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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산다고 바쁘고 힘든 사람들에게 (학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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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영상은 싸이라는 가수가 어버이날을 맞아 발표한 ‘아버지’라는 제목의 노래 동영상입니다. 저는 이 동영상을 보면서 정말 가슴이 찡했습니다. 특히 돈을 벌기 위해 칼바람을 맞으며 얼굴에 상처가 나고 피가 나지만 그래도 가족들을 향해 뒤돌아 볼 때는 웃음 짓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정말 눈물이 나도록 가슴이 찡했습니다. 어쩌면 오늘날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아버지의 모습이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어디 아버지의 모습뿐이겠습니까? 만약 어머니라는 주제로 동영상을 만든다면 이보다 더 고생하고 수고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동영상으로 나올 것입니다.

아무튼 이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나도 힘들고 바쁜 삶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말하면 ‘먹고 산다고 바쁘고 힘든 사람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렇게 ‘먹고 산다고 바쁘고 힘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질문합니다. 먹고 산다고 바쁘고 힘들면 신앙과 하나님도 뒤로 미룰 수 있느냐? 오늘 본문은 이 질문에 대한 신학적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바쁘고 피곤하고 힘들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안 해도 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이에 대해 당시의 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하고, 하나님은 아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도 먹고 산다고 바쁘고 피곤한 삶이지만, 오늘 본문의 사람들도 만만찮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벨론 포로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온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말씀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왔다는 것은 일단 대단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바벨론에서 70년을 살았습니다. 이제 나름대로 바벨론의 삶에 익숙해진 세대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로 돌아간다고 해도 아무런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들을 맞아줄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자신들의 땅이 확보된 것도 아니고, 성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도시의 안전이 보장된 것도 아닙니다. 아무런 보장이 없지만 오직 하나,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그 믿음 가지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마련할 뿐만 아니라 성전을 짓기 위해 수고하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래서 에스라 성경에 보면 이들이 성전의 기초를 놓고 아주 기뻐하고 좋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처럼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나름대로 대단한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랬던 사람들이 지금은 성전 짓는 일에는 모두 손을 놓고 오직 자기 먹고 살기에만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에스라 4장에 보면 저들의 경제적 어려움과 사마리아 사람들의 반대 때문이었다고 기록합니다. 결국 저들은 성전을 짓다가 사마리아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히고(지금으로 말하면 이웃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힌 것과 비슷합니다), 또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서 성전 짓는 일을 중단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월이 이미 16년이 흘렀습니다. 16년 동안이나 성전을 짓는 일이 방치된 것입니다.

나름대로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이 성전을 짓다가 중단했을 때는 얼마나 찜찜하겠습니까? 그들 중 누구도 성전을 짓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성전을 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름대로 변명거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본문 2절의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는 말입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핑계하면서 저들은 오직 자신들의 집과 삶에만 충실합니다. 그것이 4절에 표현된 말입니다. “여호와의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여호와의 전은 황무하였지만 저들은 오직 자신들의 집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어쩌면 오늘날도 많은 성도들이 바로 이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신앙생활을 무시하거나 거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삽니다. 일단은 먹고 사는 일부터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은 돈을 벌고, 자식들을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은 형편이 좀 더 나아지면, 여유가 생기면 그 때 정말 열심히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게 아니라고. 예수님이 마태복음 6장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는 말씀처럼 하나님도 먼저 우리의 삶이 하나님 중심, 신앙 중심의 삶이되길 원하십니다.

이제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산다고 바쁘고 힘든 사람들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이들에게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찌니라’고 말씀하십니다. 1장5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찌니라” 7절에도 동일한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산다고 바쁜 사람들에게 정신없이 달려가지만 말고 이제는 가만히 자신의 삶을 살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당신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보고 생각도 해 보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 잘 살펴보고 생각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삶의 소위와 결과가 6절에 나옵니다. 한마디로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삶이 바로 저들의 삶입니다. 마치 시련127편 1, 2절의 말씀과도 같은 삶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없이 열심히 달려가는 삶은 순간적으로는 일이 되어가고 돈을 버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헛될 뿐입니다.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될 뿐입니다. 본문의 사람들도 성전 짓는 일을 포기하면서까지 열심히 자신들의 삶을 살았는데 결과는 더욱 더 살기 어려운 현실뿐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9절에서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9절 중반에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무슨 말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성전 짓는 일은 팽개치고, 하나님 팽개치고, 자신들 먹고 사는 일에만 충실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땅을 황무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11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친히 한재를 이 땅의 모든 곳, 즉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육축과 손으로 수고한 모든 것에 내리게 하여 이 땅이 황무하게 하였다고 말합니다.

특별히 여기서 유념할 것 중의 하나는 4절과 9절에 나오는 황무하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하레브’이고 11절에 하나님이 보내시는 한재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호레브’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을 ‘하레브’하게 했기 때문에 내가 너희에게 ‘호레브’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레브 할 때 난 호레브 하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의 삶을 곰곰이 생각하며 살펴봅시다. 혹시나 내가 하나님과 신앙을 팽개치고 먹고 사는 일에만 열심을 내며 살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잘된 것이 무엇인지. 정말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내팽개치고 자기 먹고 사는 일에만 열심인 사람을 축복해 줄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하레브(황무)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호레브(한재, 기근)를 내리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없이 부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하나님을 팽개치고 열심히 내 삶만 살았는데도 많은 것들을 거두며 누리고 살아간다면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과 상관이 있는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 하나님과 상관있는 사람은 절대로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집에 돌아가시면 꼭 자기의 소위를 살펴보십시오.

산다고 바쁜 사람들에게 먼저 자기의 소위를 살펴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이제 보다 직접적으로 중단되어진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령하십니다. 8절입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저들이 지금 여유가 있기 때문에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저들의 삶은 힘든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의 삶이 힘든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힘든 것을 알면서도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왜냐하면 ‘먼저 하나님과 그의 나라 그리고 그 의를 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때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어렵지만 지금이 바로 성전을 건축할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형편이 좋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더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이 말씀에 꼭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제 살펴볼 것은 성전을 지으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먹고 살기도 힘든 사람들에게 왜 굳이 성전을 지으라고 말씀하는 것입니까? 그것도 지금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굳이 건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성전을 지으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어차피 하나님께서는 성전이 있었던 기간보다 없이 지낸 세월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이미 70년 동안 하나님은 성전 없이도 괜찮았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성전과 예루살렘을 멸망케 하신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들이 성전을 짓는다고 해서 예전의 예루살렘성전보다 더 잘 지을 수도 없습니다. 예루살렘 성전도 하나님을 모시기에 부족하다고 솔로몬이 고백했는데 지금 저들이 짓는 성전이 건물로서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금 지으라는 것은 결코 건물로서의 성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전을 통한 이스라엘의 신앙의 중심을 회복하고자 하심입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성전이 없다는 것은 단지 건물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신앙의 중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곧 저들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에는 신앙이 있다는 것은 곧 성전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바벨론 포로시대에도 성전은 없었지만 그들은 성전을 다시 세울 날을 기대하며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포로시대는 성전이 없었지만 성전을 사모하고 있는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들은 성전을 지을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는데도 성전 짓는 것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은 신앙에 대한 포기요, 하나님에 대한 포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전 재건을 통하여 저들에게 다시금 신앙에 대한 회복과 하나님에 대한 회복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성전은 저들의 모든 삶이 성전 중심, 신앙 중심으로 살도록 하는 도구였습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며 배우도록 하는 하나의 중계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그것 없이도 잘 살고 있다는 것은 신앙의 심각한 위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저들에게 다시금 신앙의 회복을 위해 성전을 지으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성전을 다시 지으라고 명하십니다. 다시금 우리의 삶이 신앙 중심의 삶이 되라고, 하나님 중심의 삶이 되라고 명하십니다. 바쁘고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지만 그것보다 우선하여 하나님 중심, 신앙 중심으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내가 다시 세워야 할 성전은 무엇인지, 우리 교회가 다시 세워야 할 성전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나 교회는 실제로 성전건물을 짓는 것이 저들의 삶을 하나님 중심으로 붙들어 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가정 제단을 회복하는 것이 무너진 성전을 회복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교회의 봉사를 회복하는 것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개인의 심령의 제단을 다시 세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지금이 바로 우리의 무너진 성전을 회복할 때라는 것입니다. 모두들 자신의 삶 중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 신앙 중심으로 살아야 할 때입니다. 내가 무너진 성전을 회복하고 하나님중심, 신앙중심으로 살 때,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실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우리교회가 재건해야할 성전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많은 것이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교회의 부흥이 우리가 다시 세워야 할 성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50주년 희년을 맞아 우리가 다시금 새롭게 꿈꾸고 힘을 모아야 할 것은 바로 교회의 부흥이라고 생각합니다. 숫적으로 부흥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심령의 부흥이 일어나고 교회가 다시금 순수한 신앙으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가장 중심 주제가 세상일과 세상 재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 중심 주제가 되고,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충만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자 하는 순교신앙이 회복되는 그런 교회가 다시금 세워지길 기대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날마다 믿는 자의 수가 더해지는 그런 교회의 부흥이 우리가 다시 세워야 할 성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그 거룩한 소망이 있는 분은 아멘으로 한번 화답해 봅시다. 아멘!

이번에 저는 몽골지도자 성령의 공동체학교를 통해서 정말 그렇게 순수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모하는 몽골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비록 가난하고 힘든 형편 속에서 살아가지만 하나님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은 우리보다 훨씬 뛰어났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모하며 은혜 받는 몽골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도 들었고, 몽골의 미래가 참 밝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밝은미래 몽골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유념할 것은 우리가 세우는 성전의 외적 화려함이나 크기에 우리의 성전재건이 위축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람들도 자신들이 성전을 재건하지만 그 규모가 너무 초라해서 슬퍼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저들과 함께 하며 이 성전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이 실로 엄청날 것을 약속해 주십니다. 2:9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마음으로 우리의 성전을 재건하고자 할지라도 그 규모가 아주 초라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들에게 내세우기 부끄러울 만큼 작은 일로 시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외적인 규모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 심령입니다. 내 심령이 다시금 하나님 중심, 신앙중심으로 결단하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나의 어떤 것을 통해서도 보다 더 큰 영광을 나타내시고 받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지금부터라도 시작하십시오. 다시금 여러분의 성전을 재건하십시오. 바로 지금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성전 개건을 명령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아주 중요한 약속을 주십니다. 바로 13절의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는 말씀입니다. 13절을 읽겠습니다.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명을 의지하여 백성에게 고하여 가로되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는 말씀은 우리가 너무 많이 들어서 당연한 것처럼 들리지만 적어도 오늘 성경 속에서는 너무나도 중요한 약속이며, 축복입니다.

구약성경에서의 하나님은 백성들이 함부로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부른다고 다 응답하고, 찾는다고 다 만나는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55장에 “너희는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만날 만할 때에 찾으라”는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이 멸망하도록 하며, 성전이 파괴되도록 하셨던 것은 이제 하나님이 더 이상 저들과 함께 하지 않겠다는 징표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신들을 떠나셨던 그 하나님이 성전을 지으라고 명하시면서 하나님이 친히 저들과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떠났던 하나님이 다시금 백성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저들에게 있어서 이 약속은 가장 큰 약속이자 축복이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은 성경 역사 속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반복되는 아주 중요한 약속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전쟁을 앞두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다른 축복이나 약속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국가적 위기 때에 이사야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약속을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도 제자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주시면서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함께 하리라’는 약속을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성전을 재건하고자 하는 성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가장 큰 약속과 축복은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자녀에게 부모의 함께 하심이 가장 큰 축복이고 약속이듯이, 성도에게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가장 큰 약속입니다. 성전을 재건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아멘.

오늘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축복으로 이미 임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린 구약의 성도들이 그토록 누리고자 하는 약속을 날마다 누리며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시대의 사람들은 이제 이 약속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성령님과 날마다 동행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성전 재건은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감동하십니다. 그래서 성전을 짓도록 하십니다. 본문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흥분시키셔서 저들이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의 증거는 바로 마음에 감동을 주심입니다. 마음에 감동이 임할 때 이미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일하고자 하심을 믿으시고 하나님께 함께 일어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시고, 그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만약 마음에 감동이 없는 분은 사모하며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게 해 주시고, 내 마음에도 은혜와 감동을 더하여 달라고.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참으로 바쁘고 힘든 삶임을 압니다. 하지만 바쁘고 힘들다고 해서 신앙과 하나님을 뒤로 팽개쳐서는 안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중심, 신앙중심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과 그 의를 구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더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 없이 그 어떤 것을 추구한다 해도 결국은 아무것도 얻지를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소위를 다시 살펴보고, 지금이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 우리와 우리교회에 주어진 성전을 재건합시다. 다시금 하나님을 뜨겁게 찾고 구하며, 다시금 오직 하나님으로 인해서 만족하며 기뻐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아멘. (박원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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