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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 (고전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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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속한 사람인가?
(고린도전서 3장 1절∼9절)

청년부가 수련회를 할 때 저녁에 집회를 하고 중간 시간에 MBTI라는 인성 검사를 하였다. 사람이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 앞으로 어떤 일과 직업에 종사하는데 적합한 성향을 지녔는지, 자기들끼리 강사를 추대하여 점검하였다. 청년들은 밥을 먹을 때도 자신의 성향에 관하여 안 것에 대해 즐거운 듯 계속 MBTI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보았다.
이처럼 사람의 적성도 점검할 필요가 있듯이 사람의 신앙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고후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나를 점검해 볼 때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

첫째, 영에 속한 사람이 있다. (고전2:12)
고전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은혜 받은 모든 것을 알고 그 은혜를 주신 하나님에 대해 안다.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사정도 알게 된다. 이는 바로 거룩한 성령으로 가능하다. 성령으로 나타나주시고(고전2:4), 성령으로 보여주시고(고전2:10),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고전2:13) 영의 사람은 신령한 일을 분별하고 모든 것을 판단하게 된다.(고전2:15) 예수를 알고 하늘의 일을 안다.
우리는 모두 두려움의 영에서 벗어나 사랑으로 채워져서 살고 능력으로 하나님의 영을 소유한 영에 속한 사람이 되자.

둘째, 육에 속한 사람이 있다. (고전2:14)
고전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육에 속한 사람은 자연인이다. 즉 불신자를 말한다. 불신자는 어머니 뱃속에서 한번 태어난 사람이기에 그는 영의 사람이 아니다. 영의 사람은 바람같이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이다. 그러므로 육의 사람은 성령으로 태어나지 못한 자다. 다른 말로 영이 없는 사람, 영문 성경으로 "The man without Spirit"이다.
그래서 불신자이기에 세상의 것만 생각한다. 세상의 것만 가치가 있다. 세상의 것으로 모든 것을 다 보려고 하기에 성령의 일이 이해되지 않는다. 육의 사람의 삶과 영의 사람의 삶은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님도 요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그 선을 분명하게 그으셨다. 육의 사람은 영이 없는 상태이기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이 없다. 무감각한 상태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의 꾸짖음이 없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달려가는 인생이다. 설교가 들리지 않는다. 굳어진 마음이다. 죄를 지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셋째, 육신에 속한 사람이 있다. (고전3:3)
고전3: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하였다.
이 육신에 속한 자의 특징은 영에 속한 사람과 육에 속한 사람의 중간 상태에서 갈등하며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사람은 항상 속사람과 겉사람의 대결 속에 있다. 겉사람, 육의 사람쪽으로 자꾸 이끌려가는 사람이 되어 자꾸 불신자와 같은 육의 열매를 맺는데 문제가 있다. 하나님이 은혜 주시고 말씀 주시고 그 아들을 주신 것을 알면서 육에 져서 살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되지 못한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바로 이 세 가지 유형 중 성령을 받았노라 하면서 자꾸 육에 속한 자처럼 되는 육신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을 베이비 크리스챤(Baby Christian)이라 부르고 어른처럼 대우하지 못한다고 한다. (고전3:1) 그래서 바울은 이들을 젖으로만 먹이지 딱딱한 것으로는 먹이지 못한다고 한다. (고전3:2) 이처럼 육신에 속한 사람이 갖는 특징은 미성숙함이다.

1. 아기같이 달래 주어야 한다. (고전3:1)
고전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①어린아이는 자기 중심적이다.
  미성숙했기 때문에 나 외에 너를 생각하지 않는다.
②어린아이는 인내하거나 참지 못한다.
  집중력이 없어서 곧잘 소란을 피우고 분잡스럽게 행동을 한다.
③어린아이는 항상 질서를 깨뜨린다.
  잘 하다가도 아무데서나 소변을 보고 분위기와 환경을 깨뜨린다.
④어린아이는 더욱 칭창만 들으려 한다.
  못했어도 "최고야, 예쁘다."는 말을 들려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어린아이같은 성도가 많으면 안된다. 자기 기분대로, 자기 뜻대로 칭찬이나 받아야 하는 성도들이 많으면 삶의 나눔과 사랑의 섬김과 봉사를 실천할 수 없다. 바울은 이 육신에 속한 자들을 어른처럼 성숙시키기를 원했지만 신앙의 상태와 수준이 베이비(baby) 수준이기에 어린아이처럼 대해야 했다. 그것이 바울의 목회의 수고였다.

2. 젖으로만 먹여야 한다. (고전3:2)
육신에 속한 자의 특징은 먹는 것도 다르다. 고전3: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안타까운 것은 고린도교회의 교인 수준이 베이비 상태로 계속되고 있다는데 있다. 갓난 아기로 태어났으면 생명은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이 그 특징인데 젖 먹는 상태가 처음부터 그냥 답보 상태다. 즉, 초보 단계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히5: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하나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아기 신앙은 딱딱한 밥을 먹지 못한다는 말이다. 항상 초보라는 것이다. 누가 먹여주어야 하고 소화시킬 수 있는 말씀만 먹는 수준이란 말이다. 젖 먹는 신앙은 달콤하고 부드럽고 딱딱하지 않는 말씀만 취한다. 그러므로 히5:13∼14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했고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것을 모른다.
이것이 문제다. 사실 달고 맛있다고 해서 꼭 좋은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감미정, 사카린 등은 나쁜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 감미정으로 밥을 비벼 먹었다. 무지해서 그랬다. 이제는 딱딱하고 질기고 쓰고 거칠어도 단단한 것을 먹을 수 있으면 그것이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안다. 무엇이든지 질겨도 어려운 말씀을 받아먹고 소화시키는 성도가 되자.
무료 성경 신학원에서 성경 공부를 핑계로 사람을 모은다. 무료라고 하는 달콤함으로 사람을 유혹한다. 누구든지 장성하지 않으면 이런 달콤함도 분별하기 쉽지 않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질긴 것, 딱딱한 것을 다 받아먹고 소화시키는 강한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젖으로 먹여야만 되기에 바울은 젖을 들고 보모가 되어 저들을 만나야만 하였다. 더 좋은 말씀, 보약같은 말씀을 제시하지 못하고 우유병만 들고 저들을 먹여야만 하였다.

3. 사랑하지 못하고 시기하고 분쟁한다. (고전3:5∼6)
왜 싸우고 다투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어린아이이기 때문이다.
①육신에 속한 사람의 기준은 오직 자신이다. (고전3:3)
  그래서 그 특징이 시기와 분쟁이다.
②육신에 속한 사람은 사람을 따라 행한다. (고전3:4)
  어떤 이는 바울에게 어떤 이는 아볼로에게 속하여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다.
  사람을 따르면 편이 갈린다.
③육신에 속한 사람은 사람을 자랑한다. (고전3:21)
  사람을 자랑하다보니 자기 자신이 자랑하는 사람을 따르지 않으면 싸움의 대상이 된다.
  어린아이의 삶의 모습인 것이다.
오늘 시기와 분쟁이 있는 교회는 모두 베이비 교인들이다. 어린이의 특징은 싸우는데 있다. 육신에 속한 교인들은 하나님이 왕이라는 것을 고백하지 못하고 사람을 왕으로 섬기려 하는 것이다. "우리 엄만 최고야! 우리 아빠가 최고야!" 그래서 싸운다.
고전3:9의 말씀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다. 하나님께 소속된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우리의 주인이며 우리 삶의 왕이시다. 우리 하나님께 소속된 패밀리끼리 싸워서는 안된다. 우리가 시기와 분쟁으로 싸우는 원인은 내가 미성숙하기 때문이다. 사랑할 줄 모르기에 싸운다. 오직 교만 때문에 싸운다. 그리고 우리의 싸울 대상은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엡6:12)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육신에 속한 베이비 성도는 대적하는 사탄의 계략에 무지하여 자꾸만 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기와 분쟁은 어린아이 신앙의 특징일 뿐이다.
우리는 영에 속한 사람이 되어 성숙된 성도가 되자. "서로 사랑하고 서로 봉사하자!"라는 2006년 오목천교회 표어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아는데서 출발한다. 나의 주인, 나의 왕이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안다면 하나되는 교회, 섬기는 교회가 된다.
내가 자라난 고향 교회에 이은희 목사, 이현택 목사 두 남매는 교회 목사 자녀로 자랐다. 교인들이 목사님을 몰아내고자 할 때 그 고통을 보고 자란 두 남매는 가슴에 칼을 품고 다녔다. 어린아이처럼 분쟁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들도 원수 갚을 기회만 탐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은희 목사를 죽음에서 살려주셨다. 태백기도원에서 살려내시고 성령으로 만지시고 은사를 주셨다. 그는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되었다. 영에 속하니 미운 사람도 사랑하게 되었다. 모두가 살아나게 되었다.

오늘 바울은 세 종류의 사람을 소개하였다. 어린아이로 대할 수 밖에 없는 고린도교회의 모습을 통해 영에 속한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하였다. 영에 속한 사람과 육에 속한 사람 사이에 우리는 서 있다면 영을 좇아 행하자. 육신에 속한 어린이 신앙이 되어 불신자처럼 넘어지면 안된다. 우리는 사망과 생명 사이에서 영을 생각하고 영을 좇아 살므로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자.
그 출발은 거듭남이다. 육의 사람에서 지금 이 순간 새로운 사람에 속할 수 있다. 성령께 순종하므로 삶의 소속이 다르게 될 수 있다.

이제 묻고 싶다. 당신은 영에 속한 사람인가? 풍성한 생명을 누린다. 아니면 불신자와 같은 육에 속한 사람인가? 사망으로 끝장난다. 아니면 베이비 크리스챤인 육신에 속한 사람인가? 아무 것도 누리지 못하는 생명이다.
지금 성령께 순종하여 영의 생각을 하고 영을 쫓는 영에 속한 사람이 되자. 나의 신앙을 점검하면서 성령의 사람,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 받는 사람, 영의 열매를 맺는 영에 속한 사람이 되기를 다짐하자. 성령을 내 삶의 중심에 초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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