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2) (마 6:9-15)

by 운영자 posted Jul 02, 2010 Views 26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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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긴 스코틀랜드의 작가 로버트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은 어느 날 집에서 가정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습니다. 부인이 놀라서 따라 나가면서 남편을 붙들고 왜 이러느냐고 물었습니다.
스티븐슨은 “오늘은 ‘우리가 우리 죄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하는 주기도문을 외울 수 없을 만큼 내가 미워하는 사람,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어서 견딜 수가 없어서 뛰쳐나왔다”고 했습니다.
크리소스 톰(Chrysostom)이라는 유명한 교부(敎父)가 있습니다. 그가 목회하는 교회의 신자들은 주기도문을 외우다가 ‘우리가 우리 죄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부분에 오면 양심에 가책을 느낀 신자들이 입을 다물고 기도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과 스티븐슨은 양심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용서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용서를 박을 수 있겠는가’ 하고 마음에 갈등을 느끼고 그 기도를 계속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 기도문을 외울 때에 양심의 가책 없이 외울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런 관심 없이 주문처럼 외우고만 있습니까?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용서하면서 살아서 하나님의 용서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용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용서는 나를 위해서라도 해야 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해서 밤잠을 자지 못한다면 용서받아야할 사람이 밤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용서하지 못하는 내가 밤잠을 자지 못하고 그것 때문에 건강이 상하고 그것 때문에 내 삶이 망가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해서 용서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용서받지 못할 사람 때문에 오히려 내가 성숙되고 훈련되게 하는 그 사람은 내게 공로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나는 용서하면서 살았습니까? 용서하려고 노력해 보았습니까?
그동안 용서하지 못한 사람 때문에 괴로웠는데  지난주일 말씀을 살펴보면서 용서해서 주님이 주시는 마음의 평강을 경험해 보셨습니까? 이제 용서하면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용서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를 사랑하고 축복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용서만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왜 용서해야 합니까? 용서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징계가 사람을 변화시키고 잔소리가 사람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특별히 부부 사이에 잔소리가 사람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용서하고 용납하고 사랑할 때 사람이 변하는 것이지 질타하고 징계하고 잔소리한다고 상대가 변화되지 않습니다.
열왕기하 6장에 보면 아람나라에 어전회의(御前會議)가 열렸습니다. 아람 왕이 신하들을 불러놓고 호통을 칩니다. “너희들 가운데 이스라엘 왕과 내통하는 자가 분명히 있는데 왜 아무도 그 사람을 색출해서 내게 보고하지 않느냐? 우리가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서 어느 곳으로 가면 이스라엘이 미리 알고 기습공격을 해서 우리가 당한 적이 몇 번이냐? 또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리 알고 피신을 해서 우리가 허탕을 친 일이 몇 번이냐? 너희 가운데 분명히 이스라엘의 첩자가 있으니까 찾아내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때 한 신하가 이야기 했습니다. “왕이여. 우리 가운데 첩자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에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지금 우리가 하는 이 이야기까지 다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왕과 왕후께서 잠자리에서 나누는 이야기와 계획까지 다 알고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서 방비(防備)케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왕이 “그래, 그러면 엘리사가 어디 있는지 알아보고 가서 그를 잡아 오너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사마리아의 도단이라는 성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람 왕은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서 성을 포위했습니다. 아람군사들이 엘리사를 잡기 위해서 엘리사가 있는 곳으로 내려옵니다.
엘리사가 그들을 보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랬더니 아람군사들이 눈은 떠 있고 보이는 것은 다 보는데 판단력을 상실했습니다. 사람을 보고도 적인지 아군인지 전혀 구분을 하지 못합니다. 엘리사가 그들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나를 따라오시오. 당신들이 찾는 그 사람을 내가 만나게 해 줄 테니까 나를 따라오시오.”
그러니까 아람군사들이 좋다고 따라갑니다. 엘리사는 그들을 사마리아 성 한 가운데까지 인도를 합니다. 엘리사가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들의 눈을 열어주시옵소서.”그들이 눈을 떠 보니까 적진 한 가운데 지금 포위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도망을 갈 수도 없어요. 자포자기 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이 선지자에게 “이들을 칠까요?”하고 물었습니다. 선지자는 “우리가 칼과 창과 활로 싸워서 사로잡은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을 치지 말고 오히려 떡을 먹이고 물을 먹이고 잘 대접하여 평안하게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하소서.”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 선지자의 말을 듣고 순종을 했습니다.
죽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죽이지 아니하고 융숭하게 음식을 베풀었습니다. 왕이 베풀었으니까 얼마나 성대한 상이었겠습니까?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게 했습니다. 열왕기하 6장 23절에 보면 <이로부터 아람군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고 했습니다. 죽을 생명을 살려 줄 뿐 만 아니라 잘 대접해서 보냈습니다. 용서해서 보냈습니다. 사랑으로 보냈더니 아람군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용서는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용서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그들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치러 올 수가 있겠습니까?

나에게 손해를 끼치고 나를 괴롭힌 사람들이 내 주변에도 있습니까? 우리도 엘리사처럼 용서하면서 그렇게 한번 살아 보십시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를 잘 대접해서 보내 보십시다.
신양성경에 ‘오네시모’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습니다. 당시 종은 물건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도망치면 죽여 버립니다. 그런데 그는 주인 빌레몬의 집에서 도망쳐 나올 뿐만 아니라 돈까지 훔쳐 나왔습니다. 그는 로마에서 체포되어서 바울이 있는 옥에 같이 갇히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믿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돌려보내면서 나를 본 듯이 그를 용서하라고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것이 빌레몬서 아닙니까? 빌레몬은 바울의 편지대로 오네시모를 용서했습니다.
이때 용서받은 오네시모는 훌륭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이 로마에서 쓴 편지 골로새서를 골로새 교인들에게 전달한 전달자가 되었습니다. 골로새서 4장 2절에 보면 오네시모를 <신실하고 사랑받는 종>이라고 했습니다. 만약에 그를 바로 빌레몬에게 돌려보냈다면 그는 죽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중재를 통해서 그를 용서받게 했더니 초대교회에 위대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용서만이 이렇게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마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가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초대교회 모임의 대부분을 그의 집에서 가졌습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성만찬을 그의 집에서 가지게 하셨습니다. 초대교회 120명이 오순절날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된 것도 그의 집에서였습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밤새도록 기도한 곳도 마가 요한의 집입니다. 요즘도 복음을 전하다가 수모를 당하고 순교를 당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2천년 전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돌이 날아옵니다. 쫓겨납니다. 갖가지 어려움을 당하는데 부유한 집에서 자란 마가는 전도하면서 받는 어려움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에 돌아와서 후회를 했습니다. 아, 내가 좀 더 참을 걸, 선교보고를 들어보니까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갖가지 이적이 일어나는데 나도 거기 있었으면 하고 후회를 했습니다. 두 번째 전도여행 때는 마가가 내가 지난번에 잘못했으니까 나도 가고 싶으니 합류시켜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무슨 소리 하느냐고, 그렇게 줏대 없는 사람을 또 데려가서 사람들에게 실망을 줄 수 없다고 그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그를 용서하고 그를 데려가자고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심한 언쟁이 일어나고 결국 바울과 바나바는 갈라져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처럼 그를 용서하지 않았으면 마가는 버려진 사람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나바가 그를 용서하고 키웠습니다. 그래서 훗날 마가는 위대한 사역자가 되어서 베드로를 수종들면서 예수님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쓰여 진 마가복음을 기록합니다. 이 복음서를 기준으로 하여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쓰여 졌습니다. 만약에 마가가 없었더라면 어쩔 뻔 했습니까? 마가가 이렇게 훌륭하게 된 것은 용서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용서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아직도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용서할 때 한 사람이 세워지고 하나님 편에서는 위대한 일꾼이 한 사람 세워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고 우리의 일은 용서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내가 징계하고 내가 갚으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을 징계하고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내 소관이지 너희들의 소관이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12장 19절에 보면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네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 하시느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의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잠언 25장 22절에서 인용된 말씀인데 거기에 보면 그렇게 하면 여호와께서 상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원수를 갚지 않고 용서하고 그래서 그를 감동시키면 내가 네게 상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신명기 32장 3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원수 갚는 것은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원수 갚는 것은 네가 할일이 아니라 내가 할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3절에 보면 <예수님은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에게 부탁하시고 예수님은 절대 그들을 상대해서 그들을 욕하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9절에는 참 귀한 말씀이 있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욕을 욕으로 갚지 않고 도리어 복을 비는 이 것을 위하여 너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너희가 천국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욕하고 우리를 핍박하는 사람을 우리가 축복할 때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기 위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한결같이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고 우리가 할 일은 원수를 용서하고 축복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상을 주시고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요셉을 보세요.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형들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온 요셉을 죽이기 위해서 물 없는 웅덩이에 집어넣었습니다. 결국은 애굽의 상인들에게 팔아버렸습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로 보내버리고 맙니다.
그때 열 칠팔 살 되는 요셉은 형님들에게 애걸복걸합니다. 눈물로 형님들, 나를 팔아버리지 마세요, 나를 살려주세요, 애걸복걸 했지마는 죽으라고 팔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무슨 일은 하든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생활했습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은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흉년으로 형님들이 애굽에 양식을 사러 왔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죽이고 싶은 형들 아니겠습니까? 요셉은 자기가 형들의 아우 요셉이라고 밝혔습니다. 형들은 아, 이제 우리는 죽었구나 하고 사색(死色)이 되었습니다. 사시나무 떨 듯이 떨었을 것입니다.
그때 요셉이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형들이 나를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을 구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형들이 나를 팔아서 내가 애굽에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형들을 통해서 나를 이곳에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위대한 신앙고백입니까? 
요셉이 원수 갚기 위해서 탈출했다고 하십시다. 팔려갔을 때 이런 형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없다고 원수를 갚기 위해서 탈출하여 집에 돌아가서 형들을 죽였다고 해 보세요. 요셉의 인생은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 하면서 형들을 죽이기 위해서 무술을 연마하면서 그 집 안에서 딴 짓을 하고 살았다면 요셉의 인생이 그렇게 위대하게 되었겠습니까? 요셉이 원수 갚기 위해서 살았다면 하나님은 그의 앞길을 열어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를 애굽에 오게 한 것은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신앙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요셉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원수가 있습니까? 용서할 수 없는 아버지, 어머니, 용서할 수 없는 아내, 남편, 용서할 수 없는 자식, 용서할 수 없는 이웃과 친구가 있습니까? 그들이 나에게 마음의 아픔과 상처를 주고, 용서할 수 없는 일들을 한 것은 그들이 한 것이 아닙니다. 나를 축복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서 그렇게 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인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용서할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아니면 오늘의 내가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께 맡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상대의 머리 위에 숯불을 피워놓는 것 같은 그런 뜨거움과 그런 감격과 그런 부끄러움과 그런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들은 형들의 얼굴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확 달아올랐을 것입니다. 머리가 뜨끈뜨끈하듯이 감동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하는 요셉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의 인생을 펼쳐주셨습니다. 그의 삶을 당시 최고의 축복된 자리인 애굽의 총리의 자리에 올려 주셨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쳐 죽였을 때 하나님께서 가인의 이마에 표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 표가 어떤 표이겠습니까? 누구도 가인에게 손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인에게 손대고 심판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를 하나님이 갚으시지 우리가 직접 갚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원수 갚는다고 해 보세요. 내가 열대를 맞았다고 하십시다. 그러면 내가 때릴 때 열대만 때리고 싶겠습니까? 스무 대 때릴 것입니다.
스무 대 때려서 상대가 맞아 죽었다고 하십시다. 그러면 상대의 자녀가 나를 때릴 때 스무 대만 때리고 싶겠습니까? 서른 대, 마흔 대 때리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면 나나 내 자식이 상대를 백 대 때리고 싶을 것입니다. 계속 이렇게 미워하고 원수 갚으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원수 갚는 세상이 되고 말 것 아닙니까?
그래서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하겠다, 원수 갚는 것은 내 일이고 용서하는 것은 네가 할 일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 자리를 넘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내가 가로채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심판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 밖에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일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겨 버리고 오히려 사랑하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자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그 앞길을 열어 주실 줄 믿습니다.

3. 용서할 힘이 우리에게 없기에 용서할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용서할 힘을 달라고 기도하면 됩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남을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셔야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용서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힘주시면 우리는 넉넉하게 용서할 수 있습니다. 
화란에 코리텐 붐(Corrie Ten Boom)이라는 여자 부흥사가 있습니다. 세계 2차 대전 때 유대인들이 쫓겨 다닐 때에 그녀는 자기 집에 유대인들을 숨겨주었습니다. 그것이 발각되어 유대인들을 숨겨주었다는 죄목으로 코리 텐 붐과 그녀의 아버지, 언니, 오빠가 다 체포되어서 강제노동수용소에 갇혔습니다. 거기서 아버지와 언니, 오빠는 고문을 견디지 못해서 죽었습니다. 자신만 겨우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전쟁이 끝났을 때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독일은 전쟁을 일으킨 민족이기 때문에 지금 큰 상처를 입고 있다, 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코리텐 붐은 소리쳤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가라시면 어디든 가겠습니다. 그러나 독일만은 가지 못하겠습니다. 그것만은 피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내가 나를 저주하고 욕하고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를 졌다. 네가 내 딸이라면 그 사람들에게 가서 복음을 증거하거라!>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할 수 없어서 마침내 독일로 가서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설교를 마치고 내려오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녀와 악수하기 위해서 줄을 서 있었습니다.
기쁨으로 악수를 하면서 인사를 하는데 허름한 외투를 입은 한 남자가 손을 내밀면서 다가 왔습니다. 그 사람을 보는 순간 그녀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강제노동수용소의 악명 높은 감독이었습니다.
한 겨울, 이른 새벽에 여자 포로들을 발가벗겨서 운동장에 세워놓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온갖 모욕을 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먹을 것을 제대로 주지 아니하고 포로들을 괴롭힌 사람이었습니다. 코리 텐 붐의 아버지도 언니도 오빠도 포로수용소의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는데 그들을 죽게 한 장본인이었습니다.   
그는 코리 텐 붐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코리 텐 붐은 한눈에 그를 알아보았습니다. 꿈에서라도 잊을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손을 내밀 수 없었습니다. 몇 초의 순간이 마치 몇 십 년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그 남자의 내민 손을 보면서 그녀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 사람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저를 도와주시옵소서.”하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천근같은 손을 내밀어 그 남자의 손을 잡는 순간 하늘 문이 활짝 열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이 그녀의 가슴속에 밀려들어왔습니다.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쳤습니다. 원한이 사라졌습니다. 새 생명이 넘쳤습니다. 실지로 그녀는 그 사건 이후 10년 정도 젊어 보일만큼 삶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때부터 전 세계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 힘으로는 못합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순종할 때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그때에 참 생명, 참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임하시면 우리가 용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할 것도 없고 스데반을 보세요. 성령이 충만했을 때 자기에게 돌을 던지고 죽이는 사람을 위해서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요서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내가 은혜 받으면 남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사막에서 사는 모든 식물들은 가시로 뒤덮여 있습니다. 수분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서 잎이 전부 가시로 변했습니다. 가시가 있는 곳에는 그늘도 없습니다. 스치기만 해도 찔립니다. 그러나 수분이 충분한 곳에 있는 식물들은 잎이 아주 넓습니다. 남을 찌르지 않습니다. 남에게 그늘을 줍니다. 남에게 편안함을 줍니다.
내가 성령충만의 은혜를 받으면 남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은혜 받고 내가 푸근하게 되면 다른 사람을 찌르지 않습니다. 은혜 받지 못한 사람은 옆에 있는 사람을 계속 찌릅니다.
지난 번 주말수양회 때 한 분이 성령충만을 받고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그분의 사정으로 봐서는 할 수 없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분은 그 때 남편과 이혼수속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인 어떤 문제 때문에 법적인 소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충만을 받고 나와서 많은 사람들 앞에 자기의 삶을 털어 놓았습니다. 모든 법적인 소송을 다 취하하고 남편을 사랑하겠노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용서하고 포기한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이렇게 은혜 받으면, 성령충만 받으면 용서할 수가 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은 체험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고 은혜 받고 성령충만 받으면 그때 비로소 용서할 수가 있습니다. 용서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은 남을 용서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주님으로부터 용서가 필요한 사람은 남을 용서해야 합니다.
마태복음6장 14절에서 15절을 보세요.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죄 용서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다 용서가 필요한 사람들인데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을 용서하고 주님으로부터 용서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용서했다고 하면서도 늘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까지 합니다. ‘내가 용서를 했지마는 너는 맛 좀 봐야 돼. 너는 실패해야 돼. 너는 깨달아야 돼. 욕 좀 봐야 돼.’하고 지금도 남이 안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진정한 용서를 한 것이 아닙니다. 용서하고 축복하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축복을 받는 사람만이 용서할 수가 있습니다. 용서했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축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오늘부터 축복하려고 기도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진정한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 사람을 위해서 축복을 했을 때 그 사람이 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 축복이 다 나에게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용서받을 수 없는, 축복받을 수 없는 사람을 향해서 내가 계속해서 축복하고 사랑을 베풀면 그 복이 다 내게로 돌아와서 그 축복이 내 것이 됨을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지난주일 말씀을 들었으면서도 아직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래도 나는 용서 못해!” 라고 하는 사람에게 주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시는 줄 아십니까? <나도 너를 용서 못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치 않으시면 우리가 갈 곳이 어디 있습니까? 주님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용서할 뿐 아니라 그를 사랑하고 축복할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되어서 우리 마음에 평강이 넘치고 그런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으며, 인생이 활짝 펴져서 요셉이 받았던 놀라운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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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71 설교 주께서 남겨두신 씨 (롬 9:19- 29) file 2010.07.02 446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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