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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히브리 사람들! (삼상 29:1-11, 고전 1:18-25, 막 1:32-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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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나라에 처음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을 뭐라고 불렀는지 아십니까? 그보다 먼저, 사도행전에 보면 당시 불신자들이 신자들을 부른 호칭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이럴 테면 “나사렛 이단(행24:5)”이라고 불렀습니다. 나사렛은 예수님의 고향으로 갈릴리 지방인데 당시 갈릴리는 멸시받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사렛 이단”이란 말은 그리스도인들을 한껏 멸시해서 부른 호칭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행9:2에는 “도(道)를 따르는 사람들”이라고도 했습니다. 요한복음에 “나는 길이요”라고 할 때 그 길이 곧 “도”입니다. 그러므로 “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란 말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 호칭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던 당시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일컬어 “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한 것은 매우 예언적 호칭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처음 신자들의 호칭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안디옥에서 일컬어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입니다.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만 알았고 높였으며, 그리스도만을 증거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당시 안디옥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매우 멸시하면서 부른 이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이후로 이 이름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적절한 호칭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교회사에서 숱하게 많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기독교인들을 “Protestant”라고 합니다. 16세기 종교 개혁 때 당시 부패한 가톨릭에 저항하여 성서적 신앙과 그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저항하여 일어났기 때문에 당시 가톨릭에서 미워하고 싫어하는 뜻에서 붙여준 이름이 바로 “Protestant”입니다. 그러나 이 이름도 역시 죄와 불의에 계속 저항해야 하는 우리 기독교의 본질적 내용을 잘 반영해 주기 때문에 역시 사랑하는 이름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불렀겠습니까? 그때도 물론 여러 가지 이름들로 불려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예수쟁이”란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우리 한국 교회역사이래 상당히 오래 동안 불려져 왔고 지금도 일부에서는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 이름은 그리스도인들을 멸시하고 하대해서 붙여준 명칭이었습니다. 그것은 끝에 “쟁이”라고 한 말이 증거해 줍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직업을 따질 때 “士 農 工 商”으로 등급을 매겼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옛 사람들은 선비나 벼슬아치가 첫째요, 그 다음이 농사꾼, 그리고 수공업 기술자와 마지막으로 장사꾼이었습니다.

이 직업들 가운데 3번째인 수공업 기술자를 “쟁이”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땜질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땜쟁이라고 했습니다. 대장간에서 일하는 사람을 대장쟁이라고 했습니다. 벽돌 만드는 사람은 벽돌쟁이였습니다. 어쨌거나 그런 직업을 천대하던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런가 하면 심보가 나쁜 사람에게도 쟁이를 붙였습니다. 예를 들면 욕심쟁이, 심술쟁이 거짓말쟁이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전염병 환자도 역시 쟁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옴쟁이, 폐병쟁이, 콜록쟁이란 말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보면 당시 유교 사상에 젖어 있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양에서 건너온 기독교를 보는 눈이 얼마나 곱지 못했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그리스도인들이나 오늘 우리들에게도 역시 “예수쟁이”란 말이 결코 싫은 호칭만은 아니다. 우리는 정말로 오직 예수님 밖에 없다고 믿는 “예수쟁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오늘 우리들은 예수쟁이로되 부끄럽지 않은 예수쟁이가 되기를 소원하고 또 그렇게 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과 우리들에게 “예수쟁이”란 이름은 같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런데 오늘 사무엘서 본문에 보면 다윗 일행을 두고 매우 못 마땅하게 여기는 불레셋 장군들이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고 하면서 그동안 다윗을 매우 총애하던 아기스왕에게 강한 불만을 표출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윗은 처음에도 사울을 피해 아기스 왕에게 갔다가 그들이 골리앗을 죽인 장본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미치광이 노릇을 해서 겨우 거기서 빠져 나온 일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 가드 당은 바로 골리앗의 고향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사울을 피하다 이번에도 다시 가드 왕 아기스에게 갔습니다. 아기스는 사울의 원수가 된 다윗을 잘 이용하면 이스라엘에게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다윗에게 상당한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정체를 아는 블레셋 지휘관들로서는 이스라엘과 전쟁하는 이 마당에 다윗이 자기들과 함께 전쟁터에 나가는 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옛날에 골리앗을 한 칼에 눕힌 다윗인데 언제 어떤 모양으로 자기들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날는지 도저히 안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그토록 다윗을 이용하려고 온갖 호의를 베푸는데도 불구하고 블레셋 장군들은 다윗과 그 일행에 대하여 “이 히브리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강한 반대 의사를 들어냈습니다. 결국 아기스 왕도 자기 계획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두 번에 걸친 블레셋 피난 행각을 보면서 그토록 훌륭한 신앙의 사람으로 “주의 마음에 맞는 다윗”도 역시 우리와 성정이 같은 한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다윗이 어려울 쩍 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피하고, 기도하여 도우심을 받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다윗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처구니없게도 원수의 나라에 가서 빌붙어 자기 목숨을 부지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던 다윗의 인간적인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오히려 생명의 위협만을 당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계속 추적하시면서 지켜주십니다. 다윗이 옳을 때만이 아니라 이와 같이 곁길로 빠질 때도 역시 하나님은 그를 살피시고 지켜주십니다. 지난번에는 다윗이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여 미친 행세를 함으로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그 위기일발의 순간에 하나님은 그런 방법으로 다윗을 구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의 입장은 정말 진퇴유곡이었습니다. 만일 그가 왕의 명령대로 전쟁터에 나간다면 자기 동족인 이스라엘과 싸워야 합니다. 만일 왕의 그 제의를 거부한다면 이미 적의 수중에 들어가 있는 다윗이 어떻게 그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겠습니까? 전쟁에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출전을 거부할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이런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뜻밖에 블레셋 장군들이 다윗을 기피한 것입니다. 이래서 다윗은 또 한번 위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까닭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정말 일마다 때마다, 그리고 우리 사언행(思言行)이 주님 보시기에 합당합니까?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대로 우리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하여 죄를 물 먹듯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해주십니다. 주님은 그렇다고 쉽게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여기 우리 주님의 인내가 있습니다. 이 인내하심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게 되는 은총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내를 오해해서 하나님을 부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내하심을 범죄의 기회로 악용합니다. 이 얼마나 무지하고 안타까운 일입니까? 사실 주님의 참으심은 우리를 향하신 회개의 촉구입니다. 참아주시는 때가 우리가 회개하고 구원받을 기회입니다. 그때가 바로 지금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일이면 이미 늦을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블레셋 장군들이 다윗과 그 일행을 보고 “히브리인”이라고 한 것입니다. 비록 왕이 정략적으로 다윗을 감싸고돌고 있기는 해도 대부분의 블레셋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망명해 와있는 다윗과 그 일행이야말로 눈에 가시 같은 미운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 일행을 지칭해서 한 말이 “이 히브리인들”이라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사울도 미워하고 블레셋 사람들도 미워하는 다윗과 그 일행, 어쩌면 이 넓은 천지에 몸 하나 제대로 감출 장소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이 불쌍한 사람들, 그래서 미워하고 멸시하여 “이 히브리인들!”이라고 지목받은 이 사람들이 하나님에게는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고 하신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까 최후의 승리는 바로 이 사람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세상에서 겪게 되는 이런 저런 어려움 때문에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붙잡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만일 정말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붙잡고 계신다면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위대한 승리자의 반열에 서게 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그럼 히브리 사람의 유래가 어떠합니까? 창세기에 보면 롯과 그 일가족이 전쟁에 패하여 적군에게 끌려갔을 때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와서 그 사실을 알렸는데 거기서 아브라함을 일컬어 “히브리 사람 아브라함”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아브라함은 그 땅 원주민이 아니라 이주민이었고 나그네였습니다. 당시 원주민들이 기득권층이라고 한다면 아브라함은 아직은 제도권 밖의 소외계층이었습니다. 그를 보고 “히브리 사람 아브라함”이라고 했습니다. 즉 토박이가 아니라 들어온 외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 왕 바로에게 보내시면서 바로 왕에게 요구할 말을 주셨는데 그것은 “내 백성을 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만일 바로가 “여호와가 누구냐?”고 묻거든 “히브리인의 하나님”이라고 일러주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히브리인의 하나님 여호와의 보내심을 받아 애굽 왕 바로를 만났고 그와 더불어 히브리인의 자유를 위하여 투쟁하여 마침내 승리하였습니다. 결국 히브리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압박자 바로에게 모세를 보내서 히브리 백성을 해방시킨 사건이 바로 출애굽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의 인도를 따라 출애굽한 백성이 이스라엘백성만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잡족”이 그들과 함께 하였다고 했습니다. 여기 “수많은 잡족”은 당시 애굽에서 인간이하로 취급받으면서 강제노역에 종사하던 제도권 밖의 하류계층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포함하여 당시 애굽에서 무자비하게 인권 유린을 당하던 이스라엘을 “히브리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인”은 혈통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계층개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히브리인의 하나님”이시오 그들을 그 죽음의 애굽에서 구원해 주신 구원자 하나님이십니다.

신약 특히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님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 가까이 접근할 수도 없어서 지붕으로 올라가서 기왓장을 벗기는 해프닝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예수님 주변에 운집했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구약의 표현대로 하면 그들이 “히브리인”들이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그들을 “오클로스”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무리”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죄인이라고 제도권에서 낙인찍힌 사람들, 권력자들로부터 인권과 경제적 착취를 당하던 하류층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들을 “잃은 양”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잃은 양을 찾으려고 오신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 잃은 양입니다. 주님은 나를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비록 처음에 우리나라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예수쟁이”라고 멸시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셨고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이 땅에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비록 세상에서는 남보다 더 나은 조건들이 없다고 할지라도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구원의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총과 역사하심이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도 크게 이루어지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 (김오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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