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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절] 역전의 은혜 (에 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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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의 은혜(에스더4:10-17)

지난 주 설교말씀제목은 ‘나를 능력있게 하신다’이었지요. 그리고 지난 주간에 꼭 우리가 시작할 엑소더스 운동 네번째를 말씀드렸지요.  ‘능력전도(Powerfull Evangelism)’였지요. 오늘 말씀제목은 ‘역전의 은혜’입니다.

역전의 힘이 필요하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나라의 원수가 있습니다. 교회를 무너뜨리고 이웃 나라를 괴롭혀서 침략하고 하나님이 쓰시는 나라를 무너뜨리는데 목적이 있는 그런 세력이 있습니다. 무신론 사상, 이단사상이 있습니다.  이런 세력이 무너지고 하나님을 위하는 나라가 되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려운 상황을 역전시키는 힘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대원군을 잘 아시지요.  조선 말기에 고종황제의 아버지였지요. 쇄국정책을 시행해서 나라의 문을 닫았기에 우리나라가 결국 문명에 뒤떨어지면서 일본에 먹히게 되는 어려움을 겪게 된 대한 책임을 질 인물이라고 하지요.  자주를 강조했는데 그러나 시대에 맞지 않았기에 오히려 자주를 잃어버리는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대원군이 뛰어나 지혜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는 상황을 역전시키는 일을 잘 했습니다.  자기를 향한 의혹을 잠재우려고 거리의 부랑자들과 어울리면서 비천한 사람같이 놀므로써 정적의 칼을 피하다가 나중에 정권을 잡게 됩니다.  그가 대원군이 되어서 어느 날 청나라 사신이 서울을 방문했습니다.  서울 이곳 저곳을 살피는데 경복궁에 이르렀습니다.  사신이 말합니다.  ‘참으로 멋진 건물이오.  이 집을 짓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습니까’.  ‘글쎄요 아마 삼년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아니, 이것을 짓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우리네 청나라 사람들이라면 일년이면 지었을 거요’, 라고 합니다.  대원군이 속이 상했지만 묵묵히 갑니다. 자금성 같은 큰 궁궐을 짓는 나라니 그럴 수도 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걷다보니 창덕궁에 왔습니다.  ‘이 건물 또한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이 건물은 어느 정도 걸렸습니까’ 그래서 ‘아마 일년은 넘게 걸린 것 같습니다’, 라고 했더니 사신이 말합니다.  ‘아, 그래요 몇 달이면 충분할 것을 그렇게 오래 걸렸단 말이오’.  이 말을 듣고 속이 상해있는데 다시 남대문에 오게 되었습니다.  ‘아하, 이 문은 참으로 위대해 보입니다.  이 것은 짓는데 얼마나 걸렸습니까’.  이 말을 듣고 대원군이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또 트집을 잡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아, 이 문이요. 거참 오늘 아침에도 없었던 것 같은데….’ 이 말에 분위기가 역전되고 사신이 풀이 죽더랍니다.  우리는 어떤 곤란이 더해오는 경우에 상황을 역전시키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 힘이 역전의 은혜입니다.

우리 말에 설상가상(雪上加霜)이란 말이 있지요. 눈 위에 서리가 내린다, 는 뜻인데 추운데 더 춥고, 어려움이 왔는데 또 어려움이 더 오는 그런 상황을 의미하지요.  우리의 삶에 이런 설상가상의 일, 이른바 엎친데 덮친 격, 같은 일들이 다가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욥의 경우가 그랬지요. 그는 하루 만에 재산을 다 잃고 자녀를 다 잃고 건강을 다 잃고 친구들의 우정을 잃고 사람들의 관계를 다 잃어 버린 비참한 처지로 몰려 들어갔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의 하나가 역전의 은혜입니다. 

역전의 은혜가 있다

모든 상황을 반전시키고 역전시키는 은혜가 있습니다.  전에도 역전에 대한 말씀을 드린 적이 있지만 오늘 우리는 정말 이 역전의 은혜를 기도하며 역전의 축복이 파문처럼 일어나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려야겠습니다.  8.15 광복 61주년을 맞이한 지금 히로시마, 나가사끼에 떨어진 원자탄 두 방이 해방이라는 역전의 은혜를 이룬 것 같이 그러나 그 이상의 역전의 사건들이 저와 여러분의 인생, 우리 민족의 앞날에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께서 아시는 역전의 드라마 하나가 구약성경 에스더서,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여러분, 에스더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십니까.  에스더는 아주 아름다운 유대인 여인이었습니다.  그가 살고 있는 페르샤의 전 제국 모든 여인들 중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 에스더가 아름답다고 해서 그의 인생이 행복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아름다웠지만 불행한 일이 연속되고 있었습니다.  먼저 에스더가 태어난 때에 그의 나라 유다 왕국은 점점 위태위태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바벨론 왕에게 망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유다인들이 포로가 되어서 바벨론으로 옮겨질 때 에스더도 포로가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이미 부모가 돌아가신 고아였습니다. 에스더는 그의 사촌오빠인 모르드개와 같이 포로가 되었는데 부모님을 잃고 나라도 잃고 그리고 포로되고 결국 이방 땅에 와서 살게 되었을 때 모르드개 오빠가 그를 친 딸같이 돌보아 주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설상가상이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삶은 한 마디로 ‘함께 사로잡혔더라’(2:6)는 그 말씀 속에 다 담겨진 그런 고난의 삶이었습니다.  ‘사로잡혔더라’.  ‘부모가 죽은 후’, 이런 말은 다 그 당시로는 정말 인생의 밑바닥을 치는 그런 표현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그렇게 끝날 것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삶에 역전이 이루어졌습니다.  갑자기 왕의 왕후인 와스디가 왕에게 미움을 받아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왕이 큰 잔치를 베풀고 와스디 왕후를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어 불렀는데 왕후는 왕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왕의 마음에 분노의 불이 붙었습니다. 그 결과로 왕후는 폐위가 되었고 새롭게 왕후를 선택하는 기회가 왔을 때 전국에서 뽑힌 처녀들 중에서 에스더가 왕후로 선택되었습니다.  갑자기 에스더의 삶은 역전되었습니다.  에스더가 포로가 되지 않았더라면 에스더는 유대땅에 있었을 것이요 그의 삶은 페르샤제국 전체와 상관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포로 되어 간 때문에 에스더의 삶은 고난이 오히려 왕후가 되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인생의 아주 중요한 역전의 은혜를 받은 것이지요. 

역전의 은혜는 더 큰 역전의 준비이다

에스더가 받은 역전의 은혜는 그 자신의 삶이 새로운 축복으로 인도되는 것이었지만 그 것은 그 다음에 일어나는 더 큰 고난을 위해 준비된 역전의 기회였습니다.  자기 만이 아니고 민족 전체의 위기를 해결하는 은혜가 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에스더가 경험하고 모르드개가 경험하는 역전의 드라마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였습니다.  더 큰 위기에서 더 큰 역전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준비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민족이 몽땅 다 멸망 당할 그런 위기의 때를 위해 준비된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고난을 주시다가 그 고난을 뒤집는 역전의 은혜를 주십니다.  우
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첫째 인생의 역전을 주시고 그리고 나의 인생의 역전이 더 큰 역전을 위한 준비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이 형제들의 손에 의해 애굽에 노예로 팔렸다가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총무가 된 역전은 그가 다시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중에 총리가 되어서 자기 민족과 이웃 민족을 구원하는 큰 역전의 은혜를 받는 시작이었지요.  또 선지자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기 까지 고난이 오다가 물고기 뱃속에서 나오는 역전이 일어났습니다. 그 일은 결국 니느웨 성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회개시키시고 구원하시는 큰 역전의 드라마의 시작이었습니다.  다니엘이 포로 된 신세에서 오히려 바벨론의 총리가 된 것은 사자굴에 던져지는 큰 위기를 뒤집는 역전의 은혜의 시작이었습니다.  에스더가 그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에스더와 같이 사촌오빠 모르드개도 그런 역전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 뿐 아니라 그들이 받은 은혜는 결국 자기 자신 만이 아니라 민족을 살리고 여러 민족에 화평을 주는 은혜가 되었습니다. 

결정적인 카드를 잠시 감추신다

에스더가 왕후가 되어 궁궐에서 살고 있을 때 유다 민족 전체를 어려움에 빠지게 하는 하나의 작은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첫째는 늘 성문 앞에서 지내던 모르드개가 어느 날 왕을 암살하려는 사람들의 모의를 눈치채고 그 일을 왕에게 알리게 된 것입니다.  왕이 암살당하면 왕후인 에스더 자기의 사촌여동생이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을 아는 모르드개는 이 음모를 왕에게 전달했습니다.  그 결과로 인해 암살음모자들은 체포되어 처형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모르드개는 이 일로 인해 아무런 상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왕도 대신들도 모르드개의 공로를 역사책에 기록은 했지만 잊어버렸습니다.  여러분, 모르드개로서는 얼마나 섭섭할까요.  자기의 공로로 왕이 살았으면 아니, 어떤 벼슬이라도 내리든지 돈이라도 주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입을 싹 씻다니요.  그런데 사실 이 일은 후에 모르드개와 에스더 그리고 유다민족이 몽땅 다 죽을 위기를 건지는 결정적인 도움의 일이 됩니다.  모르드개가 성문에 있으면서 늘 기도하고 하나님
의 뜻을 생각하며 왕후 에스더의 안전을 살피는 때 왕의 아주 총애를 받던 신하 하만이 모르드개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하나님 보다 자기를 더 높이는 하만의 교만 앞에 무릎을 꿇지를 않습니다.  그 결과 하만은 모르드개가 유대인임을 알고 아예 모르드개의 민족까지 다 없애버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왕에게 나아가 칙령을 받아냅니다.  왕을 무시하는 한 백성이 있는데 그 백성을 멸해야 한다는 고소를 하고 왕은 자기 부인 에스더가 유다인인 줄 모르고 칙령에 도장을 찍어서 허락합니다. 하만이 유다인을 죽이려는 날짜를 제비를 뽑을 때 아달월 13일이 뽑혔습니다.  아달Adar의 뜻은 어두움, 인데 바벨론 달력의 달(month)의 이름이요, 포로 후의 유다력의 제12월, 태양력의 2-3월에 해당됩니다(스 6:15, 에 3:7, 13, 9:15).그 날 페르샤 제국의 모든 유대인들은 다 죽는 날로 정해졌습니다. 모든 준비가 진행되게 되었습니다.  모르드개는 모든 유대인과 금식하며 기도를 시작했고 이 소식을 에스더가 듣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내용이 그 때의 일을 설명합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왕후로 뽑히던 처음에는 유다 민족임을 누구에게나 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때로는 감추인 보화가 쓰일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더의 유다 민족 됨과 모르드개가 왕을 구한 일을 그렇게 예비하신 보화로 삼으셨습니다.  먼저 에스더의 유다 민족 됨을 쓰십니다.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요구합니다.  이제 너는 유다 민족임을 알리라, 그리고 왕에게 이 사실을 알려서 민족을 구하라, 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 요구에 에스더는 곤란함을 표합니다.  왕이 자기를 부르지 않은지 30일이
되었고 왕의 부름을 받지 않고 나가면 왕이 죽이는 법이라고 말입니다.  에스더가 자기 신하 하닥을 통해서 이렇게 모르드개에게 말했지요.

4:10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고하기를
4:11 왕의 신복과 왕의 각 도 백성이 다 알거니와 무론 남녀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아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홀을 내어 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아가지 못한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이 대답은 일리가 있지요.  상황이 어렵다는 얘기지요. 더군다가 권력을 가진 왕을 움직일 권력이 더 이상 있지 않으니 무섭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권력을 더 두려워하고 믿는 모르드개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4:12 그가 에스더의 말로 모르드개에게 고하매
4: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모르드개의 단호한 판단은 이제 에스더가 위험을 무릅쓰고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4: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에스더에게 주신 지난 날의 역전의 은혜가 이제 정말 더 큰 위기의 역전을 위해서 주신 시작이었다는 말씀입니다.  만일 역전의 은혜의 도구가 되는 일을 피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왕후의 위치는 바로 더 큰 역전의 은혜를 위해 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은혜들을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가 죄인인데 의인되고 죽을 죄인이 영생의 사람이 된 것은 다른 사람들, 수많은 죽어가는 인생을 주님께로 돌이키는 대역전의 열매들을 위해 주신 것이란 말씀입니다. 저도 가난과 좌절감의 연속일 때에 주님이 저를 부르셨고 목회자로 부르시고 사명을 위해 세우신 이후 저 자신이 죽을 병에서 놓임받는 역전이 올 뿐 아니라 목사로서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역전시키는 사명의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역전의 사명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전의 드라마의 자리에 놓일 때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 나만 아니라 이제 나를 쓰셔서 역전의 은혜를 이루시는데 순종하자, 라는 결단입니다. 에스더는 이 결단을 내리고 모르드개에게 대답합니다.

4:15 에스더가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회답하되
4: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4: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의 명한 대로 다 행하니라

에스더의 결단은 금식기도 후에 왕 앞에 나가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우리의 체면, 우리의 위기 때문에 사명의 길에서 멈추어서고 후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의 인생은 역전의 은혜 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역전의 은혜를 받았을 뿐 아니라 역전시키는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 만이 아니라 남의 인생을 역전시키는 도구입니다.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이제 에스더가 알아야 할 사실은 그에게 역전의 은혜가 따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분은 에스더 만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 일에 늘 결단이 필요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십자가를 붙드는 결단입니다. 나를 능력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십자가에 묶여 있습니다. 십자가를 붙드는 결단은 죽으면 죽으리라, 입니다. 나는 주님의 것이다, 주님과 함께 죽었다 그러니 또 죽을 것이 무엇이냐. 반드시 죽음도 이길 것이다, 라는 믿음이 에스더 속에 충만했습니다.  에스더가 이 역전의 도구 됨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에스더가 왕에게 나아갈 때 왕의 마음을 감동하셨습니다. 

첫째 사람의 마음에 놀라운 변화를 주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5:1 제 삼 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보좌에 앉았다가
5:2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심히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홀을 그에게 내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홀 끝을 만진지라
5:3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하나님의 역전의 은혜는 주권자의 마음, 우리가 목표하는 사람의 마음을 바꿉니다.  30일 동안 무관심하던 왕의 마음을 무관심에서 관심의 표현으로 바꿉니다. 에스더를 위해서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마음으로 바꿉니다. 이 역전의 은혜가 여러분의 환경에 따르기를 바랍니다. 전도대상자의 마음을 이렇게 바꾸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예비된 역전의 도구를 사용하십니다
하만이라는 사람이 에스더가 유대인인 줄 모르고 에스더가 요구하는 잔치에 왕과 함께 초대를 받았을 때 하만은 이제 자기의 뜻이 이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절하지 않는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높은 장대를 만들어 놓고 왕에게 모르드개를 죽일 허락을 받으러 들어갔습니다. 밤인데 왕이 잠이 오지를 않습니다.  그 때 왕은 잠이 오지 않으니 나라의 역사책을 읽게 됩니다. 하나님의 방법이지요. 그리고 바로 그 때 모르드개가 왕을 살린 이야기를 읽게 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6:1 이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6:2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 지킨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모살하려 하는 것을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

왕이 물어봅니다. 

6:3 이 일을 인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시신이 대답하기를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 
바로 이 것이 은혜입니다. 만일 전에 모르드개가 상을 받았더라면 그냥 읽고 지나갔을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기에 모르드개는 사는 길이 열렸습니다.  왕이 모르드개에게 상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할 때 마침 모르드개를 죽이려는 허락을 얻으려고 하만이 뜰에 선 것입니다. 기막힌 타이밍이지요.  하나님의 역전의 은혜는 이럴 수 있습니다.
왕이 사람을 찾으니 하만이 있었고 하만은 오히려 모르드개에게 최고의 영광을 돌리는 그 일에 수종드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6:4 왕이 가로되 누가 뜰에 있느냐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 왕궁 바깥뜰에 이른지라
6:5 시신이 고하되 하만이 뜰에 섰나이다 왕이 가로되 들어오게 하라 하니
6:6 하만이 들어오거늘 왕이 묻되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뇨 하만이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
6:7 왕께 아뢰되 왕께서 사람을 존귀케 하시려면
6:8 왕의 입으시는 왕복과 왕의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취하고
6:9 그 왕복과 말을 왕의 방백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붙여서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
6:10 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취하여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

결국 모르드개의 위기는 역전되었습니다. 그리고 에스더 왕후는 그의 잔치 자리에서 왕에게 하만이 유다민족을 죽이려하고 자기는 유다민족임을 담대히 고합니다. 이로써 모든 상황은 역전되었습니다.  하만과 그의 집안은 멸망하였고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민족은 구원되었습니다.  큰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역전의 은혜는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전의 은혜를 받는 사람들을 만드시고 그 은혜로 인해 위기가 변하여서 간증이 되게 하십니다.  출애굽 운동은 바로 역전의 도구가 되는 운동입니다. 에스더같이 모르드개같이 역전의 은혜를 받고 역전의 도구가 되는 일을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역전의 은혜를 에스더같이 사용하기를 바랍니다. 주여 역전의 도구로 쓰옵소서.

그러나 우리는 에스더서를 여기까지만 이해하면 반 밖에 이해한 것이 아닙니다. 원수를 이기고 그리고 구원받은 역전의 사건, 정도로 이해하면 에스더서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큰 뜻을 다 아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에스더서는 큰 특징이 있습니다. 그 특징은 에스더서 어디에도 ‘여호와’, 또는 ‘하나님’, 이란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에스더서를 기록한 분이 기록하던 당시 어떤 상황이 있어서 그 표현을 넣기가 곤란한 일이 있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 등의 표현을 한 군데도 넣지 않으면서도 에스더서를 읽으면 그 안에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분명하게 느끼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또한 놀랍습니다.  감추어져 있는데 분명하게 증거되는 그런 신비한 표현법을 에스더서는 갖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에스더서는 단지 원수를 이기는 그런 구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에스더서의 큰 방향, 큰 강조는 바로 평화, 화목, 평안의 성취, 라는 메시지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차 평화의 왕으로 오셔서 큰 평화를 나와 너, 우리, 그리고 민족과 열방 민족 가운데 평화, 화목, 화평을 이루신다는 예언이 담겨진 메시지가 바로 에스더서 말씀입니다.  물론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구약적인 심판, 징계, 원수를 갚고 대적을 죽이는 일, 이 모든 것은 이제 큰 전환을 하는데 그 모든 것을 십자가 앞에 옮겨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주님께 원수갚는 것은 맡겨드리고 우리는 속죄, 용서, 긍휼, 중보의 기도, 평화, 화목, 하나됨, 더 많은 영혼의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목적이다, 라는 메시지입니다. 에스더서의 목적이 평화, 화목이라는 사실은 중요합니다.

역전의 참된 방법은 십자가의 평화이다

제가 오늘 인터넷뉴스에 들어가서 보니까 어제 K리그 축구경기를 했더군요. 차범근 감독이 이끄는 수원삼성 팀과 박주영선수가 있는 FC서울 팀이 경기를 했는데 저는 보지는 못해서 정말 실감나게 표현은 못해드립니다만 경기 내용을 읽어보니까 수원은 후반 9분 김대의와 교체 투입된 실바의 선제골로 앞서 나가다 후반 22분과 32분 서울팀의 박주영과 두두에게 연속 골을 허용했습니다. 이제 역전패 당할 위기에 놓였지요. 패색이 짙게 드리우던 후반 43분. 수원의 마토가 절묘한 프리킥을 넣으며 수원은 결국 승부를 피 말리는 승부차기로 몰고 갈 수 있었습니다.  승부차기에서도 수원은 선제골 주인공인 실바가 서울의 수문장인 김병지의 선방에 막히면서 두 번째 골을 실패, 분위기도 금세 가라앉는 듯 했는데 하지만 수원은 거미손 박호진이 서울의 세 번째와 일곱 번째 키커로 나선 이기형, 김치곤의 슛을 잇따라 막아내면서 승부차기에서도 역전승을 일궈냈다, 이렇게 기사가 되어 있더군요.  .

차범근감독이 승리를 하고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한편의 드라마 같은 승부였다. 내 자신이 감동을 먹을 정도로 훌륭한 경기였다” 차범근 수원 삼성 감독이 K-리그 최대 라이벌인 FC서울에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하며 승리를 거두고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역전, 이란 이런 면에서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까. 그리고 그 역전을 이루는데 쓰이는 역전의 사람들이 되는 은혜가 큰 것이지요. 차범근 감독이 어제의 승부를 명승부라고 하면서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양측 선수들 다 칭찬하고 싶다고 말입니다.  역전의 은혜는 원수까지 끌어안는 화평의 목장에 함께 서는 은혜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적인 역전의 은혜이며 십자가에서의 역전의 드라마입니다.

그러므로 에스더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다시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큰 역전의 은혜는 평안함을 얻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한바탕의 큰 위기와 위기를 극복하는 심판이 유대인들의 대적에 내려졌지만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우리의 원수를 향해 그 당시 유대인들이 한 것 같이 칼을 들고 원수를 쳐서 죽이는 일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명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스더서의 깊은 메시지입니다. 모르드개는 온 유대인에게 그들의 멸망의 위기의 날이었던 부림의 날, 즉 제비를 뽑아 선택되었던 날을 축제의 날로 바꾸도록 명령
하면서 9장20절이하22절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9:20 모르드개가 이 일을 기록하고 아하수에로 왕의 각 도에 있는 모든 유다인에게 무론 원근하고 글을 보내어 이르기를
9:21 한 규례를 세워 해마다 아달월 십사일과 십오일을 지키라
9:22 이 달 이 날에 유다인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

첫째, 평화가 목적이다. 대적의 심판이 따랐지만 목적은 평화다, 라는 말씀입니다.
‘이 달 이 날에 유다인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라고 하셨는데 대적의 핍박을 벗어나는 엑소더스의 은혜를 받는 것은 그 목적이 평안함에 이르는 것이다, 라고 한 것입니다. 이 평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로 그 얻는 방법이 크게 바뀝니다.  평화는 이제 싸움으로 얻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에서 얻습니다. 이제 에스더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어지면서 대적을 이기는 승리를 더 큰 방법, 즉 십자가의 방법으로 하라는 말씀을 남기고 있습니다. 어떻게 대적에게서 평안함을 얻는가, 이제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은 앞으로 무엇일까, 그 방법에 대한 해답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지요.

마5: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눅6:27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눅6:35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헤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그러므로 에스더서에 감추어진 메시지는
둘째, 긍휼이 방법이다, 라는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선언한 말씀을 다시 봅니다.
9:22 이 달 이 날에 유다인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결론은 구제하라, 즉 긍휼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당시는 유대인들 사이에서의 얘기지만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어지는 그 선상에서 보면 원수까지도 긍휼히 여기라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북한에 그 미운 짓을 하는데도 또 구제품을 보내는 이유도 이런 점에서 이해해야 할 부분입니다. 다만 군사목적으로 바꾸는 일에 대해서 철저히 감시해야할텐데 그런 문제가 염려되는 것입니다.  어떻든 우리는 구제와 사랑, 긍휼이 기독교인들의 방법이다, 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목적은 평화입니다. 에스더서는 큰 역전의 은혜가 임한 다음 계속 평화를 강조합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쓴 편지를 소개하면서 성경은 이렇게 강조합니다.

9:29 아비하일의 딸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가 전권으로 글을 쓰고 부림에 대한 이 둘째 편지를 굳이 지키게 하되
9:30 화평하고 진실한 말로 편지를 써서 아하수에로의 나라 일백이십칠 도에 있는 유다 모든 사람에게 보내어

화평하고 진실한 말, 즉 화평, 평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적 원수를 이긴 평안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평안을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보는 것입니다.  주님이 구약의 평화보다 더 나은 평화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는 에베소서에서 이 정신을 강조합니다.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2: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십자가로 인해 우리는 서로 원수 된 것도 허물어진다는 것입니다. 중국인들과 일본인들과 미국인들과 저 북한의 동포들과도 원수 된 것이 있을 때 예수님의 십자가의 위대한 감동 속에서 원수 된 것이 풀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복절 61주년을 맞아 우리가 정말 기도해야 할 것은 우리 민족의 새로운 큰 엑소더스, 즉 동북아시아의 큰 평화 속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평화를 십자가의 복음으로 이루는 일, 이것이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몫입니다. 전쟁과 갈등과 원수됨과 그런 모든 것은 기독교인들의 몫은 아닙니다. 우리는 민족을 끌어안고 열방을 끌어안고 그리스도의 복음,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화평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에스더서의 복음입니다. 그래서 에스더서는 그 맨 마지막 서신을 이렇게 마치고 있습니다.

10:3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존대하여 그 허다한 형제에게 굄을 받고 그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유대인 중에서만이 아니고 유대인의 이익 만이 아니고 세상 나라의 그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즉 평화를 주었더라, 는 말씀입니다. 그 모든 종족, 모든 민족의 평화. 이것이 에스더서의 결론이었습니다. 

역전의 은혜를 받은 화평의 사람들을 키워야 한다

우리는 이제 다시는 구한말 같은 일제의 침략, 열강의 각축장이 되는 나라가 되지 않도록 평화를 위해 기도하면서 평화의 사람들을 우리 민족 안에서 키우는 일만이 아니고 중국, 일본, 그 안에서도 키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평화의 자녀, 평화의 동역자들을 어서 어서 많이 키워내면서 진정 그들이 아시아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앞으로 평화통일, 복음통일을 위한 화평의 자녀들을 키우는 출애굽운동을 해야 합니다. 화평의 자녀가 되며 화평의 자녀를 키우는 일에 우리 교회가 크게 앞장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인재를 키워서 동북아시아의 지도력을 갖도록 국제적인 지도력을 갖도록 어서 어서 키워야 합니다.  새로운 에스더, 모르드개가 나와서 유대인의 원수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원수 된 민족, 저 일본까지도 복음 앞에 엎드리게 만드는 그런 승리를 기도해야 합니다. 바로 선교입니다. 선교에 힘써야 합니다.  평화의 선교. 화평의 복음을 가족에게 전하고 이웃에게 전하고 진정 거친 사람들이 아니라 평화의 사람들을 키우는 화평의 자녀운동을 힘써 전개해서 원수됨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원수를 감동시키는 승리,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가 되는 그 십자가의 선한 싸움, 화평과 긍휼의 싸움을 힘써 싸우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말씀하셨지요.  미움과 분노와 원수됨 그 자체와 싸우는 긍휼의 전쟁은 얼마나 어려운지요. 우리는 이제 이 평화의 전쟁, 긍휼의 전쟁을 예수의 십자가 때문에 전개하는 그런 메시지를 분명히 하면서 잘 싸워서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면서 기어코 그 원수 된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 놓고야 마는 역전의 승리를 거두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역전의 은혜는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큰 선물입니다. 우리는 이제 역전의 은혜를 늘 사모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8.15 광복 61주년을 맞아서 저와 여러분, 우리 교회, 한국교회로 인해 민족과 아시아, 열방에 큰 평화가 이루는 역전의 은혜가 임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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