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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능력있게 하신다 (고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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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설교말씀제목은 ‘나를 새로나게 하신다’이었지요. 그리고 지난 주간에 꼭 우리가 시작할 엑소더스 운동 세번째를 말씀드렸지요.  ‘절대사랑, 절대친절운동’을 일으키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절대적인 그 사랑의 영을 받아서 서로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제목은 ‘나를 능력있게 하신다’입니다.

능력있게, 라는 말씀을 드리니까 생각나는 성경의 한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엘리야와 엘리사에게 있었던 능력의 전달이었지요.  구약성경 열왕기하 2장에 보면 북쪽 이스라엘의 위대한 선지자였던 엘리야, 그가 이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승천하기 직전이었던 때, 그는 제자인 엘리사와 함께 요단강가에 서게 되었습니다.  요단강을 그냥 건널 수 없게 물이 많은데 어떻게 건너려고 하시나 다들 보고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 50명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데 요단강 가에 섰던 엘리야가 갑자기 자기의 겉옷을 벗습니다.  그리고 그 겉옷을 둘둘 말아쥐더니 앞에 있는 요단강 물을 치는 것입니다.

요단강 물을 치니까 그 물이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신기한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제자인 엘리사도 놀랐지요.  물이 갈라지고 그 바닥을 디디고 건넌 후 엘리야가 제자에게 묻습니다. 네가 이렇게 나를 계속 따라왔는데 내가 네게 어떤 도움이 될 지 말해 봐라, 고 합니다.  그러니까 엘리사가 대답한 것은 간단합니다.  선생님, 선생님께 임하여있는 하나님의 그 능력, 성령의 그 감동하심이 내게 갑절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래? 그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네가 하나님께서 놀라운 능력으로 나를 하늘로 올리우실텐데 그 것을 네가 보게 된다면 그 일이 이루어질거다.  이렇게 말한 후 길을 걷는데 갑자기 큰 능력의 역사가 그들을 덮습니다. 그러더니 천사들이 나타나고 하늘의 불수레와 불말들이 나타나더니 엘리야가 회리바람 같은 큰 바람에 의해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 순간 그 능력의 역사를 엘리사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엘리사가 놀라서 부르짖습니다.  선생님 그냥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나의 아버지 같으신 분이 그냥 저를 두고 가시면 안됩니다.  그런 순간 엘리야는 사라졌지만 그가 입고 있던 겉옷이 자기 위에 떨어집니다.  엘리사는 즉시 자기 옷을 잡아서 둘로 찢어버리고 엘리야의 던져준 겉옷을 주워 들었습니다.  갑자기 그에게 놀라운 능력이 옷입혀지는 것을 몸에 느꼈습니다.  아, 나를 능력있게 하시는구나!  엘리사는 즉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엘리야의 겉옷을 손에 들고 다시 요단강 가에 섰습니다.  그 겉옷을 손에
둘둘 말아서 잡고 그는 외쳤습니다.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그리고 저도 엘리야가 했던 것 같이 그 겉옷으로 물을 쳤습니다. 믿음으로 쳤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물을 쳤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 것을 느꼈습니다. 창조의 하나님이 나를 능력있게 하신다, 출애굽의 하나님이 나를 능력있게 하신다.  믿음으로 그가 물을 칠 때 물이 갈라집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왕하2:14 물을 치매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하나님의 능력의 전달이었습니다. 계승이었습니다. 더 큰 풍성한 능력으로 옷입는 은혜였습니다. 그 후 엘리사는 많은 문제를 만날 때 마다 하나님의 능력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능력있게 하시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겪습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다가옵니다. 병문제, 돈문제, 가정문제, 대인관계문제, 신앙생활문제, 등등…. 그럴 때 어떻게 그 문제를 잘 푸는가, 는 것은 능력이 있는가, 문제입니다.  문제가 올 때 능력이 필요한데 능력이 없으면 그것이 정말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문제만 주시지 않으시고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제가 지난 월요일 낮시간에 경험한 일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느라 사무실에 있다가 기도를 좀 하려고 본당으로 가는데 아마 오후3시쯤 되었는가요, 본당 문이 잠긴 겁니다.  보통 때 본당 문을 늘 열어놓는데 문이 잠겼기에 사무실에 물어 보았더니 잠시 잠가 놓았다는 겁니다.  제가 청년 때 기도가 막 갈급해서 기도를 어디서 좀 하려고 교회당을 찾아 들어갔을 때 문이 열려 있으면 너무 좋아요.  그래서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 도심의 교회들을 찾아갔을 때 문이 잠가져 있고 아무데도 기도할 데가 없으면 너무 허전하더군요.  제가 목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 이후이기 때문에 앞으로 내가 목회하는 교회는 꼭 기도할 곳을 열어놓는다, 고 다짐을 했지요. 누구나 기도할 수 있는 집,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 되게 하겠다, 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늘 본당을 열어놓는데 그 날 문이 잠겼길래 이상하다고 생각했지요. 알고보니 동네 아이들이 와서 본당에 들어와 장난을 하고 좀 개구진 그런 애들 때문에 잠깐 잠가놓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지금 마당에 있는가고 물었더니 뒤에서 놀고 있는 애들이 있더군요.  우리 권사님이 그 중 한 아이를 가리키면서 저 아이가 제일 개구지다는 귀띔을 해 줘요.  세명이 놀기에 제가 다가가서 그 중에 그 아이 한 명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얘, 너 나좀 따라와라, 그랬지요. 키가 자그마한 아이인데 얼굴에 주근깨가 많은 남자아이에요.  다른 두 애들이 왜요 왜요 하는데 아무소리 안하고 그 아이를 데리고 사무실에 왔습니다.  그리고 그냥 평범한 듯 물어봤어요.  중학교 1학년, 교회는 안 다니고.  그런데 성이 뭐니, 하니까 오씨에요, 라더군요.  그래서 어디 오씨니, 라고 하면서 나오 오씨다, 오목사야, 라고 하면서 얘기를 시작하고 교회에 다른 아이들이 와서 아마 장난을 할 지 모르니 네가 잘 살펴줘, 라고 했지요.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가 구원받는 진리를 간단히 얘기해 주고 기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사먹어라, 하고 만원짜리 하나를 쥐어주니 야단맞을까, 긴장했던 아이들이 좋아서 뛰어나가더군요. 앞으로 저 아이들은 우리 교회에 대하여 잘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우군을 하나 얻은 것 같이 저도 좋고요.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정말 저 아이들이 말을 안들었으면 어떻게 하나.  사실 부모님들이 정말 그렇게 애쓰고 기도하고 그래도 해결이 안되어서 고민하는 자녀들의 경우도 많지요. 성도님들의 경우, 정말 해결이 오랫동안 안되는 그런 문제를 놓고 기도해달라고 하는 분들의 그런 문제들은 어떻게 하나.  이 때 정말 필요한 것이 진정 문제를 푸는 능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그마한 문제를 처리하는 정도가 아닌 정말 에스더 때
같이 민족이 다 망할 위기를 만난 때에는 어떻게 하나.  이런 생각을 할 때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문제해결의 능력을 옷입자

문제해결의 능력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다양한 문제의 해결을 어떻게 해결할까, 오늘 성경은 이 일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옷 입으라.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시18:1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힘이 되신, 즉 하나님을 힘입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시면 됩니다. 성령께서 나의 권능이 되시면 됩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으면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임하는 일을 체험하는가, 이 것이 문제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을 옷 입으며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임하여 있으면서 나의 문제들을 풀어주실까, 내 앞에 당면한 일들을 정말 잘 해결되게 할 수 있을까.  그 비결이 무엇인가, 입니다. 

전도를 최우선 순위로 삼으라

먼저, 우리가 오늘 본문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사도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2: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이 말씀은 바울사도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 증거를 잘 전하는가, 임을 알립니다.  전도가 가장 큰 과제였습니다.  바울사도가 겪는 문제는 전도를 하는데서 오는 문제였습니다.  우리 인생은 여러 가지 문제를 겪습니다. 이 문제들에 대해서 역시 오늘 같은 원리의 해결이 나타날 것인데 그러나 우선 우리가 생각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먼저 전도하다가 문제를 겪는가, 입니다.  우리의 문제들이 전도와 상관없는 문제들일 수 있습니다. 그 문제들도 역시 주님은 해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전도생활과 묶는다면 이것은 정말 큰 지혜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우리를 두신 큰 이유가 전도를 하게 하려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에는 곧 상급과 면류관이 따릅니다.  전도는 열방 선교로 이어져서 만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열망과 관계되기 때문에 우리가 이 땅에 더 살아야하는 첫째 이유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 하나님의 증거를 전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이 땅에 더 살아가도록 두시는 이유란 말씀이지요.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전도는 그냥 우리가 한번 두번 하는 그런 파트타임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큰 관심은 한 마리 잃은 양을 찾아 아흔아홉마리 양을 들에 두고 가시는 그런 집념을 전도에 두고 계신다는 데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도하는 일에 최우선순위를 두는 교회와 성도들 한 분 한분의 삶을 하나님은 책임을 져 주시고 그 문제들을 함께 묶어서 해결해 주신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른바 우리 인생의 문제들을 치고 나가는 선봉부대가 바로 전도의 일이고 그 전도의 일에 하나님의 능력과 나타남이 가장 먼저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가장 전하기 힘든 선교일선에서는 기적이 잘 나타나고 전도를 하는 성도들이 간증이 넘쳐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는 이 말씀을 이렇게 새겨들어야 합니다.

‘전도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라 그리하면 너희들의 모든 문제를 풀어주시리라.’

전도에 최우선순위를 둔 사람에게 성령의 능력이 부어집니다. 성령의 능력과 함께 인생의 문제를 풀어주시는 능력이 따라오면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도는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의 증거를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2: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하나님의 증거를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하나님의 증거가 무엇인가요.  헬라어로 말튀리온, 즉 순교적 각오를 가지고 전하는 증거, 를 말합니다.  영어로는 testimony 라고 하는데 ‘테스트가 되어진 확실한 확증이 있는 증거’를 말합니다.  바울사도는 전도를 할 때 확신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그리고 부활의 그 증거를 확실히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확실히 보았고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이미 과거에 분명히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확실하고 앞으로도 확실히 이룰 그 말씀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의 확신 넘치는 표현이 담긴 말씀이 하나님의 증거(the testimony of God, the testimony about God), 라는 표현입니다. 이 증거를 전하는 전도에 바울사도는 최우선 순위를 두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문제를 만나도 먼저 전도에 관련해서 문제를 만나니까 힘든 일이 있어도 보람이 있고 또 그 문제를 하나님께서 먼저 책임을 지시는 일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 생활하는 것 모든 것들이 이제 주님의 일로 묶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도를 명령하시면서 12사도와 70인 전도팀 우리는 70인 미션팀이라고 이름 지어 보내고 있습니다만 그들이 전도하는 일에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마10: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마10:10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우리가 전도하는데 우선순위를 둔 삶을 살아가면 가정일이나 직장 사업의 문제, 학업, 사명의 일들에 하나님의 책임져 주시는 일을 신기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는 말씀이 체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급, 하나님의 후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업도 전도에 최우선 순위를 두면 하나님께서 그 사업에 함께 하시면서 신기하게 문제를 풀어주시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전도, 하나님의 증거를 전하는 일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증거가 있지요 창조의 능력, 출애굽의 능력, 십자가의 능력, 부활의 능력, 이 4대 능력입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인도하시고 죄를 사하시고 새 힘을 주시는 그 능력의 역사들입니다.  이 네 가지 능력을 따라 우리가 체험하는 증거도 생기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비전을 주시고 그리고 그 비전을 믿고 나갈 때 하나님께서 그 비전을 이루시는 신기한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비전이 정말 말도 안 되는 것 같은데 아니, 어떻게 그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참 신기하다, 라고 생각하나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증거하시는 일.

먼저, 새창조와 새출애굽의 일입니다.  우주와 인생을 창조하신 창조는 역사에 한 번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창조의 능력 출애굽의 능력은 계속 됩니다.  이른바 교회를 새롭게 세우시는 새창조, 우리를 새롭게 지으시는 새창조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이렇게 외쳤지요.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말은 헬라어로 ‘카이네 크티시스’인데 카이네, 새로운, 크티시스, 창조 또는 창조된 피조물, 이란 뜻입니다.  크티시스, 라는 말이 영어로는 창조된 피조물이란 의미에서 크리쳐 creature 라고도 할 수 있고 또한 창조행위자체 creation이라고도 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란 말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지는 대상이다, 라는 말씀이 됩니다.  새로 짓고 있으시다는 말씀이지요  새작품 새창조.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는 새창조 속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의 그 위대한 능력이 우리 속에서 지금도 체험되고 나타난다는 위대한 사실에 눈떠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출애굽의 능력이 새출애굽의 역사, 우리의 구원운동에서 나타남을 믿어야 합니다.  믿는 대로 역사가 나타납니다.  우리 교회에는 엑소더스 야구단이 있습니다. 엑소더스 야구단.  우리는 엑소더스, 출애굽의 능력이 성경에 나타나 있는데 그 능력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스케일을 바꾸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러하면 언젠가 우리는 큰 믿음의 사람들이 됩니다.  그리고 반드시 큰 능력을 옷 입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큰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엑소더스. 출애굽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그 나타내심을 체험하는 일은 하나님의 그 증거하신 일, 증거하시는 일, 이제 십자가와 부활에서 나타내시는 창조와 출애굽의 역사에 우리 믿음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대의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최대의 지혜는 하나님의 일과 우리의 삶을 묶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증거를 전하는 일에 묶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풀리게 만드는 가장 큰 지혜입니다. 

이제 우리는 압니다. 여기서 지혜, 라고 말씀드렸지만 이것은 세상의 보통 지혜를 넘는 이야기입니다. 보통의 지혜로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우리에게 닥쳐오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하느냐,  바울사도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2: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아주 단호하지요.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이란 하나님의 능력의 도움이 없는 그런 말과 지혜입니다.  그럴듯한 이론과 표현이 있지만 하나님의 비전과 뜻에 직접 관련이 없는 말입니다. 그런 지혜입니다.  세상의 경험에서 나왔다고 하는 말, 인생을 깊이 탐구해서 나왔다는 지혜. 그런데 하나님의 뒷받침이 없는 말들이 있고 지혜가 있습니다.  또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은혜를 입기는 하는데 결정적인 도우심을 받지 못하는 말이나 생각들입니다.  그 때 주님은 마치 등은 가지나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던 미련한 다섯 처녀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주님과 관계없이 산 것을 지적하실 것입니다.

마25:12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물론 하나님께서 인생의 모든 일에 관여하시고 사람들의 말과 생각에 창조와 출애굽의 능력과 지혜로 간섭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결정적인 영광을 나타내시는 일들에 하나님의 결정적인 능력과 지혜를 나타내시면서 이것은 정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야, 라는 분명한 도장을 찍기 원하실 때 인간의 말, 지혜로는 문제가 풀리지 않게 하십니다.  그래서 어느 때까지는 인간은 자기의 한계를 체험하는 뼈저린 고난을 겪기도 합니다. 신자들이 그런 한계 속에서 왜 안 되지? 왜 문제가 안풀릴까?  왜 기도하는데도 응답이 없지? 하면서 안타까와하는 가운데 결국 하나님께 깊이 엎드리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 정말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겠습니다, 뜻대로 되기를 원하오니 주여, 뜻과 능력을 나타내시옵소서, 라고 부르짖게 하십니다.  그러는 사이에 인간의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이 제쳐지고 진정 문제해결의 핵심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인생의 문제는 하나의 근본적인 열쇠에 연결됨을 발견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입니다.

해답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묶여있다

여러분, 바울사도의 결의에 찬 선언을 들어보시겠습니까.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아니, 이런 말이 가능합니까.  세상에 지식을 쌓으려고 더 노력을 해야지 나는 이제 아무 것도 알지 않겠다 라는 말을 합니까.  무식주의를 선언하는 건가요.  그러나 이 말씀의 본질은 지극히 중요하고 가장 앞선 것에 대한 우선순위의 선언입니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하는 전도에 인생의 제반사를 묶는 일이며 하나님의 증거하신 일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 그 분과 그리고 그 분의 하신 일, 즉 십자가에 못박히신 일, 이라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가장 중요한 우선적인 일로 알지를 않겠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인생의 문제를 푸는 열쇠가 전도에 묶는 것이라면 그 전도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다, 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죄와 죽음, 고난과 실패, 외로움과 파탄나는 삶의 문제, 탕자의 생활과 방황, 버림받은 소외감과 포기하는 삶, 이 모든 문제의 가장 위대한 해답으로 증거하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인생 문제의 해답이십니다. 

죽음과 영생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방법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가운데 온갖 문제에서 구원을 받는 길이 열립니다.
빌립보도시의 어떤 교도관 간수가 사도들에게 질문을 했지요. 행16:30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그 때 바울사도가 이렇게 대답했지요.
행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영혼이 새로 태어나는 은혜를 받으면서 거듭나고 새로 난 영혼이 되면 기도합니다, 찬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줄 압니다, 낙심대신 믿음으로 일어섭니다, 이런 가운데 그 영혼의 문제만이 아니고 문제해결이 물꼬가 열리면서 범사에 육신에 축복이 옵니다.  요한3서1장의 말씀같이 말입니다.
요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영혼이 잘 되면서 범사에 그리고 건강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모시면서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근본적으로 열리게 되는데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를 알아야 하는데 그 분을 아는 길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은 바로 우리의 죄와 허물 때문에 속죄의 피값을 지불해주시는 일임을 깨닫게 되고 믿어지는 일이 가장 문제해결의 길임을 우리는 압니다. 아, 예수님이 날 위해 대신 죽어주셔서 내가 사는구나, 속죄의 용서와 보호가 나의 구원이구나.  이 은혜를 생각하면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예수님의 그 죽어주심에 이르게 되면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의 힘은 빠져나감을 느낍니다. 내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이 발견됩니다.  아, 내 힘으로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구나.  창조주의 힘, 출애굽 시키신 분의 그 능력이 내게 임하여야겠구나, 라고 겸손해 집니다. 모든 능력은 십자가에 묶여진 선물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겸손히 엎드리며 결국 십자가를 붙드는 인생이 됩니다. 십자가를 붙든다는 것은 나의 힘은
빠진다는 뜻입니다. 기고만장하던 사람이 순해집니다. 늘 자기 자랑이 많던 사람이 자기 자랑을 하지 않습니다.  결국 고백합니다. 나를 위해 오신 주님, 나를 위해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는 주님을 발견할 때 우리는 넘치는 풍성한 것을 누릴지라도 오히려 베드로같이 고백합니다.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베드로가 이 고백을 한 때는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렇게 잡히지 않던 고기를 넘치게 잡게 된 때였습니다. 

눅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우리는 십자가에 능력이 있다는 의미를 생각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능력이란 우리가 한없이 부족한 것임을 깨달으면서 첫째 내 죄가 용서되어야 하는구나, 라는 문제 앞에서 나의 의, 공로로 내가 죄인 됨을 벗을 수 없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피로 나를 용서하시는 길 밖에 없다, 는 깨달음을 얻는 데서 오는 출애굽적인 구원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이란 또한 둘째로 내가 정말 하나님의 증거를 전하는 일과 관련해서 나 자신은 때때로 방해가 되는 존재일 뿐이다, 정말 내가 나타나고 내가 자랑이 되고 내가 앞서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고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가리워질 수 있고 결국 하나님의 사랑, 은혜, 구원의 그 역사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복음이 가리워질 수 있다, 라는 생각에 스스로 조심이 되는 상태에서 오는 겸손의 힘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면서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창조주 앞에서 낮추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고
백합니다.

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위대한 사도바울이 전도할 때 왜 약한 느낌이 들고 왜 두려우며 왜 떨리겠습니까.  말이 안되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바울사도는 그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자신이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기까지 자기 자신을 한없이 낮추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표현입니다. 그렇다 내가 아니라 주님의 나타나심으로 되어야 한다, 내가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야 한다, 그래야만 구원이 된다, 그래야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는 고백입니다.  바울사도는 참 많이 배운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 일에 앞장 설 때는 대제사장들을 설득해서 권한을 위임받아 통솔하는 능력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는 자기 자신이 방해가 될 수 있음을 느끼고 모든 조심을 하는 것입니다. 말도 조심하고 행동도 표정하나도 전도에 방해가 될까봐 조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냥 세상을 살아가며 교회 일도 그냥 일반적인 일을 하면 자기를 낮추는 것보다 자기를 높이는 것이 유리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내가 너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모습을 보이기 쉽습니다. 텃세를 부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직분이 교만의 표현이 되어버리기 쉽습니다. 내게 주신 직분과 권세가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전진시키는 일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말도 함부로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교회들을 다니다 보면 보통 때 겸손하던 분들도 주위 사람들을 의식할 때에는 불필요한 교만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컨대 새신자들이 모인 곳에서 공연히 자기를 과시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다른 사람을 야단을 치기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지시도 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아주 보기가 좋지 않아요.  덕이 안된다는 말씀이지요.  자신을 세워서 얻는 것보다 잃은 것이 훨씬 많은 일입니다.  내가 리더다, 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쉽게 남을 짓누르는 표현이 나올 수 있습니다.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때때로 나에게 잘하지 않는 사람은 까다롭게 대하고 나에게 잘하는 사람에게는 너그러운 직분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저 겸손한 것이 최고입니다. 덕을 세우는 말과 태도가 최고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것도 이렇게 하며 교회생활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라는 문제, 하나님의 증거를 전한다는 문제에 들어서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전도를 잘 하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를 근본적으로 낮추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람들의 마음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지요.  그래서 전도를 가장 우선으로 삼는 성도가 되면 자연히 남에게 대해서 겸손하고 전도를 진정 잘 훈련받고 전도다운 전도를 하려는 사람은 그 영적인 덕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그냥 우격다짐으로 하는 방법은 얼마간은 통해서 결국은 안됩니다.  그래서 전도를 앞세우는 교회는 자연히 겸손한 교회로 바뀌게 됩니다.  직분자들이 겸손해집니다. 남을 배려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교회가 오래되면서 전도를 하지 않는 직분자들이 쌓이면 쌓일수록 교회는 경직되고 융통성이 없으며 능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생명을 살리는 큰 역사는 약해집니다.  그러나 전도를 목적으로 하면 배려하는 힘도 커지고 주님은 그 일에 사방에서 오는 도움도 몰아서 주십니다. 

우리는 그저 나눠주는 기쁨을 누리면서 주님을 높이는 일에 새로운 결심도 더하게 됩니다. 
전도에 힘쓰는 중직들, 성도들이 늘어나면 날수록 교회는 겸손해지고 부드러워지고 따뜻해지고 배려하는 사랑의 나라가 됩니다.

지난 주간 금요일에 우리교회가 성도님들이 드린 구제헌금을 모아서 일차적으로 수재피해가 극심한 지역인 인제군을 도왔습니다.  기독교텔레비전이 참석하고 우리 교회의 수재헌금 1천만원으로 쌀과 라면을 구입하여 전하고 또 우리 교회를 통해서 역시 지원하기를 원한 외국인회사 테트라 팩(Tetra Pak)에서 제공한 두유 3만개를 역시 함께 전했습니다.  길도 많이 밀리는 가운데 멀리 다녀왔는데 그곳에 가니 수재 피해 복구문제로 직원들도 정신이 없더군요.  우리가 생각하는데로 처음에 착착 연결하여 움직이지 못하는 답답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우리가 생각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은 우리가 교회, 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도움을 전하려 갔지만 우리는 말과 태도를 겸손히 하고 그리고 인내하는 자세를 취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고마워 하면서 모든 안내를 잘 해주시는 것을 인해 또 감사했습니다.  외국인 회사 테트라 팩의 이사되는 외국인이 그러더군요. 교회가 이렇게 신속히 도움을 주는 것이 참 인상적이라
고요.  그래서 그랬지요. 여러분이 도우시니까 우리도 빨리 돕게 된 것이라고요.  남을 도우려고 할 때 전도를 생각하니까 오히려 우리가 겸손해 져야함을 많이 배웠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이고 교만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전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전도에 힘쓰면 하나님의 능력의 옷, 성령의 권능의 옷을 입히움 받게 됩니다.  성령의 권능이 나타납니다.  그렇게 되면 전도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도를 위해서 받은 능력으로 생활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부수적인 은혜들이 충만하게 됩니다.  병원에 가보면 환자들이 많습니다. 교우들이 병이 들면 기도를 하게 되는데 기도해도 병환이 중해질 수 있고 돌아가시기도 합니다. 또 낫기도 합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 늘 생각되는 것은 왜 하나님께서 이런 환난을 주시고 그리고 기도하게 하시는가, 입니다.  깨달음을 얻은 것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환난을 통해서 기도를 모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병자를 위해 병만 낳게 기도하게 되지 않습니다. 자연히 그 분의 영혼, 가정, 일을 위해서 기도하게 됩니다.

때로는 집중적인 기도가 필요할 때 입원을 해서 치유되는 동안 꼼짝 못하고 기도의 도움 축복의 기도를 받으시게 됩니다. 결국 그 모든 기도는 싹이 돋아나면서 응답의 풍성한 다양한 열매를 맺힐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연약함을 경험하면서 십자가에 이를 때 우리는 그 십자가의 고난을 이해하고 겸손히 십자가의 사랑을 믿으면서 주님이 연약함을 통해서 그 분의 강하심, 능하심을 풍성히 다양하게 나타내신다는 사실을 믿게 됩니다.

시편18편1절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감사하면서 감격하게 됩니다.  성령의 권능의 옷을 전도 때문에 입게 되었더니 전도만 아니라 생활의 문제, 가정의 축복이 해결되는 모든 은혜가 임함을 배우게 됩니다.  아, 주님의 성령의 권능으로 옷 입는 일이 가장 중요하구나, 예수님을 모시는 일, 그 분의 성령으로 옷 입는 일이 가장 중요한 지혜구나, 라고 깨닫습니다.  놀라운 지혜와 믿음이 생깁니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에 밝아집니다. 십자가가 지혜임을 알게 됩니다.
능력과 지혜에 대한 우리의 관점에 획기적인 변화가 옵니다.  아, 진정한 능력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권능이며 이 권능은 그 분의 십자가의 흔적이 있는 곳에 임하는구나, 라는 믿음에 이릅니다. 이 믿음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능력을 알아보면서 생긴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는 약하고 그분도 약해지셨으나 그 십자가에서 우리가 강해지고 주님은 십자가의 흔적을 가진 부활의 주님으로서 성령으로 우리를 안으시고 도우시며 놀라운 능력으로 나를 능력있게 하신다는 사실에 깊이 감격하게 됩니다.  그 후 우리는 하나님의 십자가의 능력, 그 십자가가 있는 곳에서 겸손한 자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모든 능력에 우리의 믿음을 두게 됩니다.  주여, 제가 부족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하실 것입니다. 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모든 것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주여, 나를 능력있게 하심을 믿습니다. 제가 십자가를 믿고 십자가를 붙들며 십자가의 복음을 부활의 능력으로 전하려하기 때문입니다.  주여, 성
령의 권능을 나타내소서, 라고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믿음이 정말 참 믿음임을 강조합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인해 생긴 믿음에 대해서 선언합니다.

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은혜로 십자가로…

우리는 오늘 본문을 말씀하기까지 고린도전서 1장부터 하신 말씀을 연관하여 이해하여야 합니다. 
먼저, 문제의 해결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로 된다, 는 사실입니다.
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 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바로 십자가의 도의 능력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능력, 의 이야기가 십자가와 묶여 있습니다.  아울러서 십자가를 미련하게 보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면서 그 십자가의 복음을 충실히 믿고 전하는 곳에서 회개가 이루어지고 구원이 이루어지고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고 축복이 임하게 하십니다.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전도의 미련한 것.  미련해 보이는 전도가 능력과 축복의 근원이다, 지혜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주여 저는 정말 부족합니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아니야, 네가 부자이다, 네가 축복을 받은 것이다, 라고 하시면서 십자가에 모인 사람들에게 부활의 권능의 소식을 알려주면서 용기를 주십니다.  성령을 옷 입으라, 그리하면 그 안에서 모든 은혜, 축복, 능력이 나타나리라. 영혼을 구원하는 일만이 아니다,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지는 은혜도 임한다, 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십자가의 주님을 믿고 부활의 주님을 십자가를 통해서 믿으면서 나를 낮추는 전도에 모든 우선순위를 두는 삶으로 완전히 바뀌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의 음성과 우리의 응답은 이것입니다.

전도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예, 전도하겠습니다. 나를 능력있게 하실 것입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능력이 따를 줄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전도를 위해 사는 것이어야 합니다. 가정도 사업도 공부도 사명의 일도 다 전도, 즉 하나님의 증거를 전하는 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권능은 문제해결의 옷이 될 것입니다. 마치 요즈음 컴퓨터로 된 힘의 장치가 된 옷을 입으면 무거운 물건도 쉽게 들고 멀리 밤에도 내다보고 신기한 그런 능력의 도움을 받으면서 일도 하고 전쟁도 하게 되는 것 같이 우리는 성령의 권능을 옷 입으므로 인해 그 것과 비교가 안되는 하늘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될 것입니다.  엘리야의 겉옷을 가진 엘리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앞에 문제가 해결되는 일이 이제 영혼구원 하나님의 나라 일 때문에 함께 해결되는 역사를 경험합니다.  정말 이 세계를 들어가 보면 내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그 하나님의 증거, 를 전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큰 지혜요 능력이구나, 라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됩니다. 

이제 우리가 이 지혜에 눈을 뜨고 우리 교회와 성도님들이 다 정말 전도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둔 삶을 출발하기를 원합니다.  이제 능력의 엑소더스, 가 이루어져서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고 아, 하나님이 나를 능력있게 하신다는 고백을 할 수 있는 십자가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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