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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일꾼의 자격 (행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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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었더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루를 재는 기준은 바로 이렇게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어둠과 빛이 함께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어둠과 빛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이어집니다. 빛이 있으면 거기에 반하는 어둠은 반드시 존재하게 마련이요 아무리 짙은 어둠이라고 해도 빛이 비쳐지게 되면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교회가 성장할 때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초대교회 안에 어둠이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실상은 하나 됨을 해치는 작은 어둠들이 있었습니다. 교회 밖으로는 제사장들과 유대교 지도자들에 의한 교회에 대한 핍박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고 교회 안으로도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성령의 감동대로 순종하지 않았다가 죽임을 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회는 성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아름답게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사소할 수도 있지만 그 사소한 것 때문에 온 교회의 화평과 질서가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마찰과 이에 따라 교회가 어떻게 대처해 나갔는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작은 마찰이 있습니다.
교회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제사장들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초대 교회는 점점 성장을 해 나갑니다. 그런데 그런 교회 안에 작은 마찰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가운데서 틈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바나바를 비롯해서 많은 성도들이 은혜를 받고는 자기들의 재산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놓아 사도들이 그것을 가지고 가난한 자들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으로 가난한 자들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가운데서도 서운함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인 즉은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 가운데 과부들이 날마다 구호 음식을 나누어 받는 일에 소홀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유대의 수도입니다. 따라서 그곳에는 본토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인들도 상당수가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인들은 비록 유대인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들 입장에서는 타향에 와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과부이니 그들을 도울 사람이 따로 있을 리 없습니다. 당연히 교회가 그들을 돌보아 주어야 했는데 가까이 사는 유대 말을 쓰는 과부들보다 항상 뒷전이었다는 것입니다. 구호 식량을 나누어주는데도 유대 말을 쓰는 과부들을 우선적으로 나누어주고 그리고 나서 그리스 말을 쓰는 과부들이 구호물품을 받다 보니 받는 양도 때로는 더 적을 수밖에 없었고 어떤 때는 그나마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 것입니다. 그런 일이 한 번 두 번 계속되다 보니 그들 입장에서는 서운한 마음에 불평을 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불평들이 한 마디 두 마디 계속되다 보니 더 이상 그냥 두었다가는 교회의 화목이 깨어질 지경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나서서 이를 해결할 방도를 찾고 있습니다.

어느 사회건 마찬가지겠지만 이렇듯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알게 모르게 작은 불평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 이유가 어디 있든 간에 서운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참고 지나가지만 그런 일이 계속해서 이어지다보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불평을 말하게 되더란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럴 수도 있지 뭐 그까짓 걸 가지고 그러느냐고 하겠지만 서운한 입장에서 보면 남의 입장은 생각지도 않고 자기 생각만 하는 것 같아서 그런 말이 더 서럽게만 들려지는 걸 어떡합니까?

정말로 한쪽 입장에서 본다면 별 것도 아닌 것들이 반대쪽에서는 아주 심각한 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의 마음을 상하지 않도록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고 말하고 행동하는 배려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또 한 편으로 생각해 보면 내 편에서는 상대방을 생각해서 했는데 상대방은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 마음 상해하는 모습을 볼 때는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낭패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돕는 일도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또 어떤 일을 하는데도 함께 하자고 연락을 취한다고 하는데 있어서도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서 연락을 안 하기도 하고 또 우연찮게 실수로 연락을 하지 못할 경우도 있고 또 연락을 취한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서로 연결이 되지 않아 연락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이든 간에 연락을 받지 못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나중에 자기만 연락 받지 못했다고 하는 것에 상당히 서운한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오히려 연락을 받는 것이 부담스러운 분들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상대적인 원리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연락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오지 않을 때 이쪽에서는 또 다른 오해를 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올 수 없는 형편일 수도 있고 또 이쪽에서는 연락했다고 하나 상대방에서는 연락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쪽 사정을 모르는 입장에서는 연락을 했는데도 오지 않았다고 해서 서운할 수도 있고 속상할 수도 있단 말입니다. 이렇듯 모든 것이 입장에 따라서 달라질 수가 있는 것이 인생사입니다. 아마도 초대 교회도 나름대로의 사정은 있었겠지만 그러나 자꾸만 자기들이 소홀한 대접을 받는다고 느낄 때 그 서운함이 어땠겠습니까? 그러니 불평도 나올 수 있었겠죠.

어쨌든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지 이렇듯 섭섭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화평을 이루어 나갈 수도 있고 화목이 깨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혹 우리가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목사로 인해서건 아니면 어떤 중직자를 통해서건 다른 성도를 통해서간 간에 어떤 섭섭함이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서 아름다운 화합의 장을 찾아나가는 은혜롭고 지혜로운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교회가 은혜 아래 있기 위해서는 주의 종이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섬기는 일에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에 성도들 사이에 불평이 생겼을 때 사도들이 어떻게 행동을 했습니까? 사도들은 제자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제쳐놓고서 음식 베푸는 일에 힘쓰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신망이 있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여러분 가운데서 뽑으십시오. 그러면 그들에게 이 일을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사도들이 이 모든 일을 다 처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을 이제 나누어서 맡기고 자신들은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작을 때는 한 사람의 목회자가 모든 것을 맡아서 처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렇듯 교회의 일들을 나누어서 맡아 처리할 평신도 사역자들이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가 각 팀으로 나누어서 작은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가 되겠고 각 기관이나 교회 학교에 부장과 교사들을 세워서 가르치는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라든가 남녀 전도회를 통해서 성도들을 세워나가도록 하는 것도 바로 이런데 이유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목회자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가 있다는 것이 그 첫 번째요 그 해야 될 일의 성격이 다르다고 하는 것이 또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학교 교사들은 각급 교회학교를 책임지고 이끌어 갈 수 있어야 하고 각 팀장들과 기관장들은 자기가 맡은 팀과 기관을 책임지고 돌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평신도 사역자들이 제자리를 잡아서 움직이고 목회자는 사도들처럼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게 될 때 교회는 참된 성장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목회자는 이렇듯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섬기는 일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평신도 지도자 여러분들이 교회의 대소사를 책임지고 성도들을 돌보고 서로 세워나가는 일에 함께 힘을 쏟아야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깊이 기도하고 말씀을 준비하여 전하게 될 때 말씀이 힘을 얻고 생명력 있게 전달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가 기도와 말씀을 섬기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도울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장로님들과 권사님들 안수 집사님들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중직들이 앞장서서 교회 일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를 돌아보는 일로부터 시작해서 크고 작은 봉사의 직무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책임을 지고 나누어 맡아서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어느 한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의 천사 도우미가 되어 서로가 서로를 섬겨나가며 함께 땀을 흘려 수고할 때 교회는 아름다운 교제와 화합을 이루어 성장하게 되더란 말입니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이 일에 뒷짐을 지고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모두가 내가 바로 이 교회의 주인이라는 마음으로 일을 나누어 맡아서 책임을 감당하게 될 때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다하게 될 것이요 그 사랑의 공동체에 동참하는 분들이 날로 더하여져서 교회는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귀한 사역자들로서 여러분들이 다 세워지게 되고 그로 인해서 목회자는 오직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섬기는 일에 헌신케 되도록 힘을 합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주의 종이 온전히 헌신할 수 있도록 돕는 일꾼의 자격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누가 이런 평신도 사역자로서 수고할 수가 있겠습니까? 초대교회는 과연 누구를 이런 평신도 사역자로 세웠습니까? 사도들은 신망이 있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아 음식을 베풀고 성도들을 돌보는 일을 맡겼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퍼져 나가서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의 수가 부쩍 늘어가고, 제사장들 가운데서도 이 믿음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제사장들이야말로 교회를 반대하는 일에 앞장서던 사람들이 아닙니까? 교회의 대표적인 대적자들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그들 가운에서도 이 믿음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그 만큼 말씀이 살아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교회 성장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목회자는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고 평신도 사역자들을 세워서 그들로 하여금 교회를 섬기고 성도들을 섬기는 일을 맡도록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퍼져 나가게 되어 제자들의 수가 부쩍 늘어가고 심지어는 앞장서서 반대하던 사람들까지도 믿음 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신도 사역자들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평신도 사역자로 세워져야 합니까? 바로 신망이 있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지도자요 중직자들은 먼저 신망이 있어야 합니다. 신망이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존경받을 만 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분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앞장서서 섬겨야 하는 것이요 모든 섬김과 믿음의 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바꿔서 말하면 앞에서 수고하는 중직자들을 우리는 신뢰하여야 하고 존경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꾼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세워지는 것입니다. 함께 세워나가는 것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믿어주고 끊임없이 신뢰를 표시하고 존경해 드릴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좋은 평신도 사역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중직자들이 이렇듯 좋은 일꾼으로 섬길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함께 신뢰하고 존경하며 함께 수고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나무 위에 올려놓고 흔들면 떨어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수고하는 분들의 모든 수고를 보며 우리는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하고 끊임없이 격려하며 함께 협력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평신도지도자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항상 말씀 안에서 섬겨 나가야 하고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으로 무장하여야 하는 것이요 성령과 지혜로 충만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여야 하는 것이요 서로가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하여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일꾼으로 세우시는 분도 성령님이시오 우리로 하여금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과 지혜로 함께 하시는 분도 성령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님들 또한 목회자를 위해서뿐 아니라 중직자들을 위해서도 항상 기도로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모든 중직자 여러분 기도하기를 쉬지 마십시오. 그리고 오직 말씀을 따라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주의 도우시는 힘과 능력을 힘입어서 모든 맡겨진 일에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 자신은 물론 온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성장하며 복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직은 서리 집사로 계신 분들, 그리고 이제 믿음의 초보에 있는 모든 분들도 다 함께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기를 바라고 여러분 모두가 이런 하나님의 일을 맡아서 수고하는 분들로 세워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는 다 하나님의 성전이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의 지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체라고 하는 것은 각각의 하는 일은 달라도 그 모두가 함께 모여서 한 몸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성격이 다 다르고 하는 일은 다르지만 그 모든 것이 모여서 한 몸을 이룬다고 할 때 우리는 하나를 이루기 위해서도 우리의 맡은 바 사명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몸의 지체는 서로에게 어떤 불평도 하지를 않습니다. 하는 일이 다르다고 해서 서운해 하지도 않습니다. 거기에는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가 없습니다. 단지 묵묵히 자기의 자리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할 뿐입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의 역할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자기의 자리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 할 때 교회는 아름다운 화합을 이루어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퍼져나가게 될 때 교회는 부흥의 불길 가운데 타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섬기는 일에 힘써 헌신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먼저 신망이 있는 분들이 되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평신도 사역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두가 아름다운 하나님의 일꾼들로 세워지고 말씀은 더욱 살아서 퍼져나가는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어서 교회가 날로 부흥하며 믿는 무리가 더해지고 여러분들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허락하시는 은혜가 가운데 날로 풍성해지고 형통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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