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신앙의 의무와 본질과 유익 (신 6:16-25)

by 운영자 posted Jul 0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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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6장은 ‘쉐마’로 유명한 장입니다. 6장 4절 말씀이 ‘들으라’는 의미를 가진 히브리 단어 ‘쉐마’로 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이스라엘아 들으라’는 어순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히브리 성경에는 ‘들으라 이스라엘아’라는 어순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쉐마의 핵심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대충 하지 말고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진력을 다해서, 힘이 다 빠지는 수준에 이를 때까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둘째는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이 진리를 가르치라”(신 6:7)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은 가정에서의 신앙교육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며, 눈만 들면 말씀이 보이도록 해야 합니다. 손목과 미간에도 말씀을 붙이고, 문설주와 바깥문에도 말씀을 붙여서 자녀들이 눈만 들면 말씀이 보이도록 하라고 명령합니다.

왜 신명기 6장이 이처럼 자녀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할까요? 바로 모세가 미래를 내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배부르게 잘 먹고 잘 살게 되겠지만, 자녀들이 반드시 신앙문제에 의문을 제기할 것입니다. “우리가 왜 신앙을 가져야 됩니까? 우리가 왜 율례와 규례를 지켜야 됩니까?” 그래서 이를 대비하여 철저하게 신앙교육을 시킬 것을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신명기 6장 10-12절에 그 땅의 특징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로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게 하사 너로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누리는 물질적인 부요와 축복은 그들의 노력과 헌신의 보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물건으로 가득한 건축하지 않은 집이요, 파지 아니한 우물이며 심지 아니한 포도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셨기 때문에 거저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거저 얻은 행복과 부요를 누리게 되면 제일 먼저 신앙문제에 시비를 걸고 나오게 될 것을 모세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신명기 6장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자녀들의 두 가지 현상

하나님께서 노력하지도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는 백성이 이 세상에 적어도 하나는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땅에서 의식주는 하나님께서 모두 책임을 지실 것이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이방나라들이 이스라엘을 보면서 ‘저 백성들은 참된 지식이 있는 백성이라’고 고백하게 되고, 하나님 여호와를 향한 갈증을 일으켜서 결국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가나안 땅에서 의식주를 거저 주시는 근본 목적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면 이스라엘은 이사야서 60장 3절의 말씀대로 ‘열방에 빛’이 되고, 열왕은 비취는 광명으로 나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공짜로 부요와 축복을 누리면서 대를 거듭하면, 그 자손들에게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첫 번째 현상은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면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켜서 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물질에 대한 탐욕이 더욱 커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신명기 6장 16절에서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맛사 사건’은 출애굽기 17장에 나타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직후에 물 없는 곳에 이르자 모세에게 불평을 하고 원망하
기 시작합니다.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할 셈이냐!” 그러자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어서 반석을 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모세가 순종하여 반석을 치자 반석에서 물이 나와서 백성들이 물을 마시고 해갈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그 장소를 ‘하나님을 시험했다’는 의미로 ‘맛사’, 혹은 ‘하나님과 다투었다’는 의미로 ‘므리바’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모세는 이 사건을 예로 들면서 이스라엘 백성과 그 후손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의식주 문제를 가지고 염려하여 하나님과 다투거나 시험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명령과 증거하신 것과 규례를 삼가 지키라”(신 6:17)고 명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보다도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바르게 지켜 살고 있는지를 먼저 염려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의식주 문제를 책임져 주십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의식주 문제를 걱정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서 살고자 하지만, 그것은 참된 인생의 목적이 아니며 채워져도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의식주 문제를 먼저 신경쓰지 말고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켜 바르게 살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서 살아야 합니다.

두 번째 현상은 자손들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증거와 말씀과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뇨?”(20절) 이 질문은 문자적인 질문이 아닙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의 문자적인 의미를 모를 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부모들보다는 자식들이 공부를 더 잘하고 지식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아무런 불편 없이 잘 먹고 잘 살면 됐지 신앙이 왜 필요하며, 하나님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켜야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질문인 것입니다.

제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5년간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목회할 때, 교회에서 봉사를 열심히 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 분은 성가대도 열심히 했을 뿐만 아니라 페인트칠하기, 카펫 갈기, 잔디 깎기 등 궂은일도 마다 않고 열심히 봉사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것만큼은 싫어하는 분이었습니다. 제가 5년간 목회하는 동안 그 분이 영접하시는 것을 보지 못하고 결국 돌아오게 되었는데 이 분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잘 먹고 잘 살고, 자식들 잘 되고 형제 평안하고, 가정 평안하면 그걸로 됐지 예수님을 왜 영접해야 합니까? 교회야 이 사회의 중요한 기관이니까 내가 와서 교회 잘 되도록 봉사하는 것이지 나에게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따라서 살라고 말씀하지 마세요.”

전도하기 제일 어려운 사람은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어서 예수님을 왜 믿어야 되는지 근본 이유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 자녀의 세대들도 오늘날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아버지. 왜 꼭 교회에 나가야 합니까? 일요일에는 집에서 쉬어야지 왜 교회에 가서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야 합니까? 왜 아까운 돈을 떼어서 십일조를 교회에 드려야 합니까? 왜 예수님만 믿어야 합니까? 왜 목사님들은 부처도 있고, 모하메드도 있고, 갖가지 종교가 많은데 예수님만 믿어야 천국 간다는 편협한 사상을 전합니까?”

2. 신앙을 가져야 할 의무

이와 같은 자녀들의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오늘 그 대답을 모세로부터 배우고자 합니다. 모세는 이 질문에 두 가지로 대답을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명령과 증거하신 것과 규례를 삼가 지키라”(17절),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24절) 그리고 “우리가 그 명하신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25절)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행 17:30) 왜 우리가 전도하면서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행 10:42) 왜 졸더라도 주일이 되면 예배에 나와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전 예배에 나와서 졸고 계시는 분들도 존경스럽습니다. 졸더라도 예배에 나오시기 때문입니다. 졸아도 귀는 열려서 말씀은 다 들립니다. 그래서 설교는 다 들으십니다. 졸더라도 예배에 출석해야 하는 이유 역시 동일합니다. 왜 그 아까운 십일조를 교회에 내야 합니까? 역시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돈을 얼마나 귀하게 여깁니까?

어느 구두쇠가 400냥이 들어있는 돈가방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돈가방을 찾아주는 사람에게는 100냥을 주겠다고 공고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어떤 청년이 그 돈가방을 찾아서 구두쇠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구두쇠가 돈가방을 확인해보니 400냥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돈가방을 확인한 구두쇠는 갑자기 100냥을 주기가 아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청년에게 “이 사람아! 내가 원래 이 가방에 500냥을 담아두었는데 400냥 밖에 안 남은 것을 보니까 자네가 100냥을 먼저 떼어 간 모양이구만. 그러니 이제 가보게나”라고 말하고 자기 집으로 들어 가버렸습니다.

구두쇠의 얌체 같은 행동에 약이 오른 이 청년은 자신의 억울함을 원님에게 아뢰었습니다. 그래서 원님이 두 사람을 모두 불러 관아에 앉혀놓고 묻습니다. “이보시오 부자 양반. 당신이 가방을 잃어버린 것이 맞소?” 그러자 구두쇠가 대답했습니다. “맞습니다. 그 가방 안에는 500냥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얼마가 들어있소?” 원님의 질문에 구두쇠는 “저 총각이 백 냥을 가져가서 400냥이 남았습니다.” 구두쇠의 대답을 들은 원님은 “이보시오 부자 양반. 저 총각은 100냥을 가져간 적이 없다고 하는데 그 가방에 400냥 밖에 안 들어 있는 것을 보니 그 가방은 당신의 가방이 아닌 것이 틀림없소. 그러니 그 가방은 저 총각에게 되돌려 주시오”라고 판결했다는 옛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렇게 가지고만 있어도 남 주기 싫은 것이 돈입니다. 이처럼 아깝고 귀한 돈을 왜 교회에 아낌없이 내놓아야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내용이 하나님이 내게 명령권을 가진 분이시냐, 그렇지 않느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명령권을 가지고 계신다고 확신하신다면 신앙을 따라,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우리가 신앙을 가져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두 번째 대답은 하나님은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너는 네 아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옛적에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니 곧 여호와께서 우리의 목전에서 크고 두려운 이적과 기사를 애굽과 바로와 그 온 집에 베푸시고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우리에게 주어 들어가게 하시려고 우리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시고”(21-23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자녀들이 “왜 우리가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까?”라고 질문할 때, 부모는 “만약 하나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애굽의 노예가 되어서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행복을 잃어버린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마귀와 죄의 종노릇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마귀가 시키는 대로 술도 먹고, 담배도 피고, 바람도 피면서 죄 가운데서 살아갔을 것입니다. 마귀의 종으로 살면 현세에 죄를 지을 뿐만 아니라 내세에는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마귀에게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섬겨야 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해야 합니다.

3. 신앙의 본질

하나님을 믿고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모세는 두 가지 동사를 통해 신앙의 본질을 정의합니다. 첫째로 24절에 나타난 ‘경외하라’는 동사입니다. ‘경외하라’는 말은 다른 말로 두려워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 문제는 지난 주일에 다뤘습니다. 우리가 왜 죄를 회개해야 합니까? 죄에 대해서 영원한 형벌을 주시는 하나님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까?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기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편들어 주시는 중보자 예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면서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께 외면당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는 삶을 사는 것이 두렵고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함부로 악을 행해서는 안 됩니까? 악에 대해서 속히 징벌을 주시는 하나님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본질은 첫째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은 두려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요사이에 우리 대한민국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하다 보면 기독교 안티사이트들이 아주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안티 사이트의 주 내용이 목사들의 허물을 골라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목사가 수십만 명이 넘는데 그 가운데서 실수한 목사 몇몇을 드러내서 모든 목사들이 악한 사람들인 것처럼 취급하는 것은 바람직한 행동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은 로마서 3장 18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목사를 욕하고 교회를 비판하는 자신들은 정작 의롭게 살지 않으면서 대책 없이 남을 비판하는 것은 불의한 행동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행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합니다.

신앙의 본질을 나타내는 두 번째 동사는 25절에 있는 ‘지키라’는 단어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행하라(do)’는 의미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경외하고 지키고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는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켜서 행해야 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행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드는 명령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명령을 행해야 하고, 부주의하게 성의 없이 행하는 것이 아니라 삼가 주의 깊게 정성을 다해 행해야 하며,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합니다.

4. 신앙의 유익

우리가 신앙의 본질을 강조할 때, 우리 자녀들은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며 무슨 유익이 있는지를 물을 것입니다. 그 때에 부모는 두 가지 유익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첫째로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25절)이기 때문입니다. 이 ‘의로움’은 다른 번역에서 ‘보상’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이유는 신앙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보상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미래지향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래에 반드시 신앙의 보상을 주십니다. 아까운 한 시간을 내서 예배 드렸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보상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헌금도, 하나님을 위해서 시간과 노력을 바친 봉사도 하나님께서 모두 보상해 주십니다.

둘째로 “이는 우리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로 오늘날과 같이 생활하게 하려”(24절)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자녀들아! 지금의 생활을 계속 누리기를 원하느냐? 오늘날 같이 복을 누리되 항상 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과 지켜 행함,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살아라.” 이는 현세적인 축복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신앙에는 미래적인 보상과 현세적인 축복이 따릅니다.

결 론

오늘날 자녀들 때문에 가슴 아파하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부모는 자녀를 감옥에 보내고서 마음 아파하고, 어떤 부모는 방탕하고 타락한 자녀들 때문에 고통 받으며, 어떤 부모는 부모의 명을 거역하고 신앙을 갖지 않는 자녀들 때문에 안타까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이 가슴 아픈 일이 없도록 자녀들에게 더욱 신앙을 강조해야 합니다. 자신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녀들에게는 교회에 나가든지 말든지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강조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대학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 교회와 신앙생활을 멀리 한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교회에서 멀어지면 세상과 벗하고 살면서 죄 짓는 인생, 망하는 인생을 향해 달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과 후손들이 듣든지 듣지 않든지 간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겨야 함을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켜서 사는 것이 인생의 본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해야 합니다. 신앙의 의무를 지키지 않는 것은 현세나 미래에나 결국은 망하는 길이기 때문에 두들겨 패서라도 가르쳐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1세대들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이루어도 노력해서 이루었던 세대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손들은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심지 않은 것과 노력하지 않은 것을 거두는 세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이 왜 필요한지를 잘 모르는 세대입니다. 이와 같은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리모델링을 하는 이유도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곳에서 예배드릴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후손들이 이곳에서 예배드릴 것이기 때문에 좋은 환경을 마련해 줘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후손들이 잘 되는 길이며, 우리나라가 잘 되는 길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는 백성이 세상에 하나쯤은 있다. 세상에 복음을 선교하는 일에 목숨을 건 민족이 하나쯤은 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데 전 생애를 건 백성들이 하나쯤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합니다. 신앙의 의무와 본질과 유익을 우리 자손들에게 끊임없이 교육시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현세의 축복과 미래의 축복을 누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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