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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흥의 역사를 보게 하옵소서! (합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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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부흥의 역사를 보게 하옵소서!
본문 : 하박국 3:1-3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해야 합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대하셔야 합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까지 떨어졌다고 할지라도 기대하셔야 합니다.  기대할 것이 없는 사람은 얻을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풍성하신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영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을 초월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믿음의 여정에서 물질이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분명한 신앙고백이라고 한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물질에 자유하십시오.  있으나 없으나 오직 여호와의 이름만을 찬송하십시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응답하심에 대하여 조급하지 마십시오.  조급함은 내 안에 있는 삶의 열정을 식게 만듭니다.  의욕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나중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의심을 하게 됩니다.  조급해 하지 말고, 인내함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의 응답이 늦어질 때에 '하나님께서 내 믿음을 시험하시는가 보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지 않습니다.  문제는 내 때에 하나님의 때를 맞추려고 하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내 때에 맞추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정하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그 때가 언제인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나는 내 믿음을 붙잡고 주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이 어려운 환경이 주를 향한 내 마음의 열정을 식게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더 풍성한 은혜와 복으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는 과거에 누리지 못했던 놀라운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은혜로운 생활이 항상 계속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렇지 못하다는 데 우리의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

은혜로운 생활을 위한 자기 헌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은혜가 풍성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헌신과 자기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늘로부터 오는 신령한 은혜를 사모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늘의 은혜를 사모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받은 은혜를 끊임없이 누리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쏟아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아무리 넘치는 하늘의 은혜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언젠가는 그 은혜가 고갈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하면 보다 은혜가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자기 성찰과 구체적인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그 은혜를 주님 안에서 시간마다 때마다 누리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은혜가 고갈된 영혼의 사막과 같은 불행한 인생을 살지는 마십시오.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내 마음의 밭을 성령의 능력으로 갈아엎으십시오.  내 마음이 굳어지면 안됩니다.  딱딱하게 굳어진 땅에는 아무리 많은 비가 내려도 받아들이지를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곳에 성령의 역사가 강같이 철철 흘러 넘쳐도 심령이 굳어진 사람에게는 감화와 감동을 받지 못합니다.  오히려 더 마음이 굳어지고 완악해 집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성경은 패역한 백성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패역하다는 말은 반항하다, 불평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사람의 심령에는 언제나 불평과 불만이 가득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불평하지 마십시오.  원망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습관화되면 불행해집니다.  불평과 원망이 뿌리를 내리면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갑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떠난 인간에게 찾아오는 것은 위기 밖에는 없습니다.  내 주변에 사람들이 떠나가는 것이 위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는 것이 위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은혜를 가득 품고 살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위로부터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십시오.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받아 누리십시오.  이 시간 성령의 감화와 감동으로 여러분의 심령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만성적인 고질병 가운데 하나는 믿음에 대한 오해입니다.  어설픈 믿음, 게으른 믿음, 나약한 믿음, 자기 합리화된 믿음, 착각의 믿음을 정상적인 믿음인 양 자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주님 앞에서 얼마나 부끄러운 믿음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능력이 없는 믿음을 강요하지 마십시오.  능력이 없는 종교를 결코 강요하지 마십시오.  삶의 내용이 없는 거짓된 믿음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사단은 능력 없는 믿음 속에서 기생합니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죄를 다 짓게 합니다.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불의한 일을 다 하게 합니다.  인류의 역사를 가만히 보면 믿음의 환희를 잃어버린 종교가 언제나 백성을 괴롭혔습니다.  믿음의 능력과 감격을 잃어버린 종교가 이 땅을 병들게 만들었습니다.  어설픈 믿음, 게으른 믿음이 나와 내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막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 길이 평탄할 때 보배로운 믿음을 가지십시오.  어느 날인가 고난의 때가 왔을 때에 믿음은 다른 어떤 소유물보다 더 확실한 재산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과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좋고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믿음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삶의 내용이 있는 믿음이라야 하나님과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의식이 아니라 한 생명 속에 나타나는 믿음입니다.  소망입니다.  사랑입니다.  진리는 문자가 아니라 생명입니다.  바른 신앙은 지식이 아니라 생기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 능력을 가지십시오.  역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믿음의 환희를 회복하십시오.  믿음의 감격 속에서 살아가십시오.

기억하십시오.  믿음은 결국 삶을 바꾸는 능력입니다.  믿음은 환경을 바꾸는 능력입니다.  믿음은 내 가정에 고래심줄 보다 더 끈질기게 흐르고 있는 저주를 끊게 하는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을 방해하는 어둠의 영들과 맞서 싸워 승리하십시오.  그런데 영적 승리는 단번에 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도처에 항상 도사리고 있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서 우리는 언제나 생기의 자극을 받고 깨어 일어나야 합니다.  시간마다 때마다 하나님의 영으로 잠자는 내 영을 깨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은 영적 불감증에 걸린 사람들의 숫자가 자꾸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땅의 교회 안에도 영적 불감증에 걸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라는 말이 생소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이 부담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삶의 내용이 없는 거짓된 신앙으로 자신의 잘못된 신앙을 포장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작 자신은 깊은 영적 잠에 빠져 있으면서도 스스로는 깨어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깊은 영적 잠에서 깨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은혜로운 생활을 방해하는 모든 어둠의 영들과 맞서 싸우십시오.  은혜로운 생활을 방해하는 어둠의 영들 가운데 우리가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상한 감정입니다.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내 마음이 상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갑니다.

상한 감정은 원수 마귀가 순간적으로 내 마음 밭에 뿌리는 가라지와 같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원수 마귀가 우리의 마음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가라지 같은 상한 감정이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습니다.  받았던 은혜마저도 떠나가게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내 마음에 상한 감정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십시오.  원망하는 마음이 상한 감정입니다.  불평하는 마음이 상한 감정입니다.  섭섭한 마음이 상한 감정입니다.  화를 내고, 분을 품는 것도 상한 감정입니다.  이 모든 상한 감정을 나사렛 예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내 마음에서 몰아내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승리를 취하십시오.

대장 되신 우리 주님께서 승리하셨습니다.  대장 되신 예수님께서 승리하셨다면 우리도 승리하신 주님과 함께 승리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승리하신 주님과 함께 영적 축복의 세계를 누리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사렛 예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의 세계를 누리십시오.  그리고 역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믿음의 사람은 성령의 권능을 붙들고 강력하게 자기 선언을 해야 합니다.
'나는 더욱 능력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될 것이다!'

'믿음'이라는 두 글자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말입니다.  믿음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믿음은 역사의 흐름을 바꿉니다.  믿음은 인간에게 활력을 주고 생활에 희망을 줍니다.  확실히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싱싱합니다.  믿음이 그 사람과 가정과 가문을 결정합니다.

보십시오.  믿음으로 아벨은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아서 죽음을 보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습니다.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습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더니 그와 그의 온 가정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라합은 예수님의 족보에 그 이름이 올려지는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결국 라합의 믿음이 자신과 그의 가정과 그의 가문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내 믿음이 내 인생을 결정합니다.  내 믿음이 내 가정을 결정합니다.  내 믿음이 내 가문을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바른 믿음, 역사하는 믿음으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가문을 일으켜 세우십시오.  그래서 오고 오는 세대에 믿음의 증거가 되게 하십시오.  날마다 때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선포하십시오.

"하나님이여, 나를 축복하시옵소서.
내 가정을 축복하시옵소서.
믿음으로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믿음의 명문 가문이 되게 하옵소서"

이 시간 의심하는 도마를 향하여 말씀하셨던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귀 있는 자는 들으십시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지금 이 땅의 깨어있는 교회에서는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령의 만지심과 역사하심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와 여러분도 그것을 보고 있고, 누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현상들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가져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시대에 다시 한번 이 땅의 교회를 들어 쓰시는가 보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교회를 통하여 병들고 황무해진 이 땅을 치유하시기를 원하시고 계신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놀라운 성령의 은사들을 바라보면서 저는 우리 교회와 저와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가 있음을 깊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언양 영신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가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 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저는 하나님의 기대를 생각하면 흥분이 됩니다.  잠을 자다가도 머리 속에서 하나님의 기대라는 단어가 돌아가면 눈을 번쩍 뜨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기대는 다시 말하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에 놀라운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이 시대를 향한 부흥의 역사를 우리 눈으로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나온 우리의 역사 속에서는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헐벗음과 굶주림으로 몸부림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나라를 회복하고자 하는 소망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힘들고 어려운 때에 예수님 안에서 믿음을 붙잡았던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평양의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성령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얼어붙었던 마음들이 열려지고, 입술이 열렸습니다.  기적과 기사가 나타났습니다.  어떤 교회를 막론하고 교회마다 영혼들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원산에서 평양에서, 이 부흥의 불길은 서울로, 목포로 전염되기 시작했습니다.  온 땅을 휩쓸기 시작했습니다.  희망이 없었던 이 땅에 갑자기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자신과 가정의 부흥을 기도했습니다.  이 땅에서 믿음의 가문으로 떨쳐 일어나기를 기도했습니다.  나라 없는 황무한 이 땅이 회복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세움을 받았습니다.  가정이 살아났습니다.  믿음의 명문 가문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이 땅이 회복되고 한강의 기적을 보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평양 대부흥운동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들에게도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수많은 축복의 역사들이 오늘 내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믿음의 선배들에게 일어났던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오늘 우리들에게도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부흥의 불길이 오늘 나와 내 가정과 내 가문과 내가 섬기는 교회와 이 땅에 뜨겁게 일어나시기를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여, 부흥의 역사를 보기를 원합니다.
메마른 내 심령에 부흥의 역사를 일으켜 주옵소서.
내 가정에 부흥의 파도를 일으켜 주옵소서.
우리 교회에 부흥의 불길을 일으켜 주옵소서"

오늘 우리는 스스로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아야 합니다.
"나는 과연 변화될 수 있는가?
내 가정과 오고 오는 세대 속에서 내 가문에 기대를 걸어도 되는가?
우리 언양 영신교회와 한국 교회가 다시 부흥의 역사를 볼 수 있는가?"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성령이 임하시면 나는 변화가 됩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내 가정과 내 가문에는 영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엄청난 복을 누리게 됩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우리 교회에는 반드시 부흥의 불길이 일어납니다.  결국 나와 내 가정과 내 가문과 내가 섬기는 교회와 이 땅이 사는 유일한 길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마지막 시대에 부흥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부흥은 나 개인에서부터 먼저 시작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는 언제나 한 개인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일어선 나를 통해서 가정이 세워지고, 가문이 세워지고, 민족이 세워지게 하십니다.  다 무너져 가던 한 가정도 믿음의 한 사람을 통하여 다시 세워지는 부흥의 역사를 우리는 쉽게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야곱의 가정을 보십시오.  형제의 난으로 요셉을 잃어야만 했습니다.  가족이라고 하지만 이름만이 가족일 뿐이었습니다.  거기에다가 7년 동안 극심한 흉년으로 삶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하여 그 가정을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요셉을 통하여 그의 가문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한 사람이 쓰러져가던 가정을 세우고, 가문을 세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영으로 채움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먼저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를 경험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우리는 여기에서 귀중한 한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 한 사람을 먼저 세우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먼저 나 자신이 세움을 받으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그 한 사람이 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먼저 여러분이 잘 되셔야 합니다.  여러분 개개인이 먼저 하늘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를 경험하셔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를 75세에 경험하고 믿음의 여정을 떠났습니다.  그가 믿음으로 나아갔더니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개인의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가정이 복을 받고, 믿음의 가문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민족이 일어나고 열방이 세워지는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임하셨던 개인의 복, 가정의 복, 가문의 복, 민족의 복, 열방의 복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경험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부흥의 역사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떠나지 말고, 그 문제를 끌어안으십시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박국 선지자의 이름은 영어로 임브레이스(embrace), 다시 말해서 '포옹한다, 껴안는다'는 뜻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어려움이 있을 때에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도피하거나 불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그 문제를 가슴에 끌어안고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집안에 걱정거리가 있을 때에 그 문제를 가슴에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로 씨름하는 사람이 이 시대의 하박국입니다.  사업이나 직장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 그 문제로부터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가슴에 안고 녹여버리는 사람이 하박국입니다.  교회에 문제가 있을 때에 불평하고 원망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슴에 안고 헌신하며 기도하는 사람이 하박국입니다.  교회의 문제 앞에서 냉소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부흥을 갈망하며 내 어깨 위에 한 영혼을 세우는 그가 바로 이 시대의 하박국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유다왕 여호야김 시대였습니다.  예레미야 36장 20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성경을 읽어주면 두루마리 성경을 칼로 잘라 불에 던져 버리며 하나님을 모욕하고 말씀을 무시했던 사람이 바로 여호야김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을 통해 유다를 심판합니다.  느부갓네살은 주전 605년 유다를 침공해서 여호야김 왕을 쇠사슬로 결박해서 잡아갑니다.  그때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같은 수많은 젊은 인재들이 포로로 잡혀갑니다.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하박국은 기울어 가는 민족의 운명을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합니다.  그 기도의 내용을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을 버리지 말고 수년내에 부흥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는 암울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과 치유하심과 부흥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2절의 말씀입니다.  본문 2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지금 선지자는 몰락해 가는 민족의 운명 앞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당신의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소서.
주여,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도피하고 낙심하는 사람들 앞에서 역사는 침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비판하는 사람들 앞에서 역사는 무너지고 파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가슴에 끌어안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공동체는 부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생전에 부흥의 역사를 보게 하옵소서!"  이 기도는 오직 포옹하는 자, 끌어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흥이 무엇입니까?

우리말 사전에서는 "쇠잔하던 것이 다시 일어남. 또는 일어나게 함"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흥이란 '다시 일어난다'는 뜻으로 침체되었던 것들이 새롭게 살아나고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영어의 revival이란 말도 '다시'라는 말과 '산다'는 말이 합쳐져서 '다시 살아나다' '소생한다' '활기를 되찾는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등불이 꺼져가고 있는 암담한 조국의 현실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매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이 민족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어 매맞고 심판 받는 사실에 아무런 의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믿고 간구합니다.  내 민족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재건의 기회를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당당히 살아가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날을 주시옵소서.  이방의 조롱거리에서 벗어나 영광의 백성이 되는 그날을 주시옵소서."

그는 지금 이런 의미로 부흥의 역사를 보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아주 가까운 장래에, 깜짝 놀랄만큼 짧은 시간 내에 부흥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 사회의 암울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심장에서도 하박국의 기도가 터져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희망의 빛을 상실한 채 날로 어두워져만 가는 역사를 바라보면서 하박국의 기도가 우리의 심장에서 터져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가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회 건물이었던 것이 사찰로 바뀌어져 있습니다.  교회의 상징인 첨탑의 십자가는 온데간데없고, 불교의 사찰을 의미하는 만(卍)자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호화로운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던 것처럼 지금 이 땅의 교회는 침체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교회가 침체되면 사회의 역사도 침체됩니다.  교회가 힘을 잃어버리면 사회를 정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가 살아나야 합니다.  이 땅에 다시 한번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공통의 비전을 찾아서 함께 부흥의 파도를 소망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 한 번 말씀합니다.  내 안에서 먼저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가 경험되어져야 합니다.  내가 먼저 성령의 능력을 받아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내 가정과 내 가문과 내 교회와 이 민족이 하늘의 복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부흥의 역사를 내 눈으로 보게 하옵소서.
성령이여, 황무한 이 땅을 치유하며, 우리의 심령에 회복의 영으로 임하시옵소서.
주여, 내 눈이 주의 영광을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부흥의 역사를 보기를 소망하면서 다같이 부흥2000을 찬양하시겠습니다.

"오소서 진리의 성령님 이 땅 흔들며 임하소서
거짓과 탐욕 죄악에 무너진 우리 가슴 정케 하소서"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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