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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래도 내게 간구하여야 할찌니라 (겔 36:3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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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서에서 나타난 중요한 사상 가운데 하나는 죄악에서 정결케 되는 날에는 한시대의 격동적 위기가 끝이나고 새로운 계약공동체속에서 축복된 삶을 살게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폭풍우가 지나간 뒤에 평정을 느끼듯이,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면 바벨론 포로시대를 통해서 황량하고 적막하게 무너진 성읍들의 성벽이 재건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죄악된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무너진 성전이 재건 될 것이 확실하지만 본문 37절에서 보면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고 하셨습니다.

포로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의 약속을 하고서는 ‘그래도 내게 간구하여야 할찌니라“고 하시면서 기도를 강조하는 것을 보면 기도에는 특별한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약속된 시간까지도 단축할 뿐 아니라 약속된 것을 이루게하는 강한 힘을 가진 기도는 과연 무엇입니까? 기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짐으로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1. 기도란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시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거대한 자원에 그만 눌려 지내는 세계에서 살 고 있습니다. 자연의 힘뿐 아니라 인간이 개발해낸 자원의 힘 때문에 때로는 긴장하면서 조심하면서 살아갑니다. 19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단 일초만에 87,000명을 살상하고 그날 이후 셀 수 없는 이재민을 냈습니다. 1952년에 시험 투하된 수소폭탄은 원자폭탄에 비해 천배나 강해졌습니다. 그리고 불과 2년만에 미국은 코발트폭탄을 실험하였는데, 이것으로써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일시에 몰살된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코발트폭탄은 폭발하면서 방사능 구름을 형성하는데 그 파괴력은 최초의 원폭보다 삼십만배, 최초의 수폭보다 천배나 더 강력한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남녀노소가 십톤이상의 다이너마이트를 가지고 있는 것에 상당한 파괴력이 이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실로 이러한 폭탄의 강한 능력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우리 기독교회와 성도에게 이러한 능력보다 더욱 큰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믿겠습니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능력을 가지고있으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무시할때가 있습니다. 아예 전적으로 무시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독교회와 성도가 가진 강한 능력의 특권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도입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기도를 우리 사람이 고안해 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어떤 학술회의나 연구위원회에서 합의 도출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기도는 분명코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해수준을 뛰어 넘어선 차원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줍니다. 기도하는 자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무한하심과 그분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는 분명히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시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기도의 능력을 분명코 믿으시길 바랍니다.

2. 기도는 변화시키는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33).

잘못된 부분의 신앙생활의 모습이 짤려 나갑니다. 기도라는 히브리어 용어가운데는 “팔랄, 카라, 샤알, 할라, 파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히브리어의 말가운데 많이 쓰는 단어중에서 「팔랄」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기도의 용어의 뜻은 “자신을 자르다”, “자신을 상처낸다”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면 불필요한 것들이 짤려 나감니다. 즉 육신의 정욕들이 짤려 나가며, 생활속에서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한 부위가 짤려 나갑니다. 특별히 기도하면서 의심과 불신이 짤려 나갑니다.

· 기도하면서 우리들은 의심을 잘라버려야 합니다.
· 기도하면서 우리들은 불신을 잘라버려야 합니다.
· 기도하면서 양심의 가책이 일어나는 것들을 잘라내야 합니다.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억지로라도 기도하십시오. 번개기도와 같이 잠깐 앉았다 일어나는 기도가 아니라 나의 모든 잘못된 습관, 생각, 언어를 짤라내겠다는 심정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열심히 기도하면 분명히 삶의 태도가 변합니다. 참지못하는 다혈질적인 성격도 기도하면 변화됩니다. 의지력이 없는 자도 기도하면 강한 의지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자는 분명코 생활의 모습속에서 불신앙적인 모습들이 짤려져 나가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의 변화는 두 가지를 가져다 줍니다.

그 중에 한 가지는 변화시킬 수 없는 일에 대해서 수용할 수 있는 변화를 가져다 줍니다. 변화 시킬 수 없고 고칠 수도 없는 일에 대해서 공연히 불평하고 그것 때문에 마음의 평정을 잃어 버린 채 속상해 하고 괴로워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키가 작은 사실 때문에 고민하며 마음의 평정을 잃을 필요가 없습니다. 얼굴이 너무 길다고 불평하며 손이 유난히 커서 부끄럽다고 속상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좀더 잘사는 나라에 좀더 부유한 가정에 못 태어났다 한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걱정과 고민과 염려와 불평과 절망을 아무리 많이 한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의 현실을 조금도 변화시켜 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런 걱정과 염려는 우리 마음의 평정을 잃게 만들고 더욱 우리 삶을 불행하게 휘몰아 갈 뿐입니다. 기도는 이러한 변화시킬 수 없는 상황을 수용할 수 있는 믿음이 생겨납니다.

영국의 조오지 5세는 다음과 같은 좌우명을 벽에 걸어놓고 살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로 하여금 달의 세계나 엎지러진 우유에 대해 울지 않도록 가르쳐 주옵소서”. 달의 세계는 불가항력적인 세계입니다. 엎질러진 우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도의 변화 가운데 큰 변화는 변화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변화입니다.

다른 한가지의 변화는 내힘으로 고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그것을 고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단지 현실 수용이라는 소극적인 것이 되면 그것은 기도의 타락현상입니다. 자기의 힘으로 능히 해 낼 수 없다고 의욕을 잃은 채 주저 앉아 현실을 도피하는 사람처럼 무능하고 비겁한자가 없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희브리말에는 ‘달아보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우리자신의 믿음과 성격과 습관과 삶의 태도를 저울질 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과 복음과 도덕의 기준에 못미치면 더 기도해서 능력을 받고,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신앙습관이 변화되고, 삶의 태도가 새로워 져야 합니다. 노만 빈센트 필 목사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인생은 변화되어질 수 있는 유연한 것이다. 기도를 통해 이 변화를 얻게 된다” 우리 모든 성도는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할 때 우리의 삶의 모습과 환경이 변화됩니다.

3. 하나님의 축복은 기도하는 자의 수고가 따라야 합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37절) 축복은 믿음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창조적인 행위로 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창조의 행동은 기도인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는 말씀에 순종하는 결단을 갖게 됩니다. 기도하는 자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창조적인 믿음을 가지고 행동합니다. 기도하는 자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주의 능력을 힘입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축복 받을 자의 가장 기본적 행동인 것입니다.

기도는 영적인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하나님께 드린기도의 내용은 아람군대 앞에서 무서워 떠는 사환의 눈이 열려 지기를 바랬습니다. "여호와여! 원컨데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경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6:17) 기도는 아람 군대가 감싸고 있을 때에 불로 만들어진 말들과 수레를 동원한 천사들이 함께 하는 것을 바라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기도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에스겔 36장 22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우리에게 축복을 주심은 더럽혀진 주의 이름을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부족한 인생이라할찌라도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주님의 이름을 회복하시려는 주님의 은총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내가 은혜를 받고 기도를 통해 내가 축복을 받음은 하나님의 이름을 널리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되게 해야 합니다.

절망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받은 축복에 감사하면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습관을 적은 것부터 실천해 보십시오. 기도는 영적인 전투이기에 믿음이 없으면 할 수도없는 것이며, 믿음이 있어도 기도를 하려면 방해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기도는 시간을 정해놓고 매일 가져야 하는 동시에, 순간순간 하나님의 능력을 간구하는 비정규적인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기도에 능력이 있음을 꼭 의식하십시오.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열심히 기도하면서 실망하지 마십시오. 분명하게 기도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약속되어진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들이 되시기기를 바랍니다. (고신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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