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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아벨은 (히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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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강철 왕이며 자선사업가인 카네기는 실패한 사람들의 10가지 공통점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습니다.

첫째로 모든 책임을 남에게 전가한다. 이런 사람은 남에게 핀잔을 들으면 본능적으로 핑계를 댄다. 둘째로 열등의식과 자기비하에 젖어 있다. 셋째로 삶의 목표가 없다. 넷째로 모든 것을 너무 쉽게 포기한다. 다섯째로 과거에 지나치게 연연한다. 여섯째로 독창력이 없다. 남의 흉내를 내기에 전전긍긍한다. 일곱째로 계획이 없이 생활한다. 여덟째로 노력은 하지 않고 성공의 왕도만 찾아다닌다. 아홉째로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없다. 열째로 패배에 대한 원인분석이 없이 실패를 그대로 인정한다. 사람은 누구나 실패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실패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성공한 사람과 실패 한 사람의 차이는 자기의 실패를 거울삼아 큰 교훈으로 삼느냐 아니냐 하는 것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리새인인과 세리를 한 번 생각해 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타가 잘 믿는 사람들이라고 인정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의를 늘 자랑합니다. “나는 토색도 하지 아니하고, 불의, 간음도 하지 아니하고,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도 꼬박꼬박 바칩니다.”하면서 자기의 의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세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감히 하나님의 전에 나와서도 앞자리도 나오지 못하고 저 뒷자리 구석진 곳에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면서 기도합니다. 누가 진짜이고 누가 가짜인 것 같습니까? 인간적으로 볼 때에 바리새인이 진짜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리는 정말 천국에 못 갈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누구를 칭찬하셨습니까? 바리새인보다 저 세리가 더 의롭다고 칭찬하시고 인정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눅18:9-14) 바리새인은 자기의 의를 자랑하는 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만 초점을 맞추는 교인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에만 의지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세리라고 해도 진짜 믿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가인과 아벨에 관한 말씀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동일하게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물리 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가인의 제사는 인정을 받지 못하였고, 아벨의 제사는 인정을 받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다는 것입니다. 야고보 장로가 말씀하였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아벨의 믿음처럼,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믿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1. 아벨은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히11:4절 상 반절을 보면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더 낫다는 말씀은 양적인 것이 아니라 질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가인과 아벨은 질적으로 다른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한마디로 가인의 제사는 믿음이 없는 제사, 자기의 의를 자랑하고 내 세우는 제사였습니다. 그러나 아벨의 제사는 믿음으로 드린 제사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만 초점을 맞춘 제사였습니다. 그들은 부모인 아담과 하와로부터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법에 대해서도 잘 배웠을 것입니다. 똑같은 날,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각자가 하나님께 드린 제물의 내용이 달랐습니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땅의 소산물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벨의 제사가 가인의 제사보다 더 나은 제사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자기 임의대로 제사 드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규례대로 제사 드리는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것을 그의 부모에게서 배웠을 것입니다. 분명히 그 아버지 아담으로부터 속죄의 제사는 피의 제사여야 한다는 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 아버지가 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히9:22절에서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하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도 가인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가인은 어떤 식으로 제사를 드렸습니까? 가인은 그것을 무시해버리고 자기 식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가인의 제사는 한마디로 불순종의 제사였습니다. 그는 자기 식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의식 없이, 자기 편한 데로 농산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믿음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인 줄 알고, 이 죄를 사함 받는 길은 오직 어린 양의 피로 되는 줄 믿고, 양의 피를 보시고 이 죄인을 용서해 달라고 하면서 어린양의 피로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리고.” 아벨은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벨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만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아벨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으로, 은혜로 제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칭찬을 들은 줄 믿습니다. 

2. 아벨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4절 중반 절을 보면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가인도 아벨도 똑같은 죄인입니다. 그래서 가인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아벨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아벨만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가인은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벨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제사를 드렸고, 가인은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고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오래간만에 출가한 딸네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딸은 모처럼 친정아버지를 뵈었습니다.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그래서 온갖 솜씨로 진수성찬을 마련해서 아버지에게 대접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저녁을 마친 후 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그의 아내가 이렇게 묻습니다. “여보, 모처럼 딸네 집에 갔는데 대접을 잘 받고 돌아오셨겠지요?” 그런데 남편은 대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다시 묻습니다. “아니, 딸이 모처럼 친정아버지를 뵈었는데도 대접을 잘 하지 않았단 말이요?” 그러자 그는 퉁명스럽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식을 잔뜩 차려놓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어? 내가 좋아하는 달걀도 없고, 내가 좋아하는 두부도 없던걸. 이가 시원치 않은데 그 질긴 음식들을 도대체 날더러 어떻게 먹으라는 거야?” 음식을 잔뜩 차려놓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 드려야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음식을 쳐다보기만 하고 먹지 못하는 것은 고통입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열심을 내면서 잘 믿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해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가인과 같이 자기 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벨과 같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믿는 것입니다.

가인의 문제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의 의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자기 식으로, 임의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벨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순종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벨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받으셨는지 아니 받으셨는지를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에 대하여 증거하셨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제물을 열납하실 때 하늘에서 불을 내려 보내셔서 그 제물을 사르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의 제단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그렇게 불이 내려옴으로 제사를 열납하였습니다.(왕상18:37)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가인과 아벨이 보는 가운데 하늘에서 불을 내려서 아벨의 제물을 열납하셨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아벨은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하나님 앞에 어떠한 심정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가인처럼 인간의 의, 인간의 행위를 자기의 의, 자기 방식대로 나아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우리도 아벨처럼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초점을 맞추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면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쁘게 용납해주십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3. 아벨은 죽었어도 말하는 믿음입니다.

4절 끝 부분입니다.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집에서 손님을 대접한다고 가정 할 때에 그 손님을 대접하려고 얼마나 정성껏 장만하겠습니까? 이렇게 준비한 것을 손님들이 맛있게 먹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정성을 다해서 음식을 마련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손을 대지도 않으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내가 얼마나 정성을 다해서 마련했는데 잘 먹어도 주지 않다니, 다시는 대접하지 말아야 하겠다.”고 속상해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 모임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자기입니다. 손님들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손님들이 맛없어 하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그것을 자기반성의 계기로 삼고 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 내가 실수했구나! 다음번에는 손님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더 맛있게 장만을 해서 대접을 해야겠다.” 이 사람은 자기중심적이 아닌 손님위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벨은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하나님 입장에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제사가 하나님께 열납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으로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그렇게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자기중심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좋은 대로 했기 때문에 그의 제사가 열납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깊이 반성하고 회개해야 하겠는데 안색이 변하고 그 동생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 행위는 자기 중심적으로, 혈기로, 감정으로, 기분으로 한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적인, 자기 마음대로 한 것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았습니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시기를 창4:10절에는 “....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아벨은 형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벨의 죽음은 의로운 죽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죽었으나 오히려 믿음으로 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벨은 누구에게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말씀하고 있습니다.(창4:10,계6:10) 그리고 아벨은 저와 여러분에게도 말하고 있습니다. 히10:38절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모쪼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가인처럼 인간의 의, 자기 식으로의 제사를 드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아벨과 같이 믿음으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나의 의와 내 자랑은 감추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만 초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이 한 가지 진리를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꼭 믿음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살펴 드리는 제사가 더 나은 제사입니다. 주의 보혈의 피를 의지하고, 앞세우고 나가는 제사가 더 나은 제사입니다. 나의 죄를 씨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는 줄 믿고 주를 바라보고 드리는 제사가 더 나은 제사입니다.

부디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을 소유하여 승리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윤정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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