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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때문에 실망한 이들에게 (왕상 19: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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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때문에 실망한 이들에게
열왕기상 19:1-18 

우리는 지난주에 엘리야의 기도에 불로 응답하셨던 하나님을 뵈었습니다. 오늘은 그 내용의 후편입니다. 우리는 꼭 지난주의 설교가 아니더라도 엘리야에 대한 몇 가지 기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엘리야에 대한 기억

북쪽 이스라엘에서 활동하였던 선지자 엘리야는 우리가 읽지 않았지만 앞 장에서 죽은 아이를 기도해서 살리기도 하고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기를 구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신 선지자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바알과 아세라 라고 하는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 850인과 대결하였던 선지자였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기를 구했던 불꽃같은 선지자, 가을날 서릿발 같은 말씀으로 백성들을 꾸짖던 선지자가 엘리야였고 누구든지 그의 활약을 읽고 있으면 속이 시원해지는 듯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사역자로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게 만드는 선지자였습니다.

엘리야가 맞게 된 상태

그런데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읽은 본문에는 이상한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엘리야는 그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들과 생명을 걸어 놓고 대결하였던 사람입니다. 누구보다도 용맹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타오르던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경험도 했습니다. 열왕기상 17장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하늘에서 불을 구하고 또 비 오기를 구했던, 우리의 신앙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감히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기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하늘에서 3년 반 동안이나 비 오지 않기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담대하고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했던 사람이 오늘 우리가 읽었던 곳에서는 너무나도 초라하고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갈멜산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아 놓고 너희들이 어느 때까지 머뭇거리겠느냐고 호통 치던 그 엘리야가 여기서는 “하나님 못하겠습니다. 차라리 제 생명을 거둬 가 버리십시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선지자 850인과 대결하였고 하나님의 불이 떨어지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도살되었고 하나님을 떠나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환호하며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그는 하나님이시로다.”라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외치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이젠 모든 것이 끝나고 이스라엘에 평화가 찾아와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불이 떨어지는 것을 목격한 백성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고 이 사실을 전해들은 아합왕과 이세벨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이야기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영화나 TV 드라마를 보면서 이런 정도의 스토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끝나지 않았고 심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선지자들이 몰살당했다는 소식을 남편 아합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세벨은 독기어린 협박을 엘리야에게 합니다.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19:2) 엘리야를 죽여 버리겠다는 말이지요.

저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엘리야라고 하면 이정도의 협박정도는 우습게 여기고 더 열심히 하나님을 말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성경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고 있습니다.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3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당당히 맞서는 것이 아니라 무서워 도망하고 있는 엘리야의 부끄러운 모습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 도망갑니까? 성경에는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라고 합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은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로 나누어져 있었다고 말씀드렸지요. 엘리야는 북쪽 이스라엘에서 활동하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국경을 넘어 남쪽 유다에까지 내려가 버렸습니다.

무서운 공포가 엘리야를 휘감아 놓기 시작했고 다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자신감을 상실시켜 버렸습니다. 그는 브엘세바에서 함께 동역했던 사환을 떠나보내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해왔던 일을 포기하겠다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그리고는 혼자서 광야로 들어가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껴 도망하였던 사람이 여기서는 또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뻗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일을 못하겠으니 더 좋은 사람, 더 잘하는 사람을 찾아보라고 하나님께 대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실망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들

여러분 이런 경험 없으셨습니까? 처음 하나님을 믿고 나서 너무나 좋아서 교회에 나오는 것이 즐겁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천사들처럼 보인 적은 없었습니까? 그러나 바로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세상의 모습을 보고 실망하고 교회를 다녀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하나님이 계신지, 안계신지 고민스러울 때가 없었습니까? 처음 예수님을 믿고 너무 좋아서 하던 모든 일(학교에 진학하는 일, 취직하는 일, 개인 사업을 하는 일 등)들이 다 잘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까? 항상 술에 취해 있던 아버지가 술을 끊고 교회 가겠다고 했을 때 감사기도를 드렸는데 바로 그날 저녁 술에 취해 들어오신 아버지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엘리야는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 곧 이루어지리라는 소망, 이스라엘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징벌이 곧 나타나리라는 기대로 갈멜산의 대결을 해내었습니다. 그렇지만 악한 아합왕과 이세벨은 여전히 살기등등하여 자신을 죽이려 하는 것을 보았을 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엘리야는 아마도 철저한 무력감에 젖어 들었을 겁니다.

엘리야가 낙심하는 이유와 결과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불이 떨어졌고 하나님의 임재가 분명히 나타났으니 이제 이스라엘에는 새로운 회개와 부흥의 물결이 뒤덮일 것이고 이세벨과 같은 이방 세력은 숨을 죽이고 물러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란 말입니다.

저는 교회에 있던 5년 동안 대학생 연령층의 청년들과 사역을 했습니다. 그 청년들과 사역을 할 때 여러 가지 훈련 프로그램들이 있었는데 그 중 수련회, 성령의 공동체 학교 등이 있었습니다. 수련회와 성령의 공동체 학교 기간동안 놀라운 하나님의 일들이 눈앞에서 펼쳐졌습니다. 도저히 마음을 열 것 같지 않던, 하나님을 도무지 믿을 것 같지 않던 친구들이 하나님 은혜에 감격해서 저녁 내내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채 기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하나님이 제게 주신 특권 중 하나였습니다. 그렇지만 수련회나 성령의 공동체 학교가 끝나고 난 그 다음 주일, 교회 출석을 하지 않는 청년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수련회에서 혹은 성령의 공동체 학교에서 눈물, 콧물 쏟아가며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는 좋았는데 집으로 가니까 어떤 현실도 바뀌어 있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술 드시는 아버지는 여전히 술에 취해 계시고 집에 아픈 동생은 여전히 아프고 고생 많으신 어머니는 여전히 고생스럽게 살고 계시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실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수련회와 성령의 공동체 학교에 참석하는 동안, 그리고 거기서 기도하는 동안 자신의 가정과 직장과 학교,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바꾸어 놓으셨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낙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 일거야 라고 생각하다가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망하고 낙담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대대로 움직여 주시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번에는 오른 쪽입니다. 다음번엔 왼 쪽으로 가는 것 알고 계시죠?” 라고 기도합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다 계획해 놓고 거기에 따라 하나님이 움직여 주시기를 기도로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 기도대로 되지 않았을 때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처음엔 누구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열정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나중엔 자신의 뜻이 관철되기를 사람들은 기대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뭔가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끝이 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엘리야와 우리가 가지는 악한 본성입니다. 갈멜산에서 그런 승리가 있었으면 이제는 그 일이 이스라엘 전역을 뒤덮어 버리고 종국에는 하나님만을 섬기는 시대가 도래해야 한다고 하나님께 알려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야 할 스토리를 들려주고는 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지 않으시냐고 그렇게 하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실망했다고 말합니다. 내가 교회에서 얼마나 열심히 봉사하며 살았는데 하나님이 이러실 수 있냐고 말합니다. 교회에서 중직자로 헌신하였는데 나의 가족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냐고 실망했다고 하나님께 알려 드립니다. 하나님이라면 세상의 머리가 되도록 도와주시고 자녀들이 건강하고 형통하도록, 사업장엔 사람들이 들끓어서 교회 다니는 사람의 사업장은 다르다는 말을 듣도록 해주셔야 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목사로서 힘들어하시는 성도들을 만날 때 속에서부터 나오는 원색적인 기도를 누를 길이 없습니다. 그 무더운 여름 날 뜨거운 다리미 증기를 마셔가며 남의 바지와 넥타이를 다리시는 분들을 볼 때에 하나님 이 분들 사업장에 사람들이 들어차서 다음에는 이렇게 힘들지 않도록 좀 해주십시오. 힘든 병을 만나 호스를 꽂고 누워 계신 분을 만날 때는 “하나님 지금 기도하고 난 후 벌떡 일어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 분 얼마나 열심히 사셨습니까?” 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기대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까?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려움과 아픔을 통해서 무언가 말씀하고 싶어 하신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열심을 품는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이 여기에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고 봉사하지만 (누가 그것을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그 일이 자신의 뜻대로 되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일이 자신의 계획과 다르게 흘러가면 아무 일도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자신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쑥 들어가 버리는 것입니다. 특히 그렇게 될 거라는 기대와 신념이 무너져버렸을 때는 죽음과도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지금 엘리야가 그렇습니다. 이 때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자부심도, 어떤 힘든 일도 견디겠다는 의지도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전에 열심히 신앙 생활하다가 요즈음은 겨우 교회만 출석하는 사람들을 만나보셨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어떤 열심도, 자신의 내면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케 되기를 원하는 갈망도 전혀 없습니다. 그냥 늘 하던 대로 왔다가 갑니다. 어떤 일을 맡기더라도 못하겠다고 하고 그 일에 대한 기대감이 없습니다. 만사가 귀찮아지는 것입니다.

사역을 하는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이 낙심

참으로 놀라운 일은 하나님의 불같은 선지자 엘리야도 이런 일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때려치우고 잠이나 자고 하나님 앞에서 못하겠다고 버티는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한때 대단한 사람이었다고 지금도 그런 사람일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비록 불같은 하나님의 사역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하지 못할 때 맥없이 추락해 버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믿음이 없을 때 힘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고 비구름이 몰려오는 기도의 체험을 하였어도 그 일로 인해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실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이겨야지 하지만 그 고통의 시간이 오래 계속되고 하나님은 가만히 계신다고 느낄 때 우리는 분노와 실망으로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그랬습니다.

엘리야가 경험하는 하나님의 위로

이런 낙심과 실망 가운데 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우리에게 찾아오는 하나님의 위로 중 참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왜 절망하는지 우리가 왜 힘들어하는지 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만사가 귀찮아지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워 동굴로 들어가고 광야로 떠나가고 싶을 때 사실은 그 마음에 누군가와 말하고 싶고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누군가와 교제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홀로 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적인 침체에 빠져 낙심해 있는 사람이 떠오르고 그에게 찾아가야 할 마음이 들 때에 그 마음의 소리에 순종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사역자들,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하십니다. 분명 그 마음의 소리에 순종하여 여러분들이 그 사람들을 찾아갈 때에 여러분들은 자신도 알지 못했던 지혜와 인내, 그리고 용납하는 마음이 솟아오르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그전엔 해보지도 않았던 지혜로운 권면의 말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주 찾아가고 만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한 번에 사람이 바뀌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사람들을 이끄는 일을 한 번이라도 해 보신 분이라면, 교사를 한 번이라도 해 보신 분이라면 사람이 얼마나 바뀌지 않는 존재인지 절감하셨을 겁니다. 자신의 영혼에 대해 솔직하신 분이라면 자신이 얼마나 바뀌지 않는 사람인지, 변하기를 싫어하는지 인정하실 것입니다. 영적인 침체에 빠진 사람들이 사역자와 한 번 면담하고 같이 한 번 기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그의 침체에서 벗어나는 줄 아십니까? 물론 그럴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한 번 찾아오시고, 두 번 찾아오시고 또 40주야를 기다려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호렙산에서 나타나시는 하나님

이제 호렙산에서 드디어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나타나십니다. 나타나신 하나님께 엘리야는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정말 사람들이 지긋 지긋하게 안 변하고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습니다. 거기다가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품는 사람은 나 하나 남았는데 내 목숨까지 노리는 저 사람들을 왜 그냥 두십니까?” 그렇게 불평하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나타나십니다.(11,12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불이 나타났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읽은 구절을 자세히 주목해서 보십시오.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강한 바람 가운데 하나님이 계셨습니까? 땅을 진동하고 가르는 지진 가운데, 모든 것을 다 태워버려 사람들의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불 가운데도 하나님은 계셨습니까? 그곳에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세미한 소리로 나타나셨습니다.(12절) 뛰고 있으면 느끼지도 못할 슬며시 뺨을 스치며 지나가는 실바람처럼, 가만히 서서 느끼려고 해야 겨우 알아챌 수 있는 그런 방식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사람들의 기대는 하나님께서 크고 강한 바람처럼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어 버리시기를 원합니다. 지진으로 땅을 가르고 불로 태워버리시는 분으로 나타나시기를 기대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모습이 하나님의 모습이라고 하나님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변하는 모습이 눈에 확 드러나고 오늘 회개의 눈물을 줄줄 흘리는 그 사람은 내일 삶이 확확 바뀌어야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어떤 사람이 보더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모습으로 나타나시기를 기대하고 우리 교회에도 그런 불같은 하나님, 산과 바위를 부수는 하나님, 땅을 갈라놓는 하나님이 나타나시기를 기대합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나타나시고 우리도 그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아주 조용하고 세미한 소리로 나타나셨습니다. 적어도 엘리야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단박에 뒤집어지지 않는다고 낙심과 절망 가운데 있었던 엘리야에게 세미한 소리, 어쩌면 무시해도 좋을만한 소리, 관찰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지도 모르는 소리로, “이게 무슨 하나님이야” 라고 불평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에게서 불을 기대하고 계셨습니까? 지진과 같은 일이 가정에서 일어나게 해달라고 요청하셨습니까? 크고 강한 바람이 내가 일하는 사업장과 교회에 불어주기를 기대하셨습니까?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자세히 듣지 않으면 들리지도 않을 세미한 소리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별다른 하나님의 이적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지금도 말씀하고 계신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여전히 말씀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말씀을 하시는가?

이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 불과 바람과 지진을 기대하였던 엘리야에게 비록 들릴 것 같지 않은 소리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일하고 계시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악한 아합왕은 그대로이고 그의 처 이세벨도 악행을 여전히 일삼고 있으며 자신의 목숨은 경각에 달했고 자신은 지쳐있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그리고 기대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 내용이 15절에서 18절까지의 내용입니다. “네가 하던 그 일을 하사엘이 할 것이고 그 다음엔 예후가 또 엘리사가 할 것이고 그것마저 모자라면 내가 칠천을 준비하였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왕 아합과 이세벨을 향한 심판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이 이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의한 일을 당하고 그 일이 여전히 끝나지 않아 낙심 가운데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왜 이런 불의한 일을 그냥 보고 계시는지 답답한 마음 가운데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세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불의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고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공의의 오른손으로 불의를 벌하시는 분이십니다. 엘리야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몰랐고 기대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불의를 벌하시고 성도들을 위로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만 하나님을 믿고 있고 이 어려운 사역의 짐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대신 할 엘리사를 소개하십니다. 그리고 패역한 시대 상황 중에서도 신앙의 순결을 지키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 칠천이 있음을 알려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만 신앙을 지키고 있는 것 같고 약삭빠르게 살지 않는 것 같아 두려우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도 이 타락하고 패역한 세대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순결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세워 놓고 계십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홀로 신앙생활하기에 너무 외롭고 힘들어 지쳐 버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해 순결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혼자만 하나님을 섬기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맺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때문에 혹시 실망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셨지만 별로 열매가 없어 지치셨습니까? 혹시 낙심 가운데 있지 않습니까? 열심히 기도하였는데 기도의 결과는 실망스럽습니까? 가까이 있는 가족이 변하지 않아 실망한 가운데 그럭저럭 신앙생활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비록 우리의 원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시지 않을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수고를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엘리야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눈을 들어서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우리 가정을, 그리고 나와 여러분을 어떻게 바꾸어 놓으시는지 지켜보십시오.

저와 여러분들이 신앙의 연륜이 더욱 쌓이고 지금보다 조금 더 세월이 흘러서 우리와 같은 고민 가운데 있는 형제와 자매들을 만났을 때, 불같이 강한 바람 같이 하나님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또 다른 모습을 담담히 말해줄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이 경험한 세미하고도 은밀하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낙심 가운데 있는 분들에게 전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하나님이 쓰시는 사역자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하나님의 소리에 민감한 교회가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지난 50년 동안만 성장하고 잘 한 교회가 아니라 이 지역의 영적인 구도를 책임질 교회, 다음 세대를 위해 하나님의 일을 계속 감당하는 교회로 삼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세미하게 말씀하시는 이 하나님에게서 위로를 경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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