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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직분에 합당한 자 (행 1: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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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분에 합당한 자(사도행전 1장 15-26절)

승천하시기 직전에 하신 예수님의 말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셨고, 사도들과 약 120명 되는 믿음의 사람들은 이 말씀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성령임재를 기다렸다.
예수님의 말씀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는 겁니다. 그런데 실상은 10일 만에 성령이 임재 하셨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그렇게 몇 날이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도무지 아무런 징조도 없습니다. 그러니 답답하지 않았겠어요?
그러나 몇 날이라서 4. 5일 쯤 생각한 것은 사람의 계산입니다. 하나님의 계산은 몇 날이 하루가 될 수도 있고, 5일도 될 수 있고, 그 이상도 될 수 있는 겁니다. 다만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다림이란 막연한 기다림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되겠지”가 아니라, “반드시 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결과를 아니까 “그까짓 열흘 쯤”이지만, 당시 그들은 그게 아닙니다. 하루 지나 다음 날이 되면, “오늘이야말로” 그러다 그냥 하루가 지나고, “내일이야 말로” 그렇게 지내던 때입니다. 기대와 실망이 반복 될 수밖에 없는 나날입니다. 그래도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이 그들로 하여금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게 한 것입니다. 기도는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다. 기도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기도할 때 성령께서 임재 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임하시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똑똑하고, 잘나고, 그런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믿음이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이 볼 때 병신 같지만, 엉터리 같지만,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십니다.

주님께서 성령 보내시려면 그 다음날에 보내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열흘이라는 날을 보내 것은 그들 곧 기다리는 이들의 믿음을 확실하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열흘이 아니라 그 보다 더 한 날을 기다려도 반드시 주신다는 믿음을 심어주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들어가는 이스라엘. 여리고 성 앞에서 7일을 돌았습니다. 그런데 어차피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시는데 그까짓 7일이 필요해요? 하나님께서 오냐! 그러면 바로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7일을 주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기다리면 반드시 그 말씀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믿음은 그렇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다려라”는 바로 그런 믿음의 확신이 있을 때가지 기다리라는 겁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가룟 유다 대신 또 한 사람을 채우는 것입니다.
우선 가룟 유다에 대해 살펴봅시다.
마태복음 27:3:5에 보면,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제사장들에 의해 발라도 총독에게 넘겨지는 것을 보고 스스로 뉘우쳤습니다. 그래서 은 30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 오늘 본문 18절에는 좀 더 비참하게 죽음을 표현합니다만…….
어쩌면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생명을 해하려는 의도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판 이유를 찾아보면, 그 하나는, 그가 아주 현실적인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그는 돈궤를 맡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돈에 대해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아이는 돈이 뭔지 모르면, 갖고 있던 돈도 내버립니다. 누가 달라고 하면 그냥 줍니다. 그러나 그 돈으로 무엇인가를 살 수 있다는 현실을 알게 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가룟 유다는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2:1이하에, 마리아가 비싼 향유를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을 때, 가룟 유다는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라니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합니다. 그 향유의 냄새와 분량을 보고도 삼백 데나리온이라는 가격을 매길 수 있는 사람이 가룟 유다입니다. 그런데 거기 6절은 “그가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고 말합니다.
또 하나(눅 22:3),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들어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준 것이 가룟 유다의 욕심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2:6,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은 것을 훔쳐감이러라.”

그 외에도 나는 이유가 있겠지만 그렇게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서기관과 대제사장들이 은 30냥을 주었습니다. 이제 서기관과 대제사장들은 자기들이 이겼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하나님의 승리였습니다. 스가랴 11:12,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 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 두라. 그들이 곧 은 30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오늘 본문에서 인용한 시편 69:25. 109:8도 같은 맥락입니다. 말하자면 이 모든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역사를 보면, 사람의 잘못된 계획과 행동도 때로 하나님의 일을 성취시키는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의 일을 성취시키는 도구가 된다고 해서 그의 잘못이 용납될 수 있느냐 하는 물음에는, “아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 인생을 하나의 연극 무대 배우로 생각하고, 그래서 악한 사람조차도 그 극본에 충실하였기 때문에 그 사람은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는 것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연극 무대가 아니다. 하나님의 극본은 처음부터 쓰여지고, 쓰여진 그대로 진행 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멸망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회개할 때 용서 하셨습니다. 인생은 타고난 팔자나 운명에 의해 결정 되는 것 아닙니다. 그때그때 마다,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만약 가룟 유다가 그 하나님의 각본에 충실했기에 그 죄를 정당화 시킨다면, 바리새인, 대제사장, 빌라도, 그리고 오늘 죄 아래 사는 사람의 죄도 다 정당화해야 할 겁니다.

히틀러가 유대인 600만을 무참히 살해한 그 원인을, 예수 죽일 때 유대인들 한 “그 피 값을 우리와 우리 후손에게 돌리소서.” 그래서 그렇다면, 그래서 히틀러가 유대인을 그렇게 죽였다면 히틀러는 하나님이 역사가 도구로 사용된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히틀러의 일을 정당화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악한 자들의 악한 행동과 계획을 사용 하십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들의 악한 행동과 계획을 괜찮다고 정당화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징계(매. 채찍)로 쓰신 겁니다. 그러나 바벨론 역시 하나님 밖에 있었기에 멸망당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어떤 죄도 정당화 할 수 없는 겁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셔야만 없어질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7:3-5에 보면, 가룟 유다는 분명 뉘우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잘못에 대해 그 목숨을 내 놓았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분명히 기억 할 것은, 이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간혹 정권 잡은 자들이 잘못하면 “옷 벗겠다.”고 그러는데, 그 일이 드러나면 장관 옷 벗고, 누구 옷 벗고 끝 아니지요. 책임을 물어야지요. 그런 책임을 묻지 않으니까 소위 “한탕주의”가 생기는 겁니다. 한 번 해 보고 성공하면 신나는 거고, 실패하면 옷을 벗든지, 벗을 옷이 없으면 죽든지…….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닭이 울 때, 그 역시 눈물 흘리며 회개합니다. 그렇다고 가룟 유다 같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베드로는 평생 목숨 걸고 자기가 배반 했던 주님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회개인 것입니다.

본문 17절, 가룟 유다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설사 그가 예수님을 팔았다 하더라도 그 직무의 한 부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 있을 겁니다. 같은 사도들조차 자기와 생존하지도 않을 겁니다. 예수 팔은 자라고, 그가 전하는 복음을 듣기는커녕 침 뱉는 자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가 정말 예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직무의 한 부분을 감당해야 하는 겁니다. 그것이 곧 진정한 회개인 것입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직무의 한 부분을 아예 버렸습니다. 그러자 (20절)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섬직한 말씀입니다. 가룟 유다는 자신의 직무를 버렸습니다. 그것을 곧 예수님을 판 겁니다. 그리고 그의 결국은 거꾸러져서 배가 터지고 창자가 쏟아졌습니다. 가볍게 생각 마십시오. 자기의 직분을 버리면 그런 결과가 올 수 있다는 것을 명심 하십시오. 제가 겁주는 것 아닙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가 없으면 안 됩니까? 가룟 유다가 죽었다고 복음 증거가 문 닫았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그리고 11명의 사도들이면 안 됩니까? 굳이 1명 더 뽑아야 할 이유 있습니까?

1. 그 이유 하나는 주님의 뜻입니다.

처음에 12명을 택하신 예수님. 왜 12명이었을까? 정확히, 그 이유는 몰라도 12명이 예수님의 처음 의도입니다. 그렇다면 12명이어야 합니다.
2. 교회는 전쟁에 참가한 군사들의 열병식과 같습니다. 이들 중 한 명만 빠져도 안 됩니다. 의장대, 한 명만 빠져도 안 됩니다. 따라서 공석이 생기면 바로 메꾸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직분 여러분이 지키십시오. 누군가 여러분의 자리를 메우게 두지 마십시오.
야구 선수들, 건강관리 그리고 엄청난 훈련으로 실력관리를 합니다.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한 겁니다. 어쩌다 몸이 아파 못 나가면, 누군가 대신 나갑니다. 대게 2군에서 올라옵니다. 2군, 그 2군에서 와신상담. 벼르고 별러서 올라온 선수에게는 모처럼의 기회입니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뜁니다. 그러다 보면 그 사람이 그 자리를 메우고 결국 차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 교회의 일. “내가 안하면?” 교회 문 닫습니까? 아닙니다. 누군가가 그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는? 안 하는 사람만 손해인 겁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그 일을 메울 수 있을까?
준비된 사람입니다. 제자의 직분을 수행할 만한 능력이 갖추어진 사람, 마음의 각오가 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룟 유다 대신 뽑힌 사람 맛디아입니다. 우리는 그가 누군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항상 예수님을 따라다닌 사람입니다.(:21-22) 그는 최근에 회심한 초신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이적과 기사를 친히 보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친히 들은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까지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의 제자들과 항상 함께 다니던 자입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아무런 직분이 없었습니다. 12제자와 같은 대우를 받은 적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상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그것은 직분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실상은 직분보다 믿음이 먼저이어야 합니다. 믿음 없이 직분을 가진 자들은 교회 안에서 브레이크만 밟는 자입니다. 오히려 교회 부흥에 방해가 됩니다.

맛디아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는 기도 중에 제비 뽑아 사도가 되었습니다. 24절,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바 되어” 그렇게 주님께서 택하신 사람입니다. 제비는 사람이 뽑았지만 택하시긴 주님께서 하셨습니다.
직분 가진 자는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집사, 권사, 장로, 이 모든 것은 목사가 뽑는 것 아닙니다. 사람이 뽑은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셨습니다.

맛디아는 주님께서 택하셨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따라 다니면서 보고 듣고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자 하나 뽑으려면? 아마도 기적을 경험한 사람이어야 할 겁니다. 앉은뱅이였는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다든지, 소경이었는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눈이 떠졌다든지 등 그런 사람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사람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라 다니며 보고 듣고, 그래서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이시며, 구세주이신 것을 확신하는 사람을 뽑으셨습니다. 한 순간의 경험이 아닙니다. 줄 곳 따라 다니면서 말씀을 들은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제자들, 곧 그리스도의 증인 증인되려면 보고 들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를 강조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보고 들어야 하니까요.
직분을 가진 자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맛디아처럼 예수님을 처음부터 따라 다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예수님을 처음부터 따라 다닐 수 있을까? 물론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여러분과 저가 예수님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무엇으로? 말씀입니다. 성경 그리고 선포된 말씀으로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듣지 않으면 처음부터 예수 따라 다닌 사람이 아닙니다.

따라서 직분을 가진 자는 은혜의 자리에 참여해야 합니다.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 봉사의 자리에 나가야 합니다.
교회성장세미나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 중 하나는, 새벽기도 나오지 않는 장로는 장로가 아니고, 저녁예배에 나오지 않는 권사는 권사가 아니라는 겁니다. 난, 사람들의 신앙을 예배 하나로 다 평가할 수 없다고 그리 생각합니다. 직장 때문에 수요저녁예배에는 못 나오지마는 그 외의 모든 신앙생활은 누구보다도 잘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은 예배입니다. 예배를 빼먹고는 온전한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예배를 등한히 하면서 교회의 임원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예배가 온전하지 못하면 임원으로 선출하지 않을 겁니다.
예배 다 빼 먹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고, 그러면서 무슨 직분입네……. 이건 아닙니다. 시간 가고 나이 들면, 그러면 집사 되고, 권사 되고, 장로 되는 줄 생각 마십시오. 정말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는 경우가 있을 겁니다. “저 사람은 나하고 똑같이 신앙생활 했는데” 또는 “내가 먼저였는데 왜 저 사람은 뭐고 나는 뭐냐?” 그런 경우도 있을 겁니다.

25절,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주어진 임무를 감당 못하면 주님께서 빼앗으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봉사와 사도로서의 직무를 감당할 자로 대신 채우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그때그때마다 상황에 맞도록 부르십니다. 그런데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반드시 준비된 자를 부르십니다. “준비하는 것”과 “준비 된 것”은 다릅니다. 분비하는 것은 때로 부름에 늦을 수도 있습니다. 항상 준비된 사람이 먼저입니다. “직분 주면 잘 할 겁니다.” 그건 아닙니다. 준비 되지 않은 사람은 직분 주어도 안 합니다.

우리 교회가 언제까지 이 모양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앞으로 200명, 300명…….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난 지금 집사니까 몇 년 뒤에는 권사가 되겠지.” 혹은 “난 지금 권사니까 몇 년 뒤에는 장로가 되겠지.” 그리 생각하지 마십시오. 분명히 말하지만 준비된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미 뽑혔다.” 그리 생각지도 마십시오. 가룟 유다는 처음부터 뽑혔던 사람이지만 그 직분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다 주님의 선택받은 사람임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 부르심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십시오. 선택받은 자로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십시오. 여러분에게 맡기신 직분을 귀중하게 여기시고 힘써 감당하십시오. 여러분에게 주신 귀한 직분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령의 임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자들과 120명의 믿음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기도하기를, 그래서 믿음의 확신이 있을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부족함을 채우기를, 그래서 봉사와 직무를 맡은 자들이 능히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채워지기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통해 이루실 역사를 마련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을 통해 이루실 역사를 마련하셨습니다.
기도하십시다. 분명한 믿음 가지십시오.
그리고 그 직무에 합당한 자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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