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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처음보다 더 좋은 기적 (요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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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처음보다 나중이 좋아야 합니다. 어려서 잘 사는 것보다 늙어서 잘 사는 것이 더 좋은 일입니다. 마라톤 경주에서도 출발 때 선두에서 달리는 것보다 마지막에 선두로 들어와야 좋은 것입니다.
세상은 모든 것이 낡아지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좋은 옷도 낡아지게 마련, 아무리 좋은 집, 젊음 . . 그러나 기독교는 더 좋아지게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 . . .
기독교는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아지는 종교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인생을 처음보다 더 좋게 하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처음에 좋게 시작했다가 인생의 마지막을 실패로 끝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도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아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한결같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좋은말 같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좋은 게 아닙니다. 나중이 더 좋아져야 좋은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처음과 끝이 같아서도 안됩니다. 나중이 더 좋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성장하고 우리의 헌신도 자라나야 합니다. 기도가 자라나야 합니다. 나중이 더 좋아지기를 축원합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아지려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공생에는 시작하시면서 보여주신 첫 번째 기적의 사건으로 가나라는 곳에서 혼인잔치에 초대받았다가 일어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사건이었습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다는 것은 가치 없는 것, 또 안되는 것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님의 세계는 없는 것도 있게 되고, 안되는 것도 되게 하고,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21세기는 어떤 시대입니까? 과학만능의 시대입니다. 인간을 복제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 시대에도 기적은 일어날 수 있습니까? 많은 사람이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는 질문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기적들을 통해 하나님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적의 하나님이십니다. 진정 기적을 바란다면 먼저 기적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은 태초부터 기적이 있었습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일로부터 시작해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일, 홍해가 갈라져서 육지같이 건너간 일, 인류를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로부터 탄생하신 일, 5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신 일, 각색병자가 예수님의 말씀과 기도로 고침받고 일어난 일, 죽은 자가 살아난 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일, 또 3일 후에 다시살아나신 일, 하늘로 올라가신 일, 등은 모두가 기적입니다.

성경에 보면 초자연적인 기적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기적들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적의 기록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그 아들을 믿음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한 목적입니다.(요20:31)
우리는 기적이라는 현상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기적은 흔히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기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흔하지 않은 기적이 일어날 때,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안겨줍니다. 20세기 기독교를 대표하는 학자요 사상가, 작가인 C.S.루이스라는 사람은 기적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초자연적인 능력이 자연의 질서에 개입하는 사건이 바로 기적이다”
기적은 신앙이 있어야 믿을 수 있고 신앙이 있어야 기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 B.비렌슨은 말하기를 “기적은 그것을 믿는 자에게 일어난다”
*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기적이 없다면 나는 기독교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기적을 믿습니까? 당신에게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까?
이왕 한번 이 세상에 왔다가 가야할 인생이라면, 신앙생활을 계속해야 한다면 기적을 체험하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적을 바란다면 좋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좋은 믿음이 있습니까? 좋은 믿음을 소유했다면 반드시 놀라운 기적이 나탄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도“네 믿음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실 때 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미국인 10명중 8명 이상이 하나님이 행하는 기적을 믿고 있으며 거의 반수가 그러한 기적을 체험했거나 목격한 적이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프린스턴 여론조사연구협회가 최근 752명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전화면접의 결과이며, 이들 중 84%가 기적이 신의 능력에 의한 것이라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응답자 중 79%는 성경에 기술된 기적의 실제를 믿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48%는 기적을 개인적으로 체험한 바 있으며, 63%는 기적을 경험한 사람을 알고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기적을 구경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기적의 주인공이 되고 싶습니까?

1. 주님은 변화를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변화하는 시대입니다. 그것도 급변하는 시대입니다. 1960년대에만해도 ‘시계’하면 스위스였습니다. 세계 시장의 90%을 점유하였었습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후에 8%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를 일본의 세이코 시계가 세계시장을 점유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휴대폰에도 시계가 있어서 시계를 가지고는 경쟁력을 가질 수가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30년 전에 해외로 전화하려고 하면 우체국에 교환을 불러서 미국 어디에 부탁하면 길게는 한 시간 보통 30분을 기다려서 연결됩니다. 교환이 다 듣습니다. 요즈음은 핸드폰으로 세계에 직접 연결해서 별 이야기를 다합니다. 화상으로 연결하여 얼굴 보면서 전화합니다.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생명체가 변화하지 못하면 멸종 됩니다. 식물이건 동물이건 변화하지 못하고 적응하지 못하면 자멸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企業)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도 호황일 때 불황을 대비해야 하고, 불황일 때 호황을 내다보는 지혜가 있어야 자기 변화에 스스로 동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개혁과 변화가 없으면 기업도 쇠퇴될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되지 못한 동물들은 다 죽은 것처럼 변화되지 못하는 신앙인은 얼마못 가 다 사라질 것입니다. 신앙의 대가 끊깁니다.

기독교 신앙은 자기변화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믿음의 사람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변해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시몬’이 ‘베드로’로, ‘사울’이 ‘바울’로 변화되었습니다. 만일 시몬이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나 잡아먹아 먹고 살았다면 아무런 가치 없는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만일 사울이 사울 그대로만 있었으면 국회위원이나 아니면 법관이 되어 권력의 주변에서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으로 변했기에 주님의 제자가 되었고 로마의 총독, 황제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신앙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가치관을 바꾸어 놓습니다.
성품까지도 변화시킵니다. 변해도 그리스도 안에서 변해야 합니다.
만일 사람이 돈으로 인하여 변한 사람들이 되면 늘 형제지간에 돈 때문에 불화를 일으킬 것입니다. 부모 자식과의 관계도 험악해 질 것입니다.
또 사람이 권력이나 명예로 변해버리면 곤란해집니다. 안하무인(眼下無人)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오직 권력과 명예에만 정신이 팔려 있게 될 것입니다.
또 사람이 지식으로 변해버리면 교만해 지고, 심지어 하나님도 부인해 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어야 합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듯이 . . .
물은 그대로 놓아두면 부패해집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어야 합니다. 포도주는 아무리 세월이 가도 더 좋은 포도주가 될 뿐입니다.

2. 사람이 변하면 역사가 변합니다.

오늘 세상은 얼마나 변화를 추구하는지 모릅니다.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하고, 새로운 옷을 입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몸무게를 줄이고, 얼굴을 아름답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외적인 변화는 잠깐의 즐거움은 될지 몰라도 그것이 역사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가끔 화원에 가서 수많은 꽃을 보면 아름답다는 생각은 들지만 감동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보다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우리의 내면을 변화시켜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들어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사회에 다가오는 경제적인 위기와 정치적 어지러움의 원인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런 것들의 원인은 환경에 있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있습니다. 사람이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이 변화되어야 하고 기업인이 변화되어야 하고 노동자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종교인들이 변화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인들이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회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변화의 기적을 소리 없이 날마다 행하십니다. 그런 사실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평범한 물을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성자로 변화시키고, 두려움을 용기로 변화시기고, 슬픔으로 기쁨으로 변화시키고, 패배를 승리고 변화시키고, 절망을 희망으로 변화시키고, 죽음을 삶으로 변화시키시는 분입니다. 그런 사실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둘 때 반드시 삶에 기적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서 온 나라가 거대한 소용돌이에 빠졌습니다. 농업국에서 산업국으로, 수공업에서 기계공업으로 변화하는 산업 혁명을 통해서 온 사회가 거대한 변혁의 물결에 처했습니다. 기계화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고 자본가는 노동력을 착취해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동원시켰습니다.
영국의 어떤 시는 산업화로 인구가 10배나 급증하고 수공업자들과 농민들은 파산하고 중산층인 농민 대부분이 저임금 생산노동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무질서해지고 사회는 음주, 도박, 범죄로 찌들어 갔습니다. 영국은 산업 혁명을 통해서 온 사회 전체가 암담하고 캄캄한 상황으로 변화되는 듯 보였습니다.
그때 35세의 존 웨슬레가 일어났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53년간 말을 타고 25만 마일을 다니며 4만 2천번 설교를 하고 50권 이상의 책을 저술하면서 복음을 통하여 거대한 회개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영국 성공회에서 받아 주지 않자 묘지나 시장터, 공장 등지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듣는 이들에게 성령이 역사하니까 거대한 회개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설교를 듣고 통곡하고 회개했습니다. 두려움과 공포에 빠졌던 사람들이 사랑과 기쁨과 평화를 체험하게 되고 세속적인 열망이 사라지고 순수한 사람들로 변화되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기 시작하니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외쳤더니 곳곳에서 회개의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수레바퀴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은혜의 수레바퀴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복의 수레바퀴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영국 사회는 극장과 술집이 다 문을 닫고, 어떤 도시는 감옥이 필요없어졌습니다.

대하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그래서 영국은 산업혁명을 무사히 지나 근대사회로 성장,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도 먼저 그리스도인들이 회개하면 영국과 같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3. 사람이 변하면 가정이 변합니다.

가나의 기적은 혼인 잔치 집에서 일으키셨습니다. 혼인잔치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가정의 중요성을 인정한 것입니다. 가정은 항상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것처럼 변화의 역사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맹물같은 가정이 되어 버린다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사회의 문제는 가정에 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니 사회가 또한 무너지고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점은 심각한 이혼율과 출산율 저하의 문제, 노인부양 등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간의 유대감이 저하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보통 가정은 결혼 후 얼마 안되면 맹물같이 되어 버립니다. 부부 상호간 호기심이 사라져 버립니다. 매력도 효과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서로 다른 개성이 부딪히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결혼한 것을 오히려 후회하기까지 합니다. 나아가 상대에 대한 관심이 점점 무뎌집니다. 그것이 바로 맹물같은 가정입니다.

얼마 전 언론에 ‘신혼이혼’이 급증해 이혼에 이르는 부부 가운데 절반이 결혼 3년차 미만인 신혼부부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신혼이혼’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오늘날 점점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도 결혼한 10쌍의 부부 중 3.4쌍 정도가 이혼을 하고 있다는 것이오늘날 결혼문화의 현주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준비 없이 하는 결혼,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조건만을 앞세우는 교회 안의 결혼문화를 하루빨리 바꿔야 합니다.

가정을 다시 복구시키려면 남편과 아내가 변화되어야만 합니다. 이 변화는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한 가정에서 부부가 서론 존경하지 못하고 서로 막말을 하고, 막 대하기 시작하면 그 가정은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엡5:22-23)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서 아내들이 똑똑하고 리더십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에는 남편이 머리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도록 변화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변화 없이는 가정의 평화는 없습니다.
남편도 아내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림같이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으로 변화되어야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이란 것은 그냥 내버려두면 맹물같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끊임없이 변화가 와야 합니다. 날이 갈수록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 쉽겠습니까? 단지 노력으로만 되겠습니까? 이 변화는 예수님께서 여러분 마음에, 가정에 오셔야만 가능합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났던 것과 같습니다.

4. 변화는 순종에서 오는 것입니다.

어떻게 물이 포도주로 변하였습니까? 주님 말씀에 절대적인 순종에서 기인되었습니다.
돌 항아리에 물을 붓고, 그것을 떠다 주라고 할 때 행동적 순종이 있었기에 변화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순종의 행동이 따를 때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상식이나 과학을 좋아하지만, 상식적인 사고와 과학이, 꼭 옳지는 않습니다. 진흙탕에서 피는 연꽃의 색깔은 진흙탕 색깔이어야 상식이고, 푸른 풀을 먹고사는 소의 우유 색깔은 푸른 색깔이어야 상식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이고, 과학적인 사실보다, 비상식적이고 비과학적인 사실이 더 많습니다. 신비스런 일들이 많습니다.

성경에는 상식을 뛰어넘는 기적들로 가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고, 난공불락의 든든하고 높은 여리고 성을 대포 한방 쏘지 않고 무너뜨렸습니다. 인간의 상식과 과학을 초월한 사건들입니다.
하인들이 그 말씀에 순종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말씀은 비상식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돌 항아리 물은, 식사 전후에 손 씻고, 그리고 밖에서 돌아왔을 때, 발 씻기 위해 사용할 물을 담아두는 항아리입니다. 포도주 용기가 아닙니다. 그 뿐 아니라 비과학적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졌으면, 빨리 시장에 가서 사 오던가, 옆집에서 꾸어 오라던가 해야지 . . .포도주는 포도로만이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비상식적이고,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포도주를 만들겠다고, 하인들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인들은 순종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사명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항상 순종하는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복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적이 나타날 때 보면, 항상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실 때에도 어린 아이의 도시락이 희생되었습니다.
본문에서도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라”이치에 맞든지 안 맞든지, 상식적이건 비상식적이건, 과학적이건 비과학적이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하라는 말이다. 베드로는 상식적으로는 안맞지만“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다”하고, 믿고 순종했더니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많이 잡았을 뿐 아니라 그 사건 때문에 베드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인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포도주를 떠다 연회장에게 같다 주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인들은 순종하였습니다. 여기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삼상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여러분의 순종의 순도는 얼마 정도입니까? 50%, 60%, 70%, 80%, 90%, 100% 전폭적인 순종입니까? 하나님은 오직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필요로 하십니다.
순종은 믿음의 출발점이요 기적의 시작입니다. 기적을 체험하시기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인생에 놀라운 축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순종하십시오.
순종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득히 채우는 수고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인들이 돌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는 일을 하였습니다. 7절에 보면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 즉 아구까지 채웠다”고 하였습니다. 그 돌항아리들은 두 세통들이의 용량으로 여섯 개나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약 300말 정도의 많은 분량이었습니다. 그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순종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서양격언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우리의 속담에도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 . 하나님도 최선을 다하여 순종하는 자에게 역사하십니다. 아구까지 채우시기 바랍니다.

6. 하나님은 항상 처음보다 더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잔치 집에 가보면 좋은 음식을 먼저 내놓고 나중에는 맛이 좀 덜 한 것을 내놓는 법인데, 팔레스타인도 포도주를 제공하는 관습이 먼저는 좋은 포도주를 내고 나중에는 낮은 것을 내 놓습니다. 마시다 보면 포도주인지 물인지 . . .사람이 술을 먹고, 술이 술을 먹고, 술이 사람을 먹고 . . .이것이 세상인 것입니다.
이 가나 혼인잔치 집에는 처음보다도 나중이 더 좋아지는 이런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거기에 참예한 사람들이 다 놀라고 기이하게 여겼다고 했습니다.
세상은 가장 좋은 것을 먼저 내놓지만 점점 나빠집니다. 아무리 좋은 새 물건들도 낡아집니다. 아무리 곱고 고운 피부도 점점 늙어갑니다. 모든 것들이 다 나빠집니다.
연애할 때 보다. 결혼 후에 더 좋은 가장이 그리 많이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람을 사귀어보면 처음도 싫고 나중도 싫은 사람, 처음에는 좋다가 나중에 싫은 사람, 처음은 별로였다가 나중에 좋은 사람, 처음에도 좋고 나중에는 더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처음에는 좋았는데 나중에는 싫어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사탄은 처음은 항상 좋은 것을 준다고 약속을 하지만 마지막은 비극이고 비참함을 내어주고 지옥으로 끌고 갑니다. 마약은 통증을 줄여주고 수면을 유도하는 약물로 사람들을 현혹하기에 충분한 약물입니다. 마약의 특징은 즉시 의존성과 내성이 생깁니다. 한번 사용만으로 자꾸 사용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같은 효과를 보기 위해선 용량을 늘려야 한다고 합니다. 공급자들은 중독자들을 만들기 위해 주부나 회사원, 운전기사, 학생들에게 살 빠지는 약, 기분이 좋아지는 약, 술 깨는 약, 집중력이 좋아지는 약 등으로 현혹하여 처음에는 무료로 공급을 하다가 나중에 의존성이 생기면 비싼 값에 파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단의 하는 일입니다.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반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처음에는 어렵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 괴롭지만 갈수록 더 좋고 아름다워지며 마지막에 그분은 영원한 하늘나라를 주십니다. 더 좋은 내일이, 처음보다 더 밝은 내일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이것은 우리 기독교의 일면을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값이 없는 것 같고 미약한 것 같고, 어리석은 것 같고, 별 볼일이 없는 것 같은데, 우리 주님의 세계는 점점 더 좋아지는 세계입니다. 다윗은 처음에는 약한 자였으나 나중에는 점점 강한 자가 되었습니다. 처음보다 더 좋은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임경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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