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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힘써 대장부가 되라 (왕상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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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써 대장부가 되라 (왕상2:1-5)

(요약)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장부에게 하늘의 유업과 큰 사명을 누리게 하신다. 대장부란 대장부란 생각이 큰 사람이다. 생각은 인격의 그릇됨을 말한다. 또 대장부란 마음이 넓은 사람이다.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또 대장부란 마음이 강한 사람이다. 환난이 아무리 강해도 더 강한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대장부란 비전을 가진 사람이다. 비전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나이와도 소유와도 무관하다. 대장부란 우리 주님과 같은 사람이다. 다윗의 유언처럼 하나님은 진정 신앙의 대장부가 되기를 바라신다. 

(설교)

이 시간에 힘써 대장부가 되라는 제목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최후에 유언을 남기신다면 어떤 유언을 남기고 싶습니까? 이스라엘 왕 다윗도 죽으면서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 유언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살라는 당부 앞에 첫마디가 대장부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대장부(大丈夫)”란 히브리어 “게베르”로 ‘장정, 남자, 사나이’란 뜻으로 크고 강한 남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그렇게 귀했던 이유는 나라의 큰 유산을 물려주는 입장에서 대장부의 인격은 솔로몬이 반드시 구비해야 할 인격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쓰는 말이 있지요. 사내대장부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는 남자나 여자나 모두 남자답게 강건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말을 신앙에서 그대로 접목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사내대장부로만 산다면 얼마나 이 사회가 멋지고 아름답겠습니까? 문제는 소위 졸장부들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졸장부란 도량이 좁고 겁이 많고 옹졸하며 작은 일에도 금방 얼굴색이 변하고 자기 마음에 맞지 않으면 불평불만하고 거짓말하고 술수 부리고 자기의 잘못은 헤아리지 아니하고 타인의 잘못은 용서할 줄 모르며 복수심과 적개심을 품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대장부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럼 대장부란 어떤 모습입니까?

1. 대장부란 생각이 큰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우리 주님처럼 되는 것이 대장부입니다. 우리 주님은 생각이 크신 분이셨습니다. 요1:29에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했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인류를 위해 혼자 수고하셨습니다. 뭔가 다르지 않습니까? 몸집이 커야 대장부가 아닙니다. 생각이 커야 대장부입니다.

성경에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 즉”(잠23:7)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생각이 그 사람됨을 결정한다는 말씀입니다. 미국의 수필가 로프 웰드에머슨은 “사람이란 종일 자기가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도 “사람의 일생은 자기 생각 그대로 되기 마련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이 큰 사람이 큰 인물입니다. 다윗이 큰 나라를 솔로몬에게 물려주었는데 솔로몬이 그만한 믿음 직지 멋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대장부가 되라고 교훈합니다.

생각을 넓히세요. 우리의 생각의 폭을 넓히는 것이 논밭이나 아파트 평수는 넓히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생각이 자신에게만 머물면 대장부가 아닙니다. 대장부가 가정을 위해 소홀할 수 있겠습니까? 대장부가 교회를 소홀할 수 있겠습니까? 대장부가 사회와 나라와 민족과 인류를 소홀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이 대장부인 것은 민족과 이방과 하나님을 위한 생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후손을 위해서라도 큰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어떤 노인이 나무를 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따먹지도 못할 것 심는다고 비웃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대답이 놀랍습니다. 나는 따먹지 못해도 후세의 사람들이 따먹으라고 나무를 심는 답니다. 생각을 좀 더 멀리 좀 더 크게 갖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못할지라도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 터전을 잡아 놓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2. 대장부란 마음이 넓은 사람입니다.

우리 주님의 마음을 보세요. 주님은 십자가에서 못 박는 원수들을 향해 용서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빌2:5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죄인을 위해 죽기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주님은 어떤 것도 포용할 수 있는 사랑이셨습니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잔인하게 복수하는 것은 졸장부입니다. 대장부는 누구라도 포용하는 마음입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대장부는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울이 큰 인물이지 못한 것은 시기심에서 봅니다. 사울은 자기 사위 다윗이 골리앗 장수를 죽인 다음에 여인들이 자기와 다윗을 비교하는 노래를 듣고 시기 질투심이 불타면서 그만 악신에게 사로잡혀 사위를 죽이려고 쫓아다니다가 결국 스스로 자결하고 말았습니다. 진정 신앙의 대장부는 세례요한처럼 나보다 남이 더 잘되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좀 더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인들을 향해서 마음을 넓혔습니다. 죄악이 발달된 지역이기에 넓은 마음이 아니고는 그들을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더러운 것 참고, 누추한 것 참고, 문란한 것 참고 또 참아가며 그들에게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사랑을 모르고 그들의 마음은 좁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시기하고 질투하고 패를 가르고 다투었습니다. 이 좁은 마음에 하나님이 거하시지 않습니다. 하늘의 하늘들이라도 용납하실 수 없는데 어찌 좁은 마음에 계시겠습니까? 주님은 진실로 넓은 마음으로 사랑할 때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사랑의 대장부가 되시기 바랍니다.

3. 대장부란 마음이 강한 사람입니다.

예수님 보세요. 얼마나 강하십니까? 눅19:28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알면서도 주님은 앞장서서 가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용기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약한 것 같아요. 더위도 못 참고 추위도 못 참고 수치도 못 참고 욕심도 참지 못한 것 같아요. 대학 졸업하고 군대 전역하고도 전적으로 부모 의존해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을 듣고 참 염려스럽습니다.

그러나 마사이족이라든지 이런 종족들은 아이들을 키우되 전사로 키웁니다. 마사이 전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자를 맨 주먹으로 유인하여 잡기도 합니다. 그 아이들이라고 아픔이 없겠습니까만 살을 찢는 웬만한 고통에도 울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강하게 훈련시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강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브라함도 강했습니다. 318명으로 5개국 연합군을 쳤습니다. 모세도 강했습니다. 노구의 몸 가지고 지팡이 하나로 바로 왕 앞에 나갔습니다. 여호수아도 강했습니다. 믿음 가지고 여리고를 돌았습니다. 다윗도 강했습니다. 자기 생명을 찾는 사울을 피해 다니면서도 낙심치 않았습니다. 바울도 강했습니다. 온갖 박해를 무릅쓰고 전도했습니다. 에스더도 강했습니다. 금식하며 죽으면 죽으리라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의 큰 일군들은 다 강했습니다. 루터도 강했습니다. 칼빈도 강했습니다. 웨슬레도 강했습니다. 세상에 강한 것이 우리를 위협해도 그보다 더 강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어떤 질고나 환란도 다 물러갈 줄 믿습니다.

4. 대장부란 비전을 가진 자입니다.

마28:18-19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8-19) 하셨습니다. 여기에 놀라운 주님의 세계 비전이 나타납니다. 속된 말로 천하를 쥘 꿈 없이 어찌 대장부입니까? 큰 뜻을 품어야 대장부입니다. 우리들도 사랑으로 복음으로 천하를 꿈꾸어야 합니다. 조불조불한 졸장부 되지 마세요.

비전을 가진 사람을 “비저너리(VISINARY)”라고 부릅니다. 우리 주님이 비저너리십니다. 겨자씨 비유도 그렇고 누룩 비유도 그렇습니다. 작지만 커져서 온 세상을 가득 채우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작지만 열두 제자들 부르셔서 비전을 실천해 나가셨습니다. 그 결과 12명은 예루살렘을 복음화하고 또 그 성도들은 이방 땅을 복음화하고 지금은 세계복음화를 이루지 않았습니까?

잘 아셔야 합니다. 비전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나이와 관계없고 소유와도 관계가 없습니다. 갈렙은 비록 나이는 85세였지만 그의 마음과 영혼은 시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담대히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말했습니다. 한번은 스펄전 목사님이 부흥 집회 때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어떤 교인이 “목사님, 그 큰 믿음을 가지고 한 영혼만 달라는 기도에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수백 수천 명을 구원하게 해달라고 해야지 않을까요? 저는 “아멘“이 안 나옵니다.” 그때 스펄전 목사님이 깨닫고 고쳤다고 합니다. 윌리암 카레이도 “하나님을 위하여 큰일을 도모하라” 했고 북스 목사님은 “능력에 맞는 일을 구하지 말고 일에 맞는 능력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요셉과 그 형제들에게서 보듯이 꿈 없는 사람들은 꿈 가진 사람을 조롱합니다. 그러나 좀 심한 말 같지만 비전 없이 사느니 차라리 하나님 앞에 먼저 가는 것이 낫습니다. 꿈 없이 하루하루 산다는 것처럼 불행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비전 없는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하나님의 일이 방해되고 있습니까?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운하가 파나마 운하라고 합니다. 동양에서 미국의 동부로 가려면 파나마 운하가 생겨서 남미쪽으로 멀리 돌아가지 않아도 쉽게 갈 수 있습니다. 파나마 운하는 미국 공병대에서 1904년에 시작해서 10년이 걸린 대 작업이었습니다. 그동안 비판이 끈질기게 나돌았습니다. 군인이 뭘 알아서 무슨 토목공사냐? 혹은 양 바다의 고저가 다른데 실용성이 있겠느냐? 그러나 공사의 총책임자 워싱턴 계탈 공병 대령은 “운하가 개통되면 운하가 말할 터이니 그때까지 참자” 하며 꾹 참아 승리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이 큰 나라를 아들에게 물려주려 하듯 이 시간 주님도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주시길 원하고 계십니다. 다윗이 생명 바쳐 유언하듯 저도 그렇게 말씀드립니다. 우리 주님처럼 대장부가 되십시다. 성령과 말씀은 생각도 크고 마음도 넓고 강하고 꿈을 가진 믿음의 대장부로 만들어 주십니다. 방법이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말씀을 잘 믿고 성령 충만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믿음의 대장부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성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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