민하는 바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잘 알고 여러분이 아는 여러분을 인정하십니까? 내가 나를 잘 알고 나를 정리하고 산다는 것이 복인 것입니다. 내 안에도 내가 원치 않는 또 하나의 나가 있는 것입니다. 살면서 내가 정말 싫어하고 미워해야 할 사람은 교회안에 가정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정말 싫어하고 미워해야 할 사람은 내안에 있습니다. 내 삶의 주변에 있어지는 많은 문제들은 사실 누구나 무엇의 문제도 아닙니다. 유난히 관계가 걸려 있는 분들 있습니까? 누구나 무엇의 문제도 아닌 나 자신의 문제입니다. 용서해야 할 줄도 압니다. 사랑해여 하는 줄도 압니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압니다. 문제는 나 마져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 모두를 바울이 했던 영적 고민으로 안내해 보겠습니다.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4b)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심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입니다.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는 무엇입니까 율법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요 율법은 나를 죄인임을 알게하고 율법은 나를 복음으로 예수님에게도 안내하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율법을 따라야 되는 줄 아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여전히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린 자 되었다는 것입니다. ‘육신에 속하여’ 바울에게 있어 이것은 예수를 만난 후에 구원을 받은 후에 있어진 고백입니다. 육신에 속하여는 육에 속한 것과도 다릅니다. 고전2장과 3장을 통해 바울사도는 사람을 세 종류로 구분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과 육신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의 특징은 고전2:14에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한다 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세상에 속한 사람입니다. 예수 안에 복음을 깨닫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십자가가 미련하게 보입니다. 죄를 죄로 알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한다고 시 14:1절은 소개합니다. 육에 속했기에 세상에 원하는데로 육이 원하는 대로 살면 됩니다. 육에 속한 자는 하나님을 모른다면 육신에 속한 자도 하나님을 아는 자요 믿는 자입니다. 다만 육신에 속한 자를 고전 3:1절에 소개하기를 그리스도안에서 어린아이라 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신분상에서는 자유했는데 육신의 소욕에 매여 있는 자를 말합니다. 이는 구원을 받았으나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고전2:15절에서 신령한 사람이라 했습니다. 헬라어로 푸뉴마티코스라 하여 그안에 성령을 모시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께서 그 마음을 지배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어린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장성한 사람이 되기 전 바울은 나는 육신에 속한 자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 바울은 자신이 죄 아래 팔렸도다 합니다. 이는 전쟁에서 얻은 포로의 종으로 노예로 팔렸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주권을 잃고 다른 세력의 통치와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나를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끌려 다닌다는 것입니다. 이때가 가장 신앙생활이 어렵습니다. 죄를 알았는데 죄를 이길 힘이 없는 것입니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15a)

이때가 내안에서 도무지 정리되지 못했을때입니다. 구원받은 나 용서받은 나 신분상 변화는 틀림이 없는데 자꾸만 죄에 세상에 끌려 다니는 나는 또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나의 원함은 따로 있는데 자꾸만 원치 않는 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만의 고민이 아닙니다. 바울사도또한 그러했습니다. 15절에 보니 나의 원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합니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나니 나도 나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이 때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나는 왜 이런가 내가 왜 이랬지 나는 안돼 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나가 나를 죄 가운데로 이끌어 가니 그 아름다웠던 구원의 은혜도 소소용 없는 것 같고 여전히 죄 아래 있는 것을 보며 용서의 은혜도 헷갈리고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은 하지 아니하고 원하지 않는 바 미워하는 바에 매여 있는 나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혼돈상태입니다. 이 영적 혼돈상태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이 영적 혼돈 상태가 오해라면 믿어봐도 소용이 없고 기도해도 소용없고 봉사도 소용이 없습니다. 나도 나를 모르겠다는 것 이것이 바로 바울사도의 고백입니다. 16절을 좀더 이해해보면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말씀에 율법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율법의 의도한 바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율법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 그렇다면 우리는 인정합니다. 나도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죄인에게는 구원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17b)

여기서 바울사도는 영적 혼돈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무엇이 정리 되었습니까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나를 여전히 죄 짓게 하는 또 하나의 나를 완전히 구분시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나는 감사이자 감격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죄짓는 나는 내가 극복하고 싸워야 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처럼 바울 받은 나와 구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죄 성에서 자유하지 못하고 매여 있는 나를 구분합니다. 20절을 읽어볼까요?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합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가 구원받았지만 여전히 내속에서는 선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나는 원하는 바 선을 행하지 아니하고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합니다. 만일 내가 죄를 짓게 되었다면 이를 행하는 자도 내가 아니요 내 책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속에 거하는 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롬8장의 감격이 기대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언제인가 우리는 나의 원함과 행함이 하나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까지 강조하였습니다. 여기에 선한 싸움이 있습니다. 싸움의 대상은 내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나입니다.  - 아멘 -
(유재명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