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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들포도가 어찜이냐 (사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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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윈 라파엘 맥마너스(Erwin Raphael McManus)의 "코뿔소 교회가 온다"(The Barbarian Way)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1330년초 더글러스는 스코틀랜드를 떠나 스페인의 그라나다 십자군 전쟁에 참전하게 됩니다. 전투하던 중 더글러스는 포위되어 죽게 될 상황에 놓입니다. 그때 그는 목에 걸고 있던 심장을 적에게 던졌습니다. 그리고 병사들에게 외쳤습니다. "왕의 심장을 위해 싸우라". 그는 누구의 심장을 던졌으며, 왜 심장을 목에 걸고 다녔을까요? 그 심장은 친구 브루스 왕의 것이었습니다. 로버트 브루스는 스코틀란드를 해방시킨 왕입니다. 1329년 54세의 나이로 죽기 직전에 부르스는 친구 더글러스에게 유언합니다. "내 심장을 몸에서 떼어내게. 심장만이라도 십자군 원정에 동행하게 해 주게. 그리고 그 전쟁에서 부디 이겨야 하네." 그때부터 더글러스는 방부 처리된 왕의 심장을 작은 상자에 넣어 목에 걸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모든 전쟁에서 왕의 기대를 이루리라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전쟁터에서 심장을 던지며 용맹하게 외친 것입니다. "왕의 심장을 위해 싸우라." 왕의 기대를 이루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입니다.

본문은 포도원의 노래라고 불리우는 비유입니다. 한 농부가 기름진 산에 포도원을 만들었습니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고 좋은 열매를 기대합니다. 망대를 세우고 울타리를 치고 가지를 잘라주고 잡초를 뽑고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포도나무는 농부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고도 기대와 는 달리 먹을 수 없는 들포도를 맺었습니다. 들포도는 '바아쉬' 로서 악취를 풍기는 야생 포도를 말합니다. 그래서 농부는 다시는 열매 맺는 데 필요한 은혜를 베풀지 않겠노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보호막을 제거하여 타인과 짐승에게 짓밟히도록 내버려두겠노라 합니다. 포도원은 황페화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비유는 7절에 스스로 해석이 되어 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 포도나무는 유다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또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좋은 포도는 정의와 공의이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맺은 들포도는 포학과 부르짖음입니다. 우리는 본문에 나오는 '포도원의 노래' 를 보면서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고 사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극상품의 열매를 맺었는지, 아니면 들포도를 맺었는지 살펴야 합니다. 들포도를 맺었다면 "들포도를 맺음이 어찜이냐" 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심정을 깨달아야 합니다. "들포도가 어찜이냐" 의 의미는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우리게 베푸신 은혜입니다

1874년 헝가리 태생의 한 소년이 5센트만 가지고 미국을 향해 떠났습니다. 소년은 주머니에 돈은 없지만 굳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꿈을 버리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여 콜롬비아 대학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어서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과 독일 베를린 대학을 거쳐 콜롬비아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이 소년은 미국의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푸핀(Pupin)입니다. 푸핀은 2차 X선을 발견하였고, 유선통신에 지대한 공을 세웠으며 "이민에서 발명가로(From Immigrant to Inventor)" 라는 자서전으로 1923년 퓰리처상까지 받았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오늘날 내가 이렇게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기 때문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에게 불어 넣어주신 하나님의 생기는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2절에 '극상품 포도나무' 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히브리 원어로는 '소레크' 입니다. 소레크란 예루살렘 언덕 밑에 있는 마을의 붉고 탐스러운 포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포도원인 교회에 극상품의 포도나무로 이스라엘을 심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대한 기대를 갖고 애굽에서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이주시켰습니다.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 가나안 7족속을 몰아내 주셨고, 원수들도 막아주심으로 열매 맺는 데에 필요한 모든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제사장적 사명을 감당하는 나라와 민족을 만들어 주시는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 중에서 특별히 우리를 택해 '성도' 라는 이름의 극상품 포도나무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환란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치시고 망대를 세워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셨습니다. 넘어졌을 때 일으켜 주시고, 병들었을 때 안수해 주시며, 지쳐 있을 때 어루만져 바른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온갖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심어주신 극상품 포도나무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를 향하신 탄식입니다

영국의 헨리 8세(Henry Viii) 때의 일입니다. 주일이 되어 황제가 궁중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래티머(Latimer)주교는 설교를 하며 왕의 비행을 비난했습니다. 왕은 몹시 노하여 예배 후 주교에게 말합니다. "그대의 설교가 나를 화나게 했소. 그러나 용서해 주겠소. 대신 다음 주일에 교인들 앞에서 취소하는 설교를 하시오. 만약 취소하지 않는다면 목숨을 부지할 생각을 하지 마시오." 주교는 고민이 되었습니다. 설교를 취소하고 싶었지만, "너는 하나님의 사자가 아니냐?" 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결국 주교는 불의 앞에 굴복할 수 없다는 결단을 내립니다. 그 다음 주일이 되어 주교는 더 준엄하게 황제의 비행을 비판했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황제가 주교를 부릅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나의 명령을 거역했는가?" 주교는 대답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비행에 탄식을 하고 계십니다. 그 탄식을 전한 것뿐이니 황제의 처분대로 하소서" "그렇다면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 "하나님께 의무를 다하고 육신의 생명을 마치면, 천국의 무한한 영광이 기다리고 있기에 기쁨이 넘칠 뿐입니다." 왕은 주교의 말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주교의 손을 잡고 말합니다. "영국에 그대와 같은 훌륭한 인물이 있음에 하나님께 감사 드리오. 그리고 나를 보시고 하나님이 탄식하신다니 회개하겠소. 그대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소." 주교의 눈에서는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본문을 보니 하나님께서 좋은 포도를 맺으리라 믿고 망대도 만들고 술틀도 팠습니다. 그러나 포도나무는 들포도를 맺음으로 하나님을 탄식하도록 만듭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본문 7절 하반절에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고 탄식하십니다. 여기에서 '공평'인 '미쉬파트' 와 '포학'인 '미쉬파흐' 는 원어상 어감이 비슷합니다. 또 '의로움' 인 '체다카' 와 '부르짖음' 인 '체아카' 도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의미합니까? 겉모양은 비슷하나 속내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외부적으로는 성전의 제사 생활과 율법을 지키는데 열심인 것 같으나 그 마음은 하나님을 떠나 육체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신앙적 열심을 가장한 죄를 지은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들 포도의 삶입니다.

그러기에 본문 3절에 계속하여 하나님의 탄식이 나옵니다.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내가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겠느냐?" 포도원을 향해 은혜를 베풀었건만 들포도를 맺었으니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는가 라는 하나님의 탄식입니다. 우리도 들포도를 맺었다면 하나님의 탄식이 우리의 귀에 들려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탄식은 회개를 촉구하는 음성입니다. 하나님의 탄식은 우리가 다시 일어나기를 원하시는 음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위를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돌이켜야 합니다. 들포도를 맺은 모습에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로 이루실 기대입니다

아프리카의 선교사였던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박사에게 한 부인이 다가와서 질문을 합니다. "당신은 위대한 학자요, 천재적인 음악가입니다. 당신같이 훌륭한 분이 어떻게 아프리카 오지에서 봉사하며 살고 있습니까?" 이 말은 들은 슈바이처는 눈을 지긋이 감으며 말합니다. "나는 말로 사람을 감동시킬 재주가 없답니다. 그래서 행동으로 감동을 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이것을 전하고 싶은데 말이 안되어 행동으로 표현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행동으로 표현하자 더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나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삽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우리로 하나님의 기대를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열매를 기대하십니다. 2절 중반에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의 말씀이 나옵니다. 이는 극상품의 포도로 포도주를 만들 계획으로 술틀을 판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대는 무엇입니까? 현대 교회마다 제자훈련을 통해서 많은 신앙인들을 배출시킵니다. 그러나 사회를 향한 교회의 영향력은 점점 감소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맥마너스(McManus) 목사는 믿음의 야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코뿔소는 9m 앞 밖에 보지 못하지만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무조건 돌진하는 짐승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신앙인들도 코뿔소처럼 저돌적인 신앙을 가질 때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길들여진 기독교가 아니라 초대 교회처럼, 즉 로마인들에게 야만인(Barbarian)이라고 불리워졌지만 로마를 정복해 버린 그 야성의 믿음을 하나님은 기대하십니다. 맥마너스 목사는 젊은이들이 사라져버린 60년된 교회를 부임하여 교회의 체질을 야성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이름도 '모자이크(Mosaic)' 교회로 바꿨습니다. 조각조각 부서진 파편같은 존재이나 하나님의 손으로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주시리라는 뜻입니다. 모자이크 교회는 야성적인 믿음으로 주님의 사명에 전속력으로 응답하는 '코뿔소 교회' 로 전환되어 큰 부흥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는 지금보다 더 강한 모습으로 열매맺는 모습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포도원은 교회입니다. 여러분은 포도원에 심겨진 극상품 포도나무들입니다. 그러기에 좋은 포도를 맺어야 합니다. 들포도를 맺으면 안 됩니다. 들포도는 들판의 가꾸지 않은 포도나무들이나 맺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이란 포도원을 주셨는데도 들포도를 맺으면 하나님은 진노하십니다. 부디 극상품 포도나무로 만들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열매를 통하여 기대를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아시기 바랍니다. 좋은 포도를 맺기 위하여 희생과 헌신으로 일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는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탄식하셨으나, 여러분들은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과연 좋은 포도를 맺었도다" 라는 칭찬을 얻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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