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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땅을 기업으로 받는 자의 행복 (마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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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때문에 고민이 많은 어떤 여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성격이 급하고 고약해서 늘 싸움이 끊어지지 않았고 싸움만하면 집안에 물건은 죄다 부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눈에 띄는 책이 한권 있어서 샀습니다. 제목은<강아지훈련 시키는 법>이었습니다. 아무리 포악한 개라도 이 방법으로 훈련시키면 아주 온순한 개가 되고 잘 길들여진다는 비법을 상세하게 적어놓은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중에 머릿속에 성급하고 고약한 성격의 남편 생각이 난 것입니다. 이 방법대로 혹시 잘 길들여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그 책이 말하는 대로 해봤습니다. 조금이라도 잘했을 때는 열심히 칭찬을 해주기도하고 때로는 보상도 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정말 남편이 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강아지 훈련시키는 방법이 이렇게 남편을 딴 사람으로 만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너무나도 효과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단 일주일 만에 이 아름다운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장롱 속에 넣어둔 이 책을 남편이 보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되었겠어요?“이 여자가 나를 강아지 취급했다.”고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도로 강아지만도 못한 남편이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여기 나오신 여자분들 중에 강아지만 못하지 않고 괴팍하지도 않고 온유한 성격을 가진 사람을 남편으로 맞이하신 분들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다혈질의 성격이 많거든요. 그 중에 성격 좋은 사람 만난 것이 복이지요. 그런데 이미 잘못 만나서 어쩔 수 없이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사람 만들어서 살아보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길들여서 온유하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원래<온유>라는 말은 짐승을 길들여 주인의 말에 순종하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 말을 듣도록 길들이려고 하면 안 되는 게 당연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온유>라고 하는 말이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그러니까“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성품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로 온유란 진실입니다. 행복의 근본이요, 뿌리요, 하나님의 복을 받을 자가 갖추어야할 덕목이자 우리가 주일마다 하나씩 배우고 있는 예수 믿는 자격증의 하나입니다.

헬라 철학자[소크라테스]는 사람의 성장과정을 네 단계로 나누어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첫 단계로 어려서는 겸손하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겸손을 배우지 않고는 철이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로 혈기가 왕성한 청년의 때는 온유하라고 했습니다. 혈기를 잠재울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한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장년이 되어서는 공정하라 그랬습니다. 욕심이 지나치기 쉬운 때가 장년의 때라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공정하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로 늙어서는 신중하라고 했습니다. 잘못하면 주책이라는 소리를 들으니까 매사에 신중히 하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온유라는 말은 오늘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부탁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온유라는 말은“바보처럼 바보짓하며 살라”는 정도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즉 온유라는 말의 의미를 인간의 가장 바보 같은 심성, 나약함의 대명사, 소신 없고 줏대 없는 사람으로만 이해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내 성품이, 내 인격이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이렇게 나약해 보이고 연약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의 인격이라면 그 온유가 하나님나라에서는 가장 강한 힘이라는 사실을 오늘 말씀 속에서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군인도 소위와 중위 그리고 대위와 같은 위관 급 장교를 용장(勇壯)이라고 부릅니다. 위관급장교가 반드시 갖추어야할 덕목은<용기>입니다. 반면에 소령과 중령 그리고 대령과 같은 영관급 장교를 지장(智將)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영관급 장교가 갖추어야할 최고의 덕목은<지혜>입니다. 그러나 군대에서 별을 단 장군을 덕장(德將)이라고 부릅니다.<덕>을 갖추었다는 것이지요. 힘과 용기를 생명으로 여기는 군대에서도 결코 그 힘과 용기가 최고의 힘이 아닙니다. 그 보다는<지혜>가 더 힘이 있고, 지혜보다는<덕>이 더 힘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힘은 겉모습의 강함과 무뚝뚝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온유에서 나온다는 중요한 사실의 일례가 아니겠습니까? 또한 온유한 성품이란 용장을 거치고 지장을 거쳐서 긴 훈련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결국 온유한 성품이란 다듬어진 인격이라는 말입니다. 배우고 가르치고 명상하고 그리고 많은 사건을 통해서 실패를 거듭하면서 다듬어지고 훈련되어집니다.

우리는 가끔 이런 말을 잘합니다.“타고난 성품은 어쩔 수 없다”고...그래서 부부싸움을 할 때도 꼭 끝에는 이렇게 끝납니다.“나 원래 성질이 이래! 뱃속에서부터 타고난 성질이야! 왜! 모르고 결혼했어?”사실 여기에 중대한 과오가 있습니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온유하게 태어난 사람도 있고 좀 더 과격한 성격의 사람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마는 이것을 본성으로 돌려버리면 안 됩니다. 언제 변화할 것입니까? 문제는 한 평생 살면서 온유는 배우는 것입니다. 온유는 익혀 나가고 훈련되어 나간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곧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중요한 예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온 인류 중에 가장 온유가 큰 사람이라고 인정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굽니까? 네, 모세입니다. 민12장에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모세의 온유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 번 냉철하게 생각해 봅시다. 모세가 원래 그런 온유를 가진 사람이었습니까?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때려죽이기도 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광야로 쫓겨나기도 하고 40년 동안 아무 기대도 소망도 없이 자기 기업도 아닌 장인의 양이나 이리 저리 몰고 다니는 목자가 되어 버립니다. 이 긴 세월을 자기에게 약으로 삼고 낮아지고 다듬어져서 민수기12장의 하나님께 인정받는 온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사로운 감정이나 인간적인 격정 같은 것을 다 불식하고 오로지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거기에 온유함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온유함이란 배움의 자세입니다. 듣고 싶어 하는 마음, 듣는 마음, 배우는 마음이 온유입니다. 가만히 보면 자기 잘 났다고 하는 사람 절대로 남의 말을 안 듣고 자기 말만 하려고 합니다. 이건 불행입니다. 자기발전이 없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언제나 마음을 열고 듣는 자세를 가지는 그것이 온유함입니다.

예수님께서 마11:29에서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세상 적인 상식으로는 힘이 세고 강한 자라야 무엇인가를 차지할 수 있고 약한 자는 언제나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권투하는 것을 보면 많이 때리고 세게 때리는 사람이 챔피언벨트를 차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약육강식이요, 적자생존의 법칙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세상살이의 유일한 방법인지 모릅니다. 이러한 세상 가운데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폭력이나 무력 등 어떤 세상 적인 힘에 의해서 또는 어떤 지배적이고 공격적인 영웅에 의해서 땅이 정복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온유한 자들에 의해서만 땅이 정복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우리나라 사람들 땅 참 좋아하거든요. 어디 싼 땅이 나타났다 하면 돈 싸들고 서로 사려고 머리 터집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누가 그 땅을 가집니까? 가만히 보니까 권력 있고, 돈 힘이 있는 사람들이 가지더라고요. 보세요. 우리나라 요지는 누가 다 가졌는지...정치판에 내로라하는 양반들 보니까 전부 땅 부자입니다. 권력이, 재력이 가지게 했거든요. 그렇다면 오늘 예수님의 이 말씀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세상을 볼 때 잘못 된 기준에 눈을 맞추지 말아야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이 결국은 이것입니다.

“신이 죽었다. 하나님은 죽었다.”고 떠들었던 철학자가 있었습니다.[니체]입니다. 이 사람이 오늘 예수님의 이 말씀에 콧방귀를 뀌면서 한 말이 뭐냐 하면<슈퍼맨정신>을 이야기했습니다. 신도 하나님도 필요 없고 내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초능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이 세상을 이기고 세상을 가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참 우스운 일은 그렇게 큰소리치던 자신은 정작 정신병에 걸려 자기가 어떻게 죽는지도 모른 채 죽어갔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 철학자의 말을 맹신하고 실제로 정치계에 그것을 활용했던 악마가 하나 등장했는데 그가 바로[히틀러]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온유가 빠져버린 슈퍼맨의 정신은 저주받은 폭력이요 지옥 같은 파멸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얼마나 온유해져야 하느냐는 심각성도 배우게 됩니다.

보십시오.[뭇 솔리니]가 이 세상을 차지한 것이 아닙니다.[히틀러]가 이 땅을 정복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삶은 실패로 끝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람이 온유해 진다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격증의 또 하나의 모습은 온유해지는 것일진대 우리는 성경의 말씀에서 그 방법을 얻어야 합니다. 성경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안에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의 역사로 가능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분명히 성경은 온유를 성령의 열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성령의 주도하심에 언제나 순응 할 수 있는 사람, 나를 이끌려고 하는 자신을 억제하고 늘 성령의 이끄심에 나를 던질 줄 아는 사람이 온유할 수 있고 그런 사람이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의 원 개념은 Owner ship 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땅을 내 소유로 삼고 그것을 즐긴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잘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땅을 소유하는 자체를 복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무엇입니까? 소유를 누릴 줄 아는 것이 복입니다. 이 세상은 땅 전쟁입니다. 어떻게 하면 한 평이라도 더 차지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기업으로 받아 누릴 땅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업이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이요,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땅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약속의 땅은 어디입니까? 가나안입니다. 영적인 의미로는 천국이란 말입니다. 이걸 아셔야 합니다. 내가 예수를 믿고 천국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 천국을 누리면서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도대체 살아가는 모습이나 신앙 생활하는 것을 보면 천국을 가진 사람 같지가 않고 정말 땅덩어리 꽤나 가지고 땅 부자로 거들먹거리며 사는 이 땅의 사람, 부동산 투기꾼과 같다면 복을 잘못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천국을 소유하고 누리기 위해서 먼저 우리가 갈망해야 할 것을 오늘 예수님께서 일러주십니다. 무엇입니까? 온유해지라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이 모두 땅을 기업으로 받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주인이 되시는 천국의 모형이 여러분에게 이루어지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아 그 천국을 누리며 사는 자의 행복>은 온유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예수 믿는 자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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