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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1) : 결혼 (사 5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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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이스라엘과의 영원한 언약관계를 결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남편과 아내의 결혼에 비유한 것은 계시전달의 또 하나의 은유(metaphor)적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이스라엘의 남편에 비유한 것은 자기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의 상태를 간음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Ⅰ. 창조주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남편이 라고 했습니다.

본문 54장 5절에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남편"이라는 말 '바알'( )의 문자적 의미는
첫째, 주인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둘째, 통치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셋째, 소유주라는 뜻이 있습니다. 넷째, 지으신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남편이라는 표현은 이상의 뜻을 두루 가지고 있는 것을 성경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신명기 21장 13절에 "또 포로의 의복을 벗고 네 집에 거하며 그 부모를 위하여 일 개월 동안 애곡한 후에 네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 남편이 되고 그는 네 아내가 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24장 1절에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보낼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말라기 2장 11절에 "유다는 궤사를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의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구약에는 남편과 결혼을 대부분 동의어로 사용한 곳이 많이 있습니다. 바로 바알( )이라는 단어가 그 중에 하나입니다.

Ⅱ. 구속주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남편 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54장 5절에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그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시라고 했습니다. 그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신다고 할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결혼했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남편이라는 은유적 언어(metaphorical language)의 다양한 뜻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손석태 저, 여호와 이스라엘의 남편).

1) 취하다(라카흐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6장 20절에 "아므람이 그 아비의 누이 요게벳을 아내로 취하였고 그가 아론과 모세를 낳았으며 아므람의 수는 일백삼십칠 세이었으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므람"은 요게벳을 자기 아내로 취했다(to take)고 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자기의 소유로(to possess for one self) 취하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자기 소유로 삼아서 사용하는 용도까지를 설명하는데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열왕기하 4장 1절에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 중에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채주가 이르러 나의 두 아이를 취하여 그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채주가 두 아들을 취하는데 그 용도가 종이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 아이가 아비의 소유였는데 채주의 소유로 취해졌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채주가 그 아이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2) 결혼하다(바알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본문 54장 5절에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고 했습니다.
이 단어 역시 소유자(possessor) 혹은 주인(owner)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1) 황소의 주인
출애굽기 21장 28절에 "소가 남자나 여자를 받아서 죽이면 그 소는 반드시 돌에 맞아 죽을 것이요 그 고기는 먹지 말 것이며 임자는 형벌을 면하려니와"라고 했습니다.
(2) 구덩이의 주인
출애굽기 21장 34절에 "그 구덩이 주인이 잘 조처하여 짐승의 임자에게 돈을 줄 것이요 죽은 것은 그의 차지가 될지니라"고 했습니다.
(3) 집주인
출애굽기 22장 8절에 "도적이 잡히지 아니하면 그 집 주인이 재판장 앞에 가서 자기가 그 이웃의 물품에 손 댄 여부의 조사를 받을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버로우스(Burrows)는 여기에 대해서 소유주와 남편을 동시에 의미하고 있기 때문에 아내에 대한 소유의 개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를 남편의 소유라고 할 때 부동산이나 동산과 같은 의미는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남편의 아내에 대한 소유개념은 지극히 제한적이고 단순한 소유가 아니라 특별한 소유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물건이 아니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이 특별한 소유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보시기에 좋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위해서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했습니다(창 2:18). 마침내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고 그곳을 살로 채우시고(창 2:21) 그 취하신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창 2:22).
하나님께서 여자를 아담에게로 데리고 올 때 아담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했습니다(창 2:23). 소유의 개념은 이러한 관계로서 설명되어야 합니다. 여자를 남자가 필요로 하는 물건이나 남자의 노리개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소유의 개념을 크게 오해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타락한 인생들이 물리적인 힘의 원리를 가지고 금수의 사고를 버리지 못하는 행위입니다.

3) 정착시키다(호십 )는 의미가 있습니다.
느헤미야 13장 23절에 "그 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았는데"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에 혹은 성읍이나 집으로 데려와 정착시킨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4) 아내가 되다(하야 르이샤 )의 의미가 있습니다.
창세기 12장 20절에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고 했습니다.
여기 히브리어 하야( ) 동사는 영어로 to be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르이샤( )와 함께 사용할 때 ∼의 아내가 되다(to be a wife of)가 됩니다.

5) 알다(야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창세기 4장 1절에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동침"이 바로 '야다'입니다. '야다'라는 말은 부부간의 은밀한 관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단어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사이에 사용되었다는데 주목해야 합니다.

아모스 3장 2절에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너희만 알았나니" 할 때 '야다'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과 자기 백성사이에 부부관계에만 사용되는 '야다'를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성도사이의 관계의 심오함과 자기 백성에 대한 비밀한 은닉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찬송가 410장에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라고 했습니다.

6) 옷을 덮다(파라스 카파트 )라는 의미가 있 습니다.
룻기 3장 9절에 "가로되 네가 누구뇨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옷을 입는 것은 옷을 벗기는 것과 반대되는 말입니다. 결국 우리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가죽옷을 입히신 것(창 3:21)입니다.
① 아담과 하와에게 입혔던 가죽옷, 창세기 3장 21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고 했습니다.

② 요셉의 채색옷, 창세기 37장 3절에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라고 했습니다.

③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서 그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갈아입힌 옷, 스가랴 3장 3-5절에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고 했습니다.

④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로마서 13장 14절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⑤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장 24절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⑥ 전신갑주를 취하라, 에베소서 6장 13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⑦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골로새서 3장 12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라고 했습니다.

⑧ 흰 옷, 계시록 3장 4-5절에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고 했습니다. 계시록 3장 18절에도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했습니다. 계시록 4장 4절에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고 했습니다.

⑨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계시록 7장 14절에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Ⅲ. 온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의 남편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54장 5절에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라고 했습니다.

1) 선수적 사랑입니다.
룻기 4장 13절에 "이에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그와 동침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로 잉태케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고 했습니다.
일방적으로 상대방을 향해 결혼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2) 일방적 사랑입니다.
학개 2장 23절에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일방적인 선택과 일방적인 사랑선언입니다.

3) 선택적 사랑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했습니다.

4) 효과적 사랑입니다.
이사야 43장 2절에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라고 했습니다.

5) 가치적 사랑입니다.
이사야 43장 4절에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신학을 하기 전에 한 여선생님으로부터 윗치 만니의 '나는 너와 결혼하였다'라는 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결혼하기 전이였기 때문에 무척 당황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남편과 아내 혹은 신부로 비유한 것을 신구약 성경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은유적 표현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하나님 자기 계시의 전달에 있어서 지혜로운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남편이라고 했습니다.
구속주 하나님이 우리의 남편이라고 했습니다.

온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남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따로 구별하여 내 백성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는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고 이스라엘은 내 아내가 된다는 의미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출애굽기 5장 1절에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가서 바로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7장 4절에 "바로가 너희를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더하여 여러 큰 재앙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8장 1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9장 1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10장 3-4절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되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치 아니하겠느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 네가 만일 내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일 내가 메뚜기로 네 경내에 들어가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3장 10절에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성경 여러 곳에서 내 백성이라고 한 것은 곧 내 아내라는 말과 등식관계를 가집니다.

예수님께서 수가성 우물가에서 물 긷는 여인에게 "가서 네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였
습니다. 이때 그 여인의 말은 요한복음 4장 17-18절에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라고 했습니다.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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