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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양정인이 가져야 할 세 가지 비젼 (창 13: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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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일 가장 더울 때 한국을 떠나서 선교지에 갔습니다. 우리 교회 단기 선교팀을 만나고 태국에서 있는 선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먼저 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이 어찌나 더웠는지 태국이 오히려 시원했습니다. 그곳에서 일정을 마치고 16일 중국 귀주성 선교를 위해 귀주성에 갔을 때에도 그곳은 평균 해발 2000m를 넘는 고지대여서 덮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교지에 있는 동안 별로 더운 줄 몰랐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니 한국도 이제 여름지나고 가을의 코앞에 와있기 때문에 덮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교지에 갔다오니 가을 냄새가 물씬 풍겨서 생각지 않은 피서를 갔다온 기분입니다.   
  다만 이번 일정이 길기도하고 시간이 여유도 없고 힘든 코스가 있어서 그런지 어제부터 몸살이 나서 어제 도착한 날에는 오후 내내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아무튼 주님의 은혜로 잘 다녀왔습니다. 기도해 주시고 물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단기 선교 특히 중국 선교사역을 통해서 동아시아 즉 중국 선교를 위해 우리 교회가 가져야 할 선교 정책에 관련하여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하는 기히가 되었습니다. 고생은 했지만 아주 멋지고 좋은 기회였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양정인이 가져야 할 세 가지 비전이라고 정했습니다.

  양정인이란?
  양정인이란 양정인의 3대 정신과 3대 성품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가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양정인의 3대 정신은?
  양정인의 3대 정신은 첫째 위하여 정신, 들째 밀알정신, 셋째 주라 정신입니다. 그리고 이 3대 정신에 근거하여 3대 성품을 갖게 되는데 첫째는 친절성, 정직성, 헌신성입니다. 
  양정인의 가치는 이 3대 정신과 3대 성품에서 보여 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3대 정신과 3대 성품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양정인이며 그들이 갖는 비젼이 양정인의 비젼입니다.
 
  비전(vision)이란 사전적인 의미로 보면 “보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어 “꿈” 이나 “상상력” 또는 “환상” 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젼은 믿음과 관련되어 있는 용어입니다.
  히 11:1-2절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라고 말하였습니다.
  비록 현실에서는 눈에 안보이지만 영적인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을 비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비젼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할 비젼은 어떤 것이 있을 까요?

  본문 말씀에서 넓게는 현대를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좁게는 양정인들이 가져야할 3가지 비젼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천국 비젼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에서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에 도착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동서 남북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땅을 영원히 주겠다고 했습니다.
  가나안땅은 영적인 의미로 천국을 상징합니다.
  가나안 땅을 주신다고 하는 것은 오늘날 모든 크리스찬들에게는 천국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영원한 천국을 약속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첫째로 가질 비전이 바로 천국 비전입니다.

천국 비전은 다음 두 가지입니다.

  ㈀ 천국 들어가는 비전
  세상에 살고 있지만 언제가 천국 백성으로서 천국에 들어갈 꿈과 비젼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삶은 이 세상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영원한 천국으로 연결되어집니다.
  히브리서 13:14절의 말씀을 보면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라고 했습니다. 즉 여기 즉 세상에는 영원한 도성이 없습니다. “장차 올 것” 바로 천국이 우리가 영원히 사는 도성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신실하게 믿었던 한 성도는 세상을 떠나면서 유언장에 자신의 무덤 비석에 써넣을 문구를 남겼습니다. 그것은 “천국에서 계속” 이라는 문구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은 생명 책의 첫 번째 장에 불과합니다.
  그 첫 장이 길든지 짧든지 그것으로 그냥 끝이 나는 것이 아니고 계속될 것입니다. 믿는 자는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사는 삶이 계속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과 천국에서의 삶 사이에 중단은 없습니다. 이세상의 삶이 제 1장이었다면 제 2장은 천국에서의 삶입니다. 제1장에 이어 제2장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됩니다.
  죽음이란 고후 5:8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것” 이기 때문에 죽음이후에도 우리 인생은 즉시 계속 됩니다.
  예수님은 이 비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요 11:25-26절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죽어도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천국에서 계속되어집니다. 이것이 천국 비젼입니다. 천국 간다는 비젼을 반드시 잃지 말아야 합니다. 내 힘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능력으로 갑니다.
 
  ㈁ 천국에서 받을 상급에 관한 비젼
  천국 비젼의 두 번째는 받을 상급에 관한 비젼입니다.
  이 세상의 고단한 삶을 마치고 천국에 갔을 때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수고하고 고생한 모든 것들에 대한 아름다운 평가가 내려질 것입니다.
  그리고 어루만지심과 위로하심의 상급이 주어집니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서 받을 상급에 대한 비젼을 다음과 같이 바라보았습니다. 
  딤후 4:7-8절에 보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그리고 시편 기자는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라고 시편 16:11절에서 고백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들에게는 천국의 아름다운 보상과 상급이 약속되어있습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자신을 위해 예비 된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는 비젼을 가집시다.
  예전에 어렸을 때 은혜 받고 즐겨 부르던 천국의 노래가 있습니다. 천당가 라고 불리는 이 노래는 요즘 성도들에게는 잊혀진 노래이지만 그러나 계속 불러야 할 노래임을 믿습니다.

  화려하고 무궁한곳 저 좋은 천당
  천하 사람 다 못 가도 우리는 가서
  우리주님 천만 성도 같이 앉아서
  이 세상에 지나온 일 이야기 할 적에
 
  우리주님 우리들의 등을 만지며
  애고 내 아들 내 딸들아 고생도했지
  생명 강수 흐르는 물에 목욕시키고
  생명과일 좋은 열매 따다 줄 적에
 
  우리들은 그 열매를 받아 먹으며
  세상 생각 다 잊고서 기쁨이 충만
  거문고와 비파를 홀로 칠 때에
  딩동 댕동 그소리가 듣기 좋겠네

  여기 앉은 부모형제 낙심 마세요
  예수만 믿고 보면 천국은 내 천국
  그의 귀한 아들딸이 되고 만 보면
  반짝 반짝 금 면류관 내 것이로다.

  이 노래 말을 누가 썻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옛날 부흥 강사님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서 즐겨 부르게 된 노래입니다. 분명 천국의 비젼을 가졌던 어느 성도가 이 상에서는 온갖 수고와 고생하면서 살던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가서 받을 주님께로 터 받을 위로와 상급에 관해 자신의 믿음을 담아 쓴 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천국의 비젼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본인의 믿음과 삶에 있어서 커다란 축복입니다.

  영국 청교도 목사이며 작가인 리차드 백스터(1615-1691)는 성자의 휴식이라는 책에서 성도들이 천국에 대한 비전을 가질 때 4가지 유익이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 마음의 초점을 맞추게 하기 때문에 우리를 유혹에서 지켜 준다. 
  둘째는 천국 비젼은 성도들의 생활에 활력을 준다.
  셋째는 천국의 비젼은 우리들의 고통에 치료약을 제공해 주며 영혼을 격려해 주며 고난을 가볍게 해 준다.
  넷째는 동료 순례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죽어도 천국 간다는 것과 그 천국에서 주님을 뵙고 그 앞에서 받을 상급을 기억하면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는 선교 비전입니다.
  하나나은 아브라함에게 동서 남북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동서 남북은 바로 모든 세상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이라고 표현했던 말씀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들고 땅 끝까지 가야 할 비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비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동서남북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 즉 복음을 전파할 사명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라보기를 원하셨던 그 동서남북은 지금 우리에게 펼쳐저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동서남북은 동남아시아 중국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키르키즈 그리고 아프라카에 이르는 네 개의 선교밸트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장 들어가지 않은 이 지역을 바라보는 선교 비젼을 우리 모든 성도들이 가져야 합니다.
  선교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요 교회의 목표요 사명인것입니다.

  우리교회 현관 맞은편 벽 위쪽에 대형 세계지도가 걸려 있습니다.
  교회를 드나드는 모든 성도 여러분 세계를 가슴에 품고 기도하시기 바람니다. 선교는 곧 영혼 구원이요. 영혼 구원은 전도입니다.
  선교의 출발은 전도로 시작됩니다.
  우리교회가 더 많은 선교사를 보내고 더 많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일을 위해서 우리 모든 성도들이 전도를 힘써야 합니다. 한 사람이 한 영혼씩 인도합시다.

  태국 팀과 중국 귀주성팀의 단기 선교 사역이 다 마쳐졌습니다.
  중국 운남성의 쿤밍이라는 도시에서 기차로 8시간을 가서 귀주성 육판수 라는 인구 40만의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하루 밤을 머물고 우리나라의 다마스 같은 차인 일명 빵차라는 차 3대를 임대하여 4시간 정도면 갈거라던 길을 길이 얼마나 험한지 8시간 걸려 가서 걸어서 두시간을 걸었습니다. 가다가 차가 고장이 났습니다. 소위 마후라라고 불리는 배기통이 떨어져 나가고 트렁크 문을 고정하는 걸쇠가 빠지고 타이어가 펑크 나고 헤드라이트 한쪽이 빠져서 덜덜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4시간 갈 곳을 8시간이나 걸려서 갔습니다.
  차 길이 끝나는 곳 까지 같을때 이미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밤 8시가 훨씬 지나버렸기 때문에 앞을 볼수가 없었습니다. 준비해간 손전등을 들고 걸어서 두시간을 갔습니다. 앞에 묘족 청년이 가고 중간 중간 마중나온 묘족 청년들이 우리들을 안내하여 가는 산길은 험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혼자서 간신히 걸어야 하는 좁은 길에 골짜기를 건너고 산등성이를 넘는데 밤이었기 때문에 멋모르고 갔습니다.
  나중에 나올때 그길로 나오는데 그 밤에 그런길 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정도로 가파른 비탈길이었습니다. 돌아올 때는 낮에 왔기 때문에 밑을 보니 발이 발발 떨렸습니다. 그런 길을 어두운 밤길에 갔습니다

  경사가 거의 90도에 가까운 바위 비탈길을 오르고 내려간 것입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산지족인 묘족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우리가 방문한 마을은 약 30여호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근동에서 근동 산족 교회들이 학생수련회로 모였기 때문에 학생들과 어른 합하여 약 300여명정도가 참석했습니다. 그래도 근동에서는 가장 환경이 좋은 곳이었습니다. 초등학교 1-3학년까지 가르치는 현대식 건물로 된 학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집에 돼지와 닭들을 함께 키우고 있었습니다. 엉성하게 나무로 만든 집에서 한쪽에는 사람이 자는 침대가 놓여있고 한쪽에는 돼지와 개 닭들이 함게 사는 집에서 생활하였습니다.
 
  오전 9-12시까지 점심먹고 오후 2-5시까지 그리고 저녁먹고 7-11시까지 앉아서 강의를 들었습니다.
  어린아이들도 흐트러지지 않고 열심히 들었습니다.   
  말씀 듣는 태도가 얼마나 좋은지 ... 통역하여 하는 설교였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욕을 전혀 안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너무 깊은 산속이어서 문명과 담쌓고 살아가는 사람들 초등학교 정도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 그 마을에 한 사람밖에 없고 그 사람이 마을에서 학교를 세워서 1-3학년과정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그래도 아이들을 두 시간 거리에 있는 학교에 보내기도 하지만 기성 세대들은 전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근처에만 가도 쪄든 때와 땀 냄새가 코를 막게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이뼈서 좀 안아주려고 했더니 젖먹이 갓난  아이들인데 옷과 몸에서 신내가 났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에게도 복음은 필요하였습니다.
  양정인의 선교 비젼은 세계를 가슴에 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교사역에 적극적으로 모든 성도들이 동참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축복에 관한 비전입니다.
  아브라함에 주신 비젼은 바로 축복에 대한 비젼입니다. 본문에 보면 너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주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국 비젼을 가지고 천국을 바라보며 그 천국을 채울 영혼들을 인도하기 위해 선교의 비젼을 가진 사람들에게 무한한 복을 약속하였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입니다.
  마 28:19-20절은 위대한 위임명령입니다.
  주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땅 끝까지 주의 가르친 복음을 전파할 것을 위임하는 장면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이 분부는 명령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라고 했습니다. 즉 복음을 위해 사는 자들과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세상 끝 날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과 함께 하실것입니다. 

  둘째는 소유의 복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실질적으로 천국에서 누리는 영원한 상급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라고 했습니다. 그가 밟는 땅을 다 그에게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얻는 것이 복입니다. 신 8:18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재물 얻을 능을 주셔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재물 뿐 아니라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을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축복의 비젼을 하나님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왜냐면 성도들에게는 이미 영육 간에 축복의 약속이 보장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복 받아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구제와 전도를 위해 마음껏 투자하고 쓸 수 있는 비젼을 가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복을 받아서 하나님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복 받아서 나 잘 먹고 잘살려고 하는 것은 축복 비젼이 아닙니다. 복을 받아도 하나님을 위하여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을 받아야 할 근거요 당위성입니다. 그래서 복을 받으면 반드시 하나님을 위해 선교와 교회 부흥을 위해 투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이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가질 자가 없고 보장해주시지 않으면 누릴 자가 없습니다. 아낌없이 주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복을 받습니다. 심는 자가 거두는 것이 진리입니다. 축복을 위해 심는 자가 복을 거두는 것입니다.   

  고전 3:8절에 보면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축복의 비젼을 가진  성도는 이 땅에서 신령한 것을 위해 심습니다. 왜냐면 갈 6:6-7절에 보면 무엇을 심든지 심은 것을 거둔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갈 6:6-7)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더 많이 거두기 위해 더 많이 심습니다.  고후 9:6절에 보면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양정인은 축복의 비젼이 분명해야 합니다. 축복 비젼을 회복해야 합니다. 복을 받아서 하나님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축복 비젼은 심는 것에 있습니다. 영원한 것을 심어야 합니다. 천국에서도 가치를 인정 받을수 있는 것을 위해 투자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땅에서서 소유에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소유를 누릴수있도록 보장해 주십니다. 축복 비젼을 회복하여 복을 누리시며 더 많은 것들을 심는 양정인이 되어야 합니다.

  천국 비젼을 회복합시다.
  선교 비젼을 회복합시다.
  축복의 비젼을 회복합시다.
  (박재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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