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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을 들을 때 임한 성령 (행 10:3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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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3장 16절과 마가복음 1장 9절에 의하면 주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실 때 물세례를 받으시고 하늘이 열려지며 비둘기 같은 성령이 예수님께 임하셨다. 누가복음 3장 16절에 의하면 세례 요한은 뒤에 오시는 주님을 말씀하실 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이라고 소개하였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성령은 또 다른 보혜사라고 하셨다.

이렇게 보면 성령과 예수님은 무관한 것이 아니며 예수님은 성령을 받으시고 사역을 시작하였고 주님 자신도 내가 불을 던지러 왔다고 말씀하시므로 성령을 부어주실 것을 보여주셨다.(눅12:49) 복음서 기자들이 예수님을 언급할 때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능력을 행하시는 분이라고 말하기보다 성령이 임하므로 병든 자를 고치고 권세 있는 가르침을 하시며 온 동네를 두루 다니며 전도하였다고 기록한다. 이는 주님의 사역에 있어서 성령이 얼마나 중요한 분인지를 가르치는 것이다.

행10:38∼43에 나오는 베드로의 설교에도 예수님의 사역이 성령을 받으시므로 전개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라고 하였다. 행10:39∼43을 보면 이 놀라운 예수를 유대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은 삼일 만에 부활하시게 하였고 이 예수를 믿는 자는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고 하였다.

이 베드로의 설교가 고넬료 가족들에게 들려질 때 성령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려오셨다. 행10:46을 보면 고넬료의 가족은 방언을 말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높이게 되었다. 그러므로 방언의 은사를 받게 된 것은 성령에 관한 말씀을 들을 때 이루어졌다. 행11:15을 보면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즉 고넬료라는 이방 장교가 성령을 받고 방언하게 된 것이 베드로와 120문도가 마가 다락방에서 기도하다가 성령을 받고 방언한 것과 같이 되었다는 증언이다.

우리는 여기서 확실한 사실을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실 때 마가의 다락방에서 임한 은사는 기도로 받았다. 전혀 기도에 힘쓰므로 성령을 받았다. 그런데 여기 사도행전 10장에서 고넬료의 가정에 성령이 임하고 거기서 나타난 방언은 말씀을 들을 때 받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일이 중요하지만 말씀을 드는 일도 중요하다. 이 시간, 이 시대에도 말씀을 들으면 성령이 임한다. 듣는다는 것은 믿고 받아드리는 것을 말한다. 거절하고 부인하고 의혹을 가지면 성령의 은사는 임하지 않는다.

금번 전교인 여름수련회에서 고등부의 하예지 학생이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 마지막날 수련회에 임한 소감에 관한 간증을 시키니까 말씀을 들을 때 약속하신 성령님이 거하고 은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 은사를 받겠다는 소원이 일어났다. 결국 방언이 나타났는데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을 믿고 받아드린 것이다. 성령은 말씀을 들을 때 임하는 것을 확실히 본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고넬료 가정이 성령을 받고 방언을 하도록 역사를 일으킨 것도 하나님께서 성령을 예수님에게 기름 붓듯 부어주셨다는 말씀 때문이다. 베드로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을 받은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말씀의 주제가 된 기름 붓듯 부어주신 성령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첫째, 존재를 거룩하게 구별하심을 말한다.

기름을 붓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기름부음은 하나님을 위해 세워지게 쓰여지도록 하시는 의식이다. 만약 기름이 어떤 물건에 부어지면 그 물건도 구별된다. 출30:25∼29을 보면 성막 안에 있는 모든 기구와 제단은 모두 다 기름을 발라 구별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 성별되는 것은 기름부음이다. 제사장직을 감당하는 아론과 그 아들들은 기름을 부음으로써 제사장 직분에 쓰여지도록 성별하였고(출30:30), 다윗 왕도 장차 왕이 되실 이로 구별하여 세울 때 기름병을 취하여 기름을 부으므로 구별하였다.(삼상16:13) 또한, 선지자로 엘리사를 세울 때 기름을 부어 선지자가 되게 하였다.(왕상19:16) 따라서 기름부음(Anointing)은 필수다. 사람을 구별하고 성별하는 필수 의식이다. 예수를 메시아 즉 기름부으심 받은 자라 하는 것은 예수가 왕이요, 선지자요, 제사장 직임을 위해 성별된 자라는 의미이다. 기름부음은 그의 존재 자체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크리스챤으로 살아가고 있다. 오늘 우리가 진짜 구별되어 세워진 크리스챤이 되려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야 한다. 누구든지 물세례만 가지고는 거룩하게, 의롭게 살아가기가 힘들다. 기름부음 받지 못한 제사장이 정식으로 구별된 제사장이 아니듯 성령의 기름부음이 일어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사역에 크게 소용되지 못한다. 능력 있는 크리스챤이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존재로서 모든 사람을 위해 섬기며 기도하며 중보하며 일하는 영적 제사장으로, 왕같은 제사장으로 성별되려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기름 부으시듯 성령이 부어지도록 원해야 한다.

둘째, 사역을 강건하게 함을 말한다.

성도와 사람을 구별하는데 쓰는 기름은 식물성이다. 이 기름은 약재이면서도 주요한 영양원이다. 단백질, 탄수화물과 함께 이 기름은 3대 영양소에 속한다. 기름이 공급되지 않으면 건강한 생명을 유지하기 어렵다. 몸이 쇠약해지므로 추위를 견디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영적 속사람이 강건하지 못하고 일의 진보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생명 유지와 건강을 주는데 필수적인 기름을 공급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에너지원이라 할 수 있는 기름을 내 머리에 부어주시도록 구해야 한다. 성령을 부어주시면 그 기름 부어주심을 받은 성도는 활력이 생기고 사역이 강건하게 된다. 기름은 열을 내는 것이기에 성령 받은 성도, 성령 받은 교회는 역동적이 된다. 맡겨진 일에 태만하지 않고 뜨겁게 일을 처리해 낼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 지치지도 않고 쉽게 곤비하지 않는다. 열심히 하고자 마음을 먹지만 실제적으로 주의 일을 하는데 힘이 없다면 기름 없는 신앙생활이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 예배에 나오는 것조차 할 수 없이 온다면 기름부음을 받아야 한다. 충만하도록, 흘러 넘치도록 받아야 한다. 기름부음을 받으면 교회에 나오는 발결음이 다르다.

셋째, 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역할을 함을 말한다.

기름은 윤활성을 가지고 있다. 물건이 서로 부딪칠 때 거친 마찰은 감소시키고 소리가 나는 물체를 조용하게 만든다. 사람들의 마음이 무수한 부딪침과 대결 구도로 인해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여기 저기서 죄가 주는 갈등 때문에 탄식하는 소리가 높아간다. 이런 고통의 소리, 아픔의 소리를 감소시키고 아예 화해하는 관계로 만드는 일은 기름부음에 있다. 기름 부으시듯 성령이 임하여 충만케 되면 나와 너 사이의 삐그덕 거리는 관계가 좋은 관계로 바뀐다. 서로를 다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지내게 된다.

서로에게 유익하고 도움이 되는 인간 관계란 도덕의 힘이나, 학력이나, 사회적 규범만 가지고는 역부족이다. 오직 기름을 붓듯 임하시는 성령 충만이 이루어질 때 죄의 불순물이 제거된다. 성령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 화해가 되고 하나가 된다. 예수님이 죄 때문에 단절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신 것은 절대적인 성령의 기름 부으심 때문이었다.

우리도 서로 단절되고 상처 투성이로 얼룩진 관계를 개선하려면 성령을 부어주시도록 구하라. 고후5:18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성도는 화목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나와 너, 나와 나 자신, 나와 우리들 사이에 화목을 만드는 삶을 이루어 가려면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어야 한다. 성령이 부어지면 미움과 대결과 당 짓는 것이 다 없어진다. 마치 녹이 쓴 자물쇠가 열리지 않아 애를 먹을 때 기름을 부으면 철컥하고 자물쇠가 열려지듯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성도는 싸우는 소리가 그치고 화해하고 사랑으로 하나가 된다. 성령이 임한 가정이나 집단이나 교회가 나타내는 특징은 화해된 모습이다.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사랑의 모습이다. 기름부음이 있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착한 일을 하게 되고 마귀에게 눌린 사람을 고치게 된다. 자신을 누르는 모든 어두움의 권세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성령의 기름부음은 서로서로 하나가 되게 한다. 설교하는 베드로와 설교를 듣는 고넬료가 먼저 화목하고 하나가 되었다. 1907년 평양의 대부흥은 선교사와 성도를 하나되게 하였다. 목사와 성도만이 아니다. 교단이 하나되게 한다. 대부흥의 시작 이후 감리교가 20만 성도 운동을 일으키자 장로교가 제안하여 100만 성도 운동을 펼치기로 하였다. 교파가 서로 하나되었다. 교파가 연합하여 움직였다.

1723년 8월 13일 모라비안 교도들에게 성령이 임재하였다. 순교자 요한 훗스의 추종자들은 박해를 피해 도망치다 진젠돌프 백작이 있는 곳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그리하여 독일 헤른훗트는 모라비안 교회의 모태가 되었다. 그런데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기 전 모라비안 사람들은 서로간에 갈등이 심했다. 교리적 논쟁과 당을 짓고 분리의 위기로 몰고가는 논쟁이 매일 반복되었다. 사랑대신 독한 미움, 그리고 다툼이 있었다. 그런데 성령의 부어주심이 있던 1723년 8월 13일부터 그들은 화목하고 한마음이 되었다. 그들은 기쁨으로 웃었고 한 잔의 물을 마셨고 한 덩어리의 떡을 떼었고 하나의 맘을 하였다.

성령의 기름부으심, 이 부어주시는 일만이 분열의 마귀를 물리치며 착한 일을 하게 한다. 거룩한 크리스챤, 사랑의 크리스챤이 되게 한다. 아직도 우리가 죄를 이기지 못하고 사역에 활력이 없고 거칠고 일만 하면 부딪히고 소리가 난다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사모하라. 성령에 관한 말씀을 듣는 이 시간, 성령의 임재함을 믿자. 바로 지금 듣는 자는 성령이 임한다. 기름부음이 내게 일어나야 한다고 받아드리면 성령이 임하신다. 우리는 기름 부으심으로 인해 달라질 수 있다. 존재와 사역과 관계가 달라진다. 존재가 거룩하게, 사역이 활력 있게, 관계가 부드럽게 달라져 놀라운 일을 행하게 된다. 이 성령 받는 복이 나와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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