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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 마음에서 나옵니다. (마 1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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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면 눈멀고 귀까지 먹는다고 합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페르몬 같은 호르몬이 왕성하게 분비됩니다. 이 호르몬이 감각 기관을 둔하게 만듭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눈이 잘 안 보이게 되는 겁니다. 좀 못생긴 애인의 얼굴도 예뻐 보이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옆에서 말리는 사람들 이야기도 잘 안 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을 하는 요리사의 음식은 먹지 말라는 말도 있습니다. 역시 사랑을 하니까 미각을 느끼는 것도 둔해집니다. 그래서 맛을 잘 못 느끼니까 소금을 자꾸 넣게 됩니다. 음식이 짜게 됩니다. 사랑을 하면 호르몬의 방해로 감각이 둔해집니다. 그렇다고 사랑을 포기하겠습니까? 눈멀고 귀먹고 미각이 떨어져도 사랑만 할 수 있다면 좋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차면 우선 본인이 행복합니다. 세상을 밝게 봅니다. 좋은 것이 생기면 나누고 싶습니다.

반대로 미워하는 마음으로 가득차면 어떻게 됩니까? 우선 미움은 자기 자신을 파괴합니다. 미움은 마음을 망가뜨립니다. 신체 밸런스를 깨뜨려 건강도 망가뜨립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함께 망가뜨립니다.

미움은 마음에 상처를 남깁니다. 외상은 약을 바르고 싸매면 낫습니다. 속 상처도 약을 먹고 수술을 하면 낫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여간 낫기 어렵습니다.

한번 망가진 마음은 오래갑니다. 제 스스로 알면서도 못 고칩니다. 잘못된 길인 줄 알면서도 계속 가게 됩니다. 마음에 쌓이는 악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제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 쌓는 것입니다. 악은 독으로 바뀌어 자신을 죽이고, 내뿜어 남을 죽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오물이나 쓰레기 같은 것으로 더러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으로부터입니다. 마음이 악하면 악한 것이 입으로 나옵니다. 저주와 욕과 비판과 거짓말 같은 남을 해하는 말들입니다. 본문 19 절입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반면 마음이 선하면 입에서 좋은 것이 나옵니다. 축복과 감사와 은혜의 말들입니다. 마음에 감사가 들어 있으면 감사의 말이 나옵니다. 마음에 은혜가 들어 있으면 너그러운 말들이 나옵니다. 마음에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음에 진리가 들어있으면 올바른 판단이 나옵니다.

본문 말씀은 앞에서 예수님께 시비를 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을 트집 잡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입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입에서 나오는 것들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손을 씻지 않고 먹으면 더러운 것이 묻어 입에 들어갑니다. 위생적이지 못합니다. 누구나 그것을 더럽게 여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보다 훨씬 더러운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대상이 바로 트집을 잡고 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이 바로 더럽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바리새인들이 얼굴이 변했습니다. 자기들끼리 수군댑니다. 이 모습을 본 제자들이 예수님께 보고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이 말을 듣고 걸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뜻을 단번에 알아챘습니다. 그 말이 자기들을 겨냥한 것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유적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바로 대들지는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 첫 구절 10 절을 보면 예수님은 이 말씀을 무리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바리새인들 들으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바로 앞 절까지는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다 오늘 본문 말씀을 하실 때는 듣는 대상을 일부러 바꾸셨습니다. 시선을 돌려 무리를 향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에 대한 말씀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하신 말씀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대충 눈치를 챘지만 직접 따지지는 못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 아직 헤아리고 있는 중입니다. 이거 대들다가는 더 큰 망신을 당할 일입니다. 자기들의 외식하는 모습이 탄로나게 생겼습니다. 그들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런데 이에 비하면 제자들은 아닙니다. 제자들은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왜 더러운 것인지 이해를 못했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입으로 토한 것이 더럽다는 뜻인가 생각하는 정도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다시 비유를 듭니다.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심지 않은 것은 뽑힌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어찌됩니까? 둘이 다 구덩이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하는 일은 하나님께 뽑힌다고 하셨습니다. 저들의 경건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저들이 하는 일은 모두 하나님이 기대하는 결실이 아닙니다. 그저 자기들의 의를 드러낼 뿐입니다. 그것은 자기들 만족입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께 쓸데없습니다. 그래서 뽑아내버립니다.

저들은 모세의 율법을 철저히 지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 가르침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둘 다 멸망의 구덩이에 빠지고 맙니다.

여기까지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듣고도 말뜻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다시 잘 설명해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냐고 반문하십니다. 그리고 상세히 본뜻을 풀어주셨습니다.

어떻게 바리새인들은 단번에 알아챈 말씀을 제자들은 그리 못 깨달았을까요? 제자들 지능이 둔해서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이치입니다. 마음이 틀어진 사람들은 자기들 이야기인 줄 압니다. 그러나 마음이 순수한 제자들은 예수님의 비튼 말씀이 무얼 말씀하는 줄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유대인들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가렸습니다. 부정한 것은 손대지도 않았습니다. 부정한 음식을 먹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구원을 잃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가려서 먹어야 하는지에 온통 신경을 쓰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를 통째로 뒤집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가치관과 삶의 기준을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듣고 보니 예수님의 말씀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음식이 오염된 것보다 마음이 더러운 것이 더 심각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딱히 반박하질 못했습니다. 자기들의 가증스러운 위선이 더 탄로날까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저는 어제 교회 화장실 변기에서 비닐 팩을 하나 건졌습니다. 보니까 홍삼 엑기스를 먹고 봉지를 변기에 버린 것입니다. 누군가 자기 건강을 위해서 보신을 하고는 뒤처리를 그렇게 했습니다. 그 사람은 정말 보신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가끔 복도 바닥에서 껌을 떼야 합니다. 또 건물 실내에서 침을 뱉는 사람도 있습니다. 계단과 엘리베이터에도 쓰레기를 버립니다.

이렇게 공중도덕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악한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과 한 사회에서 함께 사는 것이 버겁습니다.

마음에 악을 담는 것은 쉽습니다. 마음을 관리하지 않으면 금방 악으로 오염됩니다. 그러나 마음에 선을 담으려면 어렵습니다. 마음에 선을 담으려면 우선 깨끗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마음은 밭과 같습니다. 밭을 관리하지 않고 방치하면 금방 잡초로 뒤덮입니다. 그러나 잡초를 걷어내고 밭을 일구는 일은 힘듭니다. 좋은 씨를 뿌리고 물과 거름을 주어야 합니다. 해충을 잡아줘야 합니다. 햇볕을 쬐이고 바람이 통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결실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입에서 선한 말이 나오길 원하십니까? 그러면 마음을 다스리고 가꿔야 합니다. 이를 게을리 하면 우리 마음은 금방 오염됩니다. 거칠고 못된 말을 토해내게 됩니다.

마음을 다스리려면 우선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야 합니다. 말씀은 진리입니다. 말씀이 마음을 채우면 진리가 채워지는 것입니다. 진리가 마음에 가득하면 언제나 판단이 정확합니다. 무엇이 그르고 무엇이 옳은지 압니다. 이것이 영적 분별력입니다.

둘째로 마음을 다스리려면 우리 마음을 기도로 채워야 합니다. 말씀은 하나님께 받은 말씀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아뢰는 말씀입니다. 섣부른 기도는 자기 욕심과 교만을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깊은 기도는 내 마음이 하나님과 합한 지 검증해 줍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을 받고 있음을 누릴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가득한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기도하면 응답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직접 경험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방황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면 자신감이 넘칩니다. 기도하면 담대해집니다. 기도하면 인생의 목적이 뚜렷해집니다. 기도하면 주변 사람들을 모두 바른길로 천국으로 인도합니다.

말씀과 기도는 우리 마음을 채우는 영적 재산입니다. 다른 것으로 마음을 채우면 공허합니다. 돈으로 마음을 채워보십시오. 만족을 모릅니다. 더 갈해집니다. 인생이 황폐하게 끝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마음이 괴롭다고 술로 채웁니다. 술로 마음을 채우면 망가집니다. 멸망의 구덩이를 파는 것입니다. 술로는 어떤 해결책이 나오지 않습니다.

여러분 무엇으로 마음을 채워야 합니까? 오직 말씀과 기도뿐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채우면 그 다음 채워지는 것은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은 자동으로 채워집니다. 주님이 마음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는 그 순간 거룩해집니다. 주님을 모셨으니 우리는 어떤 두려움도 없습니다. 주님과 나와 함께하시니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람들은 더러운 것을 가리고 삽니다. 그리고는 깨끗한 척합니다.

요즘 휴가철이라 산에 바다에 피서객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피서객들이 머물던 자리에 쓰레기가 남습니다. 그런데 버리는 것도 문제지만 쓰레기를 숨겨 두고 떠나는 사람들 때문에 더 골치랍니다. 눈가림만 해놓고 도망치는 것입니다. 이런 심보는 평소에 그의 삶이 더러운 것을 위장하고 사는 습관 때문입니다.

더러움은 가리는 것이 아닙니다. 깨끗하게 씻어내야 합니다. 살다보면 더러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때 바로 씻어야 합니다. 인생의 때를 어떻게 씻어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피 앞에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씻어달라고 자백해야 합니다. 주님의 보혈로 눈 같이 희게 씻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 있는 모습 그래도 내 놓으십시오. 주님께 맡기십시오. 주님께서 씻어 주십니다.

이 시간 더러움으로 가득한 내 모습을 주님께 고백합시다.
(황금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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