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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울이 죽으니라 (삼상 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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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의 맨 처음 책인 창세기, 그 창세기의 맨 첫 번째 말씀인 1:1은 4단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우리 성경의 순서대로 하면 “태초”, “하나님”, “천지” “창조”입니다. 이 네 단어는 가장 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태초”는 가장 오랜 시간, 즉 최초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위대한 존재를 말합니다. “천지”는 가장 넓은 공간을 말합니다. 그리고 “창조”는 가장 위대한 일을 말합니다. 이렇게 볼 때 성경의 처음 말씀인 창1:1은 엄청난 비밀 또는 진리의 선포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온 천지를 울리는 팡파르와 함께 찬란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장엄한 음성으로 외쳐야 할 말씀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문을 연 창세기는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거쳐 요셉에 이르러 그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런데 창세기의 마지막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창50:26에 “요셉이 110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저 찬란하고 장엄하게 선포된 창1:1의 말씀과는 너무도 대조되는 결론이 아닙니까? 마지막 말씀이 “죽음”이요 또 “입관”입니다. 여기 인간의 실패가 있습니다. 그리고 범죄한 인간의 서글픈 종말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신약성경 복음서 가운데 맨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인간을 그 실패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요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받게 하려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막1:1에는 이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시작이라”고 하는 말은 바야흐로 새 역사가 전개된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범죄로 실패한 역사를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회복하시게 된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렇게 새로 시작된 하나님의 아들의 역사의 종말은 어떻습니까? 그것이 요한 계시록 21:과 22:에 나타나 있습니다. 21:1에는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2:1에는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옛날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렸던 생명나무가 나타납니다. 죽음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회복시켜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고후5:17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위대한 비밀을 선포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회복은 먼 훗날, 하늘나라에 가서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바로 지금 여기서 그 놀라운 은총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들이야 말로 옛 선지자들 보다) 더 복이 있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구조나, 문장이나, 단어 하나에 이르기까지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거나 듣거나 할 때 다른 책과 같은 수준에 머물 수 없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 성경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에 읽고, 듣고, 묵상하고, 연구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살전2:13에서 “이 말씀이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하신 그대로 우리 안에 놀라운 일을 이루게 될 줄 믿습니다.

2. 성경은 단지 한 권의 책이 아닙니다. 그것은 총서라고도 할 수 있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의 도서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인쇄술이 고도로 발달했고, 종이도 옛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그 질이 좋기 때문에 「성경전서」66권이라고 해도 얇은 것은 두께가 불과 2cm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옛날 양피지에 기록할 당시에는 신구약 성경을 다 합하면 적어도 수레에 하나를 싣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하신 일과 그 진리의 말씀을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 어떻게 다 담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께서 행하신 일(만이라도) 낱낱이 기록 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그 책을 두기에 부족할줄 아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성경은 그야말로 하나님 말씀의 엑기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늘 의아하게 여겨지는 것은 우리가 보기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이 기록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기다 한번만 기록되어도 대단한 일인데 같은 내용이 중복되고 같은 단어가 반복되는 것을 볼 때는 이것이야말로 공연한 낭비적인 요인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될 적도 많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이렇게 고농도로 압축시켜 놓은 말씀에 두 번 세 번 아니 그 이상 중복되어 나오는 내용이나 문장이나 단어들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욥기에 보면 “하나님은 한번 말씀하시고 거듭 말씀하신다”고 했습니다. 내용이 중요하기 때문이요, 우리가 듣는데 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거나 듣거나 연구하거나 묵상할 때 자주 나오는 말씀은 더 관심을 가지고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전13:에는 “사랑”이라는 말이 계속 나옵니다.  고전15:에는 “부활”이라는 말이 계속 나옵니다. 히11:에는 “믿음의 영웅”들이 계속 소개되어 집니다. 그래서 고전13:을 “사랑 장”, 고전15:을 “부활 장”, 히11:을 “믿음 장”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복음서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통해 4번이나 반복해서 각각 다른 각도에서 말씀을 반복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중요한 진리를 말씀하실 때 지나가는 말로 하시지 않고 집중적으로 우리 귀에 넣어주십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고 하셨습니다. “듣는 귀를 가진 사람은 (그야말로)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아주 중요한 뉴스는 일제히 머리기사로 내보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뉴스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살피게 됩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살리시고, 복 주시는 그 복음을 우리에게 전하실 때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강조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고 하셨습니다.

3. 처음 이야기가 좀 길어졌습니다만 이런 전제를 가지고 오늘 사무엘상31: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여기 반복적으로 나오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죽음”입니다. “죽었더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열 세절 가운데 무려 7번이나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마치 창세기 마지막이 요셉의 죽음과 입관으로 끝난 것처럼 사무엘상서는 “죽고, 죽고 또 죽게 된 이야기”로 끝을 내게 됩니다. 엄청난 실패와 비극으로 끝이 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주셨으나 인간의 범죄와 타락으로 결국 거기서 쫓겨나게 되어 실낙원의 비참한 운명에 빠진 것을 연상하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사울의 출발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가 아버지의 암나귀를 찾으러 나섰다가 선지자 사무엘을 만났을 때 사무엘은 그에게 “온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에게 임하시고 새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거듭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무엘이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으고 그를 왕으로 추대하려고 찾았을 때 그는 행구 사이에 자기 몸을 숨길만큼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왕이 되었을 때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의 기쁨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 나가서 승리하므로 그 백성들에게 평화를 안겨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자리가 굳혀지고 승리에 도취되었을 때 그는 교만해 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네가 내 말을 버렸으므로 나도 너를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

그래도 하나님은 선지자 사무엘을 보내셔서 그의 잘못을 지적해 주고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선지자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욕심의 포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앞에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다스려야할 백성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울은 점점 자기 무덤을 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국은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죽고, 죽고, 또 죽는” 철저한 멸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찬송가에는 “주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라고 했지만 사실은 내가 주님을 떠나면 정말 내 생명은 헛된 것으로 끝나고 말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사울 왕을 통하여 이루시려고 하셨던 하나님의 뜻은 사울의 실패와 함께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까? 아닙니다. 로마서에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인간 만으로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영원히 서며, 하나님은 마침내 승리하시고야 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미리 다윗을 찾아내시고 그에게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옛날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하여 모리아 산을 향하여 갈 때 고민과 갈등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그러나 막상 현장에 가보니 제물은 이미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피할 길을 주셨습니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그 믿음으로 승리하고, 하나님은 그 아브라함을 통하여 승리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실패했습니다. 그 동산에서 추방당했습니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은 독생자를 예비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죄인이었을 때, 우리가 원수였을 때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거기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과 함께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아담의 실패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믿는 나를 통하여 승리를 이루시게 됩니다. 다윗을 통하여 “내 뜻을 다 이루리라”고 하신 것은 이런 하나님의 승리를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날을 돌아보십시오. 여러분 인생의 발자취는 승리로 장식되어 있습니까? 오히려 그 반대이지 않습니까? 그 실패가 오늘 나의 발목을 잡고, 내일을 향한 내 진로에 검은 구름을 드리우고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 현실에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 인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의 승리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죄 지은 사람, 병든 사람,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 귀신 들린 사람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그들은 모두 실패자들이었습니다. 인생에 실패하고, 건강에 실패하고, 경제생활에 실패하고, 특히 영적 생활에 실패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들었을 때 확신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들은 주저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찾아 나왔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주님은 가시던 길을 멈추시고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네 소원대로 될지어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 즉시 그들은 구원받았습니다.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십자가에서, 그 십자가로 영원한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그 승리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의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여러분을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주시고 여러분의 실패의 인생을 승리로 바꾸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김오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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