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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가 평안하기 원하는 방법 (렘 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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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다는 이유로 시위대 뜰 즉 감옥에 아직 갇혀 어찌 할 바를 모를 그때 (1절)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어떤 무엇보다도 ... 최우선 순위로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2절) 천지 만물을 창조 하시 분 모든 지혜와 능력을 그 수중에 가지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 분께 부르짖어 기도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 삶속에서 어려움이 위기가 닥쳐왔을 때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네의 삶을 한번 돌아봅시다. 어떻습니까? 모두가 평화롭게 살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우리의 바람대로 평안을 누리며 사는 이가 얼마나 많이 있을 까요.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매사 여러분 마음대로 평안 하시던 가요?

보통 세상의 통념대로 보면 가난하고 무식하고 나약한 자만이 고달픈 삶을 살아간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 대 기업 총수가 감옥가고 權不 10年(권불 10년)이라고 했던가요.

그렇게 떵떵거리던 정치가나 권력가 가 감옥가고 ..... 다시 말하여 부요하고 권력을 쥔 사람들도 실상은 나름대로 큰 근심을 갖고 있다고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땅위에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과 삶의 위기를 당해 평안을 잃는 것은 인간 모두의 공통문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이렇게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위기를 과연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요?

방법이 전혀 없을까요? ....... 그러나 오늘 성경 말씀은 아니다 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3절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너는 네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여기서 우리가 잠시 살펴보아야 할 것은 과연 크고 비밀한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의 기도가 열랍 되지 않고 땅에 떨어지는 이유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 4절의 말씀“무리가.....갈대아인의 흉 벽과 칼을 막아”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계획에 맞서 우리의 생각 우리의 뜻 우리의 “의”가 살아 있기에 주님께서 “내가 나의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돌아보지 아니 하셨기에 우리가 사탄의 종 노 릇 하는 재앙을 불러일으킨 이유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죄속에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살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리 스스로 벗어나 보려고 애써 보지만 그럴수록 더 옥 죄 오는 현실 앞에 어떻습니까? 이때 어떤 사소한 것으로서는 이 상태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리의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무엇인가 크고 위대한 것이 이것을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네 솔직한 심정일 것입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그래서 세상사람 중 특히 하나님의 성품을 모르는 불신자는 사탄의 종노릇하러 스스로 빠져버리는 안타까운 현실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크고 비밀한 일’ 다시 말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한 백성을 죄에서 구속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으시고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담당하셨던 그 비밀한 일을 이미 아는 택함 받은 우리 성도들은 주님께서 주님의 지혜와 능력을 믿고 우리의 범죄 사실을 진정 회개 한다면 6절 말씀을 볼까요

“이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시고 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나게”해주시고 또 8절 볼까요.“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의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 한다.” 하셨으며 더하시어 하나님의 바라고 잠잠히 기다리면 (애3:26) 다 같이 오늘 주신 9절 말씀을 합독해 보겠습니다.

“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내게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나의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나의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강을 인하여 두려워하며 떨리라” 할렐루야

이는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셔서 다시 회복시킨 선민 이스라엘에 매사 어려움이 없이 혈통하며 경제적으로도 매우 넉넉한 태평시대를 이루게 되며, 또한 이러한 변화를 목격한 주위나라들이 부러워하며 동시에 놀라우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두려워 떨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택한 백성들로 하여금 영광을 다시 회복케 하사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 드러내시길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그 아무리 고급스러운 고려청자라 할지라도 한 번 깨어지면 원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한 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백성이 깨진 질 그릇(사45:9) 같을지라도 다시 붙여 완전하게 하시며 골짜기에 버려진 마른 뼈 (겔 37:1-2) 같을지라도 다시 모아 힘줄과 살을 붙이셔서 지극히 큰 군대를 이루시는 역사를 행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로 인해 실패하고 징계 받았다 할지라도 찢겨진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와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영육간의 상처를 고치시고 안아주시며 만민 앞에 영광을 얻을 자로 다시 세워 주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아직도 우리가 그 어려움에 두려워하고 있다면 진정 회개했는지 그리고 아직 까지 자신의 의가 살고 있는 지 우리자신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삶에 우리 주님이 최우선이고 하나님의가 나타내어지게 겸손이 주님을 믿고 신뢰 하다면 사드 락 과 메삭 과 아 벳 느고와 같이 불 가운데서도 평안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단 3:19-27)

그러므로 이 시간 이후 부르짖어 기도할 때 우리의 죄 용서하시고 평안케 하신 우리 주님께 이 같은 은총을 늘 누릴 자로서 합당한 감사를 주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기도드리겠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항상 저희를 살펴보시고 인도 하시는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절망하며 비통할 만한 일이 있을지라도 성도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크신 지혜와 능력을 믿고 기도함으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주님이 주신 말씀 감사하게 받았습니다. 이때 내 의가 내 뜻이 내 행동이 내 말이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의가 나타내어 질수 있도록 겸손 하라는 주님 말씀도 감사히 받았습니다.

주님 저의들 용서하시고 가정 직장 사업장 가운데 있는 어려운 문제 막혔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고 노화로서 오는 질병과 열심히 일한 가운데 오는 심신의 피곤함의 질병도 뜻하지 않는 고통 가운데 있는 모든 질병도 주님의 의로운 해가 떠올라 치료의 광선으로 다 치료하여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어 일어나게 하실 줄 믿습니다. 걷고 뛰고 힘차게 생활하게 하시 줄 믿습니다. 또 상처입고 고통 받는 마음의 상처도 주님의 넓은 가슴으로 싸매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지혜가 필요한 곳에 지혜를 지식이 필요한 곳에 지식을 주셔서 우리네 모든 삶속에서 슬기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시고 대입 고입 수험생과 공무원 교원 등 각종 시험 가운데 함께 하시어 건강과 인내와 지혜를 더하여 주시어 원하는 바를 최선을 다하여 노력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원하는 곳에 합격과 원하는 학과에 원하는 대학에 다 들어가게 하시고 주님 홀로 영광 받아 주시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미쳐 아뢰지 못한 기도도 아시는 주님 주님께서는 아시오니 주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채워 주시어 우리 삶이 항상 주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일마다 때마다 평강하게 하시옵소서.

다시한번 주님 앞에 기도드리오니 내 뜻이 아니라 주님 뜻이 나타나게 하시 옵고 주님의 뜻을 바로 알아 주님의 뜻대로만 살아가게 하시옵고 전하는 입술도 주님이 주관하시사 주님의 말씀만 대언 하게 하시 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 (변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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