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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구무언(有口無言) (회복) (겔 16:60 ~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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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속용 되는 말 가운데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용서(容恕)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관용을 베풀어 꾸짖지 아니한다.'로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할 때 용서에 대한 한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용서 안에는 상대방의 잘못을 잊지는 못한다는 속내를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인간들 사이에서 어떤 잘못한 일에 대해 용서와 화해는 언제든지 가능한 것이 사실입니다. 손해에 대한 보상조건만 충족된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의 용서와 화해는 언제든지 다시 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내면적으로 잊지 않고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인간들은 서로의 잘못에 대해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용서 자와 피용서 자가 같은 인간이어서는 완전한 용서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용서는 하나님과 인간들의 관계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비취'는 말하기를 "내가 용서를 해주지만 잊지는 않겠다는 것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표현의 일종의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주얼리'는 말하기를 "하나님에겐 건망증 증세가 있다 용서를 하고나면 그 다음은 잘 모르신다."라고 했습니다.

독일 속담에 "만일 하나님이 용서하시길 거부하셨다면 천국은 텅텅 빌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버드'는 말하기를 "기억력이 좋은 것은 장점이다 그러나 잊을 수 있는 능력은 더욱 위대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칼빈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베푸신 모든 구원에는 그들의 죄에 대한 용서가 동반 된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38장 17절에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43장 25절에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1장 18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31장 34절에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미가서 7장 19절에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고 했습니다.
시편 103편 12절에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7절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에스겔은 죄로 인해 이스라엘의 멸망이 임박하였다는 것을 고지했다가 갑자기 회복의 약속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하게 된 죄는 우상숭배와 이방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회복의 약속과 함께 최우선적으로 죄 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새 언약에 의해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야 합니다.
이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언약을 체결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헤세드, )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Ⅰ. 영원한 언약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본문 16장 60절에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고 했습니다.
이전에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다시 영원한 언약을 세운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전에 세운 언약이 무엇입니까?
본문 16장 8절에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스러운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사랑스러운 때"라고 한 말은 처녀가 내적으로 성숙해서 신랑될 자와 사랑할 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내 옷으로 너를 덮었다"는 말은 결정적으로 결혼한 신랑이 신부를 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룻기 3장 9절에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라고 했습니다.
여기 "언약하여"라는 말은 신랑과 신부가 서로 약속하는 결혼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대해 칼빈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더러움과 수치를 덮으시고 마침내 시내산에서 율법으로 언약을 맺으신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사야 54장 5절에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이제 이스라엘은 언약에 의해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1) 구속언약(The covenant of Redemption)입니다.
이 언약은 성부와 구원 받을 하나님의 백성의 대표자이신 성자 사이에 인간 구원을 위하여 맺으신 언약입니다.
에베소서 3장 11절에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에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9절에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절에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라고 했습니다.

2) 은혜언약(The covenant of Grace)입니다.
구속언약이 성부와 성자 간에 맺어진 언약이라면 은혜언약은 성부께서 자신이 선택하신 죄인들과 맺으신 언약입니다. 이 두 언약은 결코 다른 언약이 아닙니다. 구속언약은 하나님께서 죄인 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영원 전에 성자와 세우신 구원계획입니다. 은혜언약은 그것의 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7장 7-8절에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32장 38-41절에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영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5절에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7장 22절에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Ⅱ. 용서하는 언약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본문 16장 62-63절에 "내가 네게 내 언약을 세워서 너로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니 이는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너로 기억하고 놀라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다시 은혜의 언약을 체결하시고 언약의 신실하신 하나님이 되심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 "용서"는 '죄를 덮는다'는 말입니다.
출애굽기 29장 37절에 "네가 칠 일 동안 단을 위하여 속죄하여 거룩하게 하라 그리하면 지극히 거룩한 단이 되리니 무릇 단에 접촉하는 것이 거룩하리라"고 했습니다.
레위기 4장 20절에 "그 송아지를 속제죄의 수송아지에게 한 것 같이 할지며 제사장이 그것으로 회중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들이 사함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죄의 근거가 되는 피입니다.
레위기 17장 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옷을 입는 것은 옷을 벗기는 것과 반대되는 말입니다. 결국 우리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가죽옷을 입히신 것입니다(창 3:21).
① 아담과 하와에게 입혔던 가죽옷(창 3:21) ② 요셉의 채색 옷(창 37:3) ③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서 그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갈아입힌 옷(슥 3:3-5) ④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롬 13:14) ⑤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4) ⑥ 전신갑주를 취하라(엡 6:13) ⑦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골 3:12) ⑧ 흰 옷(계 3:4-5) ⑨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4)
하나님은 범죄한 이스라엘을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버림이 아닙니다.
이사야 54장 7-8절에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호세아 11장 8절에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인간들의 불륜을 아시고 다시 회복의 조치까지 해 놓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헤세드, )언약입니다.

Ⅲ. 놀라고 부끄러워서 입을 열지 못하게 하는 언약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본문 16장 63절에 "이는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너로 기억하고 놀라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했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부끄러워서 입을 열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더러움과 부족한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시편 39편 9절에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하옴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이다"라고 했습니다.

① 이 계약을 영원한 언약( )이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50장 5절에 "그들이 그 얼굴을 시온으로 향하여 그 길을 물으며 말하기를 너희는 오라 잊어 버리지 아니할 영영한 언약으로 여호와와 연합하자 하리라"고 했습니다.
② 이 계약을 평화의 언약( )이라고 했습니다.
에스겔서 37장 26절에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케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62장 4절에 "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칭하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바가 될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회복의 날에 여호와께서 영원토록 장가들게 될 것이다( ). 여기서 영원토록( )이 주목할 만합니다. 이 말이 다시는 깨어지지 아니하고 변하지 아니하는 재결합을 의미합니다.

이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자기를 바알리( )라고 부르지 말고 이쉬( )라고 부르도록 했습니다.
결혼하면 아내는 그의 남편을 바알리 곧 내 남편( )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러나 바알리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더불어 간음하던 이전 애인 바알신과 동음이어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같은 남편이라는 의미를 가진 곧 내 남편 이쉬( )라고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입에서 다시는 바알이라는 이름을 지워 버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개 할 수 없습니다. 민수기 23장 19-20절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장"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13절 "우리는 미쁨이 없을찌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그가 오셔서 우리 가운데 보인 첫 번째 기적이 가나에 있는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기적입니다. 잔치에 모든 책임은 신랑에게 있습니다. 잔치에 포도주가 모자랐으나 연회장과 신랑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돌항아리 여섯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저들은 아구까지 채웠습니다.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셨습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연회장이 신랑을 불렀습니다(요 2:1-9).

요한복음 2장 10절에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진정한 신랑으로 오신 것을 첫 번째 기적으로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가성 우물가에서 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중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 18절에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영원한 신랑이십니다. 주께서 심판주로 다시 오실 때도 우리의 신랑의 자격으로 오십니다.
마태복음 25장 6절에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라고 했습니다.

우리 찬송가 162장에 "신랑되신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라고 시작합니다. 찬송가 166장에서도 "저 신랑 영접하러 다 함께 나가세"라고 찬송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다윗의 장막을 재건하는 자와 그의 백성의 남편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암 9:11-15). 인간들은 결혼하고 이혼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혼한 뒤에 아내 된 자기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며 불륜에 빠졌을 때 잠시 진노하셨다가 다시 회복해 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결혼 공식입니다. 그 결혼 공식은 하나님의 언약과 함께 유효합니다. 우리는 의지적, 지적, 과학적 사고를 가진 교회를 수준 높은 교회라고 일견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교회의 차원은 사죄의 은총이 극대화되는 교회가 수준 높은 교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던 베드로는 고기를 낚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도록 잡았습니다. 이때 누가복음 5장 8절에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부덕한 신하가 임금에게 "전하 신을 죽여 주옵소서"라고 하는 것은 자신을 죽이지 말고 용서해달라는 적극적인 표현입니다.

이미 용서받은 우리는 보은의 자세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합니다. 자기가 가진 유형무형의 달란트를 주님의 교회운동에 쏟아 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이 예배하는 피조물로서의 기능을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삶이 우리를 죽일 수는 있으나 욕보일 수 없어야 합니다. 한 없이 부드러우나 결코 나약해서는 안됩니다. 강하고 담대하나 사나워서는 안됩니다. 자신에게는 말할 수 없이 검소하나 주 앞에서는 결코 인색해서는 안됩니다. 남을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는 것으로 희생의 수명을 다해야지 희생의 미련으로 참견하거나 간섭해서는 옹졸합니다. 품위라고 하는 데 포장되어 남에게 위화감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의 계시의존사색(啓示依存思索)이 사색(死色)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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