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칼은 칼로 망한다 (마 26:47-56)

  • 잡초 잡초
  • 1028
  • 0

첨부 1


지금 우리는 날씨와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계가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너무 더워서 야단이요. 너무 추워서 야단이요. 너무 비가 많이 와서 야단이요. 화산이 터지려고 해서 야단이요. 전쟁입니다. 제가 금요일 머리가 하도 멍해서 병원에가 보았습니다. 의사가 진단을 하더니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그러느냐 했더니 날이 너무 더워서 몸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답니다.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뉴스시간에 병원을 찾는 노인이 많아요.

원인 모르게 몸이 무겁고 머리가 아프고 이것이다 날씨와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처방이 잘 먹고 쉬고 너무 덥지 않게 너무 차겁지 않게 지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날씨가 덥다 그냥 짜증을 내고 분을 삭이지 못하면 스트레스가 생기고 병이 새기는 것입니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 앉혀야 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포용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더위도 이기는 것입니다. 자연의 이치도 평화는 너그러움에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니까? 누가 더 힘이 쎄냐?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 덕에 죽는 것은 선량한 백성들입니다. 힘의 논리로 세상의 문제를 풀려고 하는 몇 사람 때문에 온 백성이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연일 포격이 이루어지고 수 십 만 명이 피난길에 오르고 수천 명이 죽었습니다. 여기에 평화가 오겠습니까? 다망하기 전에는 평화는 없습니다. 보복은 씨가 말라야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 하고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예수님이 가롯 유다에게 배반을 당하여 붙들려가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그 모든 사실을 주님이 다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잡으려고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모의하는 것도 알고 계시고 제자 중 가롯 유다가 배반할 것도 아고 게시고 그리고 자신이 기도한 후에 산으로 잡으러 올 것도 알고 계시고 제자들이 주님을 버리고 도망갈 것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피할 생각도 하지 않으시고 다른 방법도 강구하지 않으시고 분노하시지도 않으시고 그 모든 일을 담담하게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답 하나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 함이니라. 입니다.

자신의 감정보다 중요한 것이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자시에게 오는 위협보다 더 귀한 것이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배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자신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그릇되면 안 되겠기에 참고 인내하고 용서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님의 너그러움이 그곳에 있습니다. 자신은 피땀 흘려 기도하면서 고민하다가 제자들에게 혹 위로라도 받고자 와보니 잠만 쿨쿨 자고 있는 제자들을 보면서 화를 내지 않고 자냐? 자는구나. 그리고 다시 올라가 기도하는 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말이나 못하면 괜찮습니다. 말로는 죽기까지 따르겠습니다. 어떤 고난에도 주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그래놓고 정말 주님이 위로가 필요한때 친구가 필요한때 괴로워 견딜 수 없는 그때에는 잠만 자고 있습니다. 그런 제자들을 주님은 좋은 방향으로 이해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 하구나 얼마나 피곤하면 너희가 자겠느냐? 너희는 그런 사람이 아니지 하고 이해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 속에 평화가 있지 않습니까?

저는 아무리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해도 그것이 안 됩니다. 나도 이해해야지, 해도 잘못하는 것이 보이면 입에서 말이 나옵니다. 이러 이러 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느냐? 왜 기도안하고 잠만 자느냐? 부지런 하지 못하고 왜 그렇게 게으르냐? 남들은 이렇게 하는데 너희들은 무엇 하는 것이냐? 이런 잔소리를 안해야겠다. 하면서도 보면 또 터져 나옵니다. 그래서 주여 나는 부족합니다. 하고 매일같이 주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오늘성경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고 잠자는 제자들을 깨우시고 일어나 함께 가자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말씀 하실 때에 예수님을 잡으려는 자들을 데리고 가롯 유다가 나타나지요. 군호를 짜 내가 입 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그리고 예수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는 것입니다. 여기서 느끼는 것은 죄를 짓는 자는 죄를 짓는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무섭습니다. 죄에 한 번 붙들리면 정신이 마비되고 신경이 마비되고 생각이 마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짓는 줄을 모릅니다. 그러기에 자기 스승을 팔아먹는 자가 죄를 짓는 줄을 모르고 천연덕스럽게 랍비여 평안하십니까? 하고 입을 맞추지요. 손톱만큼이라도 양심이 살아있다면 감히 주님 앞에 나타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화인 맞았습니다. 양심이 마비가 되어 버렸어요. 죄는 이렇게 우리마음을 마비시키는 것입니다. 무섭습니다. 죄를 멀리 하시기 바랍니다.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합니다.

군호를 본 무리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손을 내밀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자 제자중 하나가 칼을 빼들고 대 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지요, 그런데 주님이 그 순간에 주시는 말씀은 칭찬이 아닙니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꽃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칼은 칼로 망한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칼로서는 평화가 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평화를 이루기위해서 잡혀가는 것입니다. 힘이 없어서 잡혀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칼보다 더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용하지 않는 것은 칼은 칼로 망하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은 칼로서 세상을 정복하려고 하고 칼로서 세상에 평화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서 우리에게 분명히 주는 교훈은 칼로 세상에 평화가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칼을 만들고 있습니다. 더 잘 드는 칼, 더 힘 있는 칼, 더 능력 있는 칼을 찾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기 경쟁이요, 우주정복의 경쟁이요, 핵폭탄의 경쟁입니다. 인류가 거기에서 얻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불안과 두려움입니다.

북에 핵이 있다는 데 왜 주변 국가들이 난리 입니까?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핵이라는 칼이 가진 위력이 가공할만하기 때문입니다. 그 무기를 사용하면 다 죽습니다. 그래서 난리입니다. 너희가 핵을 가지면 우리도 가지겠다는 것입니다. 군비를 더욱 늘리겠다고 야단입니다. 백성은 어찌되든 정권을 잡은 자들이 자기 힘을 키우려고 야단입니다. 모든 나라가 군비만 없애버리고 그 예산을 복지에 쓴다면 세상은 얼마나 좋아 지겠습니까? 아마 상상을 초월하는 세계가 올 것입니다.


미국이 힘으로 세상에 평화를 심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힘의 원리로 평화가 왔습니까? 지금 세계는 더욱 불안합니다. 엊그제 영국에서 테러 모의 자들이 24명이나 체포가 되었는데 그들이 다 이슬람사람이 아니라 영국 사람들입니다.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10대를 목표로 했다는 이야기가 끔찍합니다.

미국사람들이 불안해서 여행을 제대로 하겠습니까? 미국사람뿐이 아닙니다. 전 세계가 불안한거예요. 공항마다 비상입니다. 우리인천 공항에도 비상이 걸려서 신발까지 다 검색을 합니다. 액체로 된 폭탄을 가지고 있었다 하니까? 아이를 먹이려고 들고 가는 우유병도 안 됩니다. 이게 무슨 난리입니까?

진정한 평화는 어데서 옵니까? 사랑과 용서에서 옵니다. 네 칼을 칼집에 꽂으라. 중요한 말씀입니다. 칼을 빼들면 안됩니다. 칼집에 꽂아야 합니다. 칼을 빼들면 사람이 다칩니다. 그래서 칼은 칼집에 꽂아야 합니다. 아무리 분노할일이 생겨도 아무리 속이 부글부글 끌어 올라도 칼을 빼면 안 됩니다. 칼을 쓰면 상대도 칼을 쓰게 되어 있습니다. 칼은 칼로 망하는 것입니다.

당나라에 노사덕이라는 덕이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얼굴에도 덕이 넘쳤고, 늘 인내하여 그 누구와도 다투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의 조카가 벼슬길에 오르면서 삼촌인 그에게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앞으로 인간관계를 어떻게 맺겠는가?" "숙부님, 걱정하지 마세요. 누가 제게 침을 뱉으면 그 침을 속히 닦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인내하겠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말입니까?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데 가만히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만일 누가 자기 얼굴에 침을 뱉으면 얼굴이 새빨개져 가지고 대들 것입니다. 그런데 노사덕 의 조카는 침을 닦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니 얼마나 훌륭한 사람입니까? 그러나 노사덕은 "조카, 그러면 안 돼. 침을 닦으면 그 사람의 기분이 나빠지니, 침이 마를 때까지 그냥 두어야지."라고 했답니다.

평화가 어데서 옵니까? 사랑과 용서입니다. 주님은 그 길을 가셨습니다. 눅22장에는 자기를 잡으러 왔다가 귀가 떨어진 자의 귀를 만져 났게 해 주었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봅니다. 주님으로부터 평화를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모두 평화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영태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