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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안식의 장애물을 극복하라 (히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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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생활은 정말 좋은 것인가? 많은 이민자들이 단 하루도 쉬기 힘들다고 말한다. 관광 가이드를 하는 어떤 분이 자신의 휴가를 즐기면서 30년만에 갖는 첫 휴가라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민자들의 마음의 한 곳에는 구멍이 있는 듯하다. 그들은 고독하고 외롭기도 하다.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는 사람들조차도 늘 공중에 떠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주위를 돌아보면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우리들은 어디서나 생존경쟁을 해야하고 우리의 환경은 우리를 편하게 놓아두지 않는다. 가장은 가장대로, 주부는 주부대로, 학생은 학생들 나름대로 스트레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럴 때마다 ‘하나님, 나의 안식은 언제부터인가요?’라고 묻기도 한다. 우리모두는 안식에 대하여 깊은 가슴으로부터 갈망하고 있다. 하나님도 6일 동안의 창조 사역 이후에 안식하셨고 또한 우리에게 안식을 명령하고 계시다. 안식은 우리의 특권이며 권리이다. 우리는 ‘안식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하는가? 혹은 ‘안식을 누리고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가? 그러나 우리는 왜 우리의 안식에 방해를 받고 있는가? 그리고 그 장애물이란 무엇인가? 본문의 1절을 보자.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안식이 필요한 성도가 안식에 대한 약속이 있어도 누리지 못하고, 누리지 못함을 염려하고 있다. 당시에 로마에 있던 유대인들의 일부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이 때문에 핍박을 받기 시작하였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신앙을 포기하는 자들이 생겨났고 내가 과연 믿음대로 살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에 사로잡히기도 하였다. 어려울수록 안식을 누려야하는 것이 성도의 특권이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3, 4절에는 성도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목회자의 심정이 마치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안타까운 마음과 같이 표현되어있다. 공부와 사춘기의 문제는 그저 과정일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로 인해서 자녀들이 잘못되는 모습을 보며 부모들은 참으로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부모들은 훈계하고 권면한다.

3, 4절에서 히브리 기자가 이야기하는 대상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안식을 주겠다고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갖고 애굽을 나온 자들이었지만 그들은 수시로 안식을 얻는데 실패하였다. 히3장10, 11절을 보자.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 11절에서 하나님은 그들이 결단코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10절에서 그 이유가 그들의 마음이 미혹되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편95편8-11절에서 이스라엘 민족들이 안식할 수 없었던 이유를 보다 상세히 말씀하고 있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 맛사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말찌어다 그 때에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며 나를 탐지하고 나의 행사를 보았도다 내가 사십년을 그 세대로 인하여 근심하여 이르기를 저희는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도를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출애굽 이후에 광야에 접어든 이스라엘 민족은 맛사라는 곳에 이르러 물이 없음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한다. 하나님은 바위로부터 마실 물을 만들어 주시지만 하나님은 이 일로 노하신다.
물론 우리는 원망할 수 밖에 없는 약한 존재들이다. 어디를 돌아보아도 돌파구가 없고 수없이 많은 문제들로 둘러싸여 있다면 우리는 원망할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 있다면 우리는 원망할 수 밖에 없어 보인다. 우리 인생 중에 이러한 상황은 얼마든지 있다. 동서남북이 모두 막히고 하늘까지도 막혀 있는 듯 할 때에 과연 우리는 여유있게 살 수 있나?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 원망을 했다고 해서 안식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러나 분문 4장2절을 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하나님은 우리가 그 안식을 믿음으로 받아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안식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다. 이것이 실패의 이유이다. 불신앙이 우리에게 안식 없음의 이유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안식이 없는 이유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10장1절-13절에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은 기가 막히게 인도하셨고 기가 막히게 공급하셨다. 하지만 그들은 우상을 숭배했고 간음하였으며 원망하였다. 물론 그들의 입장은 이해가 되는 면도 있다. 도울 사람도 없고 물이 나올 수 있는 곳도 없고 눈에 보이는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인도하는 분은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구원하시려고 애굽으로부터 인도하여 내신 것이다. 그의 백성이 죽는다면 하나님이 더 손해이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은 하나님께는 아무런 문제도 아니다. 왜 하나님을 원망하는가? 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다 내팽개치고 있는가? 13절은 그 백성이 실패한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을 허락하신다고 했는데 그들은 그들의 상황이 끝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그 때가 끝이라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입장과 시각은 전혀 달랐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이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너희들이 시험을 넘을 수 있도록 내가 도울 것이고 이것이 결코 끝이 아니며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같은 상황 앞에서 하나님과 우리의 입장은 참으로 많이 다르다. 우리의 원망은 불평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불신이다. 그래서 우리는 안식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이민생활 중에는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참으로 많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여 ‘하나님도 이해하시죠? 더 이상 길이 없죠?’ 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너희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주지 않는다’라고 대답하신다. 그의 백성들은 현실적으로 approach하였고 그들의 현실을 뛰어 넘지 못했다.

왜 안식이 필요한가? 내가 쉽게 뛰어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것이 지혜로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광야에서 세상적인 우리가 무슨 안식을 얻을 수 있을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계시는지 생각해보라. 하나님은 우리의 현실을 뛰어 넘어서 당신의 품에 안기라고 요구하신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하신다. 이것이 믿음의 비밀이다. 이제 하나님이 주시는 보다 구체적인 해답을 들어보자.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브리3장1절)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히브리4장14절)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브리12장1,2절)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라(히3장1절)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잡으라(히4장14절)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히12장1,2절)

가장 현실적인 어려움을 향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해답들이다. 이 말씀 속에 안식이 있다. 현실에는 결코 만족이 있을 수 없다. 진정으로 안식해야 만족이 있다. 안식할 때에야 비로소 나를 압도하던 문제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이 예배가 끝나면 우리는 다시 장애물이 기다리는 현실로 돌아갈 것이다. 하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신다. 그리고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는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는 가장 힘들 때에 이 고백을 한 것이다. 힘든 이민의 삶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의 가정과 사업장과 직장이 바로 우리의 안식처가 되어지기를 바란다. (김기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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